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정원 2차장 김은성씨는 지난해 진승현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될 즈음 대검 고위간부를 만나 수사진행상황을 물어본 적이 있다. 이를 두고 로비의혹이 제기되자 김씨는 “진씨와 내 딸간에 혼담이 오가 사윗감으로 삼아도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을 뿐 로비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권력과 재력의 결합으로 볼 만한 두 집안 사이의 혼담은 이른바 상류사회의 결혼 풍속도를 보여주는 한 예다. 예로부터 결혼은 인륜대사라 이를 만큼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로 여겨졌다. 결혼의 사전적 정의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이다. 하지만 결혼에는 또다른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바로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들은 자식을 결혼시킬 때 상대방의 가문을 매우 중시했다. 이런 풍토는 특히 권력과 재력과 교양을 갖춘 상류사회에서 더 두드러졌다.
신분 차별이 없어지고 가치기준이 다원화된 오늘날 결혼 양태도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배우자 선택기준이 다양해졌다. 그렇지만 가문을 중시하는 풍토는 여전하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배우자에 덧붙여 가문까지 좋다면 누구라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상류층은 있으며 그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공공연히 인정되고 있다. 일찍이 민주주의가 꽃핀 서구사회에서도 상류층은 여론 주도층으로서, 또 권력과 부와 교양의 상징으로서 ‘그들만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그물망과도 같은 상류사회의 인맥 형성에 결혼이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국 최고의 ‘파워 엘리트 계층’인 검찰. 요즘은 비록 순위가 뒤로 밀려났지만 검사는 판사와 더불어 오랫동안 신랑후보 1순위로 꼽혀온 직업이다. 그런 점에서 검사들의 혼맥은 곧 우리 사회 상류층의 한 단면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신동아’는 각종 인명록에 수록된 기초 신상자료 비교·분석과 법조계 인사들의 증언,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한 증빙자료를 토대로 당사자들에게 직·간접 확인하는 방식으로 검찰 혼맥의 중심부를 파악했다. 취재 결과 검사들의 혼맥이 가장 두터운 곳은 법조계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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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들의 법조계 혼맥은 얽히고 설켜 있다. 장인 사위간은 말할 것도 없고 동서지간, 처남 매부지간이 많으며 한 집안에 3명 이상의 법조 인사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 특이한 것은 관련 변호사 중에 보수적인 변호사단체로 알려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원이 눈에 띄게 많다는 점.
대검에서는 서영제 마약부장(검사장)이 우선 눈에 띈다. 충남 서천 출생인 서부장은 대전고, 사시 16회 출신으로 서울지검 강력부장 시절 폭력조직·마약에 관한 두 권짜리 수사사례집을 펴냈다. 부인 김윤덕씨는 김숙현 변호사(국제합동법률사무소)의 딸이다.
고향이 평북 신천인 김변호사는 군법무관 생활을 오래 했다. 국방부 법무과장(대령)을 끝으로 전역한 후 죽 여권에 몸담아 왔다. 1970년대 초 8대 국회의원(공화당)을, 5공 때 11·12대 국회의원(민정당)을 지냈으며, 1997년 말 한나라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원이기도 하다. 김변호사의 형인 고 김택현씨는 서울지법 수석부장판사와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냈다.
김영준 대검 검찰연구관은 제2호 부부검사의 주인공이다. 부인 박계현씨는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로 있다. 서울 출생으로 예일여고, 사시32회 출신. 반면 김검사는 전북 군산 출생으로 서울고, 사시28회 출신이다. 김검사의 부친인 고 김기옥씨는 전주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김검사의 큰누나 영신씨는 언론인으로 연합뉴스 편집부국장을 역임했다. 영신씨의 남편, 곧 김검사의 첫째 매형 양재도씨는 교육자다. 가락고 교장을 지낸 후 정년퇴임했다. 통일당 총재를 지낸 고 양일동씨가 부친이다. 전북 군산 출생인 양일동씨는 3·4·5대 민의원과 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검사의 둘째 매형 강용식씨는 한빛은행 고위직을 지냈으며, 넷째 매형 최석영씨는 외시 출신으로 현재 UN본부에 근무하고 있다. 다섯째 매형 양동휴씨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다.
서창희 대검 검찰연구관은 대구 출생으로 동래고, 사시 27회 출신이다. 정해창 전 법무장관이 외삼촌. 경북고 출신인 정 전장관은 서울지검장, 법무차관을 거쳐 5공 말에 법무장관을 지냈다. 1990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돼 노태우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했다. 현재 대산법률사무소 대표다. 다산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고, ‘헌법을 생각하는 모임’ 회원이기도 하다.
초대 청소년보호위원장으로 널리 알려진 강지원 서울고검 검사의 부인은 김영란 서울지법 부장판사다. 강검사가 사시 18회, 김판사가 20회다. 두 사람은 영호남 커플이기도 하다. 전남 완도 출생인 강검사와 경남 창원 출생인 김판사는 각각 경기고와 경기여고를 졸업했다. 김판사의 남동생 문석씨도 판사다. 사시 23회 출신으로 현재 수원지법 부장판사로 재직중이다.
강검사의 부친 고 강대혁씨는 완도군수를 지냈다. 외무공무원 형 종원씨는 1997년 외무부 본부대사를 끝으로 공직생활에서 은퇴했다. 그후 경북 영천에 있는 성덕전문대 학장을 지내다 올 2월 퇴임했다. 동생 창원씨는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다. 현대건설 부사장을 지낸 매형 한무승씨는 현재 현대건설 사장 특별보좌역을 맡고 있다. 매제 김성조씨는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다.
사시 수석합격자인 강검사는 서울지검 특수부와 공안부 시절 ‘냉혈검사’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1995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및 어린이·청소년방송특별위원회 위원을 맡으면서 진로를 바꾸었다.
1997년 정기인사 때 청소년업무에 전념하기 위해 비인기 부서인 서울고검 근무를 자원했으며, 2001년 6월 인사 때도 같은 의사를 밝혀 법조계에서 화제가 됐다. ‘나쁜 아이는 없다’ 등 여러 권의 청소년 관련 저서를 펴낸 강검사는 현재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 미래’ 자문위원, ‘어린이 청소년 포럼’ 대표 를 맡고 있다.
서울 출생으로 경복고, 사시 23회 출신인 김동찬 서울고검 검사는 백형구 변호사가 장인이다. 광주고 출신인 백변호사는 대전지검 공주지청장을 지냈다. 저서로 ‘형사소송법’이 있다.
서울고검 함귀용 검사의 장인은 대구지검장·고검장을 역임한 박준양 변호사(동화법무법인). 경북 구미 출생인 박변호사는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원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졸업한 함검사는 사시 23회 출신.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염웅철 법무부 인권과장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으며 광주제일고, 사시 24회 출신이다. 염검사의 장인은 이성렬(전남 담양 출생, 고시 5회) 변호사. 광주지법원장, 대법관을 거쳐 변호사 개업을 했다. 5공 시절 12대 국회의원(민정당·전국구)을 지내기도 했다. 6공에서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문민정부에서는 헌법재판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공증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남 울산 출생의 안종택 서울고검 검사는 경남고, 사시 20회 출신. 장인은 정치근 전법무장관으로 안검사의 고향 및 고교 선배다. 5공 초 검찰총장, 법무장관을 지냈다. 신사합동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원이다.
공성국 서울지검 형사10부장검사의 부인은 허은도 변호사의 딸이다. 경남 합천 출생인 허변호사는 대구고검장, 법무연수원장을 역임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원이다. 공검사는 서울 출생으로 경동고, 사시 23회 출신이다.
경기 평택 출생인 차동민 서울지검 특수3부장검사는 제물포고, 사시 22회 출신. 차검사의 처가에는 유난히 법조인이 많다. 먼저 장인 문상익 변호사(남부제일합동법률사무소). 평북 정주 출생인 문변호사는 제2회 고등고시 사법·행정 양과에 합격한 수재로 수원지검장, 대검 검사를 지냈다.
문변호사의 장남, 곧 차검사의 큰처남 문영섭씨는 삼성전관 차장이다. 둘째 처남 정섭씨는 백병원 내과의사. 셋째 처남 광섭씨는 배제고, 사시 33회 출신으로 춘천지법 속초지원 판사다.
문상익 변호사의 아랫동서 류명건씨는 서울고검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서울법대를 졸업했다. 또 류변호사의 아랫동서는 정인봉 한나라당 의원이다. 류변호사의 고교·대학 5년 후배다. 사시 기수로도 5년 차이가 난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판사를 지낸 정의원은 현 정부 초기 북풍사건 때 한나라당의 공식 변호인으로 활약했다. 선거법위반 혐의에 대해 최근 항소심 재판부가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해 의원직이 위태롭다.
차검사 처가의 법조인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장인 문변호사의 매부는 사시 1회 출신의 송종의 전 대검차장이다. 평남 출생으로 용산고를 졸업한 송씨는 검찰을 떠난 후 법제처장(차관급, 당시엔 장관급)을 지냈다. 특이하게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현재 고려화학, 아시아시멘트, 금강 등 기업체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송씨는 서울지검 특수부장, 대검 강력부장·중수부장, 서울지검장 등 검찰 요직을 두루 거친 전형적인 수사통으로 검찰 내에서 신망이 높았다. 1996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외아들의 49재에 부쳐 지은 고유문(告由文)이 언론에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송씨의 사위 조성준씨는 사시 33회 출신인데 행시 재경직에 차석으로 합격, 재경부 사무관이 됐다. 사시 합격자인 조씨가 법조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재무부에 오래 근무한 부친의 영향 때문이다. 모친은 이화여대부속병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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