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당에서 논의되는 수도이전 대안 중 가장 유력하다. 위헌결정을 피한 사실상의 수도이전 전략이다. 핵심 내용은 청와대,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을 제외한 18개 부처 4처3청의 행정부와 주요 기관을 충청권으로 이전한다는 것이다. 개헌하지 않고는 옮길 수 없는 기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옮기겠다는 발상이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대전·충남지역을 방문한 11월9일 “충청 주민들이 만족스러워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90%까지 충족시키면서 신행정수도 건설의 본래 취지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충청지역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선 더욱 노골적으로 말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청와대와 국회까지 옮기는 것은 불가능해졌지만, 옮겨야 할 기관은 모두 옮길 것입니다. 청와대와 국회는 못 오더라도 다른 기관과 부처도 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헌재가 그런 것까지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천요리’ 대신 ‘탕수육’이라도
열린우리당 의원들 사이에도 행정특별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종걸 원내수석부대표는 “개헌 및 국민투표 실시론 등 정면돌파 주장도 있지만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행정 각부를 충청권으로 이전해 행정특별시를 건설한다는 현실적 대안으로 당의 중지가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지방자치단체 보궐선거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호남의 분위기는 열린우리당에 절대지지를 보낸 지난 총선과는 사뭇 달랐다. 영남과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다. 열린우리당의 확실한 지역적 기반은 충청권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제 충청권이 없다면 열린우리당은 고립무원이다.
충청권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수도 이전, 넓게는 충청권의 획기적 개발에 대한 기대인 것이다. 열린우리당에선 헌재가 위헌이라 결정한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의 대안으로 ‘행정특별시 건설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배기선 의원은 “사천요리를 주문했다가 (요리가 안 나오게 돼) 탕수육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행정특별시 건설의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학계 일각에선 일찌감치 행정특별시 개념이 제기됐다. 단국대 조명래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이미 지난 8월에 수도이전특별법이 위헌으로 결정될 것임을 예견한 듯한 주장을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조 교수는 서울을 수도로 계속 둔 채 행정부의 기능을 분산하는 개념으로 ‘특별행정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특별행정시는 중추 행정기능이 집적되고 여기에 서울대를 능가하는 새로운 교육모델을 구축해 수도권을 넘어서는 국토의 신(新)중심이 되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조 교수는 한 시론에서 “특별행정시 건설은 서울을 사실상의 수도로 두어 서울이 역사적 정체성, 브랜드 가치, 안보상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토록 하기 때문에 수도권 주민의 반발을 한결 쉽게 잠재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신행정수도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표현을 버리고 ‘특별행정시 지위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제정하자는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았다.
그러나 ‘행정특별시 건설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제기되는 것이 행정 효율성의 추락 문제다. 청와대와 대다수 정부 부처가 거리상 뚝 떨어져 있으면 국정 비효율이 불 보듯 명백하다는 것이다. 또 국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각 부처 주요 공무원이 서울과 충청을 수시로 오가야 한다. 행정부처 공무원들은 고속철도를 전세 내야 할 형편이다. 엘리트 공무원의 시간, 에너지 손실을 감안하면 엄청난 행정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대다수 국가는 수도에 행정부 부처와 국회를 함께 두고 있다. 행정부와 국회가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견제와 균형이 이상적으로 실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충청 사수 위해 특단 카드 써야”
행정특별시 방안은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국민여론과 헌재의 위헌 결정을 정면으로 무시한다는 점에서도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많다. ‘눈 가리고 아웅’ 격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최막중 교수(환경계획학)는 행정특별시 건설론에 비판적이다. “서울에 있는 것을 지방이 가져가면 충청권이야 다소 좋아지겠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원래 있는 것을 나눠먹는 ‘제로섬 게임’밖에 안 된다”는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