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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의 Face to Face 22

신(神)에게 무릎 꿇은 ‘한국 대표 지성’ 이어령

“나 아닌 사람을 진정 사랑한 적이 있던가”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신(神)에게 무릎 꿇은 ‘한국 대표 지성’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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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표정은 다소 초췌했다. 심한 감기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목소리엔 생기가 넘쳤다. 앞머리가 기운차게 위로 빗겨 올려져 있다. 자신감이 가득 찬 그는 여전히 날선 지식인이었다.

▼ 책을 내고 나서 자괴감이 들지는 않았습니까.

“책이라는 것은 내고 나서 늘 불만스럽기 때문에 또 내는 거예요. 내가 많은 책을 냈다고 하지만 사실은 한 권의 책도 못 낸 거지요.”

지적 호기심의 막다른 골목

▼ 이 책은 이전에 이 선생께서 냈던 다른 책들과는 성격이 완연히 다르지요.



“비교적 자괴감이 없었던 것은, 신앙심을 얘기한 게 아니라 문지방에 이른 과정을 썼기 때문이에요. 무신론자가 신을 영접하기까지의 과정. 남녀관계로 치면 아직 약혼도 안 한 단계의 얘기지요. 결혼해 애를 낳는 게 진짜 신앙생활이라면. 자랑도 아니고 깊은 참회도 아니고 프로세스를 얘기한 거지.”

▼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와 ‘무신론자의 기도’를 잇달아 낸 데는 출판사의 상업적 의도가 보입니다.

“물론 출판사는 다 상업적이지요. 내가 (신문에) 광고를 자주 내지는 말라고 했어요. 저자가 출판사한테 광고 내달라고 부탁하는 게 정상인데.”

▼ 광고, 엄청 하던데요.

“엄청나게 때리고 있어요. 그분(출판사 대표)이 크리스천이에요. 돈도 돈이지만 이 기회에 자기 사역을 하겠다는 거지. 그 사람 열성이 아니면 그 책 못나왔어요. 아마도 출판하면서 광고를 몇 개 내겠다고 신문사와 계약을 한 것 같아요.”

▼ 기독교는 흔히 각(覺)의 종교가 아니라 신(信)의 종교라 하지요. 기독교로 귀의했지만 여전히 지성과 영성이 양립하는 게 아닙니까.

“양립하는 게 아니라 넘어서는 거지요. 지성의 궁극에는 영성이 있다는 거지요. 지적 호기심이라는 게 뭡니까. 돈 벌려고 지적 호기심을 갖나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 영성을 믿는다는 것은 지극히 순수하다는 점에서 지적 호기심과 같아요.”

▼ 지적 호기심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나요?

“지적 호기심의 막다른 골목에서 맞닥뜨린 거죠. 내가 교토에 머물며 혼자 밥 지어 먹으면서 연구소 생활한 것 자체가 이미 종교적인 행위였던 거예요. 기사, 비서, 가정, 직장 다 버리고 떠난 것 아닙니까. 일흔이 넘어 내 인생을 바라보면서 내 삶이란 게 뭔지 되돌아본 거죠. ‘무신론자의 기도’를 쓴 것도 그때예요.”

▼ 그때만 해도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이었죠. 믿음 얘기가 아니지요. 당신의 능력을 빌려줘서 무지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쓰게 하소서, 했지. 그러니까 심미주의자의 기도지. 혼자 살면서 고민한 주제는 평범한 사랑이었어요. 나 아닌 사람을 진정 사랑한 적이 있는가. 물론 나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지요. 에로스든 아가페든 필리아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이기주의적인 나르시스적인 사랑이지. 자기를 사랑한 거지. 딸이나 아내나 이웃을 사랑한 게 아니라. 더군다나 나는 필리아가 없는 사람이거든요. 부모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좀 있었는지 몰라도 이웃에 대한 사랑, 동료에 대한 사랑, 이른바 횡적인 사랑은 평생 안 했던 사람이에요. 릴케가 뮈조트의 성 안에서 시를 썼듯이 밀실 속에 나를 가두었지. 남과의 단절 속에 상상력도 생기고 지적 호기심도 생기는 거지. 남하고 섞이면서 나오는 문학은 4·19 이후 끊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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