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CEO 인터뷰

‘뚝심 경영인’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넘어갈 때까지 찍어라!”

  • 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뚝심 경영인’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2/6
최 회장은 굴곡 많은 광동제약 40년사 못지않게 어렵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6년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그는 철공소를 운영하던 아버지 덕에 가정형편은 윤택했지만 학교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조센징’으로 놀림받았던 것.

“일본인에게 당하는 이지메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어느 날 쇠가죽으로 만든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어요. 무기를 들고 학교에 간 바로 그날, 끝장을 봤지.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놈과 평소에 나를 유독 괴롭히던 녀석들에게 (쇠가죽을) 휘둘렀는데 다들 피투성이가 돼 쓰러지더라고. 헤아려보니 모두 여섯 놈이었어요. 그러곤 뒤도 안 돌아보고 미련 없이 학교를 박차고 나왔죠.”

그의 나이 열 살 때였다. 해방이 되자 일본생활을 정리한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와 외가가 있는 경남 달성군 화원면에 정착했다. 귀국 직후 다시 사업에 손을 댄 아버지가 1년 만에 사기를 당하고 병석에 눕자 그는 열두 살에 학교를 그만뒀다. 어머니를 도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시장통이 학교였다”

“일본에서는 학교를 그만둘 각오로 싸운 거였지만, 이번엔 아버지가 쫄딱 망해 기를 쓰고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거죠. 아홉 식구를 먹여 살리려 고생하는 어머니를 따라 참외를 떼다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그걸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어요. 가난이 참 싫었어요. 가난 때문에 다섯 살 난 막내동생까지 죽었고. 약 한 첩 못 쓴 채.”



-뜻하지 않게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거네요.

“자발적이었다고 봐야죠. 형이 있었지만, 성격이나 체격으로 보아 고된 일을 하기에는 내가 제격이었어요. 그때 돈 되는 일은 뭐든 다 했어요. 밑천 없이 몸뚱이만 있으면 되는 일을. 땔감을 해서 내다 팔고, 뻥튀기, 담배, 해삼에 돼지 장사까지. 시장통은 내게 학교였어요. 살면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죠. 사업 하면서 고려대와 서울대 경영대학원 등을 수료했는데 이곳에서 배운 것도 많지만 그 어떤 지식도 시장통에서 배운 것만 못했어요.”

열두 살에 처음 시장에 나선 그는 군 입대 전까지 온갖 장사를 하며 사업수완을 익혔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삼시 세 끼 밥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좋았다”는 그가 제대 후 얻은 첫 직장은 제약회사인 고려인삼사 영업사원이었다.

“영업사원이란 게 결국 물건 파는 장사꾼이라는 얘긴데, 찬물 더운 물 가릴 형편이 아니라 무작정 덤벼들었죠. 면접날 한 켤레뿐인 낡은 구두에 탁탁 침 뱉어가며 제법 윤나게 닦고 갔는데 며칠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더라고. 영업사원의 기본은 호감 가는 인상과 남다른 말재주일 텐데. 못난 얼굴에,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썼으니 연락이 없을 수밖에. 군댓밥이 아무리 좋다 해도 내 얼굴과 인상은 뜯어고치지 못했어요.”(웃음)

-합격통지서를 못 받았다는 얘기네요.

“두말 할 것도 없이 떨어진 거죠. 그래도 낙망하지 않았어요. 계란 두 꾸러미를 들고 지사장 집에 찾아가 ‘배운 것도 없고 생긴 것도 변변치 않지만 물건 파는 건 자신 있으니까 뽑아달라’고 했지. 말투에 자신감이 묻어났는지, 아니면 집까지 찾아간 정성에 탄복했는지 다음날부터 출근하라고 합디다. 사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라기보다는 ‘경옥고’ 외판원이라고 봐야죠. 그 회사에 팔 제품이라고는 ‘경옥고’밖에 없었으니까요.”

퇴짜 맞으면 또 찾아가

-약을 판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그때 ‘경옥고’ 가격이 2만환이었는데 웬만한 회사원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이었어요. 먹고 살기도 힘든 때라 그걸 살 사람을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웠죠. 일주일에 하나만 팔아도 실적 좋다는 평가를 받는데, 난 첫 출근 날 두 개를 들고 나갔어요. 종로와 광화문을 이 잡듯이 훑고 다녔지만 허사였죠. 회사로 들어가는데 을지로에 즐비한 양복점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문득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양복점을 할 정도면 형편이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양복점에서 연거푸 퇴짜를 맞았는데 ‘미양사’ 주인이 내 말을 경청하더라고. 그것도 오랜 시간을. ‘됐다’ 싶었죠. 그 양반이 ‘나만 먹을 수 있냐’며 아내 몫까지 두 개를 산 겁니다. 그 인연으로 20년 넘게 그 집에서 양복을 맞춰 입었죠.”

영업 첫날 2개를 팔아 회사를 놀라게 한 그는 입사 후 10일 만에 20만환 어치의 ‘경옥고’를 판매했다. 지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당의 일부를 가불한 그가 달려간 곳은 남대문시장. 여름용 셔츠와 남색바지를 구입했다. 그만의 영업전략 중 하나였다. 입고 다니는 군용점퍼가 고객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영업사원과는 비교가 안 되게 많이 팔았지만 특별한 영업요령이랄 건 없었어요. 나도 다른 영업사원들처럼 태반은 문전박대를 당했죠. 다른 점이 있다면 퇴짜 맞은 그 집에 다음날 또 찾아갔다는 거지. 약 사라는 얘긴 안 꺼내고 안부만 묻고 나왔어요. 그러기를 열 번 이상 반복했죠.”

2/6
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목록 닫기

‘뚝심 경영인’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