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뢰와 통합의 리더십 있다
- 지역주의와 정치자금이 장애물
- 비전 있지만 너무 신중해
- 국민경쟁력 높이겠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대권과 당권의 분리는 원칙적으로 찬성합니다. 중요한 것은 1인 총재가 아니라 국회 중심의 정치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쇄신파가 주장하는대로 총재나 최고위원은 모두 없애고, 정책과 노선과 법안은 원내총무가 지휘하고, 일상업무와 선거는 중앙집행위원장이 맡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체제에서는 대권 당권 분리가 의미가 없는 거죠. 대선 후보가 되어 승리하면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새로 경선을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3월 전당대회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좌절감과 소외감을 극복하는 국민정당이 되기 위한 과정부터 거쳐야 한다는 거죠.”
이미 대통령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힌 김 고문은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를 세가지로 정리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겁니다. 이런 리더십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법인데 김근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감각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김근태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른바 영남 포위론도, 영남후보론도 지역주의이기 때문에 국민을 분열로부터 통합으로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재야운동가 출신인 김 고문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나 만나본 사람들은 그에 대해 깊은 신뢰감을 보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 고문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나 당내 지지도는 여전히 높지 않다.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 당선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랍니다. 대통령으로서 자질과 능력 중 제일 중요한 것이 민주적인 성품과 민주화에 헌신한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김근태는 그런 자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론주도층인 전문가나 교수,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김근태가 리더십에서 1,2위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영상문화시대입니다. 저는 텔레비전 토론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고 자질과 민주적 정통성을 갖춘 김근태를 국민 대중들이 알게 되면 저를 선택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김 고문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집권 1년안에 ‘국민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국민경쟁력이란 관 주도의 국가경쟁력에 대비되는 표현으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선진국 문턱에 있습니다. 이런 때야말로 국민경쟁력을 다시 불러 일으켜야지요. 이 국민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투명성을 확고하게 제도화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정치자금의 불투명성을 확실하게 제거해야 돼요. 이번 대선 후보 경선 과정부터 깨끗한 정치자금을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우리 사회와 경제의 각 영역에 투명성을 제도화하고 부패를 몰아낼 수 있습니다. 또 시장 규칙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뢰가 제도화되면 국민경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습니다.”
김근태 고문에 대한 주위 평가들을 종합해보면 장점으로는 “민주적이다, 개방적이다, 비전을 제시할 능력이 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단점으로는 “너무 신중해서 타이밍을 놓친다”는 평이 있다. 그러나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아 주위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미이지 단점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경기도 부천 출신인 김 고문은 앞으로 대선고지를 향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로 ‘지역주의와 정치자금의 문제’를 꼽았다.
“김근태가 주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지지도가 빠른 속도로 오르지 않는 것은 제가 정치적 지역 연고를 주장할만한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도권 출신이기 때문이죠. 초기에 임계점을 넘어야 하는데 고전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그 임계점을 넘으면 모든 지역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이 어려운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선거에서 후보들간에 지역연합을 기도할 텐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고민입니다. 21세기는 한국이 선진국이 돼야 할 터인데 영남-호남의 대결구도가 지속되어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구도가 충청권 지역주의나아가 다른 지역주의까지 강화한다면 우리나라는 망합니다.”
김 고문은 겨냥하는 ‘정치적 이상’은 높지만 민주당내 다른 주자들에 비해 ‘현실적 실탄’이 적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탓인지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무슨 ‘게이트’ 때문에 나라가 뒤숭숭하고 되는 게 없어요. 지금 대선후보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치자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국민들은 이걸 질문해야 합니다.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하는 법이 제정돼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검사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으면 누가 대통령이 되어 ‘부정부패를 청산합시다’해도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죠. 그러나 ‘정치는 현실이다’는 주장 앞에 가끔은 무력해집니다. 돈이 없으면 세가 모이지 않고 모양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인데 이것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개혁시킬 수 있겠느냐, 김근태가 노력하고 있지만 여기에 걸려 있어요. 이것이 난관입니다.”
김 고문은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서 최고위급 회담의 정례화를 강조했다. 어떤 의제에 대한 합의가 어렵더라도 회담이 중단돼서는 안된다는 것.
“김정일 위원장은 7500만 민족과 세계 앞에 약속한 서울 답방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되면 서울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할 겁니다. 정상회담과 장관급 회담도 정례화해야지요.”
김 고문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김정일 위원장을 신뢰하는 것일까.
“신뢰하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접촉을 통해서 신뢰를 얻는 겁니다. 남북간에 평화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적이지만 한반도에서 평화를 이루고 통일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는 공동의 주체입니다. 이 양면을 함께 아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당내 다른 주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김 고문은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해서는 의외로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먼저 내세웠다.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성장을 이뤄내야죠. 그런데 개발시대의 관료-재벌체제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국민의 합의에 기초한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재벌 1인 오너 체제를 극복해야 하는데 재벌그룹이 아니라 각 기업이 수익성을 올리는 방향으로 발전해야지요. 그러지 않으면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고 위배자는 추방하는 규칙을 만들어 시행해야 합니다. 또 이 과정에서 패배한 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것이 생산적 복지의 실질화입니다.”
해마다 학부모나 학생들이 골머리를 앓는 교육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보다는 합리적인 교육정책을 계속 밀고나가려는 정부의 의지와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2000년도 대학정원에 8000명이 미달됐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학생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대학이 변해야 합니다. 대학이 공정한 경쟁을 해서 중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교육문제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됩니다. 교육제도 자체는 우리가 너무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합리적인 제도가 뿌리를 내리도록 인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런 것을 호소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산업화시대에 부족했던 근로기율과 합리성을 확보하고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맞는 창의적인 인성교육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과제입니다.”
김 고문은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 선생,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 드골 전 프랑스대통령을 꼽았다.
“김구선생은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살았고 목숨을 걸고 민족의 분단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냉전체제를 극복하려는 통찰력과 용기가 있었어요. 프론티어 정신이죠. 드골 대통령은 유럽연합을 실질적으로 이루어낸 정치지도자였습니다. 저도 동북아시아연합이라는 비전을 갖고 추진해나갈 겁니다.”
김 고문은 감동있게 읽은 책으로 민주화운동과 관련, 투옥된 뒤 감옥에서 읽은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꼽았다. 좋아하는 가수는 조용필. 평소 조용필의 ‘친구여’와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르기 좋아한다. 영화배우로는 최민식, 장미희, 심은하를 꼽았고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더 있는 듯했다.
“영화는 ‘안토니오스 라인’ ‘내일을 향해 쏴라’ ‘닥터 지바고’를 감동적으로 봤어요. ‘안토니오스 라인’은 페미니즘 영화인데 미혼모 계통의 3대가 활력있게 사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집사람이 권해서 비디오로 봤지요. 국산 영화로는 ‘박하사탕’이 기억에 남아요. ‘바보선언’도 좋았어요.”
운동으로는 축구와 배드민턴를 즐기지만 최근 힘줄을 다쳐 못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