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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기자의 사람 속으로

대한민국을 불편하게 하는 남자, 진중권

‘과성숙’과 ‘미성숙’의 절묘한 동거

  • 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대한민국을 불편하게 하는 남자,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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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김포 언저리에서 태어났다. 2녀2남 중 셋째. ‘클래식 오디세이’를 쓴 음악평론가 겸 방송인 진회숙(49)씨가 큰누나, 독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43)씨가 둘째누나다. 아버지는 목사였고 서울사범학교 출신의 어머니는 피아노 교습을 했다.

-글을 읽으며 기독교적 세계관에 밝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부친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충청도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중앙대 법학과를 다녔답니다. 그마저 생활고 때문에 불가능해지자 등록금이 면제되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셨대요. ‘목사님’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있는 분이었어요. 날카롭고 지적인 스타일에 자존심도 강했죠. 동네에서 영자신문을 읽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간혹 근처 미군부대에서 영어 설교도 했습니다. 동사무소에서 유신체제 홍보 책자 같은 걸 보내오면 화를 내며 찢어버렸어요.”

-종교적 강압이랄까, 그런 것은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아버지는 합리적인 분이었어요. 방언(종교적 황홀경에 빠졌을 때 터져나오는 독특한 언어) 같은 것을 높이 치지도 않았구요.”



-생활은 안정적이었나요.

“개척교회 목사 수입이란 게 많지가 않아요. 어머니의 피아노 교습이 중요한 생활수단이었죠. 신도가 100명은 넘어야 겨우 먹고 살만하다던데, 우리 아버지는 꼭 그 때쯤 돌아가셨어요.”

-그게 언젠대요.

“1977년,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요.”

-학교는 어디서 다녔나요.

“전 계속 이쪽 동네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학교는 서울로 갔죠. 공항동 송정초등학교를 다니다 5학년 때 정동 덕수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중동중학교,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했구요.”

-일종의 유학인 셈인가요.

“집에서 버스 타고 다녔으니 그건 아니고…. 어쨌거나 좋은 학군 찾아간 건 맞지요.”

-공부를 잘했나봐요.

“덕수초등학교로 전학 간 첫 학기에 올 미(전과목 미)를 받았어요. 아버지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매를 맞았죠. 전 서울 애들 실력이 워낙 좋아선 줄 알았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나봐요. 중학교 1학년 들어가 첫 시험에 1등을 했고, 2학년 땐 좀 놀다, 3학년이 돼서는 얼굴에 버짐이 피도록 공부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했나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 성문종합영어랑 1학년 수학을 다 뗐으니까요.”

‘에레베스트’와 ‘에베레스트’

-부친을 잃은 것이 한 계기가 됐겠군요.

“그랬죠. 1학년말에 돌아가셨으니까. 2학년 때는 충격 때문에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요.”

-어쩌다 돌아가셨는데요.

“연탄가스를 마셨어요. 보통 그런 일을 당하면 2년 후쯤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는데 우리 아버지가 그랬죠. 그 2년 동안 사고 후유증으로 아버지나 식구들이나 고생이 많았어요. 뇌에 이상이 생겼는지 아무나 막 잡고 울고 방에 연탄화덕 피워놓고 문 잠그고. 때로는 폭력도 행사해, 내가 막 힘이 세져 막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했지요.

하지만 돌아가셨을 땐 굉장히 슬펐어요. 상실감도 컸구요. 저랑 아버지는 잘 맞았어요. 말이 통했죠. 뭘 자꾸 사주고 그런 분은 아니었는데, 고궁이고 공장이고 데리고 다니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트럼펫 연주도 할 줄 아시고, 감각이 예민한 분이었죠. 아버지의 죽음이 제게 굉장한 자유와 해방을 주었다는 건 나중에야 생각한 일이에요.”

-책 읽기나 글 쓰기를 즐겼나요.

“책은 뭐, 큰누나가 읽던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것 좀 보고, 문고판 소설 읽고 그랬어요. 중3 때는 공부한답시고 영문판 소설도 봤구요. 글 쓰기는 싫어했어요. 학교에서 작문 숙제 내 주면 앞만 대강 쓰고 뒷부분은 여기저기 것 짜깁기해 베껴내곤 했어요.”

-중학교 때는 어떤 아이였나요.

“그냥 조용했어요. 근데 누가 틀린 말을 하면 그건 꼭 고쳐줬어요. ‘에레베스트가 아니라 에베레스트다, 잠수함을 움직이는 건 프로펠러가 아니라 스크루다’ 하는 식으로.”

-친한 친구가 있었나요.

“없었어요. 아, 한 명 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던 애 하나. 그 친구가 참 무던했거든요. 다 받아주고 이해해 주고. 근데 죽었어요, 몇 년 전에.”

-내가 좀 별난가보다, 그런 생각은 안 해 봤어요?

“저 별난 애 아니었어요. 특별하지도 않고, 남다른 재능도 없었구요.”

-남이 보는 나랑 내가 생각하는 나가 참 다르다, 그렇게는 생각지 않나요.

“그건 그런 것 같애요. (나는) 당연히 다 알 거라 생각하는 걸 남들이 모를 때 깜짝 놀라죠.”

-고등학교 때도 그저 얌전했나요.

“그 땐 완전히 달랐어요. 인생관이 바뀌었거든요. 범생이 생활 안 하겠다 마음먹었고, 일단 놀고 보자 생각했죠.”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너무 공부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 생물반에 들어갔는데 아주 골 때리는 서클이었어요. 깡패 짓 비슷하니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정학을 세 번 맞았는데 한 번은 폭행, 두 번은 흡연이었어요.”

-책은 뭘 읽었는데요.

“‘씨의 소리’ ‘해방 전후사의 인식’ ‘8억인과의 대화’ 같은 것들. 타임지에 난 DJ 기사를 구해다 친구들과 돌려보기도 했어요. 소설은 그 때부터 안 읽었어요. 사회과학서적에 판타지가 훨씬 더 많다고 생각했죠.”

여기까지가 1982년 서울대에 입학하기까지 진중권이 걸어온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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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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