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의 2기 내각구상을 살펴보면 낙관적인 전망을 갖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첫 번째 임기 동안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딕 체니 부통령은 두 번째 임기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부통령 한 사람이 갖는 부정적인 세계전망이 다른 내각 구성원이 모두 합의하는 전망보다 대외정책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더욱 크다.
더욱이 1기 행정부에서 유일하게 신중하고 온건한 목소리를 내온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2기 행정부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내각을 떠나기 전에는 그도 장관직을 그만두지 않으려 한다는 정가 루머에서 알 수 있듯 남아 있는 것은 정확한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것뿐이다.
현재 파월 장관의 후임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그의 위상에 턱없이 못 미치는 데다 백악관의 강경파에 대항할 의지도 거의 없어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1기 외교안보팀의 큰 특징이었던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분열과 대립’은 이제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만일 폴 월포위츠 현 국방부 부장관이 2기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승진한다면 이는 외교안보라인에서 네오콘 진영이 앞으로도 우세하리라는 것을 시사하는 징표다. 같은 의미에서 존 볼튼 국무차관이 새로운 직책을 얻는다면 이도 강경파가 지속적으로 대외정책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이렇듯 행정부 내에서 파월과 같은 유능한 온건파 인사가 사라지게 되면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당연히 보수적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관심이 가는 또 한 가지 대목은 한국 국민에게도 낯익은 미국 정부 관계자들의 장래다. 현재 대아시아 정책을 담당하는 실무전문가나 외교관의 경우 대폭적인 인사조치가 예상된다. 가장 먼저 세간의 교체 예상자 리스트에 오른 인물은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다. 그 밖에 다른 관료들도 학계로 돌아가거나 싱크탱크로 이동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이러한 실무 전문가들의 변동은 정책변화와는 큰 관련이 없다. 새롭게 실무진으로 등장할 사람들의 성향도 정책변화와 관련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 상관의 강력한 통제에 놓여 있는 실무자 그룹은 정책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간의 6자회담 과정에 켈리 차관보가 북한과 실질적으로 협상할 권한 없이 단순히 전달자 노릇을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껏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당혹감 때문이든 정기적인 인사이동의 일환이든 적잖은 아시아 관련 정책 담당자와 실무 전문가가 교체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부시 행정부의 고위관료들이 아시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이들을 실무자로 발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한 인사는 필자에게 “이미 정책방향이 결정돼 있다면 정보나 사실관계를 많이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감정을 넘어 실용주의로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기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해 필자는 사실 대단히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가능성은,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 북한 문제를 접근하는 데 이데올로기나 감정보다는 실용주의적인 노선을 우선할 경우의 수가 여전히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중국과 파키스탄의 경우를 상기해보자.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팀은 두 나라에 대해 실용주의적 접근법을 고수해왔다. 각각 독재국가 혹은 미국에 대항하는 잠재적인 적국이지만 미국은 이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문제에서는 양자간의 무역과 투자이익이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중요했고, 파키스탄의 경우에는 테러와의 전쟁에 충실한 동맹관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둘째 근거는 아무리 경직된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도 현실의 영향을 아예 안 받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설령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수긍하지 않는다 해도 외교안보팀은 비공식적으로나마 자신들의 대북정책이 애초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인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비축하고 잠재적으로 핵물질과 대량살상무기를 확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그간 부시 행정부가 취한 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셋째 근거는 2기 외교안보팀의 학습과정이 1기에 비해 훨씬 짧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클린턴 대통령도 대외정책 결정과정에서 험난한 출발을 겪었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이른바 1차 북핵 위기를 가까스로 해소할 수 있었다. 부시 대통령도 현재의 교착상태로 인해 북한의 벼랑 끝 외교에 관해 그간 톡톡히 배웠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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