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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 ‘황태자’ 김현철 5년 만에 입열다

“김홍일에 연민느껴, 야당때 던진 부메랑에 당한 것”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문민정부 ‘황태자’ 김현철 5년 만에 입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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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일주일에 한번씩 상도동에 가서 김 전대통령과 현재와 미래에 대한 말씀을 나눈다고 들었는데 두 분이 주로 어떤 얘기를 나눕니까?

“아버님과 일상적인 얘기만 할 수는 없겠죠. 사실 퇴임 이후에도 아버님이 현실정치에 많은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그런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해요.”

―훈수를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잘 적으셔야 합니다. 저 자신도 그런 차원에서 아버님과 말씀을 나누려고 애를 쓰죠. 사실 아버님은 우리 가족이 상도동에 가면 아이들 재롱 떠는 것 보시면 제일 좋아하신단 말이예요. 그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시길 참 바라는데, 어른께서 심각한 현실정치에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하는 그런 현실이 안타깝다는 얘기죠.”

현철씨의 얘기처럼 김영삼 전대통령의 정치권을 향한 훈수의 강도가 최근 들어 높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YS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마저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타깃인지 불분명하다. 여야 정치권 모두를 향한 무차별적 비판의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하자 현철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납득이 가는데요. 그 얘기는 제가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만 일감으로 느끼는 것은 어른께서 김대중 대통령이나 이회창 총재나 이런 분들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 때문에 갖는 감정의 기복을 그때그때 나타내시는 것 아닐까요. 애증(愛憎)이라고 할까요. 김대통령 하고야 과거 민주화투쟁 당시에 생사를 함께 하면서까지 투쟁을 해오셨던 사이고, 이회창 총재야 어른께서 정권 재창출하는데 있어, 문민정부 시절에 가장 요직에 임명함으로 해서 가까이 중용했던 분 아닙니까.”

―현정권의 국정운영 가운데 남북문제 언론사 세무조사문제, 교육정책, 의료보험통합을 비롯한 각종 정책 등 현정권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 어떤 문제가 있다고 느낍니까?

“그 문제는 아직은 제가 직접 언급할 상황은 아니라 생각되네요. 그것과 연관지어 다른 얘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현철씨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DJ정권을 향한 그간의 응어리를 토해내듯 길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이 정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습니다. 이 정권은 소수정권 아닙니까. JP와 연립해서 간신히 승리했는데요, 그렇다면 제일 먼저 국민적인 지지를 넓혀야 했습니다.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가깝게 손을 잡을 수 있는 곳에서부터 손을 잡고 갔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현정부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며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구태여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건국’ 얘기까지 나오고 말이죠.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는데 현실적으로는 힘이 없단 말이예요. 그러면 근처 세력과 힘을 모아 같이 가야하는데 그쪽을 배척했어요. 저희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는 명실공히 민간정부란 말입니다. 문민정부가 내건 기치가 뭡니까? 변화와 개혁입니다. 국민의 정부가 내건 게 뭡니까? 개혁 아닙니까? 그렇다면 문민정부가 했던 개혁가운데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도 있고 또 보완을 해야 될 것도 있고 계속 추진해야할 미완의 과제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문민정부가 ‘개혁 1기’ 정부라면 국민의 정부는 ‘개혁 2기’ 정부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은 중단없이 계속 가야 한다고 봅니다. 80년 초부터 90년대 초까지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영국의 대처정부 때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었어요. 그때 구조조정 하느라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금융개혁을 해치웠단 말입니다. 당시 미국은 공적자금을 넣어서 성공적으로 회수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런 식으로 정리해야 할 개혁과제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 있습니다. 현정권은 소수정권이고 흔히 말하는 지역적으로 소외된 정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과감하게 화합으로 갔다면 국민적 호응을 얻지 않았을까, 그러면 지금과 같은 이런 사분오열(四分五裂)하는 갈등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노재헌의 좌절 가슴 아파”

―지금은 늦었다고 보십니까?

“다 끝난 것 아닙니까? 내년이 대선인데요. 최근 들어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현재의 단임은 과거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절, 다시는 독재를 못하도록 하기 위해 여야합의에 의해 만들어 놓은 것 아닙니까? 지금 5년 단임 갖고는 그야말로 첫해는 시작하느라 시간 보내고 마지막 해는 선거하느라, 마무리하느라 보내면 실제 3년인데, 3년조차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것 같아요.”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 현철씨는 직답을 피해갔다. 그러나 최근 정가의 쟁점 가운데 현철씨가 유난히 관심을 쏟을 만한 뉴스가 있다.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이 그것. 1997년 2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현철씨는 “누구보다 김홍일 의원은 저를 잘 이해하리라고 생각한다. 어렵게 정치에 입문했으니 우리 나라의 정치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현철씨의 바람과 반대로 김홍일 의원을 둘러싼 소문은 날이 갈수록 사납기만 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일 의원이 최근 뉴스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각종 게이트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무성한데 왜 이런 식의 논란이 벌어지는 걸까요?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런 얘기를 지금 언론을 통해 처음 얘기해보게 되는데요, 이것도 제가 언급할 문제는 아니다만, 제가 그분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 현재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한때는 대통령 아들이었던 적이 있었고 그분도 국회의원 신분이지만 대통령 아들이기 때문에 느끼는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동병상련이 되겠죠. 그러나 말이 나왔으니 차제에 그 문제도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제도로 될 문제는 아니예요. 대통령 가족 문제를 어떻게 제도화하겠어요. 적어도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가들은 죽을 죄를 짓지 않는 한 대통령 가족들의 프라이버시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만큼 대통령의 가족에 대해 관심이 많은 곳도 없습니다. 나도 한때 새로운 대통령 가족문화를 만들어보려는 의욕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노태우 전대통령의 자제 재헌씨, 그 친구는 내 경복고 후배이기도 해서 아주 격이 없이 잘 지냈어요. 그런데 민자당의 위원장 맡았다가 좌절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가슴아프게 생각해요. 지금 현직에 있는 대통령 가족을 언급하고, 대통령 후보가 될 사람의 가족 얘기가 거론됐거나 거론될 예정인데 이건 한마디로 더티게임이예요. 그렇게 해서 정권 잡으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되겠어요. 부메랑이 반드시 돌아옵니다.”

대강 근황에 대한 질문이 끝난 뒤 곧바로 미국 유학시절 겪었던 테러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1998년의 납치 미수사건에 이어 개인적으로 두번째 겪는 사건이기에 그가 느꼈을 심리적 부담이 적지 않았을 듯 싶었다.

―2000년 10월인가요. 미국에서 괴한들에게 납치테러를 당할 뻔한 적이 있다는 뒤늦은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저하고 테러하고는 관계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조용히 살고 있는 미국에서 그런 일을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 사건은 미스터리예요. 여러 가지 놀랄 만한 일들도 제보를 듣고 있기는 한데요, 아무튼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예요.”

다음은 현철씨가 말하는 납치테러사건의 줄거리. 아침 나절이었다. 차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현철씨가 막 현관문을 들어설 때 그를 뒤쫓아 괴한들이 집으로 몰려 들어왔다. 처음에는 한 두명 정도인줄 알았더니 나중에 보니 7∼8명으로 늘어나 있었다고 한다. 바깥에는 이들이 타고온 밴 차량 두 대가 서있었다.

순간 현철씨는 ‘이놈들이 나를 납치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일단 이 위기를 빨리 외부에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마침 현철씨가 앉은 자리에서 뒷편에는 블라인드에 가려진 쪽문이 있었는데 쏜살같이 그 문으로 빠져 나와 옆집으로 달려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자 괴한들은 그들이 타고온 차로 도망가버렸다.

“7∼8명의 괴한 모두가 특정지역 사투리를 쓰고 있었는데 현지 사람이 아니었고 한국에서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난 뒤 서울 상도동에도 전화를 했습니다. 상도동에서는 난리가 났죠.”

김 전대통령은 긴급히 민주계 의원들 10여명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당장 정치쟁점으로 삼으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철씨가 급하게 제동을 걸었다.

“너무 놀라서 일단 서울에 알려드리기는 했지만 너무 빠르게 판단하시는 느낌이었고, 우선 범인을 잡아야 할 것 아닙니까. 심증은 가는데 확실히 하려면 범인을 잡아 자백을 받는 절차가 있어야지, 범인은 달아났는데 너무 정치적으로 몰고 가다가는 역공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어 제가 자제해 달라고 한 거죠. 저는 경찰이 곧 잡을 줄 알았어요. 그래봤자 그자들이 어디로 가나 싶었어요. 차량 번호는 못 봤지만 차종이나 차 색깔, 그 밖의 인상착의 등을 경찰에 얘기했습니다. 경찰도 곧 잡을 것처럼 말하길래 전모가 드러날 줄 알았어요.”

―그럼 현재도 미제사건인가요.

“아직 그쪽 경찰에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긴 한데, 사건 이후 보름 뒤에 묘한 얘기를 들었거든요. 확인이 안됐으니까 공개는 않겠지만 놀랄만한 얘기들을 많이 듣고 있어요.”

―어떤 얘기인지 궁금증이 더 커집니다.

“처음엔 저도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그들이 왜 들어왔을까. 납치를 하려면 한국에서 하면 되는데 미국에까지 온 이유가 이해가 안가는 거예요. 그런데 한 보름 뒤 의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자료’를 가지러 우리 집에 왔다는 겁니다. 괴한은 모두 8명인데 두 사람이 한국에서 왔고 6명은 현지 안내인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안내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지금 도피 중인데 제보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건 결국 간단한 사건은 아니다, 단순 강도 사건도 아니라는 거예요.”

―납치사건은 아니고 그러면 자료를 탈취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겁니까?

“납치는 맞아요. 자기네들끼리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다는 얘기가 나오던데요. 그런데 끔찍한 얘기까지 들었어요. 하여간 실패할 경우 살해 얘기까지 나오고…, 그 제보자 얘기가 자기는 한국에서 온 두 사람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며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듣고 알게 됐다는 겁니다. 납치에 실패한 뒤 두 사람은 LA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온 두 사람이 일반인입니까? 아니면 국가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입니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제보자도 믿을만 한지 확인해봐야하는 상태니까요. 그러나 너무나 구체적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사건 직후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단 말이예요. 그런데 지인(知人)을 통해서 앞의 제보자가 제보를 해왔는데 그 지인은 내가 테러를 당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제보자 한테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놀래서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저는 미국에서 교민과 교류를 거의 안했거든요. 그런데도 우리집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들어왔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현철씨 측은 가급적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포부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러나 그와 만난 자리에서 1997년의 대소동에 대한 김현철씨의 현재 심경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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