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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칼럼

‘老兵’ 이봉주를 위한 변명

지구 3.3바퀴 돌며 ‘서산’을 벌겋게 물들인 사내, ‘봉달이’는 할 만큼 했다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老兵’ 이봉주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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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뛰거나 어린 나이에 너무 먼 거리를 달리면 무릎과 발목이 약해진다. 당연히 스피드가 나지 않는다. 30만km를 달린 자동차가 5만km를 달린 자동차에 뒤지는 것은 당연하다. 바퀴가 시원치 않거나 엔진이 닳고닳은 자동차가 속력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케냐나 유럽의 유명 선수들이 기껏해야 15회 정도 완주하고 은퇴하는 것도 바로 스피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맨발의 영웅’ 에티오피아의 비킬라 아베베도 15번 대회에 출전해 13번 완주한 게 전부다. 그는 완주한 대회 중 단 한 번을 빼놓고 12번 모두 우승했다.

이봉주는 32번 완주한 대회에서 9번 우승하고 6번 준우승을 했다. 기권한 것은 2001에드먼턴 세계선수권대회가 유일하다. 그때 28km 지점에서 양다리 허벅지 통증이 워낙 심해 더 달릴 수가 없었다. 반면 황영조는 8번 완주해 3번 우승에 2번 준우승을 했다.

이봉주가 2위를 차지한 6번 중 4번이 96애틀랜타올림픽(15번째 출전) 이후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봉주는 바로 그 대회에서 남아공의 조시아 투과니에게 3초 뒤진 2시간12분39초의 기록으로 2위에 그쳤다. 또 1996년 이후 우승(후쿠오카, 방콕아시아경기, 보스턴, 부산아시아경기)한 기록이 보스턴대회(2시간9분43초)를 제외하고는 모두 2시간10분대를 넘은 것도 스피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봉주는 지구력의 화신이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데는 그 누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스피드가 약하다. 스피드는 어릴 때가 아니면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지지 않는 법이다. ‘스피드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지만 지구력은 후천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는 말도 이래서 나온 것이다. 그만큼 스피드는 때를 놓치면 더는 향상되지 않는다.

이봉주는 몸에 기름기가 거의 없다. 마치 ‘뼈에 가죽만 입혀놓은 것’ 같다. 그래서 뛰고 있는 그를 보면 안쓰럽다. 얼굴은 시커멓고 쪼글쪼글 주름까지 져 있다. 그는 쌍꺼풀 수술도 했다. 달릴 때 눈에 땀이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앞머리가 벗겨져 다른 선수들보다 많은 땀이 눈 속으로 파고든다.



그가 즐겨 동여매는 태극 머리띠는 이마의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주는 완충역할도 한다. 2003년 겨울 그는 뒷머리카락 2004개를 뽑아 앞머리에 이식했다.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반드시 우승하고야 말겠다는 뜻에서 2004개를 택했다.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전략

육상에선 단거리 선수보다 장거리 선수의 키가 작다. 역대 올림픽 단거리 육상 남자선수들의 평균 체형은 183㎝에 68㎏이다. 이에 비해 마라톤 남자선수들은 169㎝에 56㎏(이봉주는 168㎝에 55㎏)이다. 나이는 남자 단거리 선수가 평균 23세 안팎, 남자 마라톤 선수가 평균 26세 내외다.

근육도 다르다. 단거리 선수들은 근육이 울퉁불퉁하고 우람한 반면에 마라톤선수들은 근육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왜 그럴까. 사람의 근육은 속근(速筋)과 지근(遲筋)으로 나뉜다. 속근은 순간적인 힘을 발휘하는 데 유효하고 지근은 지구력을 발휘할 때 유효하다. 단거리 선수들은 더운 날씨를, 마라톤 선수들은 쌀쌀한 날씨를 좋아하는데, 이 역시 속근과 지근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우면 우람한 근육에 경련이 일기 쉽다. 반면 지근은 더위에 약하다. 마라톤의 최적 기온이 9℃ 안팎(습도 30∼40%)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봉달이’는 더위에 강하다. 96애틀랜타올림픽, 98방콕아시아경기 등 ‘찜통 레이스’에서 비교적 좋은 성적을 냈다. 전문가들이 아테네올림픽에서 이봉주에게 기대를 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아프리카 선수들은 습하고 더운 날씨에 약하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폴 터갓(케냐)의 말.

“1997년 8월 아테네세계육상선수권대회 1만m에 출전한 적이 있다. 그때도 정말 더웠다. 게다가 아테네는 습도가 높다. 건조한 케냐 날씨에 익숙한 내 몸이 아테네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습도가 높은 데서 달리면 쉽게 탈수상태에 빠지고 다리에도 경련이 온다. 그런 기후라면 기록보다는 전술적인 레이스를 펼 수밖에 없다. 이번 레이스는 무더위에 강한 한국,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선수들이 라이벌이 될 것으로 본다. 우승자를 예측하기는 정말 어렵다. 틀림없이 서바이벌 레이스가 될 것이다. 코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현장답사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아테네올림픽 마라톤 레이스 당일은 예상과 달리 기온(30℃)이 그다지 높지 않았고 습도(39%)도 낮았다. 레이스 양상도 터갓이나 이봉주가 예상했던 ‘전술적인 레이스(종반까지 서로 눈치를 보며 선두권을 형성하고 가다가 막판 30km 이후 지점에서 스퍼트하는 전략)’가 아니라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전략으로 펼쳐졌다. 그래도 터갓은 선두권을 유지하며 35km 지점까지 3위로 달렸으나 막판 추격에 실패해 10위(2시간14분45초)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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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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