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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역사학자의 苦言

노 대통령은 정조에게서 배우라

신하를 ‘국가의 편’과 ‘역적의 편’으로 나누는 순간 개혁은 실종되고 氣싸움만 남는다

  • 글: 박현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교수 hyunmp@hotmail.com

노 대통령은 정조에게서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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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혁정치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정조. 하지만 그는 소수파 정권과 ‘죄인의 아들’이라는 정치적 한계를 끝내 뛰어넘지 못하고 좌초했다. 세도(世道)는 세도(勢道)로 바뀌었고 탕평정치는 편가르기와 세 부풀리기로 변질됐다. 그가 신하를 ‘국가의 편’과 ‘역적의 편’으로 나누는 순간 개혁과 민생은 사라지고 기싸움만 남게 됐다. 외척 세도가 김조순이 회상하는 형식으로 정조의 실패 원인을 짚어보고 이를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비교해본다.[편집자]
노 대통령은 정조에게서 배우라
1.

1800년 여름은 무더웠다. 창경궁 영춘헌의 소나무도 더위에 지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6월14일, 그러니까 발병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전하께서 나를 부르셨다. 등쪽에 난 종기로 잘 주무시지 못한 탓인지 두 눈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고, 사뭇 초췌한 모습이었다. 평소 50발 가량의 화살을 쏘고도 끄떡없던 전하를 생각해볼 때, 이번 병환이 얼마나 심각한지 느낄 수 있었다.

상(上)께서 종기로 고생하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793년(정조17)에도 온 얼굴에 종기가 나서 며칠 동안 앓아누우신 적이 있다. 그때는 천행으로 전주 출신 의원 피재길이 지어올린 고약이 바로 효력을 발휘하여 완쾌되실 수 있었다(‘정조실록’ 17년 7월16일자, 이하는 17/7/16으로 날짜만 표기함. #표시는 음력).

그러나 이번 종기는 워낙 심중한 것인지라 피재길조차 손쓸 도리가 없어 쩔쩔매고 있었다. 전하는 나를 가까이 오라고 부르셨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전하의 등과 앞가슴은 물론이고 머리 쪽에도 종기가 심하게 돋아 있었다. 전하께서는 “경의 가문이 덕문(德門)이요 명망 있는 집으로서 뭇사람이 우러러보는 집”인 데다 “경의 여식 또한 덕스런 용모를 갖추었으니” 이는 실로 종묘의 복이라고 말씀하셨다(24/2/27). 두 달 전 제2차 세자빈 간택에서 내 딸이 1순위로 결정된 것에 대한 칭찬이셨다.

전하는 또한 지난달의 ‘오회연교(五晦筵敎)’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금년 5월30일 경연에서 당신의 정국운영방식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발표하신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나는 “전하의 높은 성지(聖旨)를 다 헤아릴 수는 없으나, 힘껏 받들겠노라”고 말씀드렸다. 종기로 인한 열 때문인지, 옥음(玉音)이 간간이 끊어지곤 했다.



“임금의 처지는 외롭고 위태로운 것”

상께서는 그 동안 “8년 간격으로 번갈아” 각 당파의 인재를 정승으로 임명해왔으며 “어진 선비를 중용하는 정치(右文至治)”를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도무지 그 효과가 드러나지 않는다고도 말씀하셨다. “북채를 잡고 북을 치면 곧장 반응이 나오는 것”처럼, “그늘에서 학이 울 때 그 새끼가 화답하는 것처럼” 국왕의 하교를 듣고 “의기가 북받쳐 올라 그 의리를 천명할 길을 생각하는 자”가 쏟아져나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24/5/30).

여전히 신료들은 “속된 습속(俗習)”에 따라 당을 짓고 편을 갈라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심지어 국왕 지시까지 거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잘못된 습속을 바로잡고(矯俗), 서로 합력하여 “효과를 거두는 정치”를 위해서는 나 같은 사람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당신이 앞장설 것(率敎)이니, 나는 따라오고 적극 지지해달라는 말씀이셨다.

“근래의 정치를 보면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 “지금의 이 증세도 실상 해묵은 화병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관이 전하의 등쪽 고름을 한 차례 닦아냈다. “경도 알다시피, 사대부란 자들이 나라일에는 하나같이 침묵을 지키고, 음침한 장소에서 사면팔방으로 서로 내통하다가, 조금이라도 자기 당파에 불리한 일이 생기면 머리를 치들어 대들고 있지 않은가”(24/6/16).

내가 “어조가 과격하시어 몸조리에 해로울까 저어된다”고 말씀드리자, 전하는 잠시 숨을 고르시더니 이윽고 내 왼손을 손수 이끌어 옆에 있던 원자(元子, 나중의 순조)의 양손을 잡도록 하셨다. 상께서는 원자에게 “이 사람은 네 스승일 뿐만 아니라, 내 동기(同氣)와도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황황해하는 나를 돌아보시고는 “임금의 처지는 실로 외롭고 위태로운 것”이라면서, 장차 원자의 뒤를 돌보고, 또한 세도(世道)를 맡아달라고 하셨다. “용렬한 천신(賤臣)이 그런 대임을 맡을 수 없다”는 내게 상께서는 “경이 아니면 어느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큰 그릇(大器)은 두루 통용되어 국한되지 않는 법(不器)”이라면서 앞으로의 정국운영을 내게 맡긴다고 말씀하셨다(김조순, ‘풍고집’ 별집. ‘영춘옥음기’).

세도(世道)에서 세도(勢道)로

‘정국운영을 맡긴다’는 말씀은 전연 뜻밖이었다. 당신이 손수 가르치고 길러온 초계문신 출신인 내게 ‘지지’를 당부하신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나, 정국운영을 부탁하신 것은 의외였다. 당신의 말씀마따나 “이제 나라의 원구(元舅)로서 처지가 전과는 달라졌으니 앞으로 더욱 자중해야 할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닌가. 더욱이 전하께서 내게 “세도를 위임한다”는 것은 그 동안 당신이 표방해온 ‘우현좌척(右賢左戚)’의 정국운영방식을 전면적으로 수정한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불과 5년 전 화성((華城)) 행차 직후에도 전하께서는 “어진 신하를 내 편으로 하고 내외척을 배제해야 한다는 의리”(19/3/10)를 강조하지 않으셨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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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현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교수 hyunmp@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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