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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만의 항해 上海를 밟은 ‘을지문덕’

한국함대 중국 최초방문 동승기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천년 만의 항해 上海를 밟은 ‘을지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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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국측은 중국 정부 창설 이후 최초로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함대 경호 경비에 만전을 기했다고 한다. 상하이에는 북한의 총영사관이 있다. 일본의 조총련처럼 북한출신 교포들의 ‘조교(朝僑)’ 조직도 있다. 지난해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상하이를 두 번 방문했는데, 이후 북한 유학생들이 다수 상하이에 파견되었다.

1992년 한·중 수교 전까지, 중국은 북한과 가장 단단한 외교관계인 ‘혈맹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데도 북한해군은 단 한 척의 함정도 중국에 보내지 못했다. 중국만이 1997년 칭다오(靑島)에 있는 북해(北海)함대 소속 함정 두 척을 북한 남포항에 보낸 적이 있다. 이런 지경이니 중국 공안은 북한 조직이 한국 순항분대의 상하이 입항을 방해할 수 있다고 보고, APEC에 투입된 경비 인력을 한국함대 경비에 돌리기 위해 이틀 여유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할일이 없어진 순항분대는 제주도 서남방에서 오락가락하며 경비업무에 들어갔다. 경비업무에 들어간 첫날 예기치 못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화천함의 갑판장인 주형렬 상사의 부친께서 작고하셨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순항분대가 예정대로 항진했다면 주상사는 중국 상하이에 입항해 비행기를 타고 고향인 부산으로 날아와야 했으리라.

순항분대 승조원들은 여권 대신 ‘ID카드’로 신분을 보장받는데, ID카드에는 비자를 붙이지 않는다(ID카드는 상륙만 허가한다). 주상사는 상륙을 허가하는 ID카드만 있고 출입국을 보증하는 중국 비자는 없으므로,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출국할 수가 없다. 때문에 순항훈련에 나선 해군장병은 궂은 소식이 날아들어도 석달 후 진해항에 입항할 때까지 묵묵히 자기 일에 전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하이 도착이 이틀 늦어짐으로써 주상사는 빈소에 다녀올 수 있었다. 안사령관의 지시로 제주도에 있는 해군부대는 고속정을 보내 주상사를 태우고 나와, 제주공항에서 비행기에 태워 부산으로 보내주었다. 주상사는 2시간 동안 빈소에 머물며 마지막 효도를 한 후 24일 새벽 갈 때의 역순으로 화천함으로 돌아왔다. 이날 오후 안사령관을 찾아온 주상사는 울먹이며 이렇게 인사했다. “사령관님, 아버님 빈소에 잘 다녀왔습니다. 자식으로서 마지막 도리를 한 것 같습니다. 이 은혜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수병들은 화장실에서 빨래를 한다. 함정에는 여자가 없으므로 수병들은 ‘훌러덩’ 옷을 벗어 원초적인 모습으로 돌아가 우람한 몸매로 옷을 빨고 샤워를 한다. 화장실 문을 닫는 사람도, 닫으라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이러한 모습을 보기 힘들 것이다. 여군 사관들이 승함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각 함정은 여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여군 사관 침실은 함장실과 같은 가장 좋은 자리에 독방(獨房)으로 마련된다. 함정에서는 ‘여자 빼고는 없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년부터는 옛말이 될 것이다. 대신 “옛날에는 원초적인 자세로 빨래했다”는 이야기가 수병들 사이에서 퍼져나갈 것이다.

夜艦의 정취

24일부터는 어수선하던 함내의 질서가 잡혀나갔다. 해사 생도들은 식당을 이용해 수업을 하고 수업이 끝난 저녁에는 함내 빈 공간에 모여 자습을 했다. 군악대와 사물놀이패는 한곳에 모여 연습을 했다. 기관부와 갑판부·포술부 등 화천함을 움직이는 업무를 맡은 승조원들도 제일에 열심이었다. 정작 할일이 없어진 것은 기자를 포함한 민간인 편승자였다.

편승자 중에는 서울대 농대를 나와 원양어선 선장이 된 소설가 천금성(千金成·60)씨도 있었다. 천선생은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 상황을 틀리게 묘사한 부분을 잡아내는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바다에 정통한 ‘시맨(sea man)’이다. 그는 5공 출범 초기 전두환 대통령의 전기인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쓰기도 했다.

천선생은 대단한 유머와 입심을 갖고 있었다. 그가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기차 위에서 겪은 백계(白系) 러시아 여인과의 로맨스,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만난 한 소녀의 사연 등을 토해낼 때마다 편승자들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저술하게 된 과정과 그 책을 쓰기 위해 만난 신군부 인사들의 백태(百態), 그리고 원양어선 선원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밝힐 때는 배꼽을 잡고 나뒹굴었다. 천선생은 출항 직전 출간한 소설집 ‘외로운 코파맨’ 수백 부를 배에 실었는데, 책에 손수 사인해서 수병들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이발을 하고 나타나는가 하면 과자를 들고 나타나기도 했다. “이봐요 기자선생. 배에서는 이렇게 사는 것이라오.” 천선생은 84일간의 전 항해를 모두 따라갈 예정이다.

어찌 보면 배에서는 먹는 게 일이다. 편승자들은 사관실에서 순항분대 참모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식사는 세 끼 외에도 오후 3시30분쯤 과자와 음료수가 나오는 참이 있고, 저녁 9시쯤에는 야식(夜食)이 있어 사실상 다섯 끼다. 배가 흔들려서인지 배는 금방금방 꺼졌다. 오랜 항해에서는 먹는 일이라도 있어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천함과 을지문덕함에는 슈퍼링스 헬기가 뜨고내릴 수 있는 비행갑판이 있다. 이 비행갑판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족구시합이 벌어진다. 함상 족구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한다. 하나는 줄을 박아 맨 공으로 족구를 하는 것이다. 공이 함 바깥으로 날아가면 줄을 잡아당겨 공을 끌어올린다. 이 공을 찰 때는 줄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하나는 갑판 난간에 그물을 치고 하는 것. 그러나 대차게 내질러 공이 그물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함상생활의 압권은 야밤에 펼쳐진다. 해가 지면 수병들은 화천함 비행갑판에 소형 스크린을 세운다. 그리고 노트북에 DVD를 넣어 프로젝터(projector)로 쏘고, 성능 좋은 스피커를 설치해 볼륨을 최대한 올리는데, 이렇게 하면 멋진 함상 시네마가 만들어진다. 때마침 마스트에 상현달이 걸렸다.

배가 흔들릴 때마다 상현달은 까닥까닥 마스트의 좌우를 시계추처럼 오간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야참으로 나눠준 과자를 씹으며 ‘주라기 공원 3탄’과 ‘기사 윌리엄’을 보았다. 해군이 아니면 그리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영원히 맛볼 수 없는 ‘야함(夜艦)의 정취(情趣)’였다.

매우 빠른 쿠로시오 해류

가장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것은 아마 사관생도일 것이다. 먹고 자고 공부하고 실습하는 것으로 그들의 하루해는 기울고 만다. 매우 바쁜 것 같지만 단조롭게 생활하는 생도들을 위해 순항분대 지휘부는 특강을 마련했다. 영광스럽게도 기자는 첫번째 특강 강사가 되었다. 공보참모 박순제 소령은 “언론의 처지에서 본 대양해군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달라”고 주문했으나 기자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었다. 해사 생도들 앞에서 대양해군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과대학생 앞에서 수술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따분할 것이다. 기자는 탈옥수 신창원(申昌源) 이야기를 꺼냈다.

기자는 신창원이 탈옥해 세상을 시끄럽게 할 때 ‘탈옥수 신창원’이란 책을 낸 적이 있다. 이 책을 신창원이 읽었다. 1999년 7월16일 신창원은 전남 순천에서 검거됐는데, 그때 그가 써둔 일기에는 기자 이름이 수없이 나온다. ‘이기자가 책에서 나를 악마로 묘사했다. 그렇다면 악마가 되어주지. 전두환·노태우 집을 털러 가야겠다….’ 신창원은 이렇게 허풍을 쳤는데, 이를 본 다른 기자들은 ‘신창원이 전두환 노태우 집까지 털려고 계획했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신창원은 전두환·노태우 집을 털 수 있을 정도로 간 큰 도둑이 아니다. 그 책에서 기자는 신창원의 성장과정과 습성 등을 추적해, 교묘한 머리를 가진 잡범임을 밝혀냈다. 신창원은 대도(大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생도들 앞에서 신창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신창원 검거가 우연이 아니라 과학의 결과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다. ‘탈옥수 신창원은 술집이나 카페의 여자를 만나 신혼부부로 위장해 중소도시에서 살았다. 그는 개를 좋아하고 낚시를 좋아했다’ 등 신창원의 습성을 설명한 후, 신창원이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내 집중 수색하면 신창원을 쉽게 잡을 수 있는데 경찰은 여기에 서툴렀다고 말했다. 그러고나서 동북아 4강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중·러는 동북아 4강이자 세계의 4강이다. 이들은 한반도가 재통일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므로 통일 한국의 등장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신창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자세히 살피면 4강의 습성을 볼 수 있고 습성을 찾아내면 통일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생도들은 중국을 방문해 이것을 살펴봐 달라. 통일은 우연히 오는 게 아니므로 과학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화천함의 비행갑판에서 이러한 요지의 특강을 한 후 기자는 생도들로부터 경례를 받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함장(洪光男 대령)을 비롯한 순항분대 지휘부 인사들과 한반도 재통일을 놓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기회도 가졌다.

함정은 대화의 공간이자 문화의 무대며 군사 외교의 장이었다. 중국으로의 항진이 본격화한 25일부터 녹황(綠黃)색 바다가 펼쳐졌다. 누런 색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얕다는 뜻이고, 중국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중국에 다가갈수록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로 해류가 빨라졌다. 해류는 동북 방향, 그러니까 상하이에서 본다면 제주도나 한반도 남쪽 방향으로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이 해류는 속도가 3∼5노트(시속 약 5.5∼9.4㎞)로 매우 빠른 쿠로시오(黑潮)해류다. 이 해류의 일부는 서해를 한바퀴 돌아 다시 내려오고 나머지는 대한해협을 통해 동해로 올라간다. 동력선이 나오기 전 중국인들은 상하이 부근에서 이 해류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왔고, 한반도인들은 서해를 한바퀴 돌아 내려오는 이 해류의 지류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1997년 6월15일부터 7월9일 사이 동국대 윤명철(尹明哲·47·고구려사 전공) 교수는 상하이 바로 남쪽 저우산(舟山)시에서 뗏목배를 타고 흑산도까지 오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윤교수는 선사시대에도 한반도와 중국간에 배를 이용한 교류가 가능했음을 입증했다. 윤교수를 한반도로 보내준 건 바로 화천함이 가르고 지나가는 쿠로시오 해류다.

이날 저녁 화천함은 양쯔강(揚子江) 하류에 들어갔다. 짠물에서 민물로 변한 것이다. 양쯔강 하류라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땅이 보이지 않았다. 바다처럼 넓은 양쯔강은 완전히 흙탕물이었다. 이 물을 본다면 그 누구라도 이 바다를 황해로 이름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날 새벽 기자가 쿨쿨 잠자는 사이 화천함은, 양쯔강 물이 넘쳐 들어오는 바람에 기관부 승조원들이 물을 퍼내느라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웠다고 한다. 양쯔강 물이 화천함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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