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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칼럼

‘육상의 오페라’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

집중, 버림, 비상(飛上), 떨림, 그리고 아… 그 빛나는 추락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육상의 오페라’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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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광태는 노래한다.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가장 높이 꿈꾸는 새. 저 밑 없는 절벽을 건너서, 저 목타는 사막을 지나서, 저 길 없는 광야를 날아서….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가장 멀리 나는 새. 저 검푸른 바다를 건너서, 춤추는 숲을 지나서, 저 성난 비구름을 뚫고서….”(도요새)

‘상상 속의 새’ 붕새는 한 번 날갯짓에 9만리를 난다.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날갯짓을 해도 몇십 미터도 못간다.

새는 왜 높이 나는가. 왜 멀리 날려 하는가. 새는 도대체 어디로 날아가는가. 가수 송창식은 외친다. “새는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를 하고, 새는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날아간다.”(새는)

지상의 모든 생물은 날갯짓을 꿈꾼다. 돌고래는 7m가 넘게 공중으로 껑충 뛰어오르고 날치는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허공을 가른다. 심지어 나무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까치발을 딛는다.

인간도 타는 목마름으로 날갯짓을 꿈꾼다. 어깻죽지가 늘 가려워 피가 나게 긁는다. 하지만 깃털은 아무리 기다려도 움을 틔우지 않는다. 손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손이 새처럼 날개로 변하지는 않는다. 대신 인간은 도구를 사용한다.



한때 라인강 유역에 거주하던 고대 켈트족은 막대를 짚고 개천을 뛰어넘으며 비상(飛翔)을 꿈꿨다. 소련 농민들은 쇠스랑을 장대삼아 2m가 넘는 건초더미를 뛰어오르는 놀이를 즐겼다. 영국에선 나무장대를 이용해 돌담을 뛰어넘고 아일랜드에선 장대를 짚고 개울을 뛰어넘었다.

중국인은 한술 더 떴다. 손오공을 내세워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주름잡았다. 손오공은 여의봉을 사용해 산과 산을 훌쩍 뛰어넘고 과거와 현재를 가로질렀다. 그래서 원숭이는 중국인에게 ‘보다 높이, 보다 멀리’ 뛰는 영물로 통한다. 원숭이의 해가 되면 중국의 산부인과 병원마다 꽉꽉 차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인간 능력의 결집체

장대높이뛰기엔 날갯짓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다. 수평운동에너지가 두둥실 한순간에 수직에너지로 바뀌며 한 마리 새가 된다. 인간은 그 순간 자유와 해방을 느낀다.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순간은 무아경이다. ‘중력의 법칙’에 반항하는, 저 가슴속 끓는 피의 간지러움.

그래서 막 허공을 향해 뛰어오르려는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자세는 먹이를 잡아채려는 독수리의 모습과 같다. 오직 두둥실 떠오르려는 생각뿐, 잡념이 전혀 없다. 몸의 균형도 완벽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하나도 없다. 미학적으로도 너무 아름다워 슬프기까지 하다. 이 세상에 수평에너지를 단박에, 거의 수직에너지로 바꾸는 생물은 오직 장대높이뛰기 선수뿐이다. 그 수많은 종류의 새 중에도 한순간에, 직각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새는 없다. 대부분 비행기처럼 사선을 그으며 비상한다. 오죽하면 제이콥 브로노스키가 그의 역저 ‘인간 등정의 발자취’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탄하고 또 감탄했겠는가.

“도약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인간 능력의 집결체이다. 손의 움켜쥠, 발의 구부림, 그리고 어깨와 골반의 근육, 화살을 날리는 활시위처럼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방출하는 장대 등 그 복합적인 행동의 특징은 선견력(先見力)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의 목표를 세워놓고 자기의 관심을 거기에다 집중시키는 능력이다. 장대의 한 끝에서 다른 끝에 이르는 그의 행동과 뛰는 순간의 정신 집중은 계속적인 계획의 수행이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낙인이 되는 것이다.”

장대는 선승(禪僧)의 화두와 같다. 화두는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이다. 오직 화두에 매달리다 보면 저절로 망상과 잡념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 화두조차 털어내지 않으면 깨달음의 길은 멀다. 화두도 하나의 집착이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배를 버려야 한다.

장대도 하늘로 가는 ‘화두’다.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정점에 이르기까지는 장대에 의지하지만 그 후부터는 장대를 버려야 한다. 장대에 계속 매달리면 중력의 힘에 이끌려 다시 지상으로 떨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대에 집착하다 보면 장대가 창이 되어 자신을 찌른다. 어느 순간, 때가 되면 장대를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2000년 일본 미야지마현에서 열린 일본선수권대회 장대높이뛰기 남자부 경기에서 야스다 다토루(25)는 장대에 ‘똥침’을 맞았다. 5m40 세 번째 도전에서 무사히 바를 넘었지만 떨어지다가 장대에 항문과 직장을 찔린 것이다. 야스다의 유니폼은 물론 장대 끝과 안전용 매트까지 흥건하게 피가 고였다. 이 사고로 그는 결국 수술까지 받고 한달이 넘게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다행이라면 5m40을 넘은 기록이 인정돼 2위에 입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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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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