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막 오른 인수戰, 대우건설도 외국자본 ‘사냥감’ 되나

끊이지 않는 로비說 속 매각 주간사 확정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1-23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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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HRH 관계자 등 대우 극비 방문, 인수 의사 타진
    • 재미교포 변호사 B씨는 ‘이헌재의 腹心’인가
    • ‘트럼프를 접촉하라!’, 뉴욕에 긴급 지시 내린 사연
    • 대우측의 매각 연기 시나리오 실체는?
    • ‘토종’ 사모펀드도 대우건설에 군침
    막 오른 인수戰, 대우건설도 외국자본 ‘사냥감’ 되나

    외국자본이 대우건설을 사들일 경우 5000억원이 넘는 서울역 앞 사옥을 팔아 인수자금을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부터 우여곡절을 거듭해온 대우건설 매각 주간사가 11월11일 삼성증권-씨티글로벌마켓증권으로 최종 확정됨으로써 대우건설 매각 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대우건설이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이하 공자위)의 구상대로 내년초 예비입찰을 거쳐 상반기 중 팔리게 된다면 옛 대우그룹 계열사들의 ‘주인찾기’는 사실상 마무리되는 셈이다.

    옛 대우그룹 계열사 중 그동안 매각 작업이 활발하게 추진된 곳은 대우종합기계 대우정밀 대우캐피탈 대우건설 4개사. 이 가운데 두산중공업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한 대우종합기계, 효성과 KTB네트워크를 복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한 대우정밀의 매각은 올해 안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대우캐피탈은 내년초쯤 인수자가 결정될 전망.

    다른 계열사와 달리 대우건설은 자본금 1조67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회사인데다 시공능력 평가 순위 국내 3위, 수주 잔고 15조원 규모의 ‘알짜배기’ 회사라 누가 인수하냐에 따라 건설업계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매각 작업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산관리공사와 공자위가 정한 내년초 예비입찰-상반기 매각 완료 일정에 대해 벌써부터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계획 자체가 막연한 기대 또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매물로 나온 대우건설의 ‘덩치’가 너무 크다는 게 매각이 순탄치 않게 진행되리라는 예측을 낳는 첫 번째 요인이다.

    대우건설의 자본금은 1조6700억원 규모. 따라서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가진 출자전환 주식 47%를 포함해 12개 채권금융기관이 가진 84%의 지분 중 50%+1주를 우선 매각한다는 공정위 방침에 맞춰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8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합치면 1조원이 훨씬 넘는 인수 대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에선 당장 이만한 돈을 끌어들일 능력을 가진 건설회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매각 주간사 입찰에 참여했던 한 증권사 M&A팀 관계자는 “한마디로, 돈이 있는 회사는 인수 필요성을 못 느끼고 대우건설을 필요로 하는 회사는 돈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우건설은 기술력과 시공 능력을 겸비한 대형 건설사의 축적된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중소형사가 넘보기에는 너무나 덩치가 크고 이미 토목, 플랜트, 주택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비한 대형 건설업체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대우건설 인수는 단순히 투자에 따른 수익성이 있냐 없냐에 따라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향후 건설경기 전망, 해외사업 리스크 여부, 인수 후 운영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에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룹 차원에서라면 모를까 건설업체 자체적으로 검토,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 역시 이러한 부담을 의식한 듯 “그룹 차원이건 회사 차원이건 지금까지 대우건설 인수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分家한 LG가 관심 가질까

    한때 건설업계에는 LG건설이 대우건설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게 나돈 적이 있다. LG건설의 자금력이 괜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다 주택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공공, 토목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우건설에 관심을 가질만 하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었다. 주택 부문의 비중이 40% 이하로, 삼성·LG 등 다른 업체에 비해 낮은 대신 토목분야 비중이 높은 대우를 인수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가장 큰 업체가 LG건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대우가 이미 확보한 15조원의 수주잔고는 3년반치 일감에 해당한다.

    이러한 분석은 LG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구씨-허씨 집안간 분가(分家) 작업이 이뤄지면서 LG건설이 허씨 계열의 GS홀딩스 산하로 편입됨에 따라 건설회사를 잃는 LG그룹 입장에선 대우건설 인수를 고려해볼 만하다는 시나리오와 맞물려 더욱 설득력있게 유포되었다.

    그러나 매각 주간사 결정 이후 LG측은 한 발 빼는 기색이 역력하다. LG 관계자는 “대우의 공공부문 영업 네트워크가 탐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1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을 정도로 매력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LG건설도 사업분야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LG 관계자는 “플랜트 부문만 놓고 볼 때 LG가 석유화학쪽에 집중되어 있다면 대우는 원전에 강점을 가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도 원전 분야에 진출한 만큼 대우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그룹 분리 이후에도 내부적으로는 상대방 소유 업종에 대해 일정 기간 참여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LG그룹이 새롭게 건설업에 뛰어드는 일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다”며 일각에서 나도는 구씨-허씨 분가 후 대우건설 인수설(說)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렇게 국내 건설업체들이 대우건설 인수에 거리감을 두는 이유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 대우건설이 아무리 현금 보유액만 7000억~8000억원에 이르는 우량업체라 하더라도 국내 건설경기 전망이 불투명한 시기에 섣불리 뛰어들기에는 자금 부담이 워낙 커서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와는 반대로 최대한 속내를 숨기고 시간을 끌면서 매각 가격이 떨어지거나 최종적으로 분할 매각이 가능한 상황을 염두에 둔 채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국내 업체가 먼저 나서 대우건설에 ‘미끼’를 던질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그동안 침묵해온 대우건설이 매각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우건설 박세흠 사장은 취임 이후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태도를 바꿔 얼마 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박 사장은 이 자리에서 극동건설과 남광토건 등의 사례를 거론하며 “대우건설이 단기 투기성 자금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우건설의 속셈

    박 사장의 언급은 극동건설과 남광토건의 사례를 빗대 자산관리공사와 공자위에 모종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무조건 높은 가격을 써내는 외국자본에 대우건설을 매각할 경우 국부(國富) 유출이란 여론의 비난에 직면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뉴브리지캐피털이나 칼라일 또는 론스타 같은 외국 사모펀드들이 국내 기업을 사들여 가혹한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기고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본 대우건설로서는 자신이 또 하나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극동건설과 남광토건의 매각 과정을 살펴보자.

    미국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매각 대금 2400억원에 극동건설을 사들인 뒤 회사가 입주했던 충무로 극동빌딩을 팔아 1600억원을 회수하고 주식을 모두 사들인 뒤 상장을 폐지해버렸다. 또 건설업체가 아닌 부동산 개발회사가 대주주 자격으로 인수했던 남광토건은 얼마 전 새 대표이사로 취임한 대주주측 사장이 회사자금 횡령 혐의로 구속돼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대우건설 역시 해외 투기성 자본이 1조원을 들여 경영권을 확보한 뒤 시가 5500억원(장부가만 3000억원)으로 평가되는 서울역 앞 대우센터만 팔아치워도 투자원금을 눈깜짝할 사이에 회수해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게다가 회사 자산을 담보로 돈을 조달하는 차입인수(LBO) 방식을 동원하면 1000억~2000억원만 있어도 대우건설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우건설측은 이런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투기성 자본의 공격을 막는 감시견(Watchdog) 노릇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장 대우건설의 이런 입장은 기업 실사 과정에서 논란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대우건설은 자산관리공사가 매각 주간사 선정과정에서부터 외국자본에 유리한 포석을 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대우건설의 한 임원은 “주간사 선정 과정 초기에 영문 제안서를 내도록 한 것이나 외국계 증권사를 주간사에 포함시킨 것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라고 말했다.

    또한 삼성 계열사인 삼성물산의 인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삼성증권이 매각주간사에 포함된 것을 들어 대우건설 일부에서는 자산관리공사가 실사 과정의 비밀 유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우건설 노조도 “매각 절차가 일방적으로 진행될 경우 실사 저지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실제로 대우정밀 등 일부 대우계열사 매각을 위한 실사 과정에서 노조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효성과 KTB네트워크 실사팀의 사업장 출입을 물리력으로 저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엄포’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우측의 속셈은 다른 데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가 실질적 목표인 공자위가 인수 후보 심사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사정을 다 감안할 수 없다는 점을 대우건설측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대우측으로서는 ‘투기자본 M&A론’에 불을 지핌으로서 여론을 등에 업고 매각을 최대한 늦춰가면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가겠다는 속셈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막 오른 인수戰, 대우건설도 외국자본 ‘사냥감’ 되나

    대우건설은 워크아웃을 거쳐 우량기업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워낙 덩치가 커 매각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 고위 관계자는 “적어도 3~5년의 자본 조정 과정을 거쳐 현재의 4분의1 정도로 감자(減資)한 뒤 매각할 수 있다면 기업가치가 한층 높아지고 공적자금 회수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우건설을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에도 불구하고 매각주체인 자산관리공사와 공자위는 내년초 예비입찰을 거쳐 상반기 중 매각을 완료한다는 일정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대우건설 매각 주간사로 선정된 삼성증권 이재호 M&A팀장도 “경우의 수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굳이 여러 업체가 참여할 필요도 없고 확실한 인수 의사를 가진 2~3개 업체만 참여해도 문제가 없다”며 매각 성사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렇게 국내 건설업체들이 대우건설 인수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해외 자본의 물밑 움직임은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 대우건설이 국내 구조조정 매물 중 규모나 내용 면에서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알짜배기 ‘물건’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대우건설 찾아온 HRH

    대우건설의 새 주인으로 해외 건설업체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한 경제신문이 몇몇 외국 건설업체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들이 대우건설 인수에 나섰다고 보도하면서 외국자본의 움직임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이 신문이 거론한 업체는 벡텔, 파슨스, HRH 세 군데. 매각 주간사조차 결정되지 않은 시점에 느닷없이 터져나온 해외매각설로 공자위는 물론 정부 주변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공자위는 이러한 보도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조사했지만 이를 밝히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공자위 주변에서는 자산관리공사가 해외매각설을 흘린 것으로 본 것 같다”고 전했다.

    언론을 통해 해외업체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자 대우건설도 모든 안테나를 동원해 이들 업체의 움직임 파악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 회사의 규모나 한국 시장의 전망 등을 놓고 볼 때 이들 해외업체가 대우건설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당시 대우측의 결론이었다.

    특히 국내업체와 달리 미국 업체들은 기획-조달-시공-감리를 모두 커버하는 종합건설업체가 아니라 건설사업관리(CM·Con- struction Manager) 분야에 치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CM이란 건축주를 대신해 건설사업 전반의 관리를 대행하는 기술용역 사업자를 말하는 것으로, CM사업자는 설계 및 계약 관리, 원가 및 공정 관리 등 시공 이전단계의 모든 영역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CM사업자들이 대우건설과 같은 시공 위주의 종합건설업체를 통째로 인수할 필요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 건설업계 안팎의 일치된 생각이다.

    즉, 건설업에 있어 부가가치가 대부분 시공과정이 아니라 시공 전단계인 기획 및 설계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단순 시공 분야는 업체를 인수할 필요없이 CM사업자가 중심이 된 하도급 입찰을 통해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벡텔의 경우 이라크에서의 재건 수주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대우와 같은 시공업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도 이런 분석에 밀려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다.

    해외매각설이 또다시 불거진 것은 지난 9월경이었다. 대우건설 인수 의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해외 건설업체 가운데 미국 HRH가 인천·광양 등 경제자유구역에 3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한국 투자를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당시 투자 양해각서 체결을 위해 방한한 HRH 브래드 싱어 사장은 국내 시공능력 순위 39위인 남광토건과 미 로스앤젤레스(LA) 부동산 개발사업에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더욱이 HRH의 뒤에는 자본금 85억달러 규모의 미국 유수 건설업체인 트럼프(Trump)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우건설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 회사의 도널드 트럼프 회장은 개인 자산만 3조원대로 알려진 미국 굴지의 부동산 재벌. 대우건설이 뉴욕사무소를 통해 트럼프측과 접촉하라고 긴급 지시를 내린 것도 이 무렵. 그러나 대우측이 부랴부랴 접촉한 트럼프사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대우건설 인수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대우측이 ‘적어도 트럼프는 아니다’라고 확언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트럼프는 직접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가치만을 빌려주는 회사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나서 대우건설을 인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우건설 인수 의사를 가진 HRH가 트럼프의 브랜드를 빌려와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HRH가 지난 9월 남광토건과 맺은 양해각서(MOU)를 보면 HRH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 눈에 띈다. 이 양해각서에는 ‘HRH와 트럼프 사이의 업무관계를 고려하여 트럼프를 잠재적 투자자로 참여시키며, 트럼프가 원한다면 프로젝트의 분양가치를 높이기 위해 트럼프 브랜드를 사용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즉, HRH가 트럼프와 어떤 제휴관계를 갖고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HRH가 해외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브랜드를 등에 업고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HRH는 인천·광양 경제자유구역에 30억달러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할 때도 투자 컨소시엄에 트럼프를 참여시킬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재정경제부가 도널드 트럼프 회장이 방한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투자 사절단의 노무현 대통령 면담까지 추진했지만 트럼프 회장은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재경부가 헛발질을 한 셈이지만 한국 시장에 대한 HRH의 접근이 트럼프와 한 묶음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HRH측과의 양해각서 체결 당사자인 한국토지공사측도 “HRH에서 트럼프 회장이 참여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대우건설이 워크아웃을 졸업하기도 전인 지난해 말 이미 HRH 관계자들이 서울을 방문해 대우건설 본사는 물론 일부 현장까지 둘러본 것으로 밝혀져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지난해 11월경 재미교포 사업가인 A씨가 교포 변호사 B씨를 대동하고 HRH 관계자들과 함께 대우건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확인해주었다. 이 관계자는 “당시 회사를 방문한 HRH 관계자들은 여의도 트럼프월드 등 현장을 방문했고 대우건설 인수 의향을 표시해 직원들이 술렁거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헌재의 ‘腹心’?

    대우건설 관계자가 말한 재미교포 사업가 A씨는 뉴욕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교포 사업가이며 B씨는 외환위기 이후 일부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를 유치하는 데 도움을 준 워싱턴 소재 대형 법률회사 소속 변호사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대우건설이 워크아웃을 졸업하지 못한 상황에서 매각 이야기가 나오기도 전인 지난해 말 A씨와 B씨가 어떤 자격으로 HRH 관계자들과 함께 대우건설 인수 의향을 공공연히 밝히면서 서울을 방문했느냐는 것. 이와 관련해 재미교포 변호사 B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우건설의 고문변호사 자격으로 당시 대우측의 부탁을 받고 일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HRH측에서 대우건설 방문을 희망한 것이 아니라 대우건설측에서 인수 업체를 은밀히 타진하기 위해 미국의 법률회사에 업체를 물색해달라고 의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B씨의 설명과는 달리 정작 대우건설측은 B씨와 자문 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HRH가 대우건설을 방문한 시점은, 지난 3월 투신자살한 남상국 전 사장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점이어서 HRH의 대우 방문배경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건설업계 일부에서는 여러 상황을 종합해볼 때 A씨와 B씨가 사실상 HRH의 대우건설 인수를 위한 남 전 사장측 대리인 역할을 해온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여기에 외국자본이 진작부터 대우건설 인수를 통해 ‘이익 챙기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더해져 이러한 추정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까지 대우건설 주변에는 매각과 관련한 로비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대우측은 매각 연기 또는 독자생존을 염두에 두고 여기저기 선을 대고 있으며 외국자본은 최근 들어 해외자본의 국내기업 인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 주변에서 사전 정지작업에 나섰다는 이야기이다. 일부에서는 현재 HRH와 관련해 거론되는 A씨와 B씨가 김대중 정부 당시, 그러니까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금융감독위원장으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던 시절부터 해외자본의 국내 유치에 관여해왔다는 점을 들어 이들의 움직임에 이 부총리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이들이 최근 재경부나 자산관리공사를 비롯한 유관기관에 이 부총리를 ‘팔고 다니는’ 바람에 오히려 이 부총리측에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오른팔’로 꼽히는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전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은 “얼마 전 재미교포 변호사 B씨가 이 부총리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서 대우건설 매각 건에 관여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 변호사를 만난 자리에서 신중하게 처신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 로비의 흔적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여권 실세 의원 몇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로비 대상 중 한 명으로 거론된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몇 달 전 강남 어느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재미교포 변호사 B씨가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한국에 한 달째 체류하고 있다’고 밝혀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을 뿐 이 문제와 관련해 누구와도 만난 일이 없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매각과 관련한 또 하나의 변수는 당장 12월6일부터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시행되면서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사모펀드(PEF)들이다. 극동건설을 인수한 론스타나 제일은행을 사들여 막대한 차익을 남긴 뉴브리지캐피털과 유사한 ‘토종’ 사모펀드들이 생겨난다. 이들은 가장 먼저 정부가 출자전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대우건설이나 우리금융지주회사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이헌재 펀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도 대우건설 인수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어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다.

    ‘원군’은 없고 ‘적군’만

    그러나 대우건설이 해외 건설업체로 넘어가든 국내 사모펀드에 인수되든 간에 현재와 같은 종합건설업체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해외자본의 경우 대우건설 경영권을 확보한 뒤 사옥 등의 자산을 모두 매각해 인수대금을 회수하는 한편, 유상감자나 고배당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는 데 최우선 목표를 둘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업체가 대우건설을 인수하지 않는 한 사모펀드가 참여할 경우라도 건설물량 확보나 수주실적보다는 자금회수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대우건설로서는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원군’은 없고 ‘적군’ 깃발만 펄럭이는 셈이다.

    대우건설 매각의 열쇠를 쥔 자산관리공사와 공자위가 최근 잇따르는 해외 투기자본의 국내업체 인수로 인한 국부유출 논란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보일지도 관심사다. 현재로선 자산관리공사나 공자위 역시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인다는 기본 취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음은 대우건설 매각 주간사 선정 직후인 11월12일 공자위 정광선 매각소위원회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매각 주간사 자격요건으로 외국계 증권사를 반드시 포함시킨 이유는?

    “국내 업체만으로는 경험 부족으로 능력있는 해외입찰자를 데리고 오는 데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외국계 증권사만 참여하게 하면 국내 증권사들이 대규모 M&A에 참여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 그동안 그만한 능력을 가진 회사가 없어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국내 증권사도 참여해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 국회에도 국내 투자은행 육성을 위해 특별히 배려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공자위, “정책적 고려도 필요”

    -대우건설측에서는 공자위가 외국 회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데….

    “매각 주간사 선정 문제를 놓고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외국계 주간사에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내 업체를 배려한 것이다.”

    -건설업에 관심을 가진 인수자가 아니라 자본 이득만 챙기려 하는 투기성 자본에 대한 우려도 있다.

    “매각 심사 과정에서 그러한 부분도 고려할 것이다. 물론 공자위는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기 위한 기관이지만 어떤 기업이 우리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느냐는 정책적 목표도 고려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정책적 고려가 가능한가.

    “입찰 참여자가 제출하는 경영계획 등에 일정한 가중치를 주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우건설 인수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라면 입찰에서 자본 이득만을 노리는 금융 투자자보다 더 높은 가격을 써낼 것으로 본다. 두산중공업이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하기 위해 예상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것과 같은 이치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대우건설 관계자는 “현재 거명되는 해외 업체들의 규모나 사업 영역을 놓고 볼 때 그들이 인수전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건설업은 성장업종이 아니다.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우 그나마 15% 정도지만 선진국은 10%를 넘는 경우가 없다. 당연히 건설회사를 사들이는 회사라면 단기적 목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장기 투자를 염두에 두고 건설업체를 인수한다면 그건 난센스다.”

    결국 누가 새로운 주인이 되든 대우건설 인수의 목적은 ‘단기적’이라는 사실을 대우건설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단기적’이란 곧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목적’. 그 실체는 머지않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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