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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밀문서로 본 주한미군의 국제역학

“철수 협조 안하면 한국군 현대화 지원받지 못할 것”

  • 글: 이흥환 미국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미 비밀문서로 본 주한미군의 국제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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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지상군이 한국에 주둔한 이래 주한미군은 한국 안보와 동의어였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즉각 한국의 안보가 위태롭게 되고, 주한미군이 그대로 있는 한 한국의 안보는 튼튼한 것으로 각인됐다.

주한미군과 한국 안보를 동일시하는 논리는 1960∼80년대를 거쳐 어처구니없게도 지금도 여전히 괴력을 발휘한다.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계획에 입 다물고 있는 행위 자체가 곧 친북으로 매도된다. ‘양키 스테이 히어’를 외치지 않는 한 용공이자 반미이며 친북이 된다. 2004년에 작성됐을 국무부 BIR의 정보 노트가 또 한번 ‘한국: 양키 스테이 히어’라는 제목을 택하지 않았으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헛발질하는 한국 정부와 언론

이 정보 노트는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는 방식의 두 번째 특징을 보여준다. 주한미군 문제를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보려는 ‘한국화’이고, 이미 결정이 난 미국의 대한 군사정책에 뒤늦게 대처하려는 ‘뒷북치기’가 그것이다.

‘괌 독트린’이라고도 불리는 닉슨 독트린이 발표된 것은 위의 BIR 분석이 나오기 1년 전인 1969년 7월이다.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의 손으로 직접 챙겨야 한다는 것이 닉슨 행정부의 새로운 대외정책이었다. 주한미군 일부의 철군계획 역시 닉슨 행정부가 박정희 정부에 이미 통보한 사안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다음 닉슨 행정부가 철군을 공식 발표하자 ‘한미간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는 닉슨 독트린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내 여론을 무마하려 들었다. 언론도 앞장섰다.



그러나 닉슨 행정부는 1년 후인 1971년 2만명 철군을 단행했다. 이미 짜여진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겉모양새는 박정희 정권과 닉슨 행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놓고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비쳐졌으나, 사실상 미 지상군 철군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고 시행만 남겨놓고 있었을 뿐이었다.

여러 면에서 주한미군이 필요했던 박정희는 미국의 철군 발표가 나오자 한국 국내 여론을 동원하고 언론을 앞장세워 철군을 막으려 했다. 그렇게 미국을 압박하면 미 지상군이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일까. 아니면 최소한 미군 철수는 막지 못하더라도 한국군 현대화를 위한 미국의 지원을 손쉽게 얻어낼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박정희는 미국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우선 정책이 투명하지 못했고 여론을 이용하는 시기를 잘못 선택했으며 더구나 여론을 제 입맛에만 맞춰 악용했기 때문이다. 민감한 안보 관련 사안이니 자세한 내막은 국민이 시시콜콜하게 알 필요 없고, 국가 안보를 책임진 정권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주한미군 문제나 한미관계를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1970년대나 2000년대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한미 두 정부간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은 일부 고위 정책 결정자들만 독점하고 있다가 흡족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그때서야 여론을 동원해 미국을 압박하려 든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 여론에 밀려 이미 내려진 정책 결정을 번복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방식이나 여론 형성 과정 역시 1970년대와 견주어볼 때 판에 박은 듯이 닮아 있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지휘하에 해외 주둔 미군의 편제 및 규모를 포함해 미국 군사력 전체를 면밀히 재검토했고, 국방부가 작성해 의회에 보고하는 이른바 QDR(Quadrennial Defense Review)이라 불리는 4년 단위 국방검토안에서 군사력 재편의 기본 틀을 이미 밝혔다.

21세기 미군 재편의 교과서 격인 이 QDR이 나온 것은 2001년 9월30일이고, 이때 이미 해외 주둔 미군을 지상군 중심의 붙박이 편제에서 신속 기동 및 원정군 형태로 재편할 필요성이 있다는 구상이 밝혀졌다. 주한미군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주한미군의 기본 성격을 비롯해 전체 규모와 형태에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3년 전에 결정돼 있었던 것이다.

“우리 결정엔 아무런 변화 없을 것”

그러나 한국에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말 미 관리들의 입을 통해 구체적인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안이 언급되기 시작하면서다. 게다가 노무현 정권에서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 문제가 처음 거론됐을 때 대부분의 한국 내 언론은 마치 해외 주둔 미군 가운데 주한미군에만 변화가 있는 것처럼 사안을 ‘한국화’시켜버렸다. ‘한미간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는 닉슨 독트린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답습한 것이다.

앞에서 본 국무부 BIR 자료가 나오기 9일 전인 8월5일자의 다른 국무부 문서에서도 철군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입장이 밝혀져 있다. 다음은 마셜 그린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작성해 윌리엄 로저스 당시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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