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 발언으로 ‘국격’에 먹칠

천신일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이 같은 천 회장의 증언으로 우리나라 체육계는 충격에 빠졌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심판을 매수? 대한레슬링협회장 진술이 파문’이라는 제목으로 상세히 보도하는 등 신속히 외신을 탔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국격(國格)’에 먹칠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대한체육회 측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 실추가 예상된다”고 했다.
강원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공동위원장인 김진선 강원지사는 1월8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기본적으로 좋은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취재 결과, 천 회장 발언은 당일 IOC와 국제레슬링연맹에 바로 전해졌다. IOC와 국제레슬링연맹 측은 대한레슬링협회 측에 “문서로 경위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사실상 진상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일부 국내 언론은 “천 회장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 일각이 드러난 셈”이라고 보도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은 심판 판정과 관련해 석연찮다는 시선을 받았다”며 22년 전의 ‘뜬소문’까지 기사화됐다. 그러나 우리가 이처럼 ‘자학’하고 국제사회에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처신하기 이전에, 검증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천 회장의 ‘베이징올림픽 심판 돈 매수’가 실제로 있었던 사실인지 여부다.
천 회장은 어떤 심판에게 얼마를 줬는지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진술에서 특이한 부분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인 그가 ‘직접’ 외국심판들에게 돈을 줬다는 점이다. 매개자 없이 직접 뇌물을 주고받으려면 적어도 양 당사자는 서로 아는 사이여야 하며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국제레슬링계가 구제불능한 부패의 온상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다.
“호텔 달랐고, 심판 만난 적 없다”
천 회장과 외국심판의 관계, 베이징올림픽 기간 양자(천 회장-올림픽 심판) 간 접촉 상황, 심판 매수를 통한 승부조작 여지, 레슬링종목 올림픽심판 사회의 문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 주장의 신빙성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베이징올림픽 당시 천 회장의 동선(動線)과 레슬링 심판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김기정 대한레슬링협회 전무(국제심판)와 국제레슬링연맹 심판위원회 김익종 부위원장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서로 번갈아 말했는데 그 내용이 서로 일치했다. 다음은 이들과의 일문일답이다.
▼ 베이징올림픽의 레슬링 종목 심판은 몇 명이며 어떻게 선발됐나.
“모두 60여 명이었다. 국제심판은 1,2,3등급이 있는데 1등급 심판 중에서 올림픽심판을 선발한다. 나라별로 1~2명만 선택될 뿐이다.”
▼ (천 회장이 ‘특급심판은 내가 직접, 1급 심판은 레슬링협회 간부가 돈을 줬다’고 한 것과 관련해) 올림픽 기간 중 심판진이 특급, 1급으로 구분됐나.
“아니다. 모두 1등급일 뿐이다.”
▼ 레슬링종목 심판진과 천 회장은 같은 호텔에 묵었나.
“아니다. 레슬링 심판 전원은 선수촌 인근 호텔에 함께 기거했다. 반면 천 회장 등 대한레슬링협회 관계자들은 거기서 자동차로 상당히 떨어진 도심 메리어트호텔에 숙박했다.”
올림픽 기간 중 레슬링종목 심판진과 천 회장이 같은 호텔에 묵었다면, 천 회장과 심판은 화장실이나 복도에서 자연스럽게 접촉했을 수 있다. 확인 결과 그 가능성은 사라졌다. 천 회장과 심판의 접촉 여부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이 문제를 더 물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