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철밥통’ 국책연구소 민영화해 경쟁에서 지면 망하게 하라”

재야 경제학자의 현장 고발

  • 글: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장 ksone@kseri.co.kr

    입력2004-11-24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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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의계약 기준 맞추다 보니 ‘날림’ 보고서 수두룩
    • 보고서는 뒷전, 밥 사먹은 영수증만 챙기는 관료들
    • 연구보고서는 200페이지, 비용정산 명세서는 2000페이지
    • 돈 아끼면 ‘바보’, 연구인력·기간 부풀리기 예사
    • 문제점 지적하자 ‘소관사항 아니다’ 떠넘기기만
    “‘철밥통’ 국책연구소 민영화해 경쟁에서 지면 망하게 하라”
    국내 컨설팅 서비스 시장은 크게 정책 연구용역 시장과 민간기업 컨설팅 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정책 연구용역 시장은 거의 대부분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차지하고 있다. 또 민간기업 컨설팅 시장은 대부분 외국계 컨설팅기업이 장악하고 있으며, 일부 재벌 계열 연구소만이 해당 그룹 계열사의 내부 컨설팅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간 전문컨설팅 기업은 아무리 전문적 역량을 객관적으로 입증해도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가장 큰 원인은 정책 연구용역 시장의 경쟁이 사실상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책 연구용역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국내 지식정보산업을 육성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자.

    일본은 정부 용역도 민간 개방

    일본은 이미 1960년대부터 컨설팅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민간분야에 전문컨설팅 연구기관이 많이 생겨났다. 예컨대 노무라종합연구소나 미쓰비시종합연구소 등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민간 컨설팅기업이 대부분 이 무렵에 설립됐다. 그러나 설립 당시에는 기업부문의 컨설팅시장이 그리 크지 않아서 대부분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각종 정책 연구용역을 민간 컨설팅기업에 적극 개방했다. 예컨대 어떤 민간 컨설팅 기업은 연간 600명에 달하는 전문연구인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규모의 정책연구용역을 30년간 지속적으로 수주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책 연구용역의 안정적 수요를 기반으로 일본의 민간 컨설팅 기업들은 외국계 컨설팅기업과 경쟁하며 나름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본 정책 연구용역 시장의 개방과 경쟁은 정책연구의 질과 정책대안의 다양성을 보장하며 동시에 민간 전문컨설팅기업이 자생력을 확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정책 연구용역 시장은 이른바 ‘정부출연 연구기관 육성법’이라는 보호막을 배경으로, 대부분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독점하고 있어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경쟁의 부재는 정책연구에 많은 문제점과 부작용을 낳고 있다.

    현재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모두 42개이지만 실질적으로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정부산하기관의 연구기관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지원되는 정부예산은 2001년 현재 연간 약 1조5000억원에 달하며, 정부산하기관 연구기관을 포함하면 매년 약 2조원의 예산이 지원되는 셈이다. 여기에 전국 지자체가 출연한 연구기관까지 포함하면 연간 약 3조원의 예산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도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의 연구역량과 성과는 부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과감히 민영화하거나 민간 컨설팅기업과 경쟁시키지 않고 왜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면서도 지키려는 것일까.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역량에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이른바 ‘자식론’을 내세워 어쩔 수 없이 먹여 살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30년 동안 같이 지내왔으니 이제 와서 매정하게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정책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로 악용되기도 한다. 즉 어떤 정책이 실패할 경우 관련부처는 규정과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는 식으로 책임을 피하며,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정책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추진한 정책은 실패하더라도 확실히 ‘면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조차 민간 연구소 신뢰

    정부가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해 정책을 내놓을 때에는 연구기관이 최선의 정책대안을 제시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과연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우리나라에서 최고 수준의 정책연구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재벌 계열의 민간 연구소 자료를 자주 활용하는 상당수 정부 관계자는 민간 연구소 보고서가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자료보다 낫다고 지적한다. 정부 스스로 민간 연구소의 수준이 정부출연 연구기관보다 더 낫다고 인정한다는 이야기다.

    선진국에서는 컨설팅사 등 민간 전문연구기관이 활성화되어 있어 다양한 각도와 방식으로 정책연구의 내용을 검증하고 비판하기 때문에 정책에 실패할 가능성이 낮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민간 전문연구기관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탓에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정책연구 결과에 대해 검증하고 여과할 방법이 거의 없다. 이러다 보니 정책실패의 원인이 잘못된 정책연구 결과물 때문인지, 아니면 정책집행 과정의 잘못에 기인하는 것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선진국에선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거대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유지하는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민간에 위탁하거나 민간 컨설팅기업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세계 10대 컨설팅회사 등 민간 컨설팅기업으로 유명한 곳은 많아도 정부 출연연구기관으로 유명한 곳은 거의 없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공익 목적의 연구기관조차 민간기업들이 기부금을 출연하여 조성한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민간 전문컨설팅기업은 재벌 계열 연구소를 제외하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전문 두뇌집단이 제대로 성장할 리 없다. 민간 전문컨설팅기업이 활성화되면 장기 침체에 직면한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다양한 방안이 치열한 경쟁을 거쳐 검토되고 여과되어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민간 전문컨설팅기업의 활성화가 중요한 이유다.

    따라서 정부정책 연구용역 시장을 하루빨리 개방하여 경쟁체제를 적극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민영화해야 한다.

    비현실적인 임금구조

    우리나라의 정책 연구용역 시장이 경쟁의 무풍지대라는 근거를 필자가 운영하는 연구소의 경험을 들어 설명해보자.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책연구의 질을 높이고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정책연구 용역을 민간 연구기관에도 개방하여 경쟁을 촉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연구용역의 인건비 단가가 최고 전문가인 프로젝트 매니저(PM)의 경우 기획예산처는 월 180만원(연봉 환산 약 2000만원), 재경부나 산자부는 월 250만원(연봉 환산 약 3000만원)으로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데다 부처마다 일정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민간 전문컨설팅기업이 참여하기 어렵다. 책임연구원의 인건비 단가가 이 정도라면 나머지 연구원의 인건비는 더 말할 나위없다.

    더욱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시간을 이르는 이른바 ‘월간 참여율’을 50% 이하로 제한하여 실제 프로젝트 매니저의 인건비가 월 90만~125만원에 불과한 형편이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수준의 인건비인 셈이다. 이런 인건비를 받고 정부 정책연구용역에 참여할 민간 전문컨설팅기업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경우에는 정부보조금으로 인건비가 지급되고 있으므로 용역수주 인건비까지 합하면 민간 컨설팅기업에 비해 2배 이상의 인건비를 받는 셈이다. 게다가 전문컨설턴트 1인당 월 3000만∼5000만원의 인건비를 책정하는 외국계 컨설팅기업과 비교하면 국내 민간 컨설팅기업의 현실은 더욱 참담한 실정이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인건비 단가는 또 다른 진입 장벽을 형성할 뿐, 결코 민간 전문컨설팅기업이 참여해 정책연구의 질을 향상하는 데 기여할 수 없다. 이런 불합리한 규정은 1억원 규모의 정책연구용역을 시행할 경우 정부출연 연구기관조차 ‘사기’를 치지 않으면 안 되는 기형적 현실을 낳고 있다. 예컨대 3명의 연구인력이 5개월이면 마칠 수 있는 정책연구용역이라 할지라도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서는 참여인원을 10명 이상으로 부풀리거나 연구기간을 10개월쯤으로 늘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서 말한 인건비 단가로는 도저히 1억원의 용역비용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비현실적인 인건비 규제가 이런 눈속임 행위를 조장하는 셈이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컨설팅기업은 연구인력이 많지 않으므로 이런 식으로 부풀리기를 하려야 할 수도 없다. 더욱이 정부가 외국 컨설팅기관에 연구용역을 발주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인건비 단가를 인정해주는 것도 부당한 역차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비 부풀리기와 눈속임

    이와는 달리 특정 기금이 우리 연구소에 용역한 정책연구사업을 수행했으나 오히려 비용의 일부를 환급당한 예도 있다. 두말할 필요없이 민간 컨설팅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가능한 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하는 조직인 것이다. 따라서 야간근무나 공휴일 근무를 해서라도 비용을 절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 규정은 용역을 모두 마친 후에 또다시 용역 비용을 정산하게 하여 민간 컨설팅기업에 이중의 부담을 지게 하고 있다. 즉 연구용역 결과는 매우 훌륭했지만 규정상 비용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 사후정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밥통’ 국책연구소 민영화해 경쟁에서 지면 망하게 하라”

    현행 규정은 기술개발 용역이나 정책연구 용역, 그리고 건설공사 용역 구분 없이 비슷한 원가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창의적 아이디어 생산을 가로막고 있다.

    민간기업이 연구용역의 목적인 최종보고서를 제출하는 한 선급금이나 용역비용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큼 쓰든 상관하지 않는 것은 상식이다. 용역결과가 충분치 못한 경우에 한해서 계약서의 규정에 따라 내용을 추가 보완하게 하거나 위약금을 물리는 것이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정책 연구용역도 하나 다를 바가 없다. 더구나 정책 연구용역을 발주할 때에는 내부 또는 외부 심사위원회를 거쳐 연구용역기관을 선정한다. 연구역량이나 연구실적 그리고 용역비용의 적정성, 용역기간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에 용역기관을 선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용역이 정상적으로 마무리됐다면 굳이 사후 비용을 별도로 정산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누구와 왜 밥을 먹었으며 연필은 몇 자루를 샀는지, 그리고 인건비를 얼마나 지급했는지 등의 시시콜콜한 비용을 정산해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우리 연구소는 비용정산 결과 당초 예산보다 지급한 인건비가 적다는 이유로 그 차액만큼 환급당했다.

    5개월에 걸친 연구 끝에 200페이지에 가까운 연구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정작 용역이 종료된 후에도 4개월에 걸쳐 무려 2000페이지가 넘는 비용명세서를 제출하고서야 작업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용정산 결과 인건비 과다책정, 즉 인건비가 예상보다 적게 들었다는 이유로 수백만 원을 환급당한 것이다. 우리 같은 소규모 컨설팅기업은 비용을 정산하다 망할 지경이었다.

    결과적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비용을 절감할수록 환급당하는 구조 아래서는 굳이 비용절감 노력을 기울일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비용절감을 위해 노력할수록 오히려 바보가 되기 때문이다. 더 한심한 것은 그런 비용정산을 위해 용역을 주관하는 산하기관에 수많은 담당 인력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용역 내용이나 성과물은 뒷전이고 오로지 행정 규정과 절차만이 중요하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필자는 이 문제로 담당 공무원이나 관계자를 면담했지만 한결같이 이런 비용정산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 두 가지 사례 외에도 수의계약 방식이나 형식적 입찰제도 등 경쟁을 제한하는 제도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연구소는 지난해 규제개혁위원회와 해당 부처를 찾아다니며 우리가 겪은 문제점들을 지적했으나 가는 데마다 소관사항이 아니라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결국 지루한 핑퐁게임 끝에 시정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정책 연구용역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기 위해 개선할 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첫째, 정책 연구용역 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민영화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 급선무다. 공기업과 정부산하기관도 민영화를 추진하는 마당에 과잉보호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만 예외로 한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 방안으로 필자는 3년 정도의 한시적 유예기간을 두어 정부출연 연구기관 스스로 민영화 방안을 연구한 후 4년째부터는 정부의 예산을 지원받지 않는 완전한 민간기업으로 다시 출발하게 할 것을 제안한다. 즉 정부출연 연구기관도 민간 컨설팅기업과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게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라도 경쟁에서 지면 민간 컨설팅기업과 마찬가지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출연 연구기관 처지에서 보면 어떤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수립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현재의 연구인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식으로 민영화할 것인지, 분야별로 다양화하여 서너 개로 나눠 민영화할 것인지, 아니면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 연구부문을 민간 컨설팅기업에 매각할 것인지를 포함해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민영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가오는 경쟁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연구소가 건설회사인가

    둘째, 정책 연구용역과 기술개발 용역, 그리고 건설공사 용역에 관한 법 규정을 분리해야 한다. 사실 현재 정책 연구용역에 관한 법령이나 규제의 대부분이 건설공사 용역발주에 관한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심지어 기술개발 용역에도 적용하고 있다. 건설용역의 경우에는 단가기준과 완성도 기준으로 감리와 비용정산이 이루어지지만 정책 연구용역은 정책적 아이디어와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이므로 단가기준 및 완성도 기준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또 건설용역에는 인건비 및 원자재의 표준단가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지만, 정책 연구용역은 아이디어와 방법론과 같이 소프트웨어적인 지식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건비 표준단가 등을 정하는 것은 무리다. 더욱이 그것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책 연구용역은 용역과제가 명확하고 용역기관 선정시에 용역과제에 들 소요기간과 총비용의 적정성을 이미 충분히 고려하고 있어서 굳이 인건비나 출장비 단가를 일일이 법으로 규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기술개발 연구용역의 경우에는 구입장비 가격이나 투입 연구인력을 시작단계에서 정확히 추산하기 어려우므로 사후정산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책 연구용역은 비용을 어떻게 사용했든 최종결과물이 만족스러우면 그것으로 끝이며 사후정산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필요한 규제다. 따라서 정책 연구용역과 건설용역, 그리고 기술개발 용역에 관한 법 규정은 실정에 맞춰 각각 분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용역비용을 현실화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정부부처가 외부 민간 컨설팅기업에 정책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연구주제나 난이도, 투입 전문인력 수 등에 관계없이 용역비를 무조건 1개월에 1000만원을 기준으로 책정하고 있다. 그리고 3000만원을 넘는 연구용역인 경우에는 모두 조달청에서 경쟁입찰을 하게끔 되어 있지만 3000만원 이하는 담당부처가 수의계약을 맺어 발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3000만원 이하로 짜맞추기

    그 결과 연구용역의 난이도나 내용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담당부처는 절차가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3000만원 이하의 용역만 발주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그럴 경우 정책 연구용역 기간은 2개월 이내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비용과 기간 면에서 타산이 맞지 않으므로 이른바 양화(良貨)는 참여하지 않고 악화(惡貨)만이 참여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부실연구로 이어지고 마는 것이다.

    사실 우리 연구소는 이른바 ‘재탕’ 연구용역을 많이 의뢰받는 편이다. 즉 이미 다른 연구기관에 의뢰하여 연구용역을 발주했지만 결과가 부실하여 같은 주제의 연구용역을 다시 의뢰하는 것이다. 기존 연구결과물을 읽어보면 그 용역을 수행한 기관이나 연구자가 정말로 전문적인 연구역량이 있으며 연구주제를 제대로 이해하고서 용역을 수행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수의계약 기준을 현행 3000만원 이하에서 최소한 8000만원(4개월 기준) 이하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동시에 무조건 ‘1개월에 1000만원’이라는 근거 없는 관행도 폐지돼야 마땅하다.

    정부는 지식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수차 발표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육성하겠다는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인위적인 지원책보다는 경쟁적인 시장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정책 연구용역 수요는 무궁무진하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잠재시장을 규제하는 불합리한 규정을 타파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대한 일방적 보호를 과감히 철폐하여 시장을 경쟁체제로 만든다면 우리나라의 지식서비스 산업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곧 가장 효율적인 지식서비스 산업 육성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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