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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⑭

소박과 야심의 두 얼굴 신영균 “정치? 사업? 그래도 배우가 제일 좋았어요”

  • 글: 심영섭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소박과 야심의 두 얼굴 신영균 “정치? 사업? 그래도 배우가 제일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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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분히 숙명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는 초기작품 가운데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인상 깊습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성실한 장남 역이었죠? 신영균씨 이미지의 한 축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이었는데요. 후에 ‘상록수’에서 맡은 채명신의 배필인 사회운동가와 맥을 같이하는.

“‘마부’는 김승호씨와 황정순씨의 연기호흡이 정말 잘 맞았어요. 저는 고학으로 법대를 다니다가 사시에 붙는 장남을 맡았죠. 당시 장남의 전형을 연기한 거였는데, 눈 내리는 길거리에서 시험에 붙은 나를 가족들이 얼싸안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마부’에서처럼 실제로도 장남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장남에 가까운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장남처럼 보이는 차남’인 셈이다.

-그 해, 1961년에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작품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에 출연했습니다. 신영균씨의 대표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죠. 그렇지만 ‘연산군’은 신영균씨가 현대물보다는 사극에 더 어울리는 배우라는 고정관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연산군은 자신을 낳은 어머니가 억울하게 죽으면서 흘린 금삼의 피를 보고 나서 폭군이 되는 인물이죠. 남자로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연극배우 출신이어서 영화를 할 때 오버한다는 지적을 받곤 했습니다. 연극무대에서 하듯이 연기를 하면 화면에는 액션이 굉장히 커보이거든요. 데뷔작 ‘과부’ 때부터 그런 지적을 받았죠. 그러나 연산군은 폭군이고 광포한 면이 있는 임금이라서 오히려 연기 폭이 넓고 커야 했어요. 저의 연극적인 연기 특징과 연산군이라는 배역이 잘 맞아떨어진 거죠.

신상옥 감독은 배우의 연기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까다롭게 요구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일단 연기를 하면 배우를 믿고 맡기는 편이었지요. 그 시절엔 누구나 다 시나리오를 들고 거울 앞에서 연기연습을 했습니다. 요즘처럼 녹화했다가 테이프를 재생해 보며 공부할 수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연산군’에는 말 타는 장면이 많았어요. 말에서 떨어지는 연기도 다 직접 소화했지요. 당시 남자배우 중에서 제가 말을 제일 잘 탔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연산군’에서 받은 느낌은, 기존의 폭군 이미지에 어떤 희화화된 이미지를 첨가한 게 돋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채홍사가 보낸 여자들을 훑어보는 장면이라든지, 임금의 체통에 걸맞지 않게 혀에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넘긴다든지, 웃음이 일그러지는 모습이라든지…. 연기해석이 참 좋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렇게 연기했다기보다는 시나리오에 맞춰서 갔다고 봐야겠지요. 시나리오를 쓴 작가 한운사씨의 해석이 다분히 들어가 있었어요. 사실 연산군은 처음부터 폭군이 아니었어요. 나중에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고나서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하죠. 그런 부분을 연기할 땐 저도 신경을 많이 써야 했죠.“

노란색의 비밀

-영화 ‘연산군’에서 노란색은 욕망의 빛깔입니다. 오직 임금만이 노란색을 입지요. 40년 전 장덕조씨가 신영균씨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어보니 이 점에 대해 지적했더군요. 원래 대궐에서는 노란색을 불길한 색이라 해서 절대 사용하지 않는데 신상옥 감독의 사극에서는 계속 노란색이 나온다고요.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적인 장치이므로 크게 상관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요.

“신상옥 감독님과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때 잠깐 출연하면서 처음 만났죠. 신 감독은 작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연산군’을 만들 당시 신필림이 좀 어려웠어요, 빚쟁이들이 쫓아다니고. 당시에는 필름 값이 굉장히 비싼 데다 돈 주고 사기도 어려워서 감독들은 대개 필름을 무척 아꼈습니다. 그렇지만 신상옥 감독은 달랐죠. 조명이나 연기가 잘못되면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다시 찍었습니다. 한마디로 영화에 미친 사나이였죠. 카메라 위치를 정하느라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뒷걸음질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큰일 날 뻔한 적도 있어요. ‘연산군’을 찍을 때 그렇게 열심히 했습니다, 모두들.”

‘연산군’은 사극의 거장으로서 신상옥 감독의 역량을 최초로 보여준 작품이다. 월탄 박종화의 원작소설(1938)을 모태로 한 이 영화는 폭군 연산의 야만적 광기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140분에 걸쳐 장대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부분 장면을 실제 조선왕조의 궁궐에서 촬영한 이 작품은 그 호화로운 스케일만으로도 당대의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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