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헌법학자들의 헌법재판소 진단

인적 구성 다양화하고, ‘과도한 정치성’은 배제해야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4-11-23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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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습헌법’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헌재는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다양한 비판론을 수용해 체질을 개선하고, 소수자·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며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기여하는 헌재 본연의 자세를 추스를지, 아니면 비대해진 사법권력에 취해 한층 더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될지 헌법학자들은 애정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헌법학자들의 헌법재판소 진단
    “관습헌법을 인정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수도가 서울이라는 게 관습헌법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를 억지로 끼워 맞춘다 하더라도, 관습헌법으로 정해진 것을 바꾸기 위해 (성문)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누가 봐도 억지다.”-고려대 장영수 교수

    “대통령 탄핵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판결로 볼 수 있다. 국민의 70%가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점을 의식해 그에 맞게 판결하다 보니 무리한 결론이 도출됐다. 역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판례 중 이렇게 논리가 비약된 적은 없다. 성문헌법의 보충적 효력을 갖는 관습헌법을 바꾸는 것은 헌법이 아닌 법률개정 절차로 가능하다.”-한양대 권형준 교수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법률이나 공권력이 현재 자신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하는 경우여야 한다. 그런데 수도가 서울이어야 한다는 데서 무슨 기본권이 나오나. 즉 청구인 적격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헌재는 궁리 끝에 청구인들이 자격을 갖도록 헌법 130조의 국민투표권을 끌어들였다. 수도이전은 헌법개정 사안이기 때문에 국민투표가 필요한데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았으니 기본권 침해라는 것이다. 이는 상당한 오류다. 청구인 적격 개념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헌법소원이 폭주할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자신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당하지 않은 사람도 국민투표권을 내세워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건국대 임지봉 교수

    “법리적 논증이 잘못됐다. 논증만 제대로 됐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결정문에서 불문·관습헌법을 들먹인 탓에 불문헌법으로 어떻게 성문헌법을 바꾸느냐는 시비가 발생한 것이다.”-허영 명지대 초빙교수

    법조인 재판관 구성의 한계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10월21일) 후폭풍이 거세다. 겉보기엔 헌재 결정이 정당했고 그 위상도 높아진 듯하다. 결정과 동시에 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된 정부의 모든 일정은 중단됐다. 여권은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비록 충청권의 반발이 거세긴 하지만 국민여론도 헌재에 우호적인 것으로 보인다. 설문조사 결과 6 대 4 또는 7 대 3의 비율로 헌재 결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까닭이다.

    학계에서도 헌재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결정에 대한 정서적 지지와 논리에 대한 비판은 별개다. 취재 결과, 이번 결정이 헌재의 신뢰성을 크게 훼손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뷰에 응한 헌법학자와 변호사 중 상당수는 헌재 결정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 결정을 뒷받침한 논리가 매우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정치논리에 치우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글머리에 언급한 일부 학자들의 의견은 그중 일부다. 최고법인 헌법을 해석하는 기관으로서 어떤 국가기관보다 법논리에 충실해야 할 헌재로서는 듣기 민망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젊은층이 주축인 네티즌 사이에서도 비판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헌재 결정을 격렬히 비난한 김용옥 전 교수의 ‘오마이뉴스’ 특별기고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오마이뉴스에는 ‘좋은 기사’에 대해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제도가 있다. ‘가련하다 헌재여! 당신들은 성문헌법 수호자였거늘…’이라는 제목의 김씨의 글에 대한 독자 원고료는 이틀 만에 1000만원을 돌파해 이 부문 신기록을 세웠다. 원고료는 11월 중순 현재 300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는 10월28일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헌법재판소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학자들과 변호사들은 한 목소리로 이번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헌재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한나라당은 헌재 결정에 대해 적극지지 견해를 밝힌 반면, 열린우리당은 ‘사법쿠데타’로 규정하며 “입법권이 훼손됐다”고 반발했다. 우리당은 ‘분풀이라도 하듯’ 헌재 재판관 전원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토록 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대흐름, 사회 다양성 반영 못해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결정을 계기로 불거졌지만, 헌재 개조론은 사실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헌법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헌재의 조직과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문제점은 재판관 구성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헌재법에 따르면 헌법재판관 자격은 15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가진 40세 이상의 법관자격자로 한정돼 있다. 따라서 판검사나 변호사 외에는 재판관이 될 수 없다.

    헌법학자들에 따르면 재판관 자격을 법조인으로 제한하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다. 최고법원 재판관이 헌법재판관을 겸하는 일본에선 외교관, 교수 등 비법조인도 재판관으로 활동한다. 또 우리와 제도가 비슷한 프랑스나 독일의 헌법재판관 중에도 헌법을 전공한 학자가 포함돼 있다.

    건국대 법과대학 학장을 역임한 한상희 교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결정성향 분석’이라는 논문(1994년)에서 ‘우리의 헌법재판구조로는 헌법판단을 견제할 공식·비공식 장치가 전혀 없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재판관의 자격요건을 훨씬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역임한 서울대 안경환 교수는 헌재에 헌법 전공자가 없는 점을 지적했다. 헌재 재판진이 주로 민·형사소송을 다뤄온 판검사로만 구성되는 바람에 헌법 이론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것. 그러다 보니 수도이전 위헌결정처럼 결론을 먼저 내놓고 거기에 논리를 끼워 맞추는 무리한 판결이 종종 나왔다는 것이다.

    한국헌법학회 이사를 지낸 장영수 교수도 헌재의 전문성 부족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헌법 해석에 관한 한 최고의 사법기관인 만큼 그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데 헌재의 인적 구성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수도이전 위헌결정의 문제점도 결론이 아니라 논거였다. 결론에 대해선 헌법학계 내에서 찬반의 논란이 있다. 하지만 관습헌법 논리에 찬성하는 학자는 극소수다.”

    “재판관 전원 국회에서 지명해야”

    현행 헌재 제도가 도입된 것은 대통령 직선제 등을 골자로 한 제9차 헌법개정(1987년 10월)이 이뤄진 후다. 1988년 9월 헌재법이 발효되고 재판관 9명이 임명됨으로써 헌재는 독립적인 위상을 가진 사법기관으로 탄생했다. 안경환 교수는 재판관 구성방식이 헌재의 설립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헌재가 탄생한 것은 1987년의 시민혁명 덕분이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워낙 신뢰를 잃은 법원 대신 새 기관에 헌법재판 기능을 맡기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헌재의 인적 구성은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시대정신은 새로운 기관에 새로운 역할을 맡길 것을 요구했는데, 전혀 새롭지 않은 인물, 2류 대법관, 구태의연한 인물이 헌법재판관에 임명돼왔다.”

    헌재에는 헌법재판관을 보좌하는 직책으로 헌법연구관과 헌법연구원이 있다. 이들은 헌재소장의 명을 받아 사건의 심리 및 심판에 관한 조사와 연구를 한다. 헌법연구관은 주로 현직 판검사를 임용한다. 그보다 하위개념의 헌법연구원은 공법 분야의 박사학위 소지자로 구성된다.

    헌법연구원 출신인 가톨릭대 성선제 교수는 “판·검사만 헌법재판관에 기용되다 보니 사회의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현직 판사로만 채워지는 대법원도 사회변화를 반영하는 데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시대변화의 수용과 사회정의 실현에 대법원보다 더 앞장서야 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관 자격을 대법관과 똑같이 법조인에 국한하는 것은 큰 문제다.”

    역시 헌법연구원 경력이 있는 연세대 김종철 교수도 “현 제도하에서 헌법재판관은 대법관과 마찬가지로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동질성이 강한 특정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이런 문제점은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 지적돼 온 것”이라며 헌재의 인적 구조 개편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재판관의 자격요건 제한 못지않게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것은 삼권분립을 내세운 나눠먹기식 인선과 그에 따른 민주적 정당성 결여다. 헌법재판관은 모두 9명이다.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 또는 지명하면 이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한동대 이국운 교수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누구를 어떻게 뽑을 것인가’(참여연대 ‘사법감시 19호’ 2003년 10월)라는 글에서 ‘대통령의 경우 검찰을 배려하는 의도가 있고, 국회의 경우 각 정당의 나눠먹기가 관행이며, 대법원장의 경우 대법관 제청 탈락자의 구제수단으로 여긴다’고 꼬집었다.

    “임기 늘리고 단임제로”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는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처럼 헌법재판관 전원을 국회에서 지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헌법판례연구회장인 허영 교수의 제안이다.

    헌법학자들의 헌법재판소 진단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결정으로 ‘정치성’ 논란에 휩싸인 헌법재판소. 헌법학자들은 헌재의 인적 구성 다양화를 주문하고 있다.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절차가 번거로운 만큼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지명하면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의결정족수를 재적 과반수가 아니라 3분의 2 이상으로 하는 것은 야당의 반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여야가 모두 동의해야 임명될 수 있을 것이다.”

    장영수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며 헌법재판관의 임기를 늘릴 것을 주장했다.

    “독일은 12년이고 미국은 종신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6년 연임이다 보니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차라리 독일처럼 임기를 늘리되 단임제로 하는 것이 소신껏 활동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 김갑배 변호사는 “헌재소장은 대법관 임용과정에 관여하지 않는데,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을 3명이나 지명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이는 과거 헌재의 위상이 낮았을 때나 어울리던 제도”라며 대법원장 추천제도를 문제 삼았다.

    헌법재판관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국회 청문회다. 현재는 헌재소장과 국회가 추천하는 3인의 헌법재판관 후보에 대해서만 형식적인 청문회를 하고 있다. 김갑배 변호사는 헌법재판관 전원을 국회 청문회를 거쳐 임명할 것을 주장했다.

    얼마 전까지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권형준 교수도 “헌재의 보수성이 문제가 아니라 재판관들의 법의식과 시대감각이 문제”라며 청문회 활성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어차피 법질서 유지 기능을 맡는 기관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시대감각에 지나치게 뒤떨어진 법의식을 갖고 있거나 헌법에 대한 전문성과 소양이 부족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런 걸 인사청문회에서 걸러내자는 것이다.”

    성선제 교수는 “일반 재판과 달리 헌법재판은 개인 구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구성원 전체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므로 반드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재판관 임명방식으로는 자칫 사법엘리트들이 기존 사회지배체제를 공고화할 우려가 있다. 권력분립 원칙에 따른 추천방식이라도 재판관 후보 전원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실시해야 한다. 청문회는 시대와 사회변화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민변 사법위원장인 김진욱 변호사는 “사법부도 이제는 권력이 됐다. 헌재 또한 국민의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권력기관인 만큼 그에 걸맞은 구성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국민직접선출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결정에 반발하는 측에서는 헌법재판관들을 탄핵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행정·입법부를 견제하는 헌재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위헌적 발상이기도 하거니와 실효성도 없다.

    헌재재판관 탄핵은 위험한 발상

    탄핵은 국회가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직 공무원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된 행위를 했다고 판단할 경우 헌재에 심판을 청구하는 제도다. 탄핵소추를 의결하기 위해서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가 발의하고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하다.

    헌법 65조에 따르면 헌법재판관도 일반 법관과 마찬가지로 탄핵대상이 된다. 헌재법에 따르면 사건을 심리할 때 사건 자체나 사건 당사자와 관련이 있는 재판관은 심판절차에서 배제된다. 일반 심판사건과 마찬가지로 탄핵결정에는 헌법재판관 9명 중 6인의 찬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4명 이상의 재판관이 탄핵소추되면 심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관습헌법 논리로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7명의 헌법재판관에 대한 탄핵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헌법재판관 탄핵이 힘든 이유는 또 있다. 각하 여부를 결정하는 사전심리는 3명씩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에서도 가능하지만, 본안 심리와 결정은 9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재판부에서 해야 한다.

    그런데 전원재판부가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서는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한다. 따라서 헌법재판관 3명 이상이 탄핵소추될 경우 관련 재판관 제척(除斥) 원칙에 의해 성원미달로 심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헌법학자와 변호사들은 대체로 헌법재판관 탄핵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안경환 교수는 “그런(탄핵) 정서야 있을 수 있지만 임기가 보장된 재판관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꾸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며 “청문회를 통해 거르고 임기는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변호사도 “애초 탄핵제도를 만들 때 그런 문제를 생각지 않고 지금 수도이전 위헌결정만 두고 탄핵을 논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반대의사를 밝혔다.

    탄핵이야 그렇다 치고,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이처럼 헌재 비판론이 무성한 것은 이번 위헌결정에 문제가 많음을 뜻한다. 논란의 으뜸은 헌재의 정치성, 즉 정치적 판결의 타당성이다. 이는 향후 헌재의 기능과 위상과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대해선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권형준 교수는 비판하는 쪽이다.

    “헌재의 정치성은 이미 지난번 대통령 탄핵사건 심판에서 드러났다. 법대로 엄격하게 해석하면 공직자가 직무상 위헌, 위법행위를 할 경우 탄핵하게 돼 있다. 그런데 헌재는 대통령의 법 위반사실을 지적하면서도 탄핵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는 정치적 논리로 탄핵청구를 기각했다. 법논리를 벗어나 국민의 의사를 추종하다 보니 그런 무리한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이번 위헌결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면 헌재의 존재의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사법적극주의에 대한 오해

    장영수 교수의 의견도 비슷하다.

    “헌재는 탄핵심판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순수한 법논리로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그 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모든 게 논리적으로 연결돼 결론에 이르기까지 무리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엔 구멍이 여러 군데 있다.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끼워 맞춘 결과다. 그러니 정치적 판결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장 교수는 “현 제도에서는 헌재의 결정을 뒤집을 수 없으므로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앞으로 이런 식의 판결이 되풀이되면 헌재의 권위와 위상이 실추될 것이므로 헌재가 그런 문제점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철 교수는 이번 결정을 ‘사법적극주의 개념에 대한 헌재의 오해’로 규정했다.

    “헌재의 정치성은 외국에서도 종종 논란이 됐다. 과거엔 헌재가 적극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그런데 이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해 신체와 양심의 자유, 정치적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확고히 보장하라는 요구였지, 정치적 사안에 적극 나서서 정치적 판단을 하라는 취지의 사법적극주의가 아니었다. 이 점을 헌재가 오해하고 있다.”

    ‘국토의 균형 발전’

    한상희 교수도 헌재의 ‘과도한 정치성’에 대해 우려햇다.

    “헌재의 치명적 실수는 정치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개입하지 말아야 할 영역까지 들어갔다. 작년부터 그런 조짐이 보였는데, 대통령 신임투표, 이라크파병, 대통령 탄핵 등을 다룬 심판에서 과도한 정치성을 드러냈다. 정치 영역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말고 간결한 결론만 내세웠어야 한다.”

    성선제 교수의 의견은 중립적이다. 성 교수는 정치적 판결과 정책적 판결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정치적 결정을 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책적 결정을 하면 안 된다. 과거 헌재의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소수자,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판결은 정치적 결정에 가깝다. 반면 예산이나 조세 관련 위헌소송에서 헌재는 소극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나타냈는데, 이는 정책적 결정으로 볼 수 있다. 정책적 결정은 헌재의 몫이 아니다. 판결과정에 정책적 고려가 개입되면 헌재의 존재의의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결정 논리의 핵심은 ‘수도를 옮기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 교수 논리에 따르면 이 결정은 정책적 고려와 정치적 고려가 뒤섞인 것이다. 그의 다음과 같은 주장대로라면 헌재는 위헌결정과정에 편향된 정치적 고려를 한 셈이다.

    “헌재는 수도이전의 헌법개정절차만 강조했지, 이와 관련된 또 다른 헌법적 의미를 간과했다. 헌법에는 ‘국토의 균형발전’이 명시돼 있다. 헌재는 마땅히 이 점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문에도 언급해야 했다. 헌재가 수도는 관습헌법이므로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는 점만 강조하고 또 다른 헌법적 가치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성 교수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헌법 조항으로는 헌법 119조, 120조, 122조, 123조 등이 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119조 2항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해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120조 2항

    ‘국가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122조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123조 2항

    “정치적 합목적성도 고려해야”

    반면 안경환 교수나 허영 교수는 헌재의 정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안 교수는 “헌재의 기능 자체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라며 “나라 전체의 균형을 잡는 일을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또 헌재의 기능이 입법·행정부와 충돌하거나 헌재가 월권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헌법재판은 바로 그런 견제 기능을 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권력은 독점하면 위험하므로 쪼갤수록 좋다. 쪼갠 권력이 남용될 경우 그나마 덜 위험한 곳이 사법이다. 잘못될 경우 국민에게 돌아갈 피해가 입법·행정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의 문제점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헌재가 헌법의 틀로 (입법·행정에) 제동을 건 것 자체를 뭐라 그럴 수는 없다.”

    허영 교수는 헌재의 정치적 기능은 당연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일부에서는 이번 결정을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하는데, 헌법재판은 형사재판과 달리 법리뿐만 아니라 정치적 합목적성도 판단하는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 민·형법은 기술규범이지만 헌법은 정치적 규범이다. 대통령 탄핵 건도, 수도이전 건도 법리와 정치적 합목적성이 함께 고려돼야 할 사안이었다. 다만 비중을 따진다면 법리적인 면이 주가 되고 정치적인 합목적성 면은 부차적인 것이 돼야 한다. 이번 수도이전 위헌결정이 정치적 재판으로 비친 것은 그 비중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법리적 논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결정은 16년 헌재 역사에서 처음으로 관습헌법 논리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관습헌법을 인정하면서 헌재 판결의 영역은 무한정 넓어졌다. 보이는 영역(성문헌법)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불문헌법)까지 아우르게 된 것이다.

    이로써 헌재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헌법학자들은 관습헌법 논리의 부작용을 경계한다. 김종철 교수의 논지에 따르면 관습헌법 해석은 헌재의 월권인 셈이다.

    “위헌심사권은 헌법해석권의 일종으로 성문헌법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불문의 관습헌법 개념을 끌어내 그것에 근거해 법률을 심사하는 권한을 행사했다. 이것은 원래 헌재에 부여된 권한을 뛰어넘은 것이다. 관습을 들어 법률을 무력화하는 것은 헌법해석 원리에도 맞지 않다. 헌재가 왜 이런 위험한 논리를 내세웠는지 불가사의하다. 헌법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김 교수는 또 헌재의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결정은 삼권분립의 취지를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률의 흠결을 보완하는 방법으로는 국회 입법과 헌법해석 두 가지가 있다. 통치구조 원리에서 보면 국회 입법권이 더 앞선다. 국민의 대의기관으로 국가의 의사를 확정하는 1차적 권력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재는 헌법해석과정에 불문헌법을 내세워 국회가 입법한 것을 무효로 만들었다. 이는 헌법에 없는 권한이다. 우리 사회도 사법기관의 독재가 우려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성매매야말로 관습헌법”

    글머리에 소개한 몇몇 학자의 의견에서 가늠할 수 있듯 관습헌법 인정이라는 새로운 판례는 앞으로 법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국민생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임지봉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결정의 유일한 근거인 관습헌법은 매우 불명확하고 불확정적인 개념이다. 위헌을 판단하는 데 관습헌법이 추가적 보완적 근거로 사용된 판례는 드물긴 하지만 외국에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관습헌법이 위헌판단의 유일한 잣대로 작용된 예는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일 것이다. 문제는 헌법재판관이 어떤 사안에 대해 관습헌법이라고 선언하기 전까지는 국민 아무도 그것이 관습헌법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의 법의식에 큰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헌재가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직후 성매매 관련 단체는 “성매매야말로 관습헌법에 해당한다”며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할 뜻을 비쳤다. 피식 웃고 지나칠 일이 아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이들의 주장엔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헌재 논리대로라면 성매매 허용은 관습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보다는 오히려 성매매가 관습헌법에 더 어울린다는 의견도 있다. 비록 나쁜 행위이긴 하지만 오랜 관행이자 필요악으로 발본색원하기 어렵기에 용인돼야 한다는 인식이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호주제도 마찬가지다.”

    “관습헌법 때문에 공무원들의 직무수행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임 교수의 우려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비록 성문헌법에는 어긋나지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관습헌법에 위배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법대로’ 공무집행을 하는 데 지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습헌법과 더불어 헌재 판결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 것은 청구인 적격권에 대한 무리한 해석이다. 헌재법에 따르면 헌법소원을 내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당해야 한다. 그런데 헌재는 이번에 스스로 이 규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헌재 판결에는 각하, 기각 및 인용결정이 있다. 각하결정이란 심판청구의 법률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심리에 들어가지도 않고 심판절차를 끝내는 것이다. 기각은 본안심사를 통해 청구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에 내리는 결정이다. 인용결정은 기각결정의 반대다.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변호사 대학생 공무원 의사 주부 등이다. 권형준 교수는 “수도가 옮겨간다고 해서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당한 게 없지 않은가”라며 “애초 청구인 적격권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김종철 교수도 “헌법소원을 내기 위해서는 기본권 침해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번 사안의 경우에는 타당성이 없다”며 청구인 적격권을 문제 삼았다.

    이에 비해 장영수 교수는 ‘조건부 수용론’을 전개했다.

    “어떤 기본권을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진다. 헌재 논리는 관습헌법을 전제로 수도이전을 하기 위해선 헌법을 개정해야 하고 헌법개정을 위해선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국민투표를 하지 않았으므로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관습헌법을 개정하는 데 헌법개정이 필요없다고 한다면 기본권 침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청구인 자격도 부정된다. 반대로 헌법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인정된다면 기본권이 침해된 것이므로 청구인 자격이 생긴다.”

    한상희 교수는 이라크파병에 대한 헌법소원과 비교해 “헌재가 청구인 적격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의 청구인들은 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간부와 시민 등 16명과 민노당 및 민노당 대표 권영길씨, 그리고 육군에 입대한 아들을 둔 최현숙씨 등이다.

    지난해 4월 이들은 국군의 이라크파병 결정과 이에 대한 국회 동의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지난해 12월 청구인 적격을 문제 삼아 각하결정을 내렸다.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라크파병 헌법소원도 마찬가지”

    한 교수는 “헌재 논리대로라면 수도이전 헌법소원의 청구인들도 자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성격의 사건인데 한쪽은 각하결정을 내렸고 한쪽은 청구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위헌결정까지 내렸다”며 “헌법의 기초이론을 흔들면서까지 정치적 결정을 내린 헌재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정치기관”이라고 비판했다.

    헌법 5조 1항에는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돼 있다. 청구인들의 주장대로 이라크전이 침략전쟁이라면, 국군의 이라크파병은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파병하기 위해선 헌법을 고쳐야 한다. 한 교수의 주장이다.

    “헌재는 수도이전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청구인들의 기본권인 참정권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를 이라크파병 헌법소원에 적용하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헌법에 위배되는 이라크파병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았으니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장영수 교수는 “법논리만으로 따지면 이라크파병에 위헌 소지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외교 등 국익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위헌 여부를 떠나 아예 판단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신중론을 폈다.

    비록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결정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르긴 했지만, 헌재의 기능과 권위는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중론이다. 권형준 교수는 “금년 들어 두 차례의 정치적 판결로 비판을 받았지만 헌재는 그 동안 이 두 건의 오류를 덮을 만큼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기여하는 판결을 많이 해왔다”며 “한두 건의 결정을 갖고 헌재의 존재의의를 논하는 건 기우”라고 헌재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그간의 판례를 분석해보면, 헌재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개인의 소유권과 재산권을 옹호하는 시장경제주의에 충실한 결정을 내려왔다. 택지소유상한제법에 대한 위헌결정(1999년), 토지초과이득세법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1994년)이 대표적 사례다.

    또 정신적 자유와 기본권 면에서는 영상물등급분류법에 대한 위헌결정(2001년), 과외금지법에 대한 위헌결정(2000년), 군필자가산점제에 대한 위헌결정(1999년), 동성동본금혼법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1997년)이 꼽힌다.

    반면 정치·이념적 판결에서는 보수적 성향을 보여왔다. 준법서약제에 대한 합헌결정(2002년), 낙선운동금지규정에 대한 합헌결정(2001년),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에 대한 한정합헌결정(1990년)이 대표적 사례다.

    헌재에 보내는 헌법학자들의 ‘충고’를 요약하면 인적 구성을 다양화해 전문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치적 영역 개입은 자제하라는 것이다. 지난 8월 헌재는 국가보안법 7조 위헌소원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결정문에 ‘향후 입법부가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 입법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명시해 월권 시비에 휘말렸다. 헌법학자 대다수는 이 사건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성선제 교수의 지적이다.

    “외국에서는 국회에서 개정 여부가 논의되는 법률에 대해서는 헌재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국회에서 다투는 사안에 대해 헌재가 합헌이니 위헌이니 하고 결정하는 것은 법개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월권이다. 사실상 어느 한편을 들어주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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