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외신 ‘융단폭격’에 상처입은 대한민국의 ‘입’

부처간 엇박자, 국가홍보 전략 부재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11-23 17:4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우라늄 실험에 따른 IAEA 핵사찰, 김선일씨 피살사건, 중국의 동북공정…. 올해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준 사건들이 유난히 많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무기력했다. 진실을 제대로 알리지도, 국제적 관심을 환기시키지도 못했다. 국가 홍보 전략과 전문성, 비전의 결여가 낳은 결과다. 위기의 국가 홍보 시스템,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
    외신 ‘융단폭격’에 상처입은 대한민국의 ‘입’
    지난 9월 초 한국에는 때아닌 ‘핵폭풍’이 몰아쳤다. AP통신, 로이터 통신 등이 한국정부의 핵투명성에 의혹을 제기하며 “한국이 우라늄 전환실험을 비밀리에 실시했다”고 보도한 것. 8월29일부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한국의 우라늄 분리실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외신에 보도되자 정부는 뒤늦게 핵물질 실험 사실을 시인했다.

    애초 몇몇 과학자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극소량의 우라늄 분리 실험은 해외 언론이 ‘한국 핵개발 의혹’으로 확대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AP통신은 9월8일 미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한국이 20여 년 전 비밀리에 극소량의 플루토늄 실험을 했다”고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는 12일 “한국이 추출한 우라늄은 이란의 그것보다 농도가 4배 높은 것”이라는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이어 14일 프랑스 ‘르몽드’는 “핵물질 실험을 시인한 한국의 의도가 의문”이라며 핵개발 의혹에 불을 붙였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준비하던 시점에 터진 외신의 추측·과장 보도는 한국정부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사실 1982년 플루토늄 추출실험, 2000년 농축 우라늄 분리실험 등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핵 평화 원칙을 고수하던 한국이 왜 ‘핵 위협 국가’로 떠오른 것일까.

    미숙한 초동 대응

    문제의 핵심은 정부의 미숙한 언론 대응에서 찾을 수 있다.



    외신 ‘융단폭격’에 상처입은 대한민국의 ‘입’
    AP통신의 ‘핵물질 실험’ 보도 직후 관련부처는 엇갈린 해명을 함으로써 핵개발 의혹을 부채질했다.

    9월2일 과학기술부는 “2000년 실험 당시에는 0.2g 우라늄 농축실험이 IAEA 신고사항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교통상부는 9월3일 브리핑에서 “과학자들의 탐구심에서 비롯된 소량 실험이었지만 신고했어야 한다”며 과기부와는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다 9월8일 정부 관계자가 “핵물질을 다루는 실험은 당시 협정에서도 신고대상이었으며 누락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고 외교통상부는 뒤늦게 “경미한 실험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혼선을 불렀다”고 해명했다. 관계부처의 말바꾸기와 일관성 없는 대응은 해외 언론이 한국 정부를 공격하는 실마리로 작용했다.

    9월18일 뒤늦게 통일부, 과학기술부, 외교통상부 3개 부처 장관이 합동기자회견을 해 ‘평화적 핵 이용 4원칙’(군사적 핵개발 금지, 핵 투명성 원칙 유지, 핵 비확산 규범 준수, 평화적 핵 발전)을 발표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사태 초반에 너무 미숙하게 대응함으로써 무너진 국가 신뢰도를 단번에 회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부가 처음부터 총괄조정기구를 통해 통일된 시스템과 방침으로 대응했다면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해외 보도에 속수무책

    국가 홍보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IAEA 사찰을 비롯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논란, 김선일씨 피살사건 등 한국의 국가적 신인도와 명성에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미숙한 위기관리능력을 드러냈다. 일관된 철학과 매뉴얼, 전문성을 갖고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강대 신호창 교수(영상대학원 광고PR학과)는 “민감한 국제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국가 이미지는 한순간에 추락한다”고 말한다.

    외신의 ‘한국 국정원 인사, 케리 후보 지원’ 보도는 국가 이미지 관리 실패의 또 다른 사례. 9월21일 AP통신은 “한국 정부가 부시 대통령을 낙선시키기 위해 국가정보원 직원을 동원, 케리 진영을 도왔다”고 보도했다. 곧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 100여 개 매체가 확인되지 않은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 기사화했다. 이것은 자칫 한미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해외 언론의 의혹 보도에 한국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지난 봄 LA총영사관 부총영사이던 J씨가 민주당 ‘아시아-아메리카 공동체’ 선거운동의 핵심인 재미동포 릭 이에게 모금액 4000달러를 건넸다는 사실이 9월 AP통신 취재로 드러났다. 당시 AP통신은 “J씨가 국정원 인사인지, 또 그의 선거자금 지원이 한국 정부와 연관이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국정원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물론 국가정보기관의 특성상 비밀요원이 외교관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AP통신이 지난 6월 김선일씨 비디오 사건으로 한국에 대해 가진 불편한 심기를 이런 식으로 표출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아리송한 대응은 의혹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현재 국가 홍보 전반을 관할하는 부처는 국정홍보처다. 이곳에선 국가정책을 국내외에 홍보하고 이에 따른 여론 조사, 언론 보도에 대한 사무를 관장한다. 국정홍보처 본부는 국내 언론 보도를 체크하고 오보에 대응하며, 국정홍보처 산하 해외홍보원은 외신 보도를 분석하고 해외에 국가를 홍보하고 있다. 각 부처의 정책 중 해외 홍보 및 보도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 관련 업무는 해외홍보원이 수행해왔다. 해외홍보원 외신과는 정부 각 부처에 외신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외신 브리핑을 지원하며, 일본 도쿄나 홍콩에 주재하면서 한국을 담당하는 특파원에게 정부 각 부처의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40여 개 부처의 공보관들과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실의 비서관·행정관들도 대한민국 이미지 홍보의 일선에 서 있다. 특히 대통령홍보수석실은 위기 대응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 노릇을 한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이병완 홍보수석비서관을 좌장으로 하여, 안영배 국내언론비서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윤석중 해외언론비서관, 노혜경 국정홍보비서관 등이 핵심 멤버로 참가하고 있다. 국내언론팀이 국내 각종 신문, 방송, 주·월간지의 청와대 관련 보도를 모니터링하고 오보에 대응한다면, 해외언론팀은 외신을 상대로 청와대와 국정에 관한 소식을 전한다. 홍보기획팀은 대통령의 PI(최고경영자 이미지)를 설정하고 연설을 준비하며 각 부처의 주요 정책이 제대로 홍보되고 있는지를 관리한다.

    재외공보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19개 국가 24곳에 상주하는 32명의 재외공보관은 외신들의 ‘한국 때리기’에 맞서 정부의 정책을 옹호하고 설득해야 하지만, 이들은 한국을 악의적으로 보도한 외신의 본사를 대상으로 정정보도 요청이나 소송 같은,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고작해야 서울에 주재하는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하거나 항의 편지를 보내 대응하는 정도다.

    이들은 유기적인 의사소통과 협조 체계를 통해 국가의 대외 이미지를 관리한다. 그러나 이들의 모호한 책무 분담은 때로 혼선을 야기하거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했다.

    3년째 공보업무를 담당해온 한 30대 공무원은 정부의 ‘홍보 마인드’나 ‘인력 배치’에 대해 회의감을 토로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기자에게 굽실거리지 말라’ ‘밥으로 거래하지 말라’며 언론과의 관계에서 당당할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그건 좋아요. 문제는 정부가 미래지향적 홍보 전략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책을 어떻게 알리고 설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언론의 공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더 관심이 있어요.

    실질적으로 국정홍보처 별정직으로 채용되는 인물 가운데 정권과 알음알음으로 인연을 맺은 이가 많습니다. 얼마나 국가 홍보에 적합한 경력을 갖췄는지는 그 다음 문제예요. 전략가형보단 투사형 공보관이 많은 셈이죠.”

    국정홍보처가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직무상 정책입안 등을 담당할 5급 이상 공무원 83명 중 ‘홍보 경력자’는 모두 6명으로 7.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6명 모두 언론인 출신으로, 광고·홍보 경력자는 아예 없었다. 국가정책의 대국민 홍보를 담당할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국가 정책 홍보 전문가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국정홍보처는 ‘홍보 전문가가 없다’는 비판에 대해 “정책홍보의 활성화와 공무원의 홍보 전문성 제고를 위해 서강대 영상대학원과 공동으로 ‘홍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각급 행정기관 4~7급 공무원을 대상으로 중앙공무원연수원에서 홍보정책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중 대표적인 커리큘럼이 ‘국가정책 PR법’ ‘전략적 PR, 기획 전술’ 등이다. 참여정부 들어 토론과 스피치 기술 양성을 강화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꼼수’ 가르치는 홍보 커리큘럼

    그러나 일부 강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홍보에 대한 마인드보다는 위기를 모면하는 ‘꼼수’만 전수한다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신동아’가 입수한 2004년 국정홍보처 부설 ‘홍보 아카데미’의 교육자료에 따르면, 코콤포터노벨리의 박재훈 사장은 위기상황에서 언론에 대응하는 방법과 기자의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위기시 언론관리 -물 흐리기 작전, 물귀신 작전, 기사 Barter(교환).’

    ‘기자에 대한 이해 -문제제기의 선수 : 일단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 비난과 책임 추궁이 주요 업무.’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공무원은 “홍보 담당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기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위기를 벗어나는 잔재주가 아니라,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매뉴얼”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외신 ‘융단폭격’에 상처입은 대한민국의 ‘입’

    10월7일, 국회 문광위 국정홍보처 국감에서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이 국정홍보처의 방송광고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위기관리 방식을 둘러싸고 “국내 언론엔 강하게 대응하면서 해외 언론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10월21일 국정홍보처 확인감사에서 “국정홍보처가 통상적인 국가시책을 홍보하기 위해 활용하는 외신 규모만 해도 80개 매체가 넘는데, 자이툰 부대의 안전을 위해 보도 자제를 요청한 것은 17개 매체에 불과하다. 자이툰 부대의 안전이 오직 보도 자제에 달린 듯 국내 언론은 통제하면서 외신은 대충 처리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대통령홍보수석실의 국내언론팀과 해외언론팀에 배치된 인력의 차이도 따져볼 만하다. 안영배 국내언론비서관이 7명의 행정관을 이끌고 있는 데 비해 윤석중 해외언론비서관은 3명의 행정관과 외신 대응을 논의한다. 이에 대해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은 “국내 언론이 대통령 관련 보도를 훨씬 빈번하게 내보내고 있다. 수요를 고려할 때 해외언론팀의 인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노 정부의 기록적인 언론중재신청 건수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2월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올해 8월까지 1년6개월간 대통령을 비롯, 정부가 국내 언론에 제기한 언론중재신청 건수는 모두 308건. 이는 김영삼 정부 5년간 27건, 김대중 정부 5년간 118건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다.

    한편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해외 언론의 왜곡·추측 보도는 11개국 22매체 32회에 달했고, 올해엔 8월까지 4개국 9매체 10회에 이르렀다.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은 “일련의 외신 오보에 침묵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오보가 날 경우 정정·반박문 게재 요청, 항의 서한 발송 등으로 적극 대응한다”고 항변한다. 가령 지난 10월 말 ‘평양의 더러운 일 해주기’라는 사설로 한국 정부의 개혁입법안을 비판한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11월4일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이 요구한 반박문을 가감 없이 게재했다. 전문가들은 해외홍보원의 이와 같은 적극적 대응이 다른 위기 상황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세계에 한국의 이미지를 전하는 외신 기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홍보 마인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손지애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CNN 서울지국장)은 노무현 정부가 ‘브리핑 제도’를 도입, 내외신 기자를 차별하지 않는 정책에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취재 환경은 김대중 정부 시절보다 오히려 나빠졌다고 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항상 적극적으로 외신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국가운영 철학을 진솔하게 털어놨어요. 외신을 적극적으로 이용, 경제 위기에 처한 국가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거죠. 그의 열린 태도와 국제적 감각은 기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 크게 기여했어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엔 외신을 대하는 특별한 철학이 없는 것 같아요. 아마도 현재 몇몇 국내 언론과 사이가 나쁘다 보니, 이른바 ‘기득권’으로 분류되는 해외 언론도 가까이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듯해요. 게다가 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외신과 인터뷰 한번 갖지 않았죠. 자주 만나며 이야기해야 서로 이해하게 될 텐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 ‘홍보 전략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외신 보도를 통해 국제사회에 민주화 투사로 알려진 만큼, 외신과의 관계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 특히 1998년 외환위기로 경제난에 빠진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은 1~2주일에 한 번씩 외신과 인터뷰를 갖고 투자 유치를 호소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러시아, 베트남 등지를 해외 순방하면서 현지 언론과 구체적 목적을 갖고 몇 차례 인터뷰한 것이 전부다.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외신 내 편 만들기 전략’을 국익 차원에서 벤치마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대통령홍보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이미 해외에 널리 알려져 있어 외신 기자와 친해지기 쉬웠다. 또한 극한의 경제 위기에서 외신과의 적극적인 인터뷰는 마지막 선택이었다”고 분석했다.

    각 부처에 외신 담당 부대변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에 외신 기자들의 취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정부 각 부처에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외신 담당 부대변인이 배치됐다. 특히 기자가 많이 몰리는 재정경제부는 영어 실력과 브리핑 능력을 두루 겸비한 이들이 눈부시게 활약한 바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에서 외신 부대변인은 사라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해외언론담당비서관을 지낸 김기만 국회의장 공보수석비서관은 “과거엔 정부 부처를 취재하려고 전화를 건 외신 기자들이 영어를 제대로 못 하는 공보관 때문에 취재에 실패한 적이 많았다. 한국 정부가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해외 홍보에 적극 나서려면 외신 기자들이 접촉 지점으로 삼을 수 있는 외신 부대변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지애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은 “설사 외신 부대변인이 있다 하더라도 국내언론 담당 공보관보다 위상이 낮아 ‘말발’이 안 먹히는 경우가 많다”며 “영어 실력은 물론 급박한 상황이 터졌을 때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외신 부대변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거지향적인 한국문화 상징

    평범한 세계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는 어떨까. 1990년대 말 문화관광부는 한국문화의 상징으로 ‘한복, 한글, 불국사·석굴암, 태권도, 김치·불고기, 고려인삼, 설악산, 종묘제례약, 탈춤, 세계적 예술인’을 선정했다. 한국의 유려한 전통문화를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이경숙 의원은 “한국의 얼굴로 선정된 상징들이 지나치게 과거지향적”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프랑스가 문화국가 이미지에서 탈피, 첨단산업 강국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예산을 늘린 것과 대조된다는 것.

    마티나 도이힐러 전 런던대 한국학과 교수의 이야기는 한국의 대외 이미지와 관련,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엔 삼성의 휴대전화와 가전제품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막상 삼성이 한국 기업이란 사실을 아는 유럽인은 많지 않아요. 한 나라의 인지도가 한 기업의 인지도보다 떨어지는 실정이죠. 한국은 IT(정보기술) 등 첨단산업의 발전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알려야 해요.”

    숙명여대 최동주 교수(국제관계대학원 국제홍보학과)는 “핀란드는 1990년대 초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식기반사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국가적 방향성을 수립했다. 그 결과 ‘노키아’의 성장으로 국가의 대외 이미지도 함께 높아졌다. 우리도 기업 브랜드와 국가 브랜드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국가 마케팅 전략이 필수”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구심점은 유명무실하다. 2002년 월드컵 개최 이후 한국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고취하기 위해 탄생한 국가이미지제고위원회는 올해 들어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국가이미지제고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여 장관급 정부위원 10명과 각계각층 전문가 민간위원 9명으로 구성된 조직. 이들이 회의를 연 건 2002년 7월과 10월 두 차례뿐이다. 위원회 산하 실무위원회도 별다른 가시적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해외홍보 업무의 이원화는 국가홍보 전략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다. 현재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해외홍보 업무는 문화관광부(이하 문광부)와 국정홍보처로 이원화돼 있는데, 이는 업무 중복과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1999년 문화공보부와 통합돼 있던 국정홍보처가 독립한 것에서 비롯됐다. 해외문화홍보원의 일부 기능을 문광부 산하에 둘 수밖에 없었던 것. 이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초 “해외 홍보 업무가 이원화돼 있어 문제가 많으니 창구를 하나로 통일하라”고 지시했으나 두 부처의 알력으로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국정홍보처는 일본, 미국, 캐나다, 러시아, 독일, 중국 6개 지역에서 해외홍보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문광부의 한국문화원은 미국 2곳과 일본, 프랑스 3개국에 설립돼 있다.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이 국가정책 등 한국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홍보한다면, 문광부 한국문화원은 한국의 문화예술분야를 알리는 데 역점을 둔다.

    이원화된 해외홍보

    그런데 문광부가 11월3일 독자적으로 “2005년부터 베트남 등 8개 국가에 재외문화원을 확대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해외홍보의 이원화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 ‘국제문화교류 중장기 정책비전’에 따라 문화원을 신설키로 한 러시아와 유럽 등지에는 이미 국정홍보처에서 설립한 해외홍보원이 들어서 있는 실정. 재외문화원 한 곳당 2명 정도의 직원과 8명 정도의 현지 전문가를 파견·채용하고, 건물 임대료와 경상비 명목으로 한 해 20억여 원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계획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해외홍보 업무 일원화에 대한 두 부처의 시각은 어떨까. 국정홍보처 유재웅 해외홍보원장은 “조직 이기주의로 흐르지 않는 방향에서 국가 홍보사업의 통합이 필요하다. 해외홍보원이 주도적인 힘을 갖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기에 민간의 홍보 전문가를 대거 영입, 한국의 문화·경제·사회·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홍보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광부는 재외문화원 확대 계획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어차피 국가 홍보는 문화가 중심이 되며, 한글, 문학, 영화 등을 소개하는 한국문화원의 기능은 해외홍보원과 차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서강대 신호창 교수는 “문화는 홍보의 중요한 콘텐츠일 뿐이다. 홍보는 한국의 문화뿐 아니라 역사, 스포츠, 경제, 사회 등 폭넓은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기술인 만큼, 국가의 홍보 창구는 국정홍보처를 중심으로 통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홍보처에 힘을 실어줄 것이냐를 두고도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국정홍보처의 전신은 공보처로, 언론검열로 악명이 높던 문화공보부에서 갈려나온 조직이다. 김대중 정부가 개혁이란 이름으로 이를 없앴다가 14개월 뒤 국정홍보처를 신설, 과거의 공보처 기능을 상당부분 수행케 했다. 문제는 ‘국정 홍보’보다 ‘정권 홍보’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 한나라당은 “국정홍보처가 서울시 비하광고에 나서는 등 존재 의미가 없다”며 국정홍보처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숙명여대 안보섭 교수(언론정보학부 홍보광고학과)는 “국정홍보처나 국정홍보처 산하 해외홍보원이 제대로 일하지 못한다고 해서 조직을 없애거나 기능을 축소해 버린다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전략적으로 홍보 전략을 주도할 기관이 없어진다”고 충고한다.

    국가 홍보 전략을 어떻게 구성해갈 것인가. 또 어떤 기관이 이를 전담할 구심점이 될 것인가. 한국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