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열린우리당 당내 역학구도 이동

진보개혁 ▶ 실용파 ▶ 중도보수 무게중심 ‘우향우’?

  • 글: 박민혁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mhpark@donga.com

    입력2004-11-23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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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우리당이 소규모 모임을 중심으로 재편중이다.
    • 참정연, 초선모임, 새모색, 아침이슬 등 진보·개혁 성향의 모임을 시작으로 의정연, 일토삼목회 등 실용파를 거쳐 중도보수 성향의 안개모가 등장했다. 좌편향에서 좌우 균형이 맞춰진 모습이다.
    • 이 균형이 얼마나 유지될까.
    열린우리당 당내 역학구도 이동

    열린우리당 내 중도보수 성향의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이 11월1일 국회에서 공식 출범했다.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좌(左)에서 우(右)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분석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여당 내 중도보수 성향의 의원들이 당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다.

    이런 변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당 지지도의 추락이다. 탄핵역풍으로 152석의 국회 과반을 점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던 당 지지도는 경제악화의 심화, 4대 개혁입법 추진에 따른 반대 여론의 비등,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 등 잇단 악재로 크게 추락한 상태다.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일방통행식 개혁에 대한 반감이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국민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등 당내 진보 개혁세력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9월 들어서는 중도보수 성향의 당내 모임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의 색깔이 조금씩 바뀌는 것은 당내 각종 소규모 모임들의 파워 게임과 연관이 있다. 진보개혁 성향의 모임들이 태동하고 힘을 발휘할 때는 왼쪽에 치우쳐 있다가, 중도보수 성향의 모임이 고개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여당 내에는 다양한 이념을 지닌 소규모 모임들이 존재한다. 좌로부터 개혁당 출신들이 주축이 된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 386세대 운동권 초·재선이 중심이 된 ‘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새모색)’, 비상조치 세대인 40대가 주축이 된 ‘아침이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직계 386들이 만든 ‘신의정연구센터’, 장·차관 및 청와대 출신 의원들 모임인 ‘일토삼목회(一土三木會)’, 당내 중도보수 성향의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 등이다.



    2003년 6월 충남 아산의 모 호텔에 17대 총선에 출마하려는 40대 안팎 20여명이 모여 출마의지를 다졌다. 이들은 “여기 모인 모두가 선거에서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지켜온 신념과 서로에 대한 믿음은 변치 않는다”고 다짐했다.

    이들은 골수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 이날 모인 20여명 중 무려 12명이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달았다. 임종석, 오영식, 이인영, 백원우, 우상호, 정청래, 김태년, 이철우, 이기우, 복기왕, 한병도, 최재성 의원이 그들이다.

    16대 국회에선 오영식, 임종석 의원 둘뿐이었던 것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한 셈이다. 이들이 대거 국회에 진입한 사실만으로도 열린우리당의 색깔을 가늠할 수 있다.

    전대협 출신 의원들은 대학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끈끈한 인연으로 얽혀 있어 언제든지 당내 세력화가 가능하다. 이들은 출마에 앞서 모두 네 차례 전체 모임을 갖고 선거운동 방법과 정보를 공유했다. 전대협 간부 출신 800여명의 친목모임인 전대협동우회는 자금지원 등 선거운동을 도왔다. 전대협 세대의 ‘맏형’ 격인 우상호 의원은 당선 이후 “15년 넘게 가족처럼 부대껴온 사이다.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이들은 지금까지도 당내에서 ‘견제 대상 1호’로 분류된다.

    가장 진보적인 모임 ‘참정연’

    법조계 개혁세력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들도 대거 국회에 진입했다. 판·검사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보수성향을 보였던 과거 정당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대목이다.

    초선으로는 김종률, 문병호, 이상경, 이원영, 임종인, 정성호, 조성래, 최재천 의원 등 8명이다. 여기에 재선인 유선호, 이종걸, 송영길 의원과 3선인 천정배 의원까지 합치면 열린우리당 내 민변 출신은 모두 12명.

    5월4일 민변 출신 당선자 축하모임에서 최병모 민변 회장과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이들에게 “민변은 그동안 개혁을 위해 많은 애를 써왔다. 이제 여러분이 국회에 가서 앞장서달라”며 개혁을 강조할 정도로 이들은 개혁 성향으로 무장돼 있다.

    핵심적인 노동운동가 출신들도 가세해 열린우리당의 진보개혁 색깔을 더욱 짙게 했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는 고교 졸업 후 은행에 입사한 뒤 금융노련 상임부위원장을 지낸 김영주 의원과 80년대 인천지역 노동운동권에서 신화적 인물로 불리던 이목희 의원이 있다.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대학에 입학해 민족통일 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전국연합)으로 이어지는 활동을 한 소위 ‘재야’ 출신 5명도 열린우리당 초선 대열에 끼였다. 이들 유기홍, 이광철, 최규성, 정봉주, 강기정 의원은 당선된 뒤 “정치개혁에 앞장서겠다”고 입을 모았다.

    386 운동권, 재야, 민변 출신 중심의 당내 진보개혁 세력들은 소규모 모임을 통해 여당의 개혁성향을 한층 강화시켜나갔다. 가장 먼저 개혁당 출신들이 주축이 된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가 5월초 본격적인 모양새를 갖춰가기 시작했고, 민변 출신인 임종인, 최재천 의원 등이 중심이 된 ‘초선모임(가칭)’도 세 확산에 나섰다.

    유시민, 김원웅, 유기홍, 안민석, 김형주, 김태년, 강기정, 박명광, 정청래, 장경수 의원 등 개혁당 및 신당 추진연대 출신의 10여명은 5월6일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참여정치연구회 준비모임을 구성했다. 정동영 전 의장의 ‘실용주의’ 노선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참정연은 당내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참정연의 결성 취지는 ‘당의 개혁성 강화와 당원들이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상향식 민주정당 건설’이다. 이에 따라 17대 국회 개원 전에는 여권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 철회론을 들고 나왔고, 기간당원제 강화, 당원 투표제 등 열린우리당의 개혁적인 당헌 당규 개정에 앞장섰다.

    최근에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을 맹비난하며 헌법재판관 탄핵주장을 이끌기도 했다.

    각종 소규모 모임 통해 조직화

    ‘초선모임’도 6월3일 창립대회를 갖고 ‘초선이 개혁을 주도해 노무현 정부를 성공시키자’는 결의를 다질 예정이었다. 참여의사를 밝힌 초선이 무려 26명이나 됐으나 내부 이견으로 본격적인 활동도 못하고 해체됐다.

    참정연과 초선모임에 이은 개혁성향의 모임은 386세대 운동권 초·재선으로 구성된 ‘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새모색)’이다. 새모색은 6월15일 인적 구성 면에서 당내 주목을 받는 모임으로 출발했다. 김영춘 송영길 김부겸 임종석 이종걸 오영식 문석호 등 당내 ‘허리’역할을 하는 재선 10명을 포함, 이인영 우상호 의원 등 전대협 출신을 비롯해 백원우 정청래 윤호중 강기정 정봉주 김현미 조경태 의원 등 모두 34명이 이 모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새모색이 당내 최대 운동권 모임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데는 전대협 출신의 ‘맏형’격인 우상호 의원의 각별한 노력이 있었다. 우 의원은 81학번이면서 재학중 군대를 갔다오는 바람에 84학번 주도의 전대협에서 활동, 운동권 선후배간 가교역할을 했다. 이들을 결집시킨 공통분모는 ‘80년대의 가치’와 ‘6월 항쟁’이었다.

    새모색은 이라크 파병과 관련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라크 전쟁을 합리화시킨 경위에 대해 해명하고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또 최근에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앞장서면서 당내 중도보수 성향의 모임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긴급조치세대 출신으로 구성된 ‘아침이슬’도 열린우리당의 개혁성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새모색과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아침이슬은 75학번에서 79학번까지 10여명으로 구성돼 당내에서 소위 475세대를 대변하고 있다. 노영민 노웅래 선병열 우원식 유기홍 유승민 이상민 이영호 전병헌 한광원 민병두 의원 등이 속해 있다.

    아침이슬은 첫 전체 모임에서부터 “시대정신상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밝히는 등 당내 진보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4·15총선과 17대 국회 개원 전후 진보개혁 일변도의 모습을 보였던 열린우리당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됐다. 국회 개원과 맞물려 당내 실용주의를 앞세운 모임들이 활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친노(親盧) 직계 386세대 모임인 ‘신의정연구센터(의정연)’다.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이화영 의원 등 노 대통령의 386참모 출신 10여명은 “대통령의 국정을 돕는 집단적인 의정활동을 하겠다”며 5월말 첫 모임을 갖고 6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실용파 모임의 출현

    의정연은 386운동권 출신들과는 거리를 두면서 청와대에서 익힌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실용주의 정책과 주장을 펴나갔다. 자연스럽게 386세대 의원들간 ‘실용 대(對) 개혁’이라는 노선(路線) 분화가 확산됐다. 전대협 출신들과의 입장차이는 더욱 뚜렷해졌다. 특히 경제분야에 있어 의정연은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서갑원 의원은 “투명성 확보가 전제돼야 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386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출자총액제한제 완화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의정연은 이라크 파병과 국가보안법 폐지 등 소위 4대 개혁입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표명을 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당내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고려해 민감한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당 지도부의 방침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광재 의원은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4대 개혁입법 처리를 정기국회 우선과제로 내세우면서 야당과 마찰을 빚자 “4대 개혁입법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민생 경제법안도 함께 내세웠어야 했다”면서 “4대 개혁입법 때문에 시급한 민생 경제 관련 법안조차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개혁일변도에서 탈피하는 데는 전직 고위관료 및 청와대 출신들로 구성된 ‘일토삼목회(一土三木會)’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모임은 총선직후 각각 발족한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 의원모임’과 ‘전직 장·차관출신 모임’이 합쳐져 ‘행정 경험을 지닌 의원들의 모임’으로 확대 발전한 것이다. 이 모임에는 장·차관을 지낸 강봉균 김진표 김한길 변재인 신중식 서재관 이근식 홍재형 의원과 청와대 출신인 유선호 유인태 이광재 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인 심재덕 오제세 유필우 이시종 의원 등 모두 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행정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모임인 만큼 그 성격도 중도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특히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진표 의원은 개혁일변도의 당 운영에 대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회복”이라며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을 가장 우선으로 해야 국민의 지지기반이 확보되고, 개혁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모임의 이름은 매월 첫째 토요일(一土)과 셋째 목요일(三木)에 모임을 갖기로 한 데서 따왔다.

    의정연과 일토삼목회의 출현이 여당의 개혁일변도에 제동을 걸었다면 중도·보수 성향의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의 출범은 좌로 편향됐던 여당의 이념 스펙트럼에 균형을 가져다준 중대한 사건이었다.

    여당내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맞서 처음 모임을 갖게 된 안개모는 11월1일 우여곡절 끝에 유재건 안영근 조배숙 안병엽 이계안 조성태 의원 등 28명으로 공식출범했다. 새모색을 비롯해 참정연, 아침이슬 등 당내 진보개혁세력 모임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하게 주장했고, 안개모는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면서 개정 내지 대체입법을 주장했다. 안정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당내 강성 개혁세력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당내 미운 오리새끼

    안개모는 개혁으로 상징되는 열린우리당에서 ‘미운오리새끼’일 수밖에 없었다. 안개모 간사를 맡고 있는 안영근 제2정조위원장은 천정배 원내대표로부터 “계속 당과 다른 얘기를 할 거면 당직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참정연의 유시민 의원은 안 의원을 향해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야 하지 않느냐”며 비꼬기까지 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안개모의 명칭을 빗대 ‘안개처럼 사라질 모임’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회장으로 선출된 유재건 의원은 공식 발족식 인사말에서 “그동안 당내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분들이 어렵게 모였다”면서 “앞으로 당의 의사결정과 정책결정과정에 목소리를 내 열린우리당의 이미지를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더 이상 개혁만을 강조하는 여당의 모습이 아니라 집권당으로서 안정감을 주도록 안개모가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안개모는 이어 외연확대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안영근 간사는 “안개모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많다”면서 최다 70명까지 회원을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 안팎에선 안개모가 여당에서 자신들의 목표에 걸맞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개모를 비롯해 의정연 일토삼목회 등 중도보수 내지 실용주의 의원 모임이 당내에서 힘을 갖고 왕성한 활동을 할 때 열린우리당은 중도 실용주의 정당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러나 17대 국회 초반처럼 참정연, 새모색, 아침이슬 같은 진보 개혁성향의 의원 모임이 다시 큰 목소리를 내게 된다면 여당은 진보 개혁정당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직은 여당 내에 진보 개혁세력의 목소리가 크다. 중도보수 성향 의원들은 속성상 잘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유재건 의원의 말처럼 여당 내 중도보수 세력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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