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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사회갈등 대폭발

‘삶의 질’ 높이려는 ‘우위권 투쟁’… 효율적 체제구축이 해법

  • 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삶의 질’ 높이려는 ‘우위권 투쟁’… 효율적 체제구축이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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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투표일 직전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대규모 부동층 유권자들이 가장 염려했던 바는 서로 성격이 다른 ‘대가(代價)’ 사이에 가로놓인 선택의 문제였다. 노무현 후보의 경우는 막힌 출구를 뚫는 대신 ‘지배구조의 약화’가 예상되고, 이회창 후보의 경우는 보수적 안정을 얻는 대신 새로운 출구모색의 긴 통로를 빠져나와야 하는 답답함이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지난 몇 개월간 겪었던 사회갈등은 사실 박빙의 승부가 이미 예고했던 당연한 귀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초기 몇 개월간 드러난 노무현 정권의 행보와 통치이념의 파격성에 비하면 파업, 시위, 갈등의 수준은 훨씬 낮고 온건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를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지지기반과 그 특성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권의 주요 지지층은 386세대를 필두로 한 2030세대, 노동자와 서민층, 그리고 시민운동세력과 민간부문의 고학력 전문직업층이다. 이 가운데 우선 젊은 세대는 권위주의적 질서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명하고 나이 순으로 이루어진 위계의 전복을 원한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 단행된 대규모 정부인사에서 서열파괴가 이루어진 것도 이들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다.

다음으로 노동자와 서민은 한국의 지배층을 신뢰하지 않는다. ‘부정부패와 연줄망과 엘리트 서클의 폐쇄적 결속을 통해 지위를 유지해온 잘사는 사람들과 권력자들’은 결코 기회균등과 소득평등에 너그럽지 않다는 사실을, 노동자와 서민계층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것은 이들의 마음 저변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 한(恨)이다.

끝으로 고학력층과 시민운동세력은, 한국 정치의 모순적인 구조에 무모하리만큼 도전장을 내밀었던, 그리고 번번이 좌절하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노무현 후보의 일관성과 용기를 높이 샀다.



이러한 지지층의 염원이 현실적 정치권력으로 실체화되자마자 전복의 요구가 터져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 초기 몇 개월 동안 잠재된 갈등요인들이 폭발한 것이나, 민주화 이후 집권자의 거듭된 약속에도 성취될 기회를 차단당했던 요구들이 공론장으로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현상 등은 충분히 예견된 귀결이었다.

정작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 행사할 수 있는 ‘지배력(governability)’의 수준이다. 민주주의 공고화의 핵심지표인 지배력의 문제는, 비단 신생민주주의가 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턱일 뿐만 아니라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선진국도 체제변화 과정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사안이다. 지배력을 다지지 못했을 경우 치러야 할 비용은 신생민주주의 국가일수록 크고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지배력의 위기가 발생하는가? 시민사회로부터 터져 나오는 참여요구를 정치제도가 충분히 감당하지 못할 때 그렇다. 즉 집권세력이 시민사회의 참여요구를 관리할 역량을 갖지 못하고, 정치제도 역시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에 지배력의 약화 혹은 붕괴가 발생하는 것이다. 국가가 다양한 사회집단들 사이의 투쟁과 이익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상태, 헌팅턴은 이런 상황을 ‘경비 국가(praetorian state)’라고 부르고 정치적 불안정을 그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극단적인 불안정은 결국 체제와해를 불러온다. 노무현 정권이 시민사회의 각종 참여요구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또는 그것을 관리할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상황은 일종의 ‘프레토리안적 상태’로 치닫게 되고 급기야는 보수진영이 그렇게도 우려해 마지않았던 체제불안정이 가속화될 것이다. 그것은 곧 개혁의 중단과 ‘이미 지연된 민주주의 공고화의 재지연’을 불러온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큰 불행이다.

해체갈등과 발전갈등

정권 초기에 사회갈등이 매우 빈번하게, 대규모로 폭발하는 것은 비단 노무현 정권만의 특성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의 역사, 최장집 교수가 ‘보수적 민주화’로 불렀던 한국 민주화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어느 정권이든 과거의 부채를 물려받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을 처리하는 데에 귀중한 시간과 역량을 소비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운명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각종 갈등과 충돌은 권위주의의 비교적 긴 역사나 민주화의 짧은 역사에 모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권위주의체제의 모순을 해소하는 작업이 민주제도를 구축하는 과정과 함께 한꺼번에 이루어져야 했던 한국 민주화의 특성이 우리 사회를 갈등에 매우 취약한 사회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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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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