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가 하면 56개 이슬람 국가들은 이슬람이란 하나의 공통분모 위에 범세계적인 ‘이슬람회의기구(OIC)’를 만들어 국제무대에서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같이 이슬람세계에서 종교와 정치는 평행선을 그으면서 불가분(不可分)의 교착관계에 놓여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그 어느 사회, 어느 종교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정교합일(政敎合一)이라는 이슬람 고유의 특징에 기인한다.
이슬람은 단순한 신앙체계만이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이 합일된 생활양식이고,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를 포함하는 조화로운 전체’이며, 종교와 세속 쌍방을 모두 포괄하는 ‘신앙과 실천의 체계’다.
기독교사회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누가 복음 20:25)라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있으나, 이슬람사회는 종교를 바탕으로 하여 이슬람법(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사회다. 여기에서의 ‘정(政)’은 세속사회 일반을 말한다. 따라서 이슬람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군사 등 사회의 제반 영역에 대한 고유의 사상과 이념, 규범과 제도가 있다. 이것이 이슬람교가 기타 종교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자 특징이다.
이슬람교 고유의 정교합일은 이슬람의 역사과정에서 형성된 당연한 이념이고 제도였다. 이슬람은 출현 초기부터 정치와 종교를 구별할 수가 없었다. 어느 종교사에도 종교 창시자가 종교와 더불어 국가권력을 창출한 예는 없다. 유독 무함마드만이 종교를 바탕으로 한 이슬람공동체(움마)를 건설했다.
그는 메카에서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선지자로 출발했지만 메디나로 성천(聖遷)한 후에는 최고의 종교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고 이끄는 최고의 국가 통치자가 되었다.
이 메디나 공동체와 그 권력구조(정부)는 비록 단순하고 불비한 점이 있었지만, 민족·영토·통치권 등 기간적(基幹的)인 권력구조를 두루 갖춘 국가형태였다. 무함마드의 신분은 이에 더해 전장에서는 군사들을 통솔하는 총지휘관이었으며, 공동체 내에서는 분쟁을 해결하는 중재자, 재판관의 역할도 했다. 그런가 하면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규약이나 법령을 제정하고 각종 행정명령을 반포하며 그 집행을 감독하는 행정수반이었으며, 대외적으로는 다른 부족들이나 공동체들과 화약(和約)을 체결하는 등 명실상부한 최고 위정자의 지위에 있었다.
정교합일적 일원론
그의 뒤를 이은 칼리파(계위자)들도 무함마드의 계위자란 공식 직함을 가지고 그가 행사하던 종교와 정치 두 분야의 대권을 그대로 계승했다. 그들은 공동체를 통치하는 정신적 및 세속적 지도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었으며, 백성들도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이러한 정교일치의 신념은 알라의 계시에 의해서도 보증을 받았다.
경전 ‘꾸르안’은 알라에 대한 복종(종교적 복종)과 현세 통치에 대한 복종(정치적 복종)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오, 믿는 자들이여, 알라께 복종하라. 그리고 알라의 사자(使者)와 너희들 가운데 권위를 지닌 자들에게 복종하라.”(4:59)고 알라는 계시했다. 여기서 ‘권위를 지닌 자들’이란 현세의 통치자들을 뜻한다. 알라께 복종하듯 무함마드와 칼리파들에게도 복종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믿는 자들(무슬림들)이 간직해야 할 신앙이라는 것이다.
칼리파들이 통치하는 공동체의 주 기능은 사람들을 경전에 명시된 이슬람법에 복종시키고, 그 법에 따라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전을 정확히 해석하고 그에 따르며, 무함마드의 언행(하디스)에 비추어 제반 문제를 판단하고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따라서 경전과 하디스는 종교와 정치를 가리지 않고 모든 행위의 근원적인 준거가 되었다. 사실상 경전과 하디스에는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나 사회 전반에 관한 원리들이 구구절절 명시되어 있다.
그리하여 종교적 명분과 정치적 명분이 항상 상보상조적 관계에 있으면서 공동체 운영의 근본이념으로 기능했다. 1400여 년간의 이슬람 역사는 이러한 정교일치의 역사로서 오늘도 그 이념은 변함이 없다. 이와 같이 무함마드가 정치와 종교의 제반 영역에 대한 통수권을 행사한 것처럼 그를 이은 후세의 칼리파들도 그것을 그대로 계승해 이슬람공동체를 다스려온 체제를 이슬람 정치사에서는 칼리파제라고 한다.
이러한 정교합일의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슬람 고유의 정치이념과 제도, 즉 정치관이 정립되었다. 그 핵심 내용은 이슬람 정치의 성격을 규정하는 제반 원리들, 칼리파제에 기초한 국가체제 및 이러한 체제의 운영을 규제하는 이슬람법, 그리고 지하드를 지향한 대외관계 등이다.
물론, 이러한 정치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적지 않은 변화를 보이고 있으나, 그 핵심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것은 ‘종교이자 국가’라는 이슬람 고유의 정교합일적 일원론(一元論)만은 변함없이 지켜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근자에 와서 일부 학자들이 이 정교합일적 일원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아직은 입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의 경전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는 이슬람 정치가 관철해야 할 제반 원리들이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원리들은 이슬람 국가의 목적과 기능, 정치제도의 특성을 규정해줌으로써 이슬람 정치의 ‘최고 가치’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이슬람 국가들은 여러가지 법적·행정적·군사적 수단들을 동원하여 이 가치들을 지켜오고 있다.
슈라, 이슬람식 민주주의
이슬람 정치 원리 중 첫째는 이른바 슈라(협의제)다. 슈라는 무슬림 공동체를 운영하는 데서 제기된 문제들을 공동으로 협의하여 해결하는 일종의 협의제다. 이슬람에서 슈라는 공동체운영의 한 원칙이고 이슬람법(샤리아) 상의 한 의무일 뿐만 아니라, 무슬림 개개인이 간직해야 할 속성과 자격이라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경전 ‘꾸르안’은 국가 수장(칼리파)은 반드시 공동체 성원들의 협의로 선출되고,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역시 공동체 성원들과의 협의를 거친 뒤에 처리해야 하며(3:159), 알라의 의지에 귀의하고 그 부름에 호응하며 공동체의 일을 서로 협의하는 자만이 무슬림이 될 수 있다(42:38)고 가르치고 있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생전에 여러 번의 전투를 비롯해 중대사가 발생할 때마다 성문도반(聖門徒伴, 솨하바·무함마드의 동 시대 교우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자주 슈라를 행했다. 그리하여 성문도반인 아부 후라이라는 “나는 라술라(聖使, 무함마드)보다 더 자주 성문도반들과 협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무함마드가 수범적으로 행한 슈라는 그의 뒤를 이은 위정자들에게는 하나의 전범(典範)이 되어 정치행위의 원칙으로 공식화되었다. 이와 같이 협의제는 이슬람 정치를 펴는 데서 준수해야 할 가장 선결적인 원칙이며 법적 의무다.
슈라는 무함마드가 계위자를 지목하지 않고 사망하자 제1대 계위자(칼리파)를 협의의 방법으로 선출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후 제4대까지는 슈라의 방법으로 칼리파를 선출하여 이른바 정통칼리파시대(632~661)를 열었으나, 자식에 의한 세습제가 시작된 우마위야조시대(661~750)부터는 최고 통치자를 선출하는 ‘대슈라’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법학자들의 집단적 협의에 의해 입법하는 합의제(이즈마아)나, 이맘의 주도로 지역적 사회문제를 협의하는 ‘소슈라’는 상당기간 지속돼왔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잔영(殘影)이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해 일부 이슬람학자들은 현대 민주주의의 뿌리를 슈라에서 찾고 있으며, 슈라정신이야말로 이슬람 민주주의의 가장 귀중한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슈라는 하나의 협의체로서 그 구성방법이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그 구성원들은 독자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유능한 법학자(무즈타히드)들이다. 협의에 상정되는 내용은 주로 경전이나 하디스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은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이다.
예컨대 음주자의 처벌이라든가, 정복지의 땅 분배문제 등이었다. 그러나 경전이나 하디스에 명시되었거나, 이슬람법에 엄연히 위배되는 사항들은 협의에 상정될 수 없다.
이슬람 정치원리, 정의와 자유
이슬람 정치가 추구하는 두번째 원리는 정의(正義, 아들)다. 아랍어에서 ‘아들(adl)’은 ‘똑바름’, ‘바로잡음’, ‘동등’, ‘균형’ 등의 의미를 가진 낱말이나, 그것이 종교 및 정치사회적 의미로 승화되었을 때는 ‘신 앞에 올바름’이란 종교적 의미에다가 ‘공평’, ‘균등’, ‘절제’, ‘정직’ 등 윤리도덕적 의미를 가미한 복합적 술어로 쓰인다.
따라서 정교합일의 이슬람 정치원리를 나타내는 용어로는 이러한 복합적 의미를 지닌 낱말이 안성맞춤이다. 한편, 종교적으로나 윤리도덕적으로 정의와 불의(줄므)의 계선이 명확하고, 또 불의를 일소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알라가 계시를 내린 목적이고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받은 사명이라고 믿는 이슬람에서는 정의를 하나의 정치원리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당위성은 경전에도 누누이 강조되고 있다. 경전은 “알라는 정의와 선행을 명하셨고… 부정과 악행을 금하셨다.”(16~90)고 정의의 구현을 명문화하면서 재판을 비롯한 모든 권력 행사를 공정하게 진행할 것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사람들에게 압제를 행하고 지상에서 불의로 부정을 자행한 자들에게는 가혹한 형벌이 내려질 지어니…”(42:42)라는 경고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이슬람 정치연구가들은 이러한 이슬람 정치의 원리를 일반화하여 ‘정의는 통치권자들에게 요구되는 첫번째 덕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슬람 정치원리의 세번째는 자유(自由, 홀리야)다. 이슬람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왜냐하면 원래부터가 착한 인간에게는 압제를 받을 아무 이유가 없으며, 자유가 잠재의식으로 온존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의지나 선택의 자유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한 속성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슬람은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과실을 취한 것은 그들이 자유로이 선택한 행위로 본다. 6신(信, 여섯 가지 종교적 믿음)의 하나인 정명(定命)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함으로써 유연한 정명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알라의 가르침을 좇아 낙원에 들어가는 것이나, 그렇지 못하여 처벌을 받고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나를 막론하고 인간이 행한 모든 일은 다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신앙도 이슬람은 강요가 아닌 자유선택에 맡긴다. “종교에는 강제가 있을 수 없다”(2:256), “사람들을 강요해서는 믿음을 갖게 할 수 없다”(10:99)고 신앙의 자유원리를 강조한다. 종교란 일종의 잠재적 의식형태로서 결코 강요에 의해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초기 슈라시대에는 칼리파도 무슬림들의 자유선택에 의해 선정되었다.
제4대 정통칼리파 알리가 임종에 처했을 때 원로들이 그의 큰아들인 하싼을 후계자로 옹립할 것을 진정하자, 알리는 주저없이 “나는 명령도, 거부도 하지 않는다”면서 통찰력을 가진 원로들이 알아서 자유로이 처리하라고 당부한 이야기는 이슬람 정치사상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이슬람에서의 이러한 자유는 무절제한 자유가 아니다. 이슬람법(샤리아)에 의해 허용(무바흐)되는 범위내의 자유라는 단서가 있다. 이를테면 조건부적 자유다.
네번째의 이슬람 정치원리는 평등(平等)이다. 주지하다시피 평등원리는 현대 정치제도의 기본원리이자 인간의 기본권리다. 이 기본원리가 보장되었다고 호언하는 근대 서구국가들은 그 연원을 1789년 8월 프랑스혁명 개시 직후 국민공회(國民公會)가 제정 발표한 ‘인권선언(전문과 17개조)’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사에서는 이보다 1000여 년 앞선 7세기에 벌써 인간 평등원칙이 선포되었다. 유목사회에 팽배했던 종족이나 계층간의 불평등과 차별을 극복하는 것이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는 데 급선무임을 자각한 무함마드는 당초부터 인간의 창조나 사회생활에서의 만민평등사상을 제시했다.
그가 별세하기 직전(632)에 행한 유명한 고별의 순례연설은 전인류를 향한 ‘인간평등선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 연설에서 “그대들의 조상은 하나이니, 실로 아랍은 비아랍에 우월치 않으며, 오로지 신에 대한 경외(敬畏, 타끄와) 외에는 황인종이 흑인종에 우월치 않다”고 열변을 토했다.
경전에도 “사람들아 내가 그대들을 남녀로부터 만들었고, 그대들이 서로 알 수 있게 민족과 부족으로 그대들을 만들었도다. 알라 앞에서 존귀한 자는 알라를 경외하는 자이니라”고 타이르고 있다. 인간은 원래가 한 조상에서 태어난 존재로서 서로의 다름은 오직 신에 대한 경외의 정도에서 나타날 뿐이지, 결코 선천적인 차별이나 불평등은 있을 수 없으며, 신 앞에서 만민은 평등하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차등이나 우위를 현세에서는 불허하나 내세에서는 인정한다. 즉 현세에서 인간이 신에 대해 행한 경외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내세에서 그의 차등과 우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환언하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우위의 자리는 내세의 신 앞에 있지, 결코 현세의 인간 앞에는 있을 수 없으며, 인간 앞에 있는 것은 오로지 평등뿐이라는 것이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실천행위로 이 평등원리를 보여주었다. 한번은 절도죄로 고소된 한 여인에 대해 주위에서 변호를 하면서 처벌하지 말 것을 청하자, 무함마드는 대로하여 “알라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만약 내 딸 파튀마가 도둑질을 했다고 하면 나는 그애의 손을 자르리라”라고 단호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