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 계획이 나왔을 때도 노무현 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한미관계는 냉랭한 상태였다. ‘이혼’이나 ‘별거’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과거 군사정부 시절과 달리 최소한 한국은 미국과 ‘같은 방’을 쓰며 ‘잠자리’를 같이하진 않았다. 서로 대화 없이 ‘각 방’을 쓰던 참이었다. 워싱턴이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고 해서 둘 사이가 냉랭해졌든, 한국과의 ‘금슬’이 전 같지 않아 주한미군을 빼겠다고 했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주한미군에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한미군 변동은 군사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주권국에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단 정치적인 사안인 데다 2004년 한 해 내내 한국을 들쑤셔놓은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에 대한 논의 역시 다분히 정치색 짙은 것이었다.
한국전쟁 후 미 지상군이 한국에 반영구적으로 주둔한 이래 주한미군이 움직이려 한 것은 크게 세 번이다. 1971년 닉슨 행정부 때와 1977년 카터 행정부 때, 2004년의 부시 1기 행정부 때다. 주한미군의 규모나 편제, 심지어 주둔군의 성격 자체를 바꿔보려는 미국의 정치 군사적 동기는 매번 달랐지만, 한국 정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오직 ‘철군 반대’였다.
노무현 정부가 대미 외교에서 자주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대북 접근법에서 부시 행정부와 이견을 보인 것일 뿐 전반적인 대미관계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주한미군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주한미군 변동에 관한 한 노무현 정부, 아니 한국 정부가 제 목소리를 낼 여지는 무척 좁다. 과거 군사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김대중 정권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미 2사단 재배치 등 주한미군 변화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긴 하지만 큰 틀과 기본적인 성격에서는 1970년대 초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1970년대처럼 2004년에도 한국은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이 아니라 ‘양키 스테이 히어(Yankee Stay Here)’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한미군 문제의 첫 번째 특징이다.
한미 특수관계의 허와 실
1970년 여름 닉슨 행정부가 주한미군 2만명 감축을 공식 발표했을 때 미 국무부의 BIR(Bureau of Intelligence and Research)은 ‘정보 노트(Intelligen ce Note)’라는 내부 문서에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한국 정부 반응과 여론을 분석해놓은 바 있다. 국무부의 BIR은 미 행정부의 정보계통 부서 중에서도 방대한 정보 수집과 탁월한 분석 능력으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이 BIR의 정보 분석자료 제목이 ‘한국 : 양키 스테이 히어’이다. 다음은 1970년 8월14일자 ‘정보 노트’ 전체 내용을 옮긴 것이다.
[ 정보 노트
한국 : 양키 스테이 히어
한국 여론 반응 : 7월9일 주한미군 병력 2만명에 대한 공식 감축계획이 발표되자, 4만3000명의 병력이 잔류하게 된다는 사실은 무시된 채 한국은 예상했던 대로 격분하는 반응을 보였음.
한국 정부는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면서 한국이 북한의 어떠한 위협에 대해서도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충분히 대처할 만한 힘을 갖추게 될 1975년이나 1980년까지는 미군이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음. 한미간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는 닉슨 독트린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음.
한국 언론은 미국의 지원 없이는 한국 안보가 취약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철군이 이루어지기 전에 대규모로 병력을 현대화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많은 지면을 할애해 상세하게 기사화했음. 북한의 전쟁 준비와 최근의 도발 행위에 대한 과장된 기사 역시 탁월하게 작성되었음.
한국 정부는 불안한 안보 상황으로 여론의 불안감이 증폭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주한미군 철수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해버렸으며, 한국 정부는 충분한 보장이 없는 한 철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음.
한편 한국 정부는 총리 및 내각이 총사퇴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이는 호놀룰루에서 개최되는 한미 국방장관 회의에서 논의될 한국군 현대화 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