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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월드컵 올가이드/화제발굴

역사를 바꾼 월드컵 70년 비화

  • 기영노·스포츠평론가 kisports@hanmail.net

역사를 바꾼 월드컵 70년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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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경미한 소아마비를 앓은 브라질의 자갈로 선수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1930년 우루과이대회에서는 우승팀 우루과이에 한쪽 팔이 없는 카스트로 선수가 있었다. 오른팔이 없는 카스트로는 팔의 힘이 다리에 몰렸는지 대포알 같은 오른발 슈팅으로 페루전에서 결승골,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쐐기골을 터뜨렸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1조 예선에서는 후반 36분 아르헨티나의 몬티 선수가 한 골을 넣어 4대2가 된 뒤 프랑스의 맹렬한 반격이 이어졌다. 드디어 39분경 프랑스의 란제예르 선수가 질풍같이 아르헨티나 진영으로 들어갔다. 골키퍼와 1대1 상황. 그런데 란제예르가 슛을 날리는 순간 브라질의 길베르토 레고 주심이 휘슬을 불어버렸다. 시간이 6분이나 남았을 뿐만 아니라 설사 시간이 다 됐더라도 슈팅까지는 허용하는 게 관례인데 그야말로 월권행위를 한 셈이다. 프랑스 선수들과 벤치에 있던 프랑스 코칭스태프까지 가세해 주심에게 항의하자 주심은 선심과 상의한 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6분간 경기를 연장했다. 그러나 프랑스 선수들은 이미 리듬이 깨진 데다 땀까지 식어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엘살바도르는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 온두라스와 전쟁까지 치른 나라다. 엘살바도르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본선에 진출했으나 홈팀 멕시코에 골을 도둑 맞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엘살바도르는 1조에서 멕시코, 소련, 벨기에와 한 조를 이뤘다. 엘살바도르는 첫 경기에서 벨기에에 0대3으로 패한 뒤, 2차전 상대인 멕시코전을 별렀다. 그러나 멕시코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두 팀은 전반 종료 직전까지 0대0 무승부를 이루고 있었다.

종료 휘슬이 울릴 무렵 멕시코가 자기 진영에서 파울을 범했다. 이집트 주심은 엘살바도르의 프리킥을 선언했다. 절호의 기회를 맞은 엘살바도르 선수들이 프리킥을 어떻게 찰 것인가 숙의하는 사이에 멕시코의 페레스가 그 공을 재빨리 동료선수에게 연결해주는 게 아닌가.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주심이 휘슬을 불어 페레스에게 경고를 주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서있었다. 한편 페레스로부터 공을 건네받은 발디비아는 밑져야 본전인 셈치고 그 공을 엘살바도르 골문에 차 넣었고, 엘살바도르 골키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집트 주심 칸딜은 당연하다는 듯이 골을 선언했다. 어리둥절한 것은 엘살바도르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골을 성공시킨 멕시코 선수들도 좋아하기는커녕 어안이 벙벙했다. 아즈테카 스타디움에 모인 10만3000여 관중들의 반응은 웃음, 함성, 야유로 갈라졌다.

월드컵 초유의 도둑 골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곧바로 주심에게 달려가 항의했다. 그러나 주심은 판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온두라스와의 축구전쟁은 물론 실제 전쟁에서도 이긴 엘살바도르 관중들은 살기가 등등했다. 곧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주심에게 야유를 보낸 멕시코 관중을 향해 멕시코의 ‘애국자’가 권총을 쏜 것이다. 이 한 발의 총성 때문에 엘살바도르 관중들의 함성이 잦아들었다.

지금도 축구에서 미국이 잉글랜드를 이기기는 어렵다. 물론 과거에는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1950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미국은 잉글랜드를 꺾었다. 이것은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누른 것과 함께 ‘월드컵 2대 이변’으로 불리고 있다.

당시 2조에는 미국, 잉글랜드, 스페인, 칠레가 속해 있었다. 잉글랜드는 비록 월드컵 무대에 첫선을 보였지만 축구 종주국이었고, 올림픽에서도 위력을 발휘한 강팀이었다. 더구나 첫 경기에서 미국은 잉글랜드보다 한 수 아래인 스페인에 0대1로 졌고, 잉글랜드는 칠레에 2대0으로 이겼다.

경기가 열리는 인디펜덴시아 스타디움에는 뻔한 승부 탓인지 1만5000명의 관중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휘슬이 울리면서 잉글랜드가 수십 차례의 찬스를 맞았지만 미국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잉글랜드는 초조해졌고, 미국 선수들은 사기가 올랐다. 드디어 운명의 전반 37분. 미국의 레디 게티엔스가 잉글랜드의 골문을 갈랐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반전을 0대1로 마친 잉글랜드 선수들은 후반전에 들어가자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미국 보르기 골키퍼의 신들린 듯한 방어벽을 뚫지 못했다. 다른 경기장에서 미국의 경기결과를 기다리던 기자들은 미국이 잉글랜드를 1대0으로 이겼다는 소식에 당황했다. 당시 ‘잘못 들었겠지’라고 지레 짐작하고 잉글랜드가 미국을 1대0으로 이겼다는 기사를 송고한 기자들도 많았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개최국 한국, 폴란드, 포르투갈과 함께 D조에 속해 있는데 과연 1950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격파했던 것처럼 D조 최강 포르투갈을 꺾는 이변을 일으킬 수 있을까.

축구는 어느 정도의 몸싸움이 허용되고 또 발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심이 경기운영을 잘못하거나 양팀 선수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 사고가 생기게 마련이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맞붙은 헝가리와 브라질은 양팀 선수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싸웠는지 지금도 ‘베른의 난투극’이라 불리고 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공격수 푸스카스를 보유한 헝가리는 무적이었다. 그리고 브라질은 홈에서 열린 지난 대회에서 우루과이에 덜미를 잡혀 이번에는 반드시 우승을 차지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헝가리와 브라질의 준준결승전은 3만 명을 수용하는 베른의 반크 도르프 경기장에서 열렸다.

백중세로 예상했지만 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3분 만에 헝가리의 히데구치 선수가 첫 골을 터뜨렸다. 그런데 히데구치 선수가 슛을 하려는 순간 브라질 수비수가 히데구치의 팬티를 잡아챘다. 공은 이미 골문을 갈랐으나 히데구치는 하반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우스운 꼴이 됐다. 축구에서 경기 도중에 유니폼을 살짝 잡아당기거나 손가락으로 허리를 쿡 찌를 경우는 종종 있으나 아예 옷을 벗기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히데구치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헝가리 선수들은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한 골을 먼저 빼앗긴 브라질 선수들은 그들대로 화가 나 양팀 선수들은 난투극을 벌였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고 했던가. 선수들 싸움에 관중들까지 가세해 서로 치고받는 난장판이 되었다. 경비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어 겨우 진정시켰지만, 이미 경기는 축구가 아니라 축구를 가장한 격투기였다. 그래도 골은 계속 터져 전반전은 2대1로 헝가리가 앞섰다. 후반전 들어 헝가리의 란토스 선수가 다시 한 골을 추가해 3대1이 되자 브라질이 이성을 찾기 시작했다.

후반 20분경 브라질의 디디가 헝가리 문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잡아 슛을 하려는 순간 180cm가 넘는 장신 수비수 브잔스즈키가 디디를 온몸으로 덮쳤다. 디디는 슛은 고사하고 브잔스즈키의 육중한 몸에 깔려 부상을 당했다. 이를 본 브라질 선수들이 브잔스즈키에게 달려들었고 헝가리 선수들도 이에 맞섰다.

한바탕 난투극은 먼저 주먹질을 한 브라질의 토지 선수가 퇴장당하는 것으로 진정됐다. 경기는 다시 속행되었으나 이건 차라리 싸움박질이었다. 한번 패스할 때마다 주먹질하는 장면이 벌어졌다. 어쩌다 심판이 반칙을 선언하면 누구랄 것도 없이 몰려가 심판을 성토했다. 심판은 또다시 브라질의 산토스와 헝가리의 콕시스를 퇴장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는 헝가리의 4대2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에 취해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하고 있는 헝가리 선수들을 향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브라질 선수들이 달려들었다. 샤워장과 라커룸으로 난투극이 이어진 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줄리메 컵

2002 한·일월드컵에서 우승하면 FIFA 컵을 받는다. 그러나 1970년 멕시코대회까지는 줄리메컵을 수여했다. 줄리메컵은 월드컵을 만드는 데 산파역을 했던 프랑스인 줄리메 씨의 업적을 기리고 그 뜻을 받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1966년 월드컵 개최국인 잉글랜드는 대회 개막 3개월을 앞두고 이 컵을 전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에서 잉글랜드로 옮겨와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그런데 줄리메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전시실에 곱게 모셔둔 줄리메컵이 없어진 것은 1966년 7월3일, 대회 개막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서였다. 런던 경시청에 비상이 걸린 것은 물론 대회 조직위원회도 어쩔 줄을 몰랐다. 마침 대회 당일 런던으로 원정 가서 줄리메컵을 훔치겠다고 큰소리 치던 브라질 출신 소매치기 반더 산토스가 변사체로 발견되자 브라질은 브라질대로 어수선했다.

도난 소식이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영국정부의 체면도 말이 아니었다. 급기야 경찰이 총동원되었다.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호소하고 현상금까지 내걸었으나 사라진 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회조직위원회는 우승컵 없이 대회를 강행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 만들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전 영국인, 아니 전세계가 애타게 찾던 황금의 줄리메컵을 엉뚱하게도 개가 입에 물고 나타난 것이다. 런던 근교 노우두 산 속에 사는 코베트라는 농부의 개인 ‘피클스’가 뒷산에서 발견하고 물고 나온 것이다. 아마 어떤 도둑이 큰돈이 될 줄 알고 컵을 훔쳤다가 세상이 너무 시끄럽자 아무데나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이후 줄리메컵은 30만파운드(한화 약 27억원)의 보험에 들었다.

그후 줄리메컵은 브라질이 가장 먼저 3번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영구 소유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브라질 축구협회의 실수로 또다시 도난을 당했다. 지금 브라질이 보유하고 있는 줄리메컵은 모조품이다.



신동아 200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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