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 10만 규모의 병력을 배치해놓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의 병력은 대량탈북 방지용인가, 향후 발생할지도 모를 북한 소요사태에 대비한 ‘평화진주군’인가.
▲지난 10월 북한인권법이 미 상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부시 대통령이 이에 서명했다. 북한인권법이 당장 김정일 체제에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권문제’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협상이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다. 김정일 수령절대주의 체제와 인권은 원천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인권법은 시간이 갈수록 김정일 체제의 변화와 관련해 핵심부분으로 접근해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2000년 2월의 열차사고
이상에서 보듯 이른바 ‘북한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 주변의 권력문제, 북한사회 내부문제, 북한을 둘러싼 외부문제라는 3개의 동심원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따로 떨어져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3개의 동심원이 상호작용하면서 언젠가는 총체적인 ‘북한사태’로 나타날 것이다. 부연하자면 김정일 정권의 권력내부가 취약해지고 북한 주민들의 체제이반 현상이 심화될수록 북한을 둘러싼 외부 요인의 힘은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반대로 권력내부와 북한사회가 안정될수록 외부요인에 대한 김정일 체제의 대응력이 높아질 것이다.
3개의 동심원 중에서 핵심은 맨 안쪽에 있는 김정일 위원장 주변의 권력내부다. 평양의 권력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꾸준히 관찰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북한 권력내부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은 용천역 폭발사고 이후 나돌기 시작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것도 열차가 용천역을 통과한 뒤 불과 15분 만에 폭발사고가 일어났다는 전언은 김정일의 암살을 노린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에 충분했다. 이 사고가 의도적인 것인지는 아직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이 사고는 지금까지 북한당국이 철저히 감추어왔던 내부 사정이 바깥 세상에 일부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처참한 사고현장이 외부세계에 공개됐고, 이 과정에서 휴대전화가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 동안 북한에선 이런 사고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 2월1일 저녁 8시경 평북과 자강도가 만나는 고산지대 역에서 발생했다는 사고가 대표적인 경우다. 한 탈북자에 따르면 갑자기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잠시 세워둔 열차가 뒤로 미끄러지면서 가속도가 붙어 인근 역까지 그대로 돌진, 다른 열차들과 충돌해 수천 명이 사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북한내 휴대전화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소식은 외부로 전해지지 않았다. 이처럼 바깥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폭발사고가 부지기수라는 게 탈북인사들의 설명이다. 용천역 사고를 계기로 북한당국은 주민에게서 휴대전화를 압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북한당국이 아무리 강도 높은 단속을 펼친다 해도 외부에 알려지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열폭풍의 먹구름
최근 북한에서 벌어진 사건 가운데 북한 권력내부의 변화징후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사건은 두 가지, 즉 장성택과 그의 일파에 대한 숙청 및 애첩 고영희의 사망과 후계자 문제다. 이 두 문제는 상당부분이 사실로 확인됐고, 향후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 운용문제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오극렬 장남의 미국 망명설은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보도했다는 점에서 높은 신뢰를 얻었으나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고 오보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파월 미 국무장관이 정동영 장관에게 말한 ‘김정일의 최측근’도 장성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지내다 올해 초 숙청되어 10월 현재 중앙당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이른바 ‘선군정치’가 시행되면서 군이 전면에 나선 형국이지만 당 조직을 통해 북한사회 전반을 관리·통제하는 중앙당 조직지도부의 힘과 역할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장성택의 숙청이 서울에서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중대한 사안인 것은 이러한 그의 위치 때문이다.
현재 중앙당 조직비서와 조직지도부장은 공석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1974년 삼촌 김영주를 정계에서 몰아낸 후 조직지도부장과 조직비서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겸직해왔다. 장성택은 그동안 제1부부장 자격으로 김정일의 권력을 ‘대행’해온 것이다. 그런 뜻에서 장성택이 권력의 2인자라는 말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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