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암은 유전자 이상으로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마이클 비숍 박사가 199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유전자 암치료라는 새 지평을 열어놓은 그는 “암은 언제 정복될 것인가”라는 희망 어린 질문에 “앞으로 10년 내에도 말기암 완치제는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한 해 122만여 명의 암환자가 발생하고 하루 1500명꼴인 56만여 명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면서 “말기암 환자에게는 마약성 진통제를 충분히 먹이고 대화 등으로 마음이 편안하도록 돕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뼈와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겪는 말기암 환자는 통증을 덜기 위해 약한 진통제에서 점점 강한 마약성 진통제로 옮겨간다. 그러나 모르핀 같은 마약성 진통제도 거의 듣지 않을 때쯤이면 통증에 힘겨워하는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가족들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요법에 매달리거나 개발중인 치료제의 임상실험이라도 받게 하려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지만 결국 낙담하고 만다. 환자의 고통이 극에 달할 때쯤이면 “어떻게든 통증이라도 덜어 편안히 가게 해달라”고 하소연하는 것이 가족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정서. 그렇게 말기암 환자들 대부분은 병원에서 버림받은 채 마약성 진통제에 의지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최근 말기암 특유의 통증 없이 존엄사(尊嚴死)하거나 시한부 생명 선고일을 훨씬 넘겨 목숨을 연장하거나, 혹은 완치됐다고 생각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한 사람들의 얘기가 인터넷 의료정보사이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말기암 환자나 가족으로서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일이다.
소문의 진원지는 서울 강남에 있는 오당한방병원 부속 오당한의원. 면역약침요법이라는 독특한 한방 치료술로 말기암 환자들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곳이다.
2001년 12월 초 이 한의원을 찾았을 때도 실내는 각종 암환자들로 붐벼 장터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말기암 환자들만 보이지 않았다면, 암과의 무시무시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곳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느 한의원의 구조나 시설과 다르지 않게 보였다.
“경락마비증이 암의 원인”
오당한의원 면역약침요법 개발자인 박치완(朴致琓·36) 원장은 시설보다는 실속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맞받아치면서 자신의 요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면역약침요법이란 한마디로 인체의 자연치유력, 곧 면역기능을 강화시켜주는 천연물질을 암이 있는 부위나 경혈(經穴)에 주사하여 암 덩어리(종양)가 괴사하면서 고름으로 변해 몸밖으로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환자들은 자신의 몸속에 있던 암 덩어리가 배출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치료를 받으므로 이 요법에 더욱 신뢰를 갖게 된다.”
사실 면역요법이란 것은 서양의학계에서 게놈지도를 이용한 유전자치료법과 함께 차세대 암치료술로 주목하고 있는 분야다. 인체의 면역체계를 강화함으로써 몸 안에 침투한 이질(異質) 인자들을 죽이는 항체들을 대량 배출, 인해전술로 암조직을 공격한다는 것이 면역요법의 원리. 문제는 인체의 면역체계가 외부로부터 침입한 이질적 인자만을 적(敵)으로 여겨 공격을 할 뿐이지 몸 속에서 생겨난 암세포를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로 서양의학계에서 고민하는 이 부분을 어느 정도 해결했다는 게 박원장의 주장. 면역약침요법을 말기암 환자들에게 사용한 결과 인체의 면역체계가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구별해내고, 암세포만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한방식으로 풀어보자. 박원장은 암의 원인은 대부분 ‘경락(經絡)마비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인체의 기(氣)가 순환하는 통로인 경락이 마비되면 외부의 사기(邪氣)가 침투해 들어오거나 내부에 문제가 생겨도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 다른 말로 경락시스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면역기능이 마비돼 몸이 보내는 이상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암 환자들의 경우 대개 암으로 판정받기 전에는 감기, 몸살 등에 잘 걸리지 않고 오히려 전보다 더 건강했었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도 기실 경락이 마비돼 정상적으로 면역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박원장의 설명.
박원장은 몸을 오염시키는, 즉 경락을 마비시키는 주범으로 인류가 개발해낸 화학약품을 꼽는다. 그 중에서도 진통제, 항생제, 해열제, 방부제, 소염제, 호르몬제, 그리고 항생제나 방부제로 오염된 식품 등을 주범으로 꼽는다.
화학약품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해열제, 항생제 등 약물 복용량을 줄이면 암 발생률을 지금의 2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박원장이 주장하는 암 치료법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더러워진 혈액과 체액을 정화시켜 사기(邪氣)에 대해 경락이 반응하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경락의 마비를 푸는 데서 암 치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기가 함유된 식물의 씨앗
그렇다면 사기(邪氣, 암세포)를 어떻게 제거하고 생기(生氣, 면역력)를 북돋울 수 있는가. 이를 식물의 씨앗에서 찾아냈다는 게 박원장의 설명.
“식물의 생명은 씨앗에 있고, 씨앗의 생명은 씨눈에 있다. 씨눈에는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는 데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비롯해 생명을 지키는 데 필요한 면역물질이나 방어물질 등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그러니까 씨앗의 씨눈은 강력한 생기를 품고 있는 생명력 덩어리인 것이다. 나는 이 씨눈에서 추출한 물질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면역부활제이며 암 치료약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땅에서 자라는 식물은 물론 외국에서 자라는 식물들까지 무려 5000가지 이상의 약초들을 수집해 하나하나 실험하고 연구해 마침내 암치료에 효과가 있는 물질들을 찾아냈다.”
그는 씨앗에서 추출한 물질들을 실험하다가 죽을 뻔한 적도 있다고 한다. 새로운 성분을 찾아내면 가장 먼저 자신의 몸에 실험을 하는데, 어떤 때는 일부러 적정량의 몇 배나 되는 양을 먹었다가 응급실에 실려가 기사회생했다는 것. 이렇듯 목숨을 건 연구를 거듭한 끝에 적정 투여량을 찾아낼 수 있었고, 독성이 없으면서 암에는 효과적인 치료약물을 개발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씨앗들에서 추출한 물질(정유)을 효과적으로 종양 부위에 침투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약침요법을 채택했다고 한다. 약침요법이라는 기술 자체는 한의학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방법이다. 몇 가지 약재를 섞어 추출한 약물을 주사기에 담아 침을 놓아야 할 자리(경혈)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주로 만성통증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박원장은 사용하는 약물의 성분과 배합 비율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약재는 알려져 있다. 살구씨, 비파씨, 목화씨, 홍화씨 등 몇 가지 씨앗에서 추출한 일부 성분이 그것이다. 한의학자들도 이론적으로는 씨로 만든 약물의 효과성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더워지기 전에 익는 과일의 씨에는 산소 억제제가 들어 있어 암세포에 들어가는 산소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박원장은 씨앗에서 약물을 추출해 암치료에 응용한 것은 자신이 처음은 아니라고 밝힌다. 이 요법의 원조(元祖)는 1973년부터 암 치료제를 연구해온 재외동포 한동규씨라는 것. 스페인과 파라과이 등 여러 나라의 암 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많은 암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씨는 현재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개인 암연구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동규씨는 한때 한국에 돌아와 자신이 개발한 암치료법을 널리 펼치고자 하였으나 현행 의료법 때문에 포기하고 스페인으로 되돌아갔다고 하는데, 당시 그와 인연을 맺은 박원장이 한씨로부터 암치료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고 한다.
박원장은 한씨의 씨앗 약물요법을 실험을 통해 보강하고 여기에 쑥뜸요법과 독특한 한약처방 등을 결합시킨 약침면역요법으로 말기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박원장이 면역약침요법을 세상에 공개적으로 들고 나온 것은 1998년 10월의 일.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은 담도암 말기 환자를 극적으로 살려내면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 그는 말기암을 고쳐보겠다고 결심을 세운 지 10년만에 거둔 ‘결실’이어서 그 날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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