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험생, 대학생, 직장인, 요즘엔 초등학생도 이런 혼잣말을 할 때가 있다. 이러다가도 “영어가 뭐길래는 영어로 뭐지?”라고 되묻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영어 강박증을 안고 산다.
‘오, 마이 잉글리쉬(Oh, My English!)’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초등학생도 42%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2007년 1~6월 ‘영어 정복’을 위해 ‘나 홀로’ 출국한 초등학생이 4503명. 그해 우리나라 전체 사교육비가 35조 원인데 이 중 영어 사교육비가 42.8%인 15조 원에 달했다.
김도연 낙마로 날아간 꿈
5년 전인 2008년 이맘때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들은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대입 수험생을 포함해 어린이와 청소년이 영어 스트레스 안 받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이들이 내놓은 각론은 ‘대입 수능시험에서 영어 빼버리기’였다. 이 계획은 실행 일보 직전까지 갔다.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그해 4월 28일 “2012년부터 수능시험에서 영어과목을 폐지하고 국가주관 영어자격시험으로 대체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자격시험은 점수가 아니라 통과냐, 통과 실패냐만을 측정하는 시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전에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가 두 달간 이 안(案)을 가다듬었다. 김 장관의 윤성욱 당시 정책보좌관(현 자유총연맹 대변인)은 이 안이야말로 ‘MB식 실용(實用)’의 성공모델이 될 뻔했다고 말한다.
“영어가 중요한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영어 점수가 대입 당락과 인생 진로의 결정요인이 되고 있어 모든 청소년이 영어에 매달리고 괴로워합니다. 이건 잘못된 겁니다. 대입에서 영어 변별력을 무력화하면 초·중·고교생이 영어 스트레스에서 확실히 해방됩니다.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도 대폭 줄죠. 국가가 각 가정에 월 수십만 원씩 현찰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사실상 그런 지원 효과를 내는 거죠.” (윤 전 보좌관)
대학이 반대하지 않을까. 당시 교육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언론 발표 전 서울 주요 7개 대학 입시책임자들에게 의견을 구했더니 모두 찬성했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까. 당시 관계자들은 초·중·고 10년 영어 배우고 생활영어도 구사하지 못하는 게 우리 현실 아니냐고 반문한다. 공교육이 입시영어 대신 실용영어를 가르치게 되어 청소년의 회화 실력이 더 좋아질 걸로 본다.
김도연 장관과 청와대는 교육정책을 놓고 드러내지 않게 힘겨루기를 했다. ‘수능 영어 폐지’도 엇갈린 것 중 하나였다. 이런 가운데 광우병 촛불시위 사태가 발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영어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여기에다 교육부 국·실장들이 모교를 방문해 예산으로 후원을 약속해준 일이 보도됐다. 청와대 쪽에서 언론에 흘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김 장관은 이 스캔들을 버텨내지 못하고 물러났다.
후임 안병만 교육부 장관은 2010년 3월 ‘김도연 안’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꺼져가는 불씨였다. 이주호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이 교육부 장관이 된 뒤 이 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재정 안 들이고 고충 더는 일
박근혜 대통령은 서민·중산층 가계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일을 하겠다고 한다. 창조, 미래, 교육의 중요성도 자주 언급한다. 실제 수십조 원의 복지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수혜자가 피부로 느낄 만한 그 무엇을 내놓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영어와 사교육비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 이상으로 정부 재정 안 들이고 국민의 고충을 덜어주는 일이 있을까 싶다. 전임 정권의 아이디어라도 유익하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자기 정책이 된다.
정부가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어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든 우리는 모두 같은 달과 별 아래 살고 있습니다(No matter what language we can speak, we all live under the same moon and stars)”라고 말한다면 멋진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