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기, 촬영용 카메라, 편집장비 등 30년 전부터 모은 영화장비가 300여점에 이른다.
닭이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영화를 좋아해서 자료를 모았는지 자료를 모으다가 영화에 빠졌는지 가끔 자문해보지만 대답은 애매하다. 영화에 정신이 팔려 틈만 나면 극장에 들락거리고 이런저런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이다. 길거리에 나붙은 포스터, 극장에서 나눠주는 전단,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영화광고, 배우나 감독들의 사진, 영화장면을 담은 스틸, 필름 조각 등 눈에 띄는 것 중 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모았다. 자료가 늘어나는 만큼 영화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경북 상주의 읍내 극장과 헌책방은 어린 영화 마니아의 놀이터이자 학교였다.
영화장비를 끌어들인 것은 서울로 유학한 이후부터였다. 종로3가나 청계천5가, 황학동 고물시장에 8mm나 16mm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순례하듯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눈독만 잔뜩 들였을 뿐 그냥 돌아선 경우가 더 많았다. 헌책방에서 철 지난 영화잡지나 겨우 사모을 정도의 주머니 사정으론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땐 아끼고 모으면 그토록 들었다 놓았다 했던 장비들을 살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영화장비는 촬영에 필요한 카메라나 상영을 위한 영사기가 대부분이다. 편집, 조명, 녹음 등에 쓰이는 것들도 더러 있다. 같은 용도라 해도 어느 나라에서 언제 만들었는가에 따라 품질과 느낌이 다르다. 그 차이를 따라가노라면 영화의 역사가 보인다. 기계를 만든 사람들의 섬세함과 그것으로 꿈을 그리려 했던 사람들의 열정이 만난 곳에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장비 하나 하나가 누군가의 꿈을 그리다가 남은 몽당연필 같다. 영화장비를 모으면서 내가 꿈을 꾸는 것인지, 꿈을 수집하는 것인지 여전히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나나 다른 사람의 꿈을 지키는 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