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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르포

“개가 아닙니다. 그 ‘아이’는 가족입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 박은경·자유기고가

“개가 아닙니다. 그 ‘아이’는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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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 아기같은 맑은 눈으로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거나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 ‘다롱이’의 모습을 볼 때면 인재근(여성인권기금 이사)씨는 슬며시 웃음을 머금으며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인씨의 목소리 톤만 좀 달라져도 금세 풀죽은 표정으로 주위를 맴돌다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다 싶으면 신나게 달려와 덥석 안기는 다롱이. 그 ‘아이’를 품에 안으면 인씨는 생명 있는 존재의 포근함과 함께 서로에 대한 사랑을 실감하곤 한다.

인씨 가족에게 다롱이는 피붙이나 마찬가지다. 인씨는 ‘다롱이 엄마’, 남편인 김근태 의원(민주당)은 ‘다롱이 아빠’로 불린다. 당연히 아들 병준이와 딸 병민이는 오빠와 언니가 된다.

개를 웬만큼 좋아하는 인씨에게도 애완견을 기르는 일은 아기 키우기 못지 않게 힘들다. 때로는 성가시고 귀찮기도 하다. 일찍 날이 밝는 여름이면 정확히 아침 6시에 산책을 가자고 난리를 피는 다롱이 때문에 자명종이 따로 필요없다. 어쩌다 혼자 집 밖에 나간 다롱이는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서는 인씨의 옷자락을 물고 늘어진다. 이웃집 할머니가 “다롱아, 오늘은 왜 엄마하고 같이 안 나왔니?” 하고 물을 때마다 벌어지는 실랑이다.

어쩌다 이웃 사람들한테 야단이라도 맞으면 다롱이는 그 좋아하는 산책도 팽개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뭐라고 쫑알쫑알 일러바친다. 인씨에게서 “다롱아, 미국말 하지 말고 한국말로 해야지”라며 번번이 놀림을 받고도 수다쟁이 노릇을 그만두지 못한다. 개를 오래 기르면 사람 말귀를 곧잘 알아듣기 때문에 가족들은 재미삼아 다롱이를 놀리기도 한다. “야, 이 오줌싸개야!” 하면 꼬리를 착 내리고 우울해졌다가 장난인 걸 눈치채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재롱을 떨어 웃음을 자아낸다.

어느 영화에 이혼을 앞둔 부부가 함께 기르던 강아지를 서로 데려가겠다며 험악하게 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프랑스에는 실제 개를 두고 양육권 소송을 벌이는 부부도 있다고 한다. 그 정도에는 못 미칠지 모르지만, 인씨 가족도 개 때문에 마치 친자식을 잃은 것 같은 슬픔과 충격을 경험했다. 애완견 ‘또또’의 실종과 ‘깐주’의 느닷없는 죽음은 엄청난 상실감을 안겨줬다.



임신한 몸으로 실종된 또또는 어떻게 됐을까.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유난히 눈이 맑고 예뻤던 마르티스 또또는 인씨 가족에게 아직도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출산 20일을 앞둔 또또를 잃어버린 것은 김의원이 감옥에 있을 때였다. 청소하느라 무심코 열어놓은 대문으로 또또가 나간 것을 인씨는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며칠 후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날 인씨는 길을 가다 어디선가 개 짓는 소리가 들리자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불쑥 남의 집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또또 때문에 이러다 정신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옥에 있는 김의원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구속되기 전, 재야운동을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남편이지만, 또또가 교미할 시기가 되자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물병원까지 개를 안고 갔다. 남편은 시간이 일러 병원 문이 닫혀 있자 문 옆에 쪼그려 앉은 채 한참 동안 의사가 나타나길 기다렸고, 의사에게 ‘거금 5만원’을 쥐어주며 “우리 애 결혼시켜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그렇게도 사랑한 또또였다.

면회가서 김의원과 마주한 인씨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 차례나 망설이다 “저기, 있잖아…우리 또또를 잃어버렸어…” 했다. 인씨는 남편이 말을 더듬는 걸 그때 처음 봤다고 했다.

“파, 파, 파출소에 실, 실종신고 해라, 얼, 얼른….”

반평생을 경찰에 쫓기는 신세였던 김의원이 경찰을 찾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새 생명의 驚異

또또를 잃은 후 새로 맞이한 식구가 퍼그 깐주다. 5년간 길렀던 깐주는 제왕절개수술로 새끼를 낳은 뒤 며칠 만에 죽었다. 세번째 출산이었는데, 뱃속의 새끼가 너무 커서 자연분만이 어려웠다. 키우던 개가 제왕절개수술로 새끼를 낳은 것은 처음이라 그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었다. 상처가 아물면 실밥을 풀어주고 배가 처지지 않게 복대를 해줘야 하는데 그걸 몰랐던 것.

인씨는 깐주의 장례식 날짜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온 가족이 모여 치른 장례식에서 가족들은 이웃 눈치도 보지 않고 목놓아 울었다. 장례식 다음날부터 인씨 가족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몇 달 동안 집 근처 야산에 있는 깐주의 무덤을 찾아가 꽃을 놓아줬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후에야 ‘무덤 순례’는 겨우 끝이 났다.

깐주의 죽음에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당시 중학생이던 딸 병민이다. 덩치가 큰데다 우락부락하니 못생겼지만 깐주는 병민이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깐주는 병민이가 간절히 원했던 동생 대신 얻은 강아지였다.

“마침 남편이 감옥에 있을 땐데, 아무것도 모르는 병민이가 동생을 낳아 달라고 무척이나 졸랐어요. 어느 날은 동생을 언제까지 안 낳아주면 벌금 10만원을 내겠다는 각서를 들이밀며 도장을 찍어달라고 해요. 별수없이 도장을 찍어주긴 했지만, 약속을 지킬 수가 있나요. 그랬더니 나중엔 ‘동생을 못 낳겠으면 강아지라도 데려와라, 그러면 각서를 무효로 해주겠다’고 해서 깐주를 키우게 된 거예요.”

그러니 병민이에게 깐주는 진짜 살붙이나 다름없는 ‘동생’이었던 셈이다. 깐주가 죽은 후 걸핏하면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보며 우는 딸 때문에 인씨는 어지간히도 속을 끓였다. 병민이는 스무살이 된 지금까지 깐주가 가지고 놀던 낡은 인형과 장난감을 담은 ‘유품’ 상자를 책상 밑에 놓아두고 있다. 상심하는 딸 앞에서 차마 내색할 수 없었지만 인씨 역시 오랫동안 깐주의 죽음이 남긴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듯했어요. 창문 밖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거나 나비가 날아가는 걸 보면 혹시 깐주가 환생해서 우리에게 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아마 미쳤다고 했을 거예요. 또또가 실종됐을 때 제가 넋이 나가 있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깐주더러 ‘너 오래 살아라. 안 그러면 너네 엄마 쓰러지신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돼버렸어요.”

애완견의 실종과 죽음은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상실감을 남겼지만, 새 생명의 탄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기쁨을 안겨줬다. 깐주는 제왕절개 전 이미 두 번의 자연분만 경험이 있었다. 첫 출산 때는 안방에서 가족 모두가 정성껏 구완했다. 갓 태어난 새끼들을 씻기기 위해 인씨는 아들 병준이에게 깐주를 지키게 하고 강아지들을 욕실로 데려갔다. 그 뒤로 깐주는 병준이를 몹시 미워하고 외면했다. 병준이야 억울하고 서운해했지만, 생긴 건 미련퉁이 같은 깐주가 어떻게 제 새끼 떼어놓은 사람을 용케 알아보고 미워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쪽 눈만 겨우 뜬 채 안간힘을 쓰며 일어서려고 버둥대다 금세 푹 쓰러지던 새끼들이 어느 날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네 다리로 버티고 서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두번째 출산 때는 6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이때 인씨 가족은 강아지를 손수 한 마리씩 받아냈다.

얼마 전 김의원은 다롱이가 안타까워 속을 태웠다.

“다롱아, 엄마한테 제발 혼인 좀 시켜달라고 해라.”

교미할 때가 되자 별의별 민망한 짓을 다하는 다롱이를 인씨가 애써 모른 척하자 애가 탔던 것이다. 하지만 인씨는 깐주에 대한 기억 때문에 다롱이는 절대로 시집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후 다롱이의 달거리가 없어져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폐경기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싶어서다.

인씨 가족이 다롱이를 키운 것도 벌써 5년이 지났다. 다롱이는 김의원을 누구보다 잘 따른다. 김의원이 귀가하면 다롱이부터 안고 쓰다듬어주어야 집안이 평안하다. 그렇지 않으면 펭귄처럼 두 발로 서서 안아달라고 보채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신문을 읽느라 놀아주지 않으면 인형을 물고 와 신문 위에 놓고 시위한다.

그러다 군 복무중인 병준이가 휴가를 나오자 다롱이는 온종일 병준이 뒤를 따라다니며 재롱을 피워 아빠를 서운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귀대하는 날 군복을 챙겨 입는 병준이를 본 다롱이가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가족들은 얼이 빠진 채 요란한 이별소동을 치러야 했다. 인씨네에게 애완견은 ‘개’ 이상의 그 무엇이다.

“개를 키워보면 영락없이 아이 키우는 것 같아요. 작은 일에도 삐치고 질투하고, 그러다 기분 내키면 애교 부리고. 어쩌다 우리 부부가 껴안는 시늉이라도 하면 난리법석을 피며 짖어대요. 우린 그게 재미있고 신기해서 다롱이만 보면 다정한 척을 하죠.”

개 치다꺼리 하면서 웃고 우느라 온 집안이 시끌벅적하지만, 인씨는 “그래서 더욱 사람 사는 집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벤지의 눈물

10년 전 어느 날 박영수(경기도 포천 한샘아카데미 원장)씨는 둘째아들 정진이가 쓴 글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소년지 공모에서 입상까지 한 ‘강아지 생각’이라는 글에는 아이가 입은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우리집에 강아지가 있었다. 이름은 벤지다. 아주 귀엽고 말을 잘 들었다…그런데 어느날 벤지가 얼결에 나를 물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매를 맞았다. 벤지의 눈을 가린 털을 들춰보니 벤지는 울고 있었다. ‘다시는 물지 않을게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벤지가 없다. 아파트에서는 못 기르기 때문이다. 벤지가 보고 싶다.”

벤지는 아는 사람이 준 잡종개였다. 두 아들은 처음 길러보는 개에게 흠뻑 정을 쏟았다. 하지만 이웃의 원성이 너무 커 단독주택에 사는 직장동료에게 벤지를 넘겨주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닥친 이별에 네 식구 모두 눈물을 흘렸지만, 정진이가 그렇게 마음이 상했을 줄은 몰랐다. 워낙 씩씩한 개구쟁이였기 때문이다.

얼마 후 박씨 부부는 개를 사려고 퇴계로로 나갔다. 길을 따라 죽 늘어선 애완견 가게를 몇 곳이나 둘러봤지만 선뜻 마음에 드는 강아지가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들른 가게에 부부의 눈길을 끄는 강아지가 있었다. 갓 태어난 새끼였지만 까맣고 조그만 녀석이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아주 건강해 보였다. 포메라니안 ‘보미’는 그렇게 한 식구가 되어 10년째 같이 살고 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지만 기쁨은 잠깐이었다.

“강아지는 생후 50일이 돼서 예방접종을 마치기 전까지는 목욕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몰랐죠. 그저 깨끗이 씻겨주고 예뻐해주면 되는 줄 알았지요. 아마 그게 문제가 됐던 것 같습니다.”

목욕 후부터 울기 시작한 보미는 오랫동안 고통스런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당황한 박씨는 이리저리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누군가 “항문이 막힌 것 같다”고 해서 30분 넘게 배를 주물러줬지만 보미의 몸은 점점 더 뻣뻣하게 굳어갔다. 그 길로 동네 병원을 찾아 달려갔지만, 수의사는 “너무 어려서 실핏줄을 찾을 수 없다”며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퇴계로에 있는 큰 동물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남은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인데, 의사는 보미와 코를 맞대고 비비며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그렇지만 보미의 생사가 그에게 달렸으니 뭐라 말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죠. 영 가망이 없어서 저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이 의사가 치료를 하기 전에 개가 겁먹지 않게끔 친해지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보미는 진찰받고 주사맞는 동안 한번도 버둥거리지 않고 얌전했다. 보미가 두 달 간 병원 신세를 지며 중병치레를 하느라 박씨네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박씨는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해준 수의사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의사는 오히려 “죽을 개가 주인의 정성 덕분에 살아날 수도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라고 했다.

어느덧 열살이 된 보미는 성격이 순해서 미운 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 밤이면 침대로 올라와 박씨 부부 사이에 떡 하니 버티고 누워 자는 것만 눈감아준다면. 볼일은 반드시 화장실에서 처리하는데, 안에서 인기척이 있으면 문을 두드린다. 그걸 본 손님들은 “개가 노크를 한다”며 놀라워한다. 볼일이 끝나면 보미는 잠깐 나왔다가 식구 중 한 사람을 앞장세워 다시 화장실에 들어간다. 용변을 치우고 엉덩이를 물로 깨끗이 닦아달라는 뜻이다.

보미는 생선회를 유난히 좋아해 해마다 생일이면 생선회가 차려진 잔칫상을 받는다. 남들이 보면 사람도 못 먹는 생선회를 어떻게 개한테 주냐며 따질지 몰라도 다 죽어가다 기적처럼 살아난 녀석이라 남다른 정이 갈 수밖에 없다. 박씨네 집에선 사람과 개가 종종 기이한 숨바꼭질을 벌인다. 사지가 굳는 병을 앓았기 때문인지 보미의 뒷다리가 약해 운동을 시키려는 목적에서다. 그래서 술래는 언제나 보미 차지다. 보미는 네 식구를 다 찾을 때까지 이 방, 저 방을 휘젓고 돌아다닌다.

지금은 20대가 된 아이들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보미가 박씨에겐 처음부터 한울타리 안에 있던 자식과 다를 게 없다. 아이들은 보미와 함께 뒹굴고 크면서 성격도 밝아졌다. 개를 돌보느라 스스로 해야할 일을 갖게 된 것도 아이들에겐 좋은 교육이 된 것 같다고 한다. 박씨도 보미에게서 위로를 받을 때가 많다. 스트레스로 울적해졌다가도 꼬리를 치며 반기는 보미를 보면 이내 풀어진다.

지금도 잔병치레가 잦은 보미 때문에 박씨네는 종종 비상이 걸린다. 그럴 때면 집안 분위기도 덩달아 우울하고 무겁게 가라앉는다. 박씨는 보미가 아픈 날이면 출근을 하지 않는다. 그런 날은 직원들도 으레 박씨가 아픈 셈친다. 요즘 들어 부쩍 박씨를 착잡하게 하는 것은 보미의 죽음에 대한 걱정이다. 개 나이 열살이면 환갑을 넘은 지 오래. 이제 스무살, 스물두살인 두 아들이 장가갈 때까지만이라도 보미가 살아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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