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수도이전 대안 짜내기, 끙끙 앓는 여권

  • 글: 김광현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kkh@donga.com

    입력2004-11-23 1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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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특별시 : 밀어붙였다 또 좌초되면 ‘끝장’
    • ▶행정타운 : 한나라당과 차별화 안돼 난감
    • ▶기업도시 : ‘友軍’ 개혁·진보세력이 극렬 반대
    • 충청권 주민들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대한민국 수도가 충청도에 들어서고, 개발이 착착 이뤄져 집값도 땅값도 오르리라던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그만큼 반발도 거세다. 정치권에서는 충청권 민심 달래기용으로 갖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만 빼고 옮길 수 있는 행정기관은 모두 충청도로 옮기고 ‘청와대 분소’를 충청도에 짓자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는 여론수렴을 거쳐 연말쯤 종합적인 충청권발전방안을 내놓을 방침. 한나라당도 비슷한 시기에 수도이전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여권에서 유력하게 논의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수도이전 대안들을 분석해봤다.[편집자]
    수도이전 대안 짜내기, 끙끙 앓는 여권
    1. 행정특별시 건설안

    여당에서 논의되는 수도이전 대안 중 가장 유력하다. 위헌결정을 피한 사실상의 수도이전 전략이다. 핵심 내용은 청와대,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을 제외한 18개 부처 4처3청의 행정부와 주요 기관을 충청권으로 이전한다는 것이다. 개헌하지 않고는 옮길 수 없는 기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옮기겠다는 발상이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대전·충남지역을 방문한 11월9일 “충청 주민들이 만족스러워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90%까지 충족시키면서 신행정수도 건설의 본래 취지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충청지역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선 더욱 노골적으로 말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청와대와 국회까지 옮기는 것은 불가능해졌지만, 옮겨야 할 기관은 모두 옮길 것입니다. 청와대와 국회는 못 오더라도 다른 기관과 부처도 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헌재가 그런 것까지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천요리’ 대신 ‘탕수육’이라도



    열린우리당 의원들 사이에도 행정특별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종걸 원내수석부대표는 “개헌 및 국민투표 실시론 등 정면돌파 주장도 있지만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행정 각부를 충청권으로 이전해 행정특별시를 건설한다는 현실적 대안으로 당의 중지가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지방자치단체 보궐선거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호남의 분위기는 열린우리당에 절대지지를 보낸 지난 총선과는 사뭇 달랐다. 영남과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다. 열린우리당의 확실한 지역적 기반은 충청권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제 충청권이 없다면 열린우리당은 고립무원이다.

    충청권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수도 이전, 넓게는 충청권의 획기적 개발에 대한 기대인 것이다. 열린우리당에선 헌재가 위헌이라 결정한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의 대안으로 ‘행정특별시 건설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배기선 의원은 “사천요리를 주문했다가 (요리가 안 나오게 돼) 탕수육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행정특별시 건설의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학계 일각에선 일찌감치 행정특별시 개념이 제기됐다. 단국대 조명래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이미 지난 8월에 수도이전특별법이 위헌으로 결정될 것임을 예견한 듯한 주장을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조 교수는 서울을 수도로 계속 둔 채 행정부의 기능을 분산하는 개념으로 ‘특별행정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특별행정시는 중추 행정기능이 집적되고 여기에 서울대를 능가하는 새로운 교육모델을 구축해 수도권을 넘어서는 국토의 신(新)중심이 되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조 교수는 한 시론에서 “특별행정시 건설은 서울을 사실상의 수도로 두어 서울이 역사적 정체성, 브랜드 가치, 안보상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토록 하기 때문에 수도권 주민의 반발을 한결 쉽게 잠재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신행정수도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표현을 버리고 ‘특별행정시 지위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제정하자는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았다.

    그러나 ‘행정특별시 건설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제기되는 것이 행정 효율성의 추락 문제다. 청와대와 대다수 정부 부처가 거리상 뚝 떨어져 있으면 국정 비효율이 불 보듯 명백하다는 것이다. 또 국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각 부처 주요 공무원이 서울과 충청을 수시로 오가야 한다. 행정부처 공무원들은 고속철도를 전세 내야 할 형편이다. 엘리트 공무원의 시간, 에너지 손실을 감안하면 엄청난 행정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대다수 국가는 수도에 행정부 부처와 국회를 함께 두고 있다. 행정부와 국회가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견제와 균형이 이상적으로 실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충청 사수 위해 특단 카드 써야”

    행정특별시 방안은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국민여론과 헌재의 위헌 결정을 정면으로 무시한다는 점에서도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많다. ‘눈 가리고 아웅’ 격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최막중 교수(환경계획학)는 행정특별시 건설론에 비판적이다. “서울에 있는 것을 지방이 가져가면 충청권이야 다소 좋아지겠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원래 있는 것을 나눠먹는 ‘제로섬 게임’밖에 안 된다”는 논리다.

    무엇보다 행정특별시 건설론은 실질적인 수도이전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위헌시비를 불러올 공산이 크다. 행정특별시가 확정되는 순간, 수도권과 충청권에선 새로운 갈등이 불거지고 국론이 분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국회표결에서 신행정수도특별법을 통과시켜준 바 있지만 행정특별시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돌아설 개연성이 높다.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들이 행정특별시 건설 반대를 천명한 상태다.

    행정특별시를 추진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행정특별시특별법’ 등 입법절차를 거쳐 법적 정당성을 획득한 뒤 추진하는 방법과 입법절차 없이 일반적인 건설행정 행위로 추진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후자의 방법은 “청와대만 뺀 수도이전 역시 수십조의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의 장래가 걸린 사업인데, 이를 국민대의기관인 국회의 합의를 거치지 않고 행정부가 단독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라는 반론에 직면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으로선 한나라당과 차별화를 꾀하고 충청권의 지지를 계속 묶어두기 위해 행정특별시와 같은 특단의 카드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는 이처럼 난관이 적지 않다. 정부와 여권은 ‘행정특별시’라는 초강경 카드를 실제로 꺼내 정면돌파를 시도했다가 다시 한 번 좌초할 경우에는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타격을 입는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2. 행정타운 건설안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제기한 방안이다. 한나라당 역시 앞으로 굵직굵직한 선거를 치르려면 충청권 민심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서울 수도권 민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집토끼, 산토끼 다 잡으려다 보니 단일한 당론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신행정수도 논란이 격렬하게 벌어지던 지난 9월23일 한나라당은 수도이전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다. 그러면서 ‘충청권 행정특별시’ 건설을 대안으로 채택하려다 반대론이 제기되자 거둬들인 바 있다. 물론 한나라당이 구상한 행정특별시는 여권에서 말하는 행정특별시와 의미가 매우 다르다.

    ‘제2 과천형’ 행정타운

    한나라당 방안은 옮겨갈 수 있는 부처를 다 옮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7개 행정부처, 25개 관련기관을 충남 공주·연기로 옮긴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교육인적자원부, 노동부, 환경부, 여성부가 지목됐다. 청와대, 외교부, 국방부 등 외교안보 부처,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등 경제관련 부처는 서울에 그대로 남겨둔다는 것이다.

    신행정수도 이전계획이 무산되자 한나라당은 ‘충청권 행정특별시’라는 용어를 ‘행정도시’ ‘행정타운’으로 바꿨다.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 의장은 “제2 과천형 충청권 행정도시 건설에 대해서는 여야가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면서 “그러나 행정타운 후보지로 충남 연기·공주를 전제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 따르면 공주·연기에 비해 교통과 생활여건이 좋고 건설비용이 적게 드는 대전·대덕·유성 지역도 행정타운 후보지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과천형 행정타운 건설방식에 대해서는 충청권 주민의 반발이 거세다. 청와대를 비롯해 전 행정부처가 다 내려와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는 거창한 희망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하기 때문이다. 몇 개 정부 부처가 이전하는 것만으론 지역 개발효과가 국한돼 충청권 전반으로 파급되기 힘들다. 연기·공주가 행정타운이 된다고 하더라도 개발효과는 그 지역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과천만 보더라도 과천 자체는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됐지만, 중앙부처의 과천 이전 효과는 과천 바로 옆 군포, 안양으로도 미치지 못했다.

    여하튼 한나라당은 행정타운조차 당론으로 확정하지 못했다. 당내에 충청권 발전 태스크포스 등 4개 특별팀을 만들어 더 논의하고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방침만 내놓았다. 다만 한나라당은 올해 안에 충청권 종합대책이 담긴 지역균형발전 및 지방분권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이 대안을 내놓으면 그것을 지켜보고 방침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도 행정타운 건설을 검토하고 있으나 이를 대안으로 공식 채택할 경우 한나라당과 별 다를 것이 없고 충청 사수를 위한 카드로 활용하기엔 약하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3. 기업도시 건설안

    수도이전 대안 짜내기, 끙끙 앓는 여권

    11월5일 대전역 광장에서 대전의 일부 시민단체가 ‘충청권을 더 이상 핫바지로 보지 말라’는 의미로 ‘핫바지 화형식’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6일 ‘동아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해 전국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수도이전의 대안으로 ‘기업도시 유치 및 투자’가 29%로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일부 행정부처만 소규모 이전(한나라당의 행정타운 건설론)’(23.3%), ‘교육도시 건설’(13.6%),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모든 행정부처 이전(여당의 행정특별시 건설론)’(10.9%) 순이었다. ‘필요없음. 어떤 추진도 반대’ 응답도 18.0%나 됐다.

    헌법재판소 결정 직후인 10월23일 MBC가 KRC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기업도시 유치’가 30.7%로 가장 많았고, 이어 ‘행정타운 건설’(28.7%), ‘행정특별시 건설’(10.9%) 순이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같은 날 대전 및 충남북 성인남녀 6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는 약간 달랐다. ‘행정도시 건설’이 49.3%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기업도시 건설’(31.8%), ‘대학도시 조성’(8.9%)으로 나타났다.

    일단 여론조사 결과만 보면 ‘기업도시 건설’이 수도이전 무산에 따른 대안으로 가장 유력하다. 기업도시란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가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여기에 주택과 의료시설 및 각종 생활 편익시설이 고루 들어서는 일종의 자족형 계획도시를 말한다. 한마디로 ‘기업 하기 좋은 자족도시’다. 일자리가 생기고 돈이 돌기 때문에 지역주민으로서는 실속을 챙길 수 있는 도시형태다.

    ‘사공’ 많은 기업도시 사업

    기업도시 건설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주도하는 것이며, 정부는 규제를 덜어주는 보조자에 불과하다. 일본의 도요타시와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인 기업도시다. 기업도시 논의는 대기업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에서 먼저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전경련은 집값 안정과 경기 진작,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며 1000만평(서울 여의도 면적의 12배) 규모의 기업도시 건설을 제안했다. 올해 초 삼성전자는 충남 아산시 탕정면 일대에 160만평(1차 61만평, 2차 98만평) 규모의 LCD 라인 중심 기업도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해당지역의 35%에 달하는 주거용지 및 상업용지에 아파트 1만1000여 가구를 건설해 임직원·협력업체·일반인 등에 분양하고, 자립형 사립고를 포함한 초·중·고 9개교를 건설하겠다는 것. 고급 연구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들의 ‘수준’에 맞는 주거·교육시설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 구상은 곧바로 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외형상의 논리는 ‘국가가 조성해준 산업단지에서 민간인이 일반 아파트를 분양해 이익을 챙기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반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기업도시 입지가 충청권이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충청권에 행정수도가 들어설 예정이었으므로 충청지역에 기업도시까지 허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도 “삼성전자가 아파트나 분양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기업도시를 만들겠냐”며 “그런 부수적 이익은 정부가 전부 가져가도록 법적 장치를 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삼성이라고 해도 정부의 뜻을 이길 수는 없어 결국 아산 탕정 기업도시는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정부는 기업도시의 초점을 ‘기업’에 맞추는 대신 ‘지방분권’에 맞추어 다른 용도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기업 하기 좋은 자족도시’라는 원래 개념은 퇴색했다. 건설교통부는 올해 10월 기업도시법을 입법예고하면서 산업교역형 외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레저관광형이나 대학 연구소가 밀집한 지식기반형, 공기업이 몰려있는 혁신거점형의 4개 유형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많이 개발된 곳은 배제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과 충청권은 사실상 배제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충청권으로 수도를 옮기는 일이 무산됐으니 이제 충청권도 다른 비(非)수도권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업도시를 유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만약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LG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이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고 인력을 고용하고 우수한 교육시설을 육성하면 행정수도 못지않은 지역개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울산이 현대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인구 100만이 넘는 ‘광역시’로 발전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기업도시’의 모양새를 보면 정부, 대기업, 시민단체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인 듯하다. 일부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은 기업에 일부라도 토지수용권을 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결국 기업도시는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조치라고 본다. 도시 건설 과정에 환경이 파괴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핵심 지지세력인 개혁·진보 그룹들이 기업도시 건설을 강하게 비토하는 상황은 여권이 기업도시 건설안을 수도이전 대안으로 채택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수도이전 대안으로 충청권에 기업도시를 허용한다 해도 당초 취지에 맞는 기업도시가 들어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고려·연세대를 모두 충청으로?

    행정특별시, 행정타운, 기업도시 건설안 외에 교육도시나 과학도시 건설안도 수도이전 무산에 따른 대안으로 자주 거론된다. 교육도시는 대체로 기업도시와 병행 추진되는 형식이다. 서울대 이달곤 교수(행정학)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학과 교육부, 문화관광부 등 관련 부처를 충청권으로 옮기면 신행정수도건설보다 적은 돈으로 더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대를 이전하기보다 충청권 대학을 통합해 하나의 대학으로 만들고, 이를 서울대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육성하자는 주장도 있다. 성신여대 권용우(지리학) 교수는 “통합된 충청권 국립대를 가칭 ‘한국대학교’로 이름붙인 후 대학본부는 연기·공주에 두고, 충남대는 한국대 대전캠퍼스, 충북대는 한국대 청주캠퍼스로 해 미국의 주립대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도시는 한나라당에서 주로 나오는 대안이다. 대덕밸리를 연구개발(R&D)특구로 지정하고, 대전 대덕은 ‘행정도시+과학기술도시’, 아산 천안은 ‘기업도시+경제도시’, 오송·오창은 ‘생명공학도시’로 개발하자는 방안이다.

    중앙 행정기관이 대거 충청권으로 내려오고 여기에 기업도시, 교육도시, 과학도시가 추가된다면 수도이전에 못지않은 혜택이 충청권에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거세게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한정된 국가 자원을 충청권 민심달래기에 다 쏟아붓는 것이 옳은 일이냐는 비난이 예상된다.

    기업도시, 교육도시, 생명과학도시 건설은 거의 모든 지자체 단체장이 발이 닳도록 서울 중앙부처를 드나들면서 유치하려 노력하고 있는 사업들이다. 충청권보다 훨씬 낙후된 지역들이 있는데 정치적 이유만으로 충청권에 혜택을 집중한다면 단체장들뿐만 아니라 해당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뒤따를 게 뻔하다.

    정치권에선 수도이전에 대해 여러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부는 신중하다. 국민여론을 무시한 채 수도이전을 강행하다가 된서리를 맞은 후 적어도 정부측 발언은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밀어붙이던 때 보여준 추진력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당초 수도이전을 위해 설치된 공식 기구는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민간측에서 서울대 김안제 명예교수, 정부측에선 고건 국무총리가 초대 공동위원장이었다. 이해찬 총리가 임명되고 김안제 위원장이 자진 사퇴의사를 밝힌 뒤 경원대 최병선 교수가 민간측 위원장이 됐다.

    충남 청양 출신인 이 총리는 수도이전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공주·연기를 최종입지로 선정하고, 토지보상 대책도 구체화했다. 그러나 추진위는 헌재 결정과 동시에 자동 해산됐다. 그리고 산하 실무기관인 신행정수도건설추진단도 해산됐다. 추진위의 설치근거인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란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11월7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주최 ‘당정청 경제워크숍’. 신행정수도건설 주무부처이던 건설교통부가 ‘국토균형발전 시책 추진방향’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건교부는 이날 “신행정수도 건설은 중단됐으나 국가 균형발전은 절체절명의 과제이므로 흔들림없이 추진해야 한다”며 “신수도권 발전방안, 공공기관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 ‘기업도시 건설’ 등 국가 균형발전시책은 원칙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충청권에 대한 국가 균형발전 시책도 보완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 대변인인 정순균 국정홍보처장은 이 문제를 분명하게 정리했다. 정 처장은 11월11일 “국무총리 산하에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 결정에 따른 후속대책위’(대책위원회)와 실무기구인 ‘기획단’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대책위원장도 국무총리와 민간전문가가 공동으로 맡게 했다. 이전의 추진위-추진단 구도가 부활한 것이다.

    정 처장은 “헌재 결정에 배치되지 않으면서 국토의 균형발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충청권 수도 이전의 원래 목적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뉘앙스가 깊숙이 배어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렇듯 ‘나눠먹기’식으로 추진하는 ‘국토 균형’이라는 게 정작 국민 생활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느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서울시립대 정창무 교수(도시계획학) 등 일부 전문가는 “수도권이란 개념부터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 도심인 서울시청에서 수도권인 경기도 포천까지 가려면 2시간이 걸린다. 그에 비해 서울시청에서 천안까지는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인구 왕래도 서울-포천보다는 서울-천안이 훨씬 빈번하다. 산업발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울시 천안구’라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서울·인천·경기를 수도권으로 묶는 것은 그야말로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어떤 의미에서 수도권은 서울·경기·인천이 아니라 서울·인천-천안-대전 축이라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이 왜 문제냐는 주장도 있다. 서강대 김경환 교수(경제학), 건국대 손재영 교수(경제학) 등이 주로 제기했다. 인구나 자동차 수 등 형식적인 잣대로 도시 과밀을 이야기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주장이다. 1960∼70년대 서울 인구가 300만∼400만일 때보다 인구 1000만인 지금 서울 시민들이 교통지옥에 덜 시달리고, 주택난이 덜하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얘기다.

    “교통혼란, 인구집중, 환경오염을 해소해 수도권을 더 잘살게 하기 위해 수도를 옮긴다”는 정부의 얘기는 입바른 소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수도권이 그렇게 좋아진다면 수도권 주민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수도이전 반대여론’이 80% 가까이 나오겠는가.

    수도이전 무산은 형식적으론 헌재 결정에 따른 것이지만 사실상 국민 여론을 무시한 채 강행해 얻은 결과다. 수도이전의 대안도 여론이 주는 교훈을 잊지 말고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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