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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마스크 대신 행복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마지막 안식처’ 호스피스 병동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산소마스크 대신 행복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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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일주일 남았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저도 그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합니다. …저는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

2001년 10월5일 오전 10시 서울 S병원 호스피스 병실. 호스피스 봉사자 민명희(필로메나) 수녀의 말이 떨어지자 다발성 골수종 환자 이정현(45·가명)씨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생(生)을 곱씹으며 화해와 용서의 눈물을 터뜨렸다. 민수녀와 다른 두 명의 봉사자가 눈물을 쏟는 이씨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위로하자 그의 얼굴에는 이내 평화스러운 미소가 가득해졌다.

2000년 11월 두통과 변비가 계속되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사지에 힘이 없어 병원을 찾은 그는 의사로부터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발성 골수종은 암의 한 종류로 골수종 세포가 증가하면서 뼈를 파괴하고 약화시켜 통증과 골절을 일으키는 병이다. 이씨 역시 심한 통증으로 걷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골수종 세포는 골수가 면역체계에 필요한 백혈구와 형질세포를 생산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다른 질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적혈구도 몸이 원하는 만큼 만들어지지 않아 그는 투병기간 내내 빈혈을 호소했으며 항상 피곤을 느꼈다. 신장에도 문제가 생겨 각종 찌꺼기가 걸러지지 않았고 몸속에 노폐물이 계속 쌓여갔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으며 통증은 다소 완화됐지만 병세는 이미 치료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지난해 5월12일 그는 치료를 포기하고 퇴원했다.

이씨의 동거인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양어머니 한 사람뿐이다. 형제가 4명 있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고 그를 버린 친부모와는 의절상태였다. 간병인을 구할 형편도 안됐다. 이씨와 같이 통증과 후유증에 신음하는 말기환자들의 경우는 간병인이 없으면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다. 간병인을 구해 환자를 돌보게 하는 것은 많은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는 의미가 없다’는 판정을 받고 퇴원한 환자들 중 이씨처럼 간병인을 구할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은 여생을 고통스럽게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헌신적이 노력 덕택에 평화스러운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다.

봉사자 정순희씨 등은 지난 5개월 동안 그의 집을 방문해 병을 보살폈고 양어머니의 환경미화원 일을 돕기도 했다. 친부모에 대한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그는 간병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쉽게 안정을 찾지 못했다.

발 끝에서부터 찾아오는 죽음

퇴원 2주 후 이씨는 봉사자들에게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봉사자들이 그의 다리를 정성껏 마사지하면서 따뜻한 말을 전하자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이씨의 가슴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불행한 가족사에서부터 자신이 살아온 얘기까지 그의 입에서 토해나오는 회한과 애증은 이씨뿐만 아니라 봉사자들의 눈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자신을 버린 친부모에 대한 분노는 그에게 통증보다도 더 큰 고통이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원망이 모두 부모에게 향해 있었다.

누구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다. 호스피스 환자들은 점차 몸이 쇠약해지는 상황에서 지난날의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고 싶어하며 자신에게 타인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에 따르면 의미 있는 타인이 자신을 용서해준다는 것을 느끼거나 확인하면 삶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진다고 한다.

이씨는 죽음을 앞두고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받으며 부모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용서와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봉사자들은 정형외과 주치의가 처방한 진통제를 그의 집으로 배달했고, 고단백수액(아미노푸신)과 섬유음료 콩국 등을 만들어 그의 병을 돌봤다. 정성스런 치료 덕분이었을까. 빈혈과 다리 혈행장애는 퇴원 전보다 상태가 더 악화됐지만 그의 마음은 나날이 따뜻해져 갔다. 지난 여름 봉사자들이 작은 선물을 내놓자 이씨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봉사자들이 본 그의 첫번째 웃음이었다.

응급실을 방문해 빈혈과 영양부족 상태를 체크하기를 여러 번, 10월4일 그는 살아서는 병원을 나갈 수 없는 마지막 입원을 했다. 임종이 가까워오면 말기환자는 누구나 자신 옆에 누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영적·정신적·육체적 안정을 주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병원에 도착해 자신을 돌보던 봉사자들을 만나자 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민수녀는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줘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떨쳐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개는 가족들이 이런 역할을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의 경우는 돌볼 사람이 마땅찮은 경우가 대다수다.

5개월 만에 병원에 다시 입원한 이씨는 퇴원할 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삶에 대한 증오는 사랑으로 바뀌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링거바늘조차 제대로 꽂을 수 없을 정도로 뼈만 앙상히 남은 몸으로 가눌 수 없는 통증을 견뎌내면서도 그의 표정은 안온했다. 몸은 치료받지 못했지만 영혼이 치유됐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버린 친부모와 형제들을 용서한다”며 “바르게 살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끝내 친부모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는 ‘내가 용서했으니 괜찮다”고 했다. 말 한마디 내뱉기도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봉사자에게 손을 건네 인사를 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흘리는 용서와 화해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이씨는 ‘예정된 시간’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잠들었다. 죽음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은 혀가 마르기 시작한다. 간병인들은 1시간에 한 번 정도 그의 입에 물을 축여주거나 거즈에 물을 적셔 입에 물렸다. 죽음은 발끝에서부터 찾아온다. 사지 끝에서 끈끈한 차가움이 밀려왔고 가래 끓는 소리가 밖으로 들렸다. 봉사자들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한 손길로 환자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함께 기도를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의 얼굴은 고통이 모두 사라졌음을 말했다.

“말기환자들을 돌보면서 제가 오히려 위로받습니다. 환자들이 흘리는 참회와 용서의 눈물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합니다. 이선생님처럼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분을 보면서 느끼는 보람은 매우 큽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시는 분들이 가장 아름다워요. 평화와 행복이 충만한 모습으로 가시는 분들을 보면 저의 마음도 저절로 따뜻해집니다.”

이씨를 돌보던 봉사자 문귀님(65)씨의 말이다.

이씨처럼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받으면서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인생사를 접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 서울의 한 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생을 마감한 김순희(42·가명)씨도 그러한 경우.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 김씨는 세 차례 결혼했다. 세번째 남자와 동거를 하던 지난해 자궁경부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성가소비녀회 김복녀(앙리) 수녀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의 정신상태는 ‘최악’이었다. 김씨는 남들로부터 주목받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성격이었고, 불행한 가족사 탓인지 가족과 사회, 병원에 대한 푸념과 불만이 대단했다.

말기암 환자라면 으레 겪는 신체적 고통에도 힘들어 했지만 그를 더욱 억누른 것은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는 첫번째 결혼에서 낳은 열한 살, 열여섯 살의 두 자녀를 이혼 후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의 병세는 역시 자원봉사자들의 사랑스러운 간호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 자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빠른 속도로 악화돼 갔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는 군의관 문도호씨는 “말기환자와 봉사자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환자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봉사자에게 털어놓게 된다”고 말한다.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죽는 게 무섭습니다. 저는 인생을 잘못 살았습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요. 딸들을 보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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