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식인 동물에 대한 문화 생태학적 고찰 ‘신의 괴물’

  • 글: 김연수 소설가 larvatus@hanafos.com

    입력2004-11-25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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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인 동물에 대한 문화 생태학적 고찰 ‘신의 괴물’

    ‘신의 괴물’ 데이비드 쾀멘 지음/이충호 옮김/푸른숲/660쪽/2만8000원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이라는 책이 있다. 지구상에서 멸종된 동물들의 이름과 생김새, 멸종 사연을 수록한 책이다. 여기에 나오는 멸종동물은 예쁜 생김새 때문에 인간에 마구잡이로 포획돼 멸종한 종부터 무섭게 생겼다는 이유로 멸종된 구아다루프 카라카라의 애처로운 얘기까지 다양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20세기 이후 인간은 어떤 동물이라도 멸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됐다.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멸종되는 동물이 있는데, 태초 이래 인간을 괴롭혀온 육식 맹수들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1998년 멸종된 새 도도의 생태를 연구한 ‘도도의 노래’로 지구 생물의 진화와 멸종의 본질을 파헤쳤던 데이비드 쾀멘의 새 책 ‘신의 괴물’은 바로 육식 맹수들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탐사 보고서다.

    이 책은 육식 맹수와 인간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공포가 생겨났으며 그 공포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화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예컨대 우리는 성경의 ‘욥기’나 ‘시편’에 등장하는 사자, ‘베오울프’에 나오는 식인괴물 그렌델, ‘길가메시’에 나오는 훔바바, ‘에누마 엘리시’의 티아마트 등을 통해 인간이 육식 맹수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 수 있다. 쾀멘이 옛 문헌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이 책을 시작한 까닭은 육식 맹수가 멸종된다면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무의식을 지배해온 어떤 관념도 없어지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맹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쾀멘은 인도, 루마니아, 러시아 등을 직접 돌아본 뒤 이 탐사여행기를 썼다. 그가 지구의 오지에서 힘겹게 야생의 삶을 유지하는 육식 맹수들을 찾아낼 때마다 그들 곁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었다. 그리하여 쾀멘은 대형 맹수들의 생태뿐 아니라 그 곁에서 위험한 삶을 살아가는 원시부족들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한편 그는 맹수들을 둘러싼 현대의 문화도 빼놓지 않는다. 예컨대 악어에게 잡아먹힌 윌리엄 올슨에 대한 기사로 시작하는 4장 ‘우리는 악어로 태어난다’에서는 인도의 소만악어 방류와 악어가죽 시장, 호주의 악어가죽 붐 등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쾀멘은 육식 맹수의 생태학을 쓰되, 반드시 인간을 포함시킨다.



    이 책에서 제일 먼저 찾아가는 인도 기르 숲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아시아 사자의 마지막 야생 은신처인 기르에서는 물소를 키우는 말다리 주민이 사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쾀멘은 아시아 사자의 조상과 이주 경로, 생활상을 마치 여행 일지처럼 담담하면서도 상세하게 묘사한다.

    기르 숲을 떠난 저자는 소만악어를 조상으로 숭배하는 호주 대륙 북부의 아넘랜드 보호구역, 치즈를 만드는 양치기들과 갈색곰이 불안하게 공존하는 루마니아 카르파티아 산맥의 고산 목초지, 시베리아호랑이가 소, 사슴, 멧돼지를 놓고 우데게족 사냥꾼과 경쟁하는 러시아 극동 지역의 눈 덮인 비킨강 골짜기 등으로 종횡무진 탐사를 떠난다. 하지만 이 탐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식인 맹수가 아니라 식인 맹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대화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물론이지요. 가축을 잃는 일은 종종 일어납니다.” 키마 바이가 말했다.

    “늙거나 약한 동물만 희생되는 게 아니오. 때로는 아주 훌륭한 물소를 잃을 수도 있소.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키마 바이는 그런 가혹한 현실도 자신에겐 익숙한 일이라는 듯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본심을 좀더 알고 싶었다.

    “만약 말입니다. 지금 숲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자의 공격과 가축의 희생,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이 다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그곳에서 살아가겠습니까?”

    “물론이죠. 우리 모두는 기꺼이 그럴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 책에는 육식 맹수와 인간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것이 여느 생태학서와 이 책이 다른 이유다. 동물원을 찾아가지 않는 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육식 맹수를 만날 일은 없지만, 세계 곳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맹수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이 책에는 그런 사례가 너무도 많이 등장한다. 그 수많은 사례를, 그것도 실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그대로 인용해 소개한 데에는 쾀멘의 특별한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하다. 육식 맹수의 생태학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는 자연스럽게 맹수의 멸종이 인류에게 합당한 일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 나와 있다시피 육식 맹수들과 인간은 최소한 3만5000년 동안이나 심리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하지만 쾀멘은 불행히도 이들 육식 맹수들이 2150년이면 멸종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구가 증가하고 숲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동물들은 살 곳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태학적으로 볼 때 육식 맹수들이 사라지면 그 동물들의 먹이에 해당하는 동물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은 당장 삶의 중요한 요소를 잃게 된다. 그들이 모두 ‘길가메시’ 같은 서사시를 쓰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런 서사시를 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한편으로는 우리 무의식에 오랫동안 각인돼온 식인 맹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먹이사슬의 파괴나 육식 맹수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이 더 이상 씌어지지 않는다는 데 숨어 있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예컨대 데이비드 에렌펠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시 말해서 인구가 더 늘어나고 산업화, 도시 성장, 표준화, 기업 합병이 일어난다. 더 큰 조직과 동력에 의존하는 소비재와 관광이 늘어나고 더 정교한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군사 예산이 증가하며 광고와 이미지 메이킹도 늘어난다. 개인적 취향의 여지는 대폭 축소되고 농업의 기계화와 화학 영농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적 취향의 여지가 대폭 축소된다는 점이다. 20세기가 되면서 인간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한 동물을 멸종시키는 체제를 만들었다. 이 체제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취향은 동일해져야만 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동일한 미감(美感)을 갖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럼에도 산업화와 표준화는 단일한 취향을 인간에게 강요했다. 그건 생산 효율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다양한 분별력 상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가 되면 인간은 이전에 지녔던 다양한 분별력을 상실하게 된다. 육식 맹수와 직접적으로 삶이 연결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연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을 더 알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차이를 통해서 끊임없이 성장한다. 어떻게 보면 육식 맹수와 인간이 수만 년 동안 상호 관계를 맺은 결과 인간은 20세기 들어 육식 맹수를 완전히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육식 맹수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관계를 맺지 않은 인간들만 살아가는 세상보다 훨씬 더 창의적일 수 있다.

    여기서 육식 맹수의 멸종을 단순히 먹이사슬의 파괴로만 볼 일이 아니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언젠가 미국 수우족 인디언 추장인 ‘시팅불’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미 제7기병대를 전멸시킨 시팅불이 결국에는 뉴욕극장에서 ‘인디언쇼’를 펼치는 장면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각종 식물원, 동물원, 박물관이 늘어나는 게 이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본다. 집 앞에 있는 나무와 꽃과 새를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연다큐멘터리에 열광하는 것이야말로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우리가 전세계를 찾아다니며 육식 맹수의 생태를 관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주변에 있는 동식물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전언(傳言)이다. 이 책에는 육식 동물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건 그들이 있는 한 육식 동물이 완전히 멸종하는 일이 조금이나마 늦춰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멸종 위기에 처한 육식 맹수에 대한 자연사를 다뤘다기보다는 현대인의 표준화된 취향이 가져올 파국에 대한 많은 암시를 담고 있다. 인간은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볼 때 발전한다. 내게 길들여진 것은 나를 향상시키지 않는 법이다. 야생 육식 맹수의 존재가 여전히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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