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괴물’ 데이비드 쾀멘 지음/이충호 옮김/푸른숲/660쪽/2만8000원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멸종되는 동물이 있는데, 태초 이래 인간을 괴롭혀온 육식 맹수들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1998년 멸종된 새 도도의 생태를 연구한 ‘도도의 노래’로 지구 생물의 진화와 멸종의 본질을 파헤쳤던 데이비드 쾀멘의 새 책 ‘신의 괴물’은 바로 육식 맹수들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탐사 보고서다.
이 책은 육식 맹수와 인간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공포가 생겨났으며 그 공포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화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예컨대 우리는 성경의 ‘욥기’나 ‘시편’에 등장하는 사자, ‘베오울프’에 나오는 식인괴물 그렌델, ‘길가메시’에 나오는 훔바바, ‘에누마 엘리시’의 티아마트 등을 통해 인간이 육식 맹수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 수 있다. 쾀멘이 옛 문헌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이 책을 시작한 까닭은 육식 맹수가 멸종된다면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무의식을 지배해온 어떤 관념도 없어지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맹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쾀멘은 인도, 루마니아, 러시아 등을 직접 돌아본 뒤 이 탐사여행기를 썼다. 그가 지구의 오지에서 힘겹게 야생의 삶을 유지하는 육식 맹수들을 찾아낼 때마다 그들 곁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었다. 그리하여 쾀멘은 대형 맹수들의 생태뿐 아니라 그 곁에서 위험한 삶을 살아가는 원시부족들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한편 그는 맹수들을 둘러싼 현대의 문화도 빼놓지 않는다. 예컨대 악어에게 잡아먹힌 윌리엄 올슨에 대한 기사로 시작하는 4장 ‘우리는 악어로 태어난다’에서는 인도의 소만악어 방류와 악어가죽 시장, 호주의 악어가죽 붐 등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쾀멘은 육식 맹수의 생태학을 쓰되, 반드시 인간을 포함시킨다.
이 책에서 제일 먼저 찾아가는 인도 기르 숲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아시아 사자의 마지막 야생 은신처인 기르에서는 물소를 키우는 말다리 주민이 사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쾀멘은 아시아 사자의 조상과 이주 경로, 생활상을 마치 여행 일지처럼 담담하면서도 상세하게 묘사한다.
기르 숲을 떠난 저자는 소만악어를 조상으로 숭배하는 호주 대륙 북부의 아넘랜드 보호구역, 치즈를 만드는 양치기들과 갈색곰이 불안하게 공존하는 루마니아 카르파티아 산맥의 고산 목초지, 시베리아호랑이가 소, 사슴, 멧돼지를 놓고 우데게족 사냥꾼과 경쟁하는 러시아 극동 지역의 눈 덮인 비킨강 골짜기 등으로 종횡무진 탐사를 떠난다. 하지만 이 탐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식인 맹수가 아니라 식인 맹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대화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물론이지요. 가축을 잃는 일은 종종 일어납니다.” 키마 바이가 말했다.
“늙거나 약한 동물만 희생되는 게 아니오. 때로는 아주 훌륭한 물소를 잃을 수도 있소.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키마 바이는 그런 가혹한 현실도 자신에겐 익숙한 일이라는 듯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본심을 좀더 알고 싶었다.
“만약 말입니다. 지금 숲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자의 공격과 가축의 희생,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이 다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그곳에서 살아가겠습니까?”
“물론이죠. 우리 모두는 기꺼이 그럴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 책에는 육식 맹수와 인간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것이 여느 생태학서와 이 책이 다른 이유다. 동물원을 찾아가지 않는 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육식 맹수를 만날 일은 없지만, 세계 곳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맹수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이 책에는 그런 사례가 너무도 많이 등장한다. 그 수많은 사례를, 그것도 실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그대로 인용해 소개한 데에는 쾀멘의 특별한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하다. 육식 맹수의 생태학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