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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관광통역안내사의 그늘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하루 10시간 뼈 빠지게 일해도 일당 1만2000원, 사고라도 당하면 쫓겨나는 신세”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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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엔화 강세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다. 관광객이 붐비는 공항 풍경.

강 사무국장은 2007년 안내사협회가 조사한 자료를 꺼내 보였다. ㅎ여행사의 직원 월급 체계는 두 개로 나뉘어 있다. 직원은 기본급 10만원, 상여금 300%에 안내수당 5000원. 전속파트는 기본급 및 상여금이 없는 대신 안내수당이 1만5000원이다. 안내수당은 가이드가 투어를 이끌 경우 받는 수당. 프리랜서는 보통 전속파트직과 같은 수준의 보수를 받는다. ㅎ여행사 정규직이 한 달 내내 일해 안내수당을 30일치 받을 경우 급여명세서에 찍히는 금액은 25만5000원이 된다. 물론 여기서 국민연금, 의료보험료 등이 공제되기 때문에 실수령액은 더 적다. 전속파트나 프리랜서는 20만원쯤 많은 45만원까지 벌 수 있지만, 사고가 나면 아무 보호대책 없이 내몰리게 된다.

“이 자료를 만든 건 그 무렵 가이드들 사이에서 비정상적으로 낮은 임금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회원들을 찾아다니며 임금을 조사하고 ‘힘을 합치자’고 얘기한 가이드들이 여행사에 찍혀 불이익을 당하면서 권리 주장 요구가 쑥 들어갔죠. 그때나 지금이나 임금은 거의 비슷할 겁니다. 그러다가 이번 일이 생긴 거예요.”

처우 개선 요구하면 ‘블랙 리스트’

당시 ‘불이익’을 당한 이들 가운데는 김아미(43) 제주관광통역안내사노조 위원장이 있다. 그는 1990년부터 일해온 경력 20년차 베테랑 가이드. 그러나 2007년 이후 한 달에 1~2건씩 중소여행사의 일을 받는 것 외에는 사실상 휴업 상태다.

“그때 제주도에 있는 여행사들 사이에서 ‘블랙 리스트’가 돌았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13명의 주동자에게는 투어를 맡기지 말라는 내용이었죠.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ㄹ사, ㅎ사 같은 대형업체들이 이 일을 주도했고, 실제로 그때부터 일이 뚝 끊겼어요. 그전까지는 일을 골라 하는, 제법 잘나가는 가이드였는데 말이죠.”



그가 대단한 걸 요구한 것도 아니다. 요구사항의 핵심은 관광통역안내사의 일비(日費)를 3만원으로 인상해달라는 것, 그리고 고용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IMF 이전까지만 해도 가이드들은 박봉일지언정 대부분 정규직으로 일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으로 비정규직이 확산되자 여행사들도 앞 다퉈 정규직 가이드 채용을 중단하고 전속파트나 프리랜서 같은 고용 형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임신, 출산 등을 이유로 한 해고 사태가 줄지어 벌어졌다. 정규직 가이드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행사를 폐업한 뒤 다른 이름으로 다시 개업하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경력 20년차 일본어가이드 B씨에 따르면 부산 화재 사고로 사망한 문씨 역시 1989년 자격증을 취득한 뒤 처음에는 ㅅ여행사에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그런데 ㅅ여행사가 2005년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문제는 ㅅ여행사의 경영진이 곧바로 이름도 똑같은 ㅅ관광이라는 여행사를 차린 뒤 가이드를 제외한 직원 대부분을 다시 채용했다는 점이다.

“갑자기 실직 상태가 된 가이드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어요. 이미 다른 여행사에서도 정규직은 뽑지 않는 상황이었는데요. 결국은 그동안 쭉 같이 일해온 ㅅ관광에 가서 전속파트 형태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거의 모든 가이드가 그 회사에 다시 들어갔죠. 같은 사람들이랑 똑같은 일 하면서 신분만 비정규직으로 바뀐 채로요. 이번에 문 여사님 사고 나니까 ‘고용 계약이 없는 비정규직’이라는 얘기가 바로 나오는데, 이런 속사정 다 아는 우리들은 그 얘기 들으면 아주 분통이 터져요.”

2007년의 단체행동 시도가 무위로 끝나면서 가이드들의 고용 문제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그래도 당시 노력 덕분에 조금이나마 급여를 올린 회사들이 있다. 여행사들 사이에서 일단 관광통역안내사들을 잠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국내 굴지의 여행사에 근무하는 정규직 가이드 C씨도 그때 이후 임금이 ‘소폭 인상’됐다고 했다. 그의 2009년 11월 소득명세서를 봤다. 기본급 18만6000원, 통역안내사 수당 18만6000원이 찍혀 있다. 총 소득액은 37만2000원이다. 여기서 국민연금 1만8040원, 고용보험료 1674원, 의료보험료 2만6610원, 노동조합비 1만원을 제하고 31만5676원을 수령했다. “2007년까지 10만원이던 기본급이 이후 몇 번의 인상 덕에 18만6000원으로 올랐어요. 안내수당도 5000원에서 6000원이 됐지요. 지난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서 수당 18만6000원을 받은 겁니다. 전속과 프리랜서의 안내수당도 2만~3만원 수준으로 올랐다고 들었어요. 예전과 비교하면 오른 건 사실인데 총 수입이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죠. 일이 적은 달에는 여전히 손에 쥐는 돈이 30만원이 채 안 돼요.”

물론 이 액수가 C씨 수입의 전부는 아니다. 가이드들은 관광객의 쇼핑 및 옵션 구매에 따라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는다. 문제는 기본 급여로 생활할 수 없는 이들에게 쇼핑 및 옵션 판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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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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