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초 몇몇 과학자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극소량의 우라늄 분리 실험은 해외 언론이 ‘한국 핵개발 의혹’으로 확대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AP통신은 9월8일 미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한국이 20여 년 전 비밀리에 극소량의 플루토늄 실험을 했다”고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는 12일 “한국이 추출한 우라늄은 이란의 그것보다 농도가 4배 높은 것”이라는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이어 14일 프랑스 ‘르몽드’는 “핵물질 실험을 시인한 한국의 의도가 의문”이라며 핵개발 의혹에 불을 붙였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준비하던 시점에 터진 외신의 추측·과장 보도는 한국정부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사실 1982년 플루토늄 추출실험, 2000년 농축 우라늄 분리실험 등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핵 평화 원칙을 고수하던 한국이 왜 ‘핵 위협 국가’로 떠오른 것일까.
미숙한 초동 대응
문제의 핵심은 정부의 미숙한 언론 대응에서 찾을 수 있다.

9월2일 과학기술부는 “2000년 실험 당시에는 0.2g 우라늄 농축실험이 IAEA 신고사항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교통상부는 9월3일 브리핑에서 “과학자들의 탐구심에서 비롯된 소량 실험이었지만 신고했어야 한다”며 과기부와는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다 9월8일 정부 관계자가 “핵물질을 다루는 실험은 당시 협정에서도 신고대상이었으며 누락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고 외교통상부는 뒤늦게 “경미한 실험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혼선을 불렀다”고 해명했다. 관계부처의 말바꾸기와 일관성 없는 대응은 해외 언론이 한국 정부를 공격하는 실마리로 작용했다.
9월18일 뒤늦게 통일부, 과학기술부, 외교통상부 3개 부처 장관이 합동기자회견을 해 ‘평화적 핵 이용 4원칙’(군사적 핵개발 금지, 핵 투명성 원칙 유지, 핵 비확산 규범 준수, 평화적 핵 발전)을 발표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사태 초반에 너무 미숙하게 대응함으로써 무너진 국가 신뢰도를 단번에 회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부가 처음부터 총괄조정기구를 통해 통일된 시스템과 방침으로 대응했다면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해외 보도에 속수무책
국가 홍보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IAEA 사찰을 비롯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논란, 김선일씨 피살사건 등 한국의 국가적 신인도와 명성에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미숙한 위기관리능력을 드러냈다. 일관된 철학과 매뉴얼, 전문성을 갖고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강대 신호창 교수(영상대학원 광고PR학과)는 “민감한 국제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국가 이미지는 한순간에 추락한다”고 말한다.
외신의 ‘한국 국정원 인사, 케리 후보 지원’ 보도는 국가 이미지 관리 실패의 또 다른 사례. 9월21일 AP통신은 “한국 정부가 부시 대통령을 낙선시키기 위해 국가정보원 직원을 동원, 케리 진영을 도왔다”고 보도했다. 곧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 100여 개 매체가 확인되지 않은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 기사화했다. 이것은 자칫 한미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해외 언론의 의혹 보도에 한국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지난 봄 LA총영사관 부총영사이던 J씨가 민주당 ‘아시아-아메리카 공동체’ 선거운동의 핵심인 재미동포 릭 이에게 모금액 4000달러를 건넸다는 사실이 9월 AP통신 취재로 드러났다. 당시 AP통신은 “J씨가 국정원 인사인지, 또 그의 선거자금 지원이 한국 정부와 연관이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국정원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물론 국가정보기관의 특성상 비밀요원이 외교관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AP통신이 지난 6월 김선일씨 비디오 사건으로 한국에 대해 가진 불편한 심기를 이런 식으로 표출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아리송한 대응은 의혹을 키우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