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방송의 꽃’ 여성 아나운서의 세계

샐러리맨 수입에 연예인 지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힘겨운 ‘백조’

  • 글: 조희숙 자유기고가 gina05@hanmail.net

    입력2004-11-24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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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어지고 예뻐지는 앵커석(席)
    • 10명 선발에 1500명 지원
    • 무늬뿐인 오디션, 앵커 선발은 ‘윗분’의 뜻
    • 뜨고 싶으면 명절특집에 출연하라
    • “실력보다 외모 가꾸기에 더 신경 써라”
    ‘방송의 꽃’ 여성 아나운서의 세계
    “이제 ‘뉴스데스크’는 누가 지키나요?”지난 10월 MBC 간판 앵커 김주하 기자의 결혼 발표가 있은 후 인터넷 게시판에 오른 한 네티즌의 글이다.

    공교롭게도 김 앵커의 결혼 하루 전날에는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해온 최윤영 아나운서도 화촉을 밝혔다. 그러자 네티즌들 사이엔 여성 앵커들이 줄줄이 결혼하는 겹경사를 맞은 MBC가 도마에 올랐다. 발단이 된 건 최윤영 아나운서가 결혼과 동시에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두 살 아래의 미혼인 박혜진 아나운서가 기용되면서다. 입사 2년차로 뉴스 진행 경력 10년차인 베테랑 정혜정 아나운서를 ‘밀어내고’ 앵커석에 올랐던 최윤영 아나운서가 1년 만에 하차하자 네티즌들은 ‘결혼했다고 여자 앵커를 교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MBC 이윤철 아나운서국장은 “내부에서 이미 최윤영 아나운서는 앵커보다 MC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며 “가을 개편과 최 아나운서의 결혼시기가 공교롭게 겹쳤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얼굴이 작아 보이도록 적당히 부풀려진 단발머리와 심플한 의상, 조리 있고 똑 떨어지는 말투로 뉴스를 진행하는 지적인 이미지 때문에 여성 아나운서들은 매년 여대생이 닮고 싶은 인물의 상위권에 오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는 1927년 경성방송국 마현경씨로 알려져 있다. 여성 앵커의 역사가 근 80년에 이른다는 뜻. 하지만 공중파 방송의 메인뉴스에 여성 앵커가 기용된 것은 1980년대 초반으로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KBS 간판 앵커였던 신은경 아나운서를 비롯해 정미홍, 이규원, MBC의 백지연, 정혜정 아나운서 등이 1980년대를 풍미한 여성 앵커들이다. 1990년대 들어 여성 앵커는 남성 앵커의 ‘보조’ 노릇을 넘어 단독으로 뉴스를 진행할 만큼 위상이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각 방송사의 간판뉴스인 저녁9시 뉴스에서 여성 앵커 기용문제를 둘러싼 크고 작은 잡음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방송사가 전임 앵커에 비해 더 젊고 더 예쁜 앵커를 발굴한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연봉 100억원대의 몸값을 자랑하는 바버라 월터스와 같은 여성 앵커 탄생은 불가능한 것일까.

    최근 방송가에서는 여성 아나운서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돼 화제다. 지난 9월28일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김훈순 교수와 KBS 이규원 아나운서실 차장이 함께 발표한 ‘TV뉴스 여성 앵커들의 직업인식과 방송사 조직의 성차별적 관행’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그것.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발행하는 ‘프로그램/텍스트’ 10호에 실린 이 논문은 뉴스 진행 경험이 있는 공중파 방송 3사와 YTN의 전·현직 앵커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토대로 여성 앵커의 실상을 보여준다.

    인터뷰에 응한 한 30대 기혼 여성 앵커는 여성 앵커의 선발기준에 대해 “여성 앵커는 호감 가는 외모, 남성 앵커는 경력”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른 조사대상자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부진들은) 여성의 경우 아무래도 나이 든 사람보다 적당한 나이에 신선함을 갖고 있는 사람을 원한다”(30대 미혼 앵커), “50, 60세 여성도 앵커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에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젊고 꽃다운 여자만 쓰려고 하니까”(40대 기혼 앵커) 등의 답변을 보면 응답자들은 여성 앵커 선발기준을 ‘능력보다 외모’라고 여기고 있음이 드러난다.

    능력보다는 외모와 나이로 여성 앵커를 선발하는 부당한 처사에 대해 이들의 반응은 대다수 ‘조용히 있는다’다. 즉 앵커 선발에 불만이 있어도 수동적이라는 것. 김훈순 교수는 “여성 아나운서들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달리 돌파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혼자 대응하기도 어렵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방송가 아나운서들 사이에선 젊고 예쁜 여성 앵커를 기용하는 것이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김 교수는 “외모와 나이를 기준으로 20대 여성을 앵커로 기용하면 기자 출신의 부·차장급 남자 앵커와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방송사의 여성 앵커 선발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의 9시 메인뉴스를 맡고 있는 여성 앵커는 모두 6명. 이중 지난 6월 MBC 사내 공모를 통해 아나운서에서 기자로 전직한 김주하 앵커를 제외하면 MBC 박혜진(주말), KBS 정세진(평일)·최원정(주말), SBS 김소원(주중)·윤현진(주말) 등 5명이 모두 아나운서 출신 앵커들이다.

    방송사의 뉴스 앵커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MBC와 KBS의 간판 앵커 백지연 아나운서와 신은경 아나운서는 신입사원 시절 회사의 ‘지명’으로 메인 앵커에 발탁됐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내 오디션을 통한 뉴스 앵커 선발체제로 전환됐다. 하지만 여성 아나운서들은 앵커 선발 과정의 객관적 기준이 모호하다고 주장한다.

    “공개 오디션을 통해 처음에는 아침 종합뉴스 생활정보 코너를 진행한 후 7개월 뒤 주말 9시 뉴스로 이동했다. 2년 뒤 평일 9시 뉴스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과정에서 오디션은 없었고 윗사람들과 평가자들의 평가로 선발됐다고 들었다.”(30대 미혼 아나운서)

    “데스크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앵커가 되느냐 마느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30대 기혼 아나운서)

    SBS는 지난 3월 SBS ‘8시 뉴스’의 여성 앵커를 곽상은 기자에서 김소원 아나운서로 교체했다. 미혼 여성이 앵커로 발탁되는 관행에 비추어 보아 30대 기혼인 김소원 아나운서의 발탁은 매우 이례적이다. 선발 배경에 대해 SBS 유협 아나운서팀장은 “전체 아나운서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공개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고 설명한다.

    KBS 표영준 아나운서국장은 앵커 선발과정에 대해 “자체 오디션을 거치지만 공개적인 것은 아니다. 아나운서의 앵커 자질을 테스트할 수 있는 간단한 프로그램에 투입시켜보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평가를 거친 후 아나운서의 평소 이미지와 경력 등을 고려해 선발한다”고 설명했다. MBC 이윤철 국장도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프로그램을 다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본인의 의지는 참고사항일 뿐 최종결정은 회사 차원에서 이뤄진다”고 밝혔다. 앵커 선발은 아직도 ‘윗선’의 권한임을 짐작케 한다.

    한 인터넷 칼럼니스트는 남성 앵커와 여성 앵커의 나이 차이가 최고 20년 이상 나는 것에 대해 “한국 중년 남성의 ‘영계’ 취향을 그대로 살린 뉴스 포맷”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모 방송국 아나운서팀장은 “여성 앵커에겐 효과적인 뉴스 전달력도 필요하지만 ‘여성으로서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다른 방송사 간부 역시 “여성 앵커는 젊고 예뻐야 한다는 (간부진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한 적도 있지만 결과는 언제나 그런 쪽으로 흐르고 만다”고 씁쓸해했다.

    망가질수록 뜬다?

    “30초 안에 마음을 열어드릴게요! 자신 있어요.”

    SBS의 한 여성 아나운서가 직접 작성한 자신의 홍보문구다. 최근 SBS는 자사 아나운서 29명의 프로필 사진과 홍보문구를 적은 이 같은 홍보물과 엽서, 책갈피를 제작해 시청자와 언론사에 배포했다.

    SBS 유협 팀장은 “각 아나운서의 캐릭터와 장점을 살려서 프로그램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공격적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상업방송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외주 제작부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SBS의 인력활용은 아나운서도 예외가 아니다. 일례로 유 팀장은 주말에 방송되는 ‘사랑해요 우리말’을 꼽는다.

    ‘사랑해요 우리말’은 매회 짤막한 에피소드를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해 올바른 우리말 쓰임새를 알려주는 1분40초짜리 프로그램. 시청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은 이 프로그램에는 ‘특별한 재미’가 하나 있다. 바로 아나운서들의 연기 도전. 단정한 이미지의 아나운서가 서툴고 어설픈 연기로 시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나운서들이 ‘망가지는’ 모습은 명절 특집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는 단골 아이템이다. 해마다 각 방송사의 명절 프로그램에는 으레 아나운서들이 특별출연한다. ‘남자 핑클’로 변신한 왕종근 아나운서, ‘막춤의 끼’를 유감없이 발산한 오영실 아나운서도 명절 특집프로그램에서 의외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른바 ‘멀티 엔터테이너 아나운서’의 원조는 프리랜서로 활동중인 전 SBS 아나운서 유정현과 전 KBS 아나운서 임성민이다. 두 사람은 아나운서의 영역이 지금보다 제한적이던 시절에 이미 연기자와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로 나섰다.

    ‘방송의 꽃’ 여성 아나운서의 세계

    아나운서 실무교육을 받기 위해 사설 방송아카데미를 찾는 사람도 많다.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에는 외모 가꾸기 과정도 포함돼 있다.

    아나운서들의 예능 프로그램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뉴스 진행과 달리 예능 전문MC나 엔터테이너로서의 전문성을 키워가는 아나운서도 적지 않다. KBS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 고정 출연했던 이지연 아나운서는 입사 초부터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다. 각종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얼짱 아나운서’로 꼽히는 강수정 아나운서는 ‘준(準)연예인’이다. KBS ‘일요일은 101%’에서 맹활약중이고 조만간 시트콤에 출연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트콤에 출연했던 SBS 윤현진 아나운서는 드라마국 관계자로부터 진지하게 탤런트 전업을 제안받기도 했다. 이는 아나운서의 영역 ‘확대’라기보다 ‘파괴’에 가깝다.

    “짧은 치마는 안 돼!”

    방송사에서 아나운서의 영역으로는 크게 뉴스 앵커, 스포츠 캐스터, 라디오 DJ 등이 있다. KBS 표영준 국장은 “뉴스를 고집하던 과거와 달리 신세대 아나운서일수록 라디오 DJ나 오락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끼를 발산하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했다.

    아나운서의 영역이 크게 확대됐다고는 해도 아직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텃밭은 아니다. 프리랜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여성 아나운서는 “오락 프로그램에 한번 나가고 나면 아나운서실에서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아나운서의 다양한 활용은 허용하되 이미지 손상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KBS 표영준 국장도 “오락 프로그램 출연에 제한을 두지 않지만, 활동내용이 비(非)아나운서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정한다”고 못박는다. 여기서 ‘비아나운서적’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아나운서라는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치마길이가 너무 짧으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보도국 이외 예능국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아나운서의 기용이 늘어나면서 재능과 인기를 겸비한 아나운서에 대한 러브콜이 잦아졌다. 2001년 입사한 KBS 김경란 아나운서는 부산 MBC에서 1년 동안 경력을 쌓은 후 ‘중앙’에 진출한 케이스. 일찌감치 뉴스 앵커로 발탁돼 오전 6시 ‘KBS 뉴스광장’을 진행했고 영화 소개 프로그램인 ‘토요 영화탐험’의 MC를 맡은 그는 최근 예능국으로부터 황수경 아나운서가 맡았던 ‘열린음악회’와 ‘스펀지’의 후임 진행자로 나서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 아나운서 기용문제로 보도국과 예능국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있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결국 김경란 아나운서는 4개 프로그램을 모두 맡는 행운을 떠안게 됐다.

    공중파 3사에서 매년 선발하는 신입 아나운서는 겨우 10명 안팎이다. 하지만 각 방송사별로 지원자는 1000∼1500명에 이른다. 그나마 올해 SBS처럼 아나운서 공채시험을 치르지 않을 경우 공중파 방송사의 문은 더욱 좁아진다.

    공중파 방송사가 아니라도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각종 지역민방 등을 포함해 방송진행자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고 있지만, 아나운서 지망생 대다수는 공중파 3사에 입사하기를 희망한다. SBS 방송아카데미 황인우 교수는 “아나운서 지망생의 수가 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고 보기 어렵지만 ‘준비된 지원자’는 무척 늘어났다”고 전한다.

    숙명여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발레단 단원으로 입단했던 아나운서 지망생 황정현(25)씨는 발레단을 그만두고 지난해 여름부터 방송사 아나운서 공채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춘천 MBC에서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지금까지 공중파 방송사를 포함해 10번 이상 아나운서 시험을 치렀다.

    재수는 필수, 7전8기는 기본

    단 한 번의 시험에 합격한 MBC 김주하 앵커는 매우 특별한 경우로 꼽힌다. ‘재수는 필수’이고 10여 차례 떨어진 지원자도 수두룩하기 때문. 2002년 KBS 28기로 입사한 강수정 아나운서도 SBS 최종 면접에서 7번 고배를 마신 후 8번째 도전에 성공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채용 일정이 있는 모든 방송사에 응시한다. 황정현씨는 “지난해 KBS 아나운서시험 2차까지 합격했다. 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면 거의 모든 시험에 응시했다”며 “방송사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선발기준도 모호해 운을 잘 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아나운서 실무교육을 받기 위해 사설 방송아카데미를 찾는 사람들은 대학교 3, 4학년이 대부분. 이들은 주로 대학 방송반, 방송아카데미, 방송국 입사의 단계를 거친다. 최근에는 아예 신입생 때부터 지역 방송사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며 방송경력을 쌓은 후 방송사 공채시험에 도전하는 실속파도 적지 않다.

    아나운서란 음성언어로 정보 전달을 하는 전문가다. 따라서 목소리가 좋고 발음이 정확해야 하는 것은 필수조건. 하지만 영상매체의 특성상 ‘호감 가는 인상’은 무시할 수 없는 조건으로 굳어졌다. 2년째 방송사 아나운서 공채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최모(24)씨는 “양쪽 턱이 약간 각졌을 뿐인데 화면에는 심한 사각 턱처럼 보여 성형수술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지난해 모 방송사 3차 면접까지 올라갔다는 김모씨는 “교통사고로 얼굴을 다치는 바람에 아나운서의 꿈을 접고 일반 회사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모 방송사 메인 여성 앵커의 면접 일화 한 토막. 10년 전 아나운서 면접시험을 치른 그는 보라색 펄 아이섀도와 바둑판 무늬 정장을 입고 시험을 치렀다. 시험 공부만 했지, 메이크업이나 의상엔 전혀 관심이 없던 그는 방송 아나운서들이 펄이 들어간 아이섀도나 색깔이 번져 보이는 바둑무늬 옷을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하지만 요즘 아나운서 지망생들 사이에서 이 정도는 상식에 속한다.

    아나운서 지망생 황정현씨는 “의상과 외모는 필기시험 준비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같이 스터디하는 친구들과 서로에게 어울리는 의상을 조언해주고 내게 가장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찾기 위해 자주 머리모양을 바꾼다”고 말했다. 아나운서 지망생 오모씨는 “이제 쌍꺼풀 수술 정도는 간단한 ‘조치’에 속한다. 요즘엔 보톡스를 맞는 사람도 많고 남자 아나운서 지망생도 텔레비전에 맞는 골격이 되도록 다이어트에 열심이다”고 전했다.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외모 가꾸기는 방송아카데미에서 실시하는 아나운서 실무과정의 커리큘럼에도 포함돼 있다. 봄온아카데미 성연미 대표는 “화면 속에선 장점은 작게, 단점은 크게 부각되기 때문에 얼굴이 조금 큰 사람은 ‘매우 큰 얼굴’로 비쳐진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메이크업 등에 대해 꼼꼼하게 조언한다”고 했다.

    따로 드는 ‘품위유지비’

    방송사 신입 아나운서의 연봉은 3000만∼3500만원 선. SBS의 경우 4년 전부터 능력급제를 적용해 1년에 두 번씩 실적에 따라 연봉을 책정한다. 방송국 소속 아나운서들은 기본급 외에도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별도의 출연료를 받는다. 텔레비전은 회당 2만원, 라디오는 회당 7000∼1만원이다. 방송사에 소속된 아나운서는 광고에 출연하는 것도 엄격히 제한된다. 한 사람이 여러 개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거나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다고 해도 개인의 ‘몸값’이 오르거나 별도의 부수입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나운서는 ‘직장인’이자 ‘방송인’이다. 방송국 소속의 코디네이터와 메이크업 담당자가 있지만, ‘외모 경쟁’에 민감한 여성 아나운서들은 의상비, 소품, 메이크업 등 별도의 ‘품위유지비’를 지출한다. 얼마 전 재테크 서적을 펴낸 SBS 최영주 아나운서가 “10년 넘게 일했지만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더라”고 한 게 전혀 근거없는 말이 아니다.

    아나운서가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길은 프리랜서로 독립하는 것이다. 일단 방송사를 나오면 몸값이 최소한 두 배 이상 오른다. KBS 아나운서 출신인 정은아씨는 KBS ‘아침마당’으로 입지를 굳힌 후 프리랜서로 나섰다. 각종 CF 출연은 물론 방송 3사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씨는 프리랜서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 ‘아침마당’의 현재 진행자인 이금희씨도 프리랜서 선언 이후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그래서 프리랜서로 성공하려면 주부대상 프로그램을 잡으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최근에는 MBC 박나림 아나운서와 SBS 정지영 아나운서가 홀로서기 대열에 합류했다.

    해마다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닮고 싶은 사람’ 설문조사를 하면 여성 1위는 언제나 아나운서(또는 앵커)가 차지한다. 최근 한양대 디지털경제학부 김재원 교수가 20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닮고 싶은 인물’에도 1위 MBC 김주하 앵커를 비롯해 MBC 김은혜 앵커, 전 SBS 한수진 앵커가 10위권에 올라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휴가를 두 번밖에 못갔다”는 한 현직 여성 아나운서의 한숨 섞인 푸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아한’ 백조처럼 방송사의 수많은 여성 아나운서들이 오늘도 얼마나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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