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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연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의 ‘미국의 달라진 안보전략’

“협상은 없다, 도발 가능성 있는 상대는 미리 섬멸할 뿐”

  • 글: 함승희 전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의 ‘미국의 달라진 안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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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미국은 안보상황에 있어서 지리적인 혜택을 충분히 누렸다. 동서로는 대양이 펼쳐져 있고 기량이 뛰어난 해군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남쪽과 북쪽으로는 위협적이지 않은 국가들뿐이었다. 스스로 방어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미국은 19세기 내내 적에게서 지켜낼 수 있었다.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개입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였다. 실제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개입을 선언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실제로도 참전은 매우 늦었다. 영국은 아직도 당시 미국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실 미국은 1차 대전에 참전할 이유가 없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참전의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계속됐다. 국제주의자들은 미국의 미래가 동맹을 맺어 유럽문제에 개입하는 데 달려있다고 주장했고, 고립주의자들은 독특한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는 미국은 중립적 위치를 고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주의자들과 고립주의자들의 논쟁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도 계속되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2차 세계대전 개입에 대한 ‘열성(enthusiasm)’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참전을 선택할 기회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인해 사라졌다. 일본의 성공적인 선제공격은 분명 미국의 취약점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하와이는 미국의 주(州)가 아니었으므로 진주만 공습은 사실 본토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태평양에서의 공격일 뿐이었다.

상황이 변한 것은 2차 대전이 끝날 무렵이었다. 안보의 취약성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두 가지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는 공군력이다.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미국의 안보를 위해 어떤 종류의 공군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의됐다. 적의 대륙간 장거리 폭격기로 인해 미국의 안보가 취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도중에 격추할 수 있는 폭격기는 심각한 요소가 아니었지만, 50여 년 전 영국을 공격한 나치 독일의 V-2 로 인해 세상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조금 더 위험했다. 현재도 중도에 격추시키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탄도미사일은 미국의 안전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둘째로 중대한 변화는 핵폭탄이었다. 한 개의 핵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30개의 핵폭탄으로 30개의 도시를 폐허로 만들 수 있다. 방어란 없다. 일단 미사일에 핵폭탄이 장착되면 도시는 사라지는 것이다. 1814년 이래 미국의 안전이 이토록 심각한 취약점을 노출한 적은 없었다. 대응책으로 구축한 공중방어체계를 통해 미국은 폭격기를 막아낼 수 있게 됐지만 미사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핵무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공격력을 강화하는 방법도 꾸준히 추진해왔지만 공격력만으로 미국을 보호할 수는 없다.



‘나를 때리면 너는 죽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은 ‘억제(Deterrence)’라는 이론을 개발해냈다. 적이 미국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적이 미국을 공격한 것을 처절하게 후회할 만큼 격렬히 보복함으로써 아무도 미국을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다는 이론이다. 억제는 보복을 전제로 삼고 있으므로 ‘미국은 반드시 보복공격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적국에게 심어줄 여러 공격방안이 마련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ICBMs)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s·SLBMs), 핵무기를 탑재한 폭격기가 ‘삼각편대(TRIAD)’라는 이름의 전략핵 억제체제에 포함됐다.

그러자 소련도 미국과 똑같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어 지하에 배치했다. 그리고 잠수함을 건조하고 미사일을 장착했으며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폭격기를 만들었다. 소련과 미국은 상호 안정적인 억제를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공격력을 축적했다. 이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억제전략을 개념적으로 명확히 정리한 사람은 부시 행정부의 많은 관료를 교육시킨 앨버트 울스테터였다. 울스테터는 미국이 ‘공포의 미묘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격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적의 공격에 대응할 능력을 갖추어야 안전이 보장된다는 주장이었다. 적의 공격으로 인해 우리측의 무장이 해제되면 보복은 불가능해진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처참한 보복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손상되지 않는 한, 도시 하나쯤 공격당한다 해도 그리 나쁜 상황이 아니다. 반면 적이 도시는 건드리지도 않고 미국의 공격력만 무력화한다면 미국은 보복공격을 할 수 없게 되어 최악의 상황에 빠진다. 이렇듯 미국의 안보는 어떻게 하면 적의 선제공격을 받고도 보복공격력을 유지하느냐에 달려있었다. 보복공격력의 유지야말로 억제전략 개념의 키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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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함승희 전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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