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희 할머니는 매일 숯가루를 마셔 말기 암으로부터 해방됐다.
이럴 때 나뿐 아니라 모든 ‘방송쟁이’는 최악의 사태까지 떠올리며 이미 잡혀 있는 방송 날짜와 내가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을 순간적으로 계산하게 된다. 내 작업실에서 집까지는 빨리 달려간다 해도 40분 거리. 더구나 나는 수시로 벽시계를 쳐다보면서 편집에 쫓기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사연은 들어봐야 할 것 아닌가.
“개 주사 놓다가…”
산 속에서 혼자 지내는 날이 많다 보니 아내는 개를 열 마리 넘게 키우고 있었다. 워낙 개를 좋아하던 터라 시골 생활을 빌미로 개 식구를 많이 늘린 것인데, 그 때문에 사료비로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또 철 따라 놓아주어야 하는 주사비용도 만만찮았다.
그 나름으로는 동물병원에 들어가는 돈이라도 아낄 양으로 직접 주사를 놓곤 했는데, 이날 따라 한 놈이 아내의 왼쪽 손을 꽉 물어버렸다. 약이나 바르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웬걸, 손 전체가 마비되면서 왼쪽 어깻죽지까지 통증이 번져나가 죽게 생겼으니 손 좀 봐달라는 얘기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편집실을 떠날 수 없었던 나는 카메라맨에게 부탁해 응급조치를 취하게 했다. 그것은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라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믿는 자연요법 중 한 가지를 아내에게 적용시키는, 의사들이 알면 대단히 분개할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다음날 오전 10시쯤 되었을까?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아침 산책길에 듣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처럼 낭랑했다.
“여보, 나 푹 잤어.”
나도 놀랐다. 어느 정도 고통을 덜어 주리라 생각했지만 푹 잤다니…. 그 ‘물건’이 그토록 대단하단 말인가? 그날부터 아내는 그 ‘물건’의 열렬한 팬이 되었고, ‘물건’이 다 떨어지면 빨리 구해다 놓으라고 소리친다.
워낙 내가 잡문난독(雜文亂讀)한 데다 귀가 얇아서 태극권에서부터 UFO에 이르기까지 빠지는 분야가 없던 터라 아내는 내가 무엇이 좋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흘려듣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물건’ 덕택에 쌓이고 쌓인 신용불량을 단숨에 거둬냈다. 아내는 지하철에서 ‘예수 불신-지옥 웰컴’ 피켓을 들고 다니는 사람처럼 이 물건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둘째딸이었다. 딸은 몸무게가 많이 줄고 잠도 푹 잘 수 없다고 여러 번 호소했지만, “건강이 최고다. 밥 잘 먹고…”라고밖에 얘기해주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아내는 ‘옳거니, 이걸 보내주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이 물건을 캐나다로 보냈던 것이다. 아내는 이 물건을 목에 두를 수 있는 띠와 이 물건으로 만든 안대까지 보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둘째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빠, 신기하더라. 그 안대를 하니까 잠이 잘 와.”
엄마의 극성스런 정성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뜻일 수도 있겠지만, 딸의 목소리는 분명 건강하고 발랄하게 느껴졌다. 그 후에도 그 물건들을 계속 보내달라고 조르는 걸 보면, 단순한 인사치레는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