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두나에 있는 눌라보 링크스 1번 홀. 페어웨이에 엉성하게 풀은 있지만 그린은 검은 화산암 모래다.(왼쪽) 캘굴리의 눌라보 링크스 스타트 홀에서 필자는 장정의 첫발을 뗐다.(오른쪽)
‘호주에 세계 최장(最長) 골프코스 개장, 서호주와 남호주, 두 개의 주에 걸친 전장 1365㎞, 18홀 코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골프코스가 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온갖 궁금증으로 열병을 앓다가 2010년 12월 초, 그곳 눌라보 링크스(Nullarbor Links) GC에서 직접 라운드할 기회를 잡았다. 아쉽게도 라운드 동반자를 구할 수 없어 ‘나 홀로’ 골프를 즐길 수밖에 없었다.
18홀을 라운드하는 길은 두 가지다. 남호주(South Australia)에서 1번 홀부터 티오프해 서호주(Western Australia)에서 18번 홀을 마치든가, 아니면 역으로 돌아 남호주 1번 홀에서 마감하는 것이다. 필자는 후자를 택했다.
티오프를 하러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홍콩발 캐세이 퍼시픽을 타고 서호주 주도 퍼스(Perth)에 내려 렌터카를 빌렸다. 퍼스에서 명소인 웨이브 록(Wave Rock)을 들르느라 살짝 우회했지만, 18번 홀이 자리 잡은 캘굴리(Kalgoorlie)까지 가는 데만 830㎞, 육로만 이틀이 걸렸다.
서호주는 하나의 주(州)지만 남한의 33배나 되는 땅에 인구는 220만명에 불과하다. 캘굴리는 인구 3만5000명에 불과하지만 150만 인구의 퍼스에 이어 서호주 제2의 ‘큰’ 도시다.
‘금보다 물이 더 귀한 곳’
캘굴리는 부(富)의 원천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도시로 세계 최대의 노천금광, 슈퍼 핏(Super Pit)이 있는 곳이다. 이 도시의 거리를 걷노라니 이 골목에서 게리 쿠퍼가, 저 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쌍권총을 뽑아들고 튀어나올 것만 같다.
지난해 7월 이곳에 걸출한 골프코스 캘굴리GC가 탄생했다. 선수 시절에도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은퇴 후 코스 설계자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레이엄 마시가 디자인한 이 18홀 챔피언 코스는 곧바로 세계 10대 사막코스에 들었다. 캘굴리는 해발 400m가 넘는 고원 사막지대에 있어 ‘금보다 물이 귀한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 골프코스에 사용되는 물은 퍼스 인근에서 500㎞가 넘는 파이프라인으로 끌어온다. 이 코스의 1번 홀이 눌라보 링크스의 17번 홀이 되고 2번 홀이 18번 홀로 사용된다.
이곳 프로숍에서 눌라보 링크스 GC 스코어 카드를 50호주달러(6만원 상당)에 사서 두 홀을 치고 나니 17, 18번 홀 빈칸에 작은 스탬프를 찍어줬다. 다음 16번 홀 티잉그라운드에 서기 위해 렌터카를 운전해 남쪽으로 60㎞를 달렸다. 15번 홀은 캄발다 마을에 있는 캄발다 GC 1번 홀이다.
그런데 실망이 적지 않았다. 나타나는 홀들이 전형적인 중동 스타일의 사막 골프코스였다. 페어웨이는 맨땅이고 그린은 모래에 폐유를 뿌려 잔디 흉내만 낸 것이었다. 중동의 사막코스에서는 페어웨이 샷을 할 때 매트를 깔고 그 위에 공을 얹어놓고 스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눌라보 링크스에선 무조건 있는 그대로 샷을 해야 한다.
캄발다에서 남쪽으로 130㎞ 내려가니 금광마을, 노스만이 나왔다. 이곳 노스만 GC의 1번 홀이 눌라보 14번 홀이 되고 노스만 GC 2번 홀이 눌라보 13번 홀이 된다. 이 골프코스도 맨땅 페어웨이, 기름 모래 그린.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노스만은 눌라보 평원의 서쪽 끝이자 에어 하이웨이(Eyre Highway)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노스만에서 애들레이드까지 2000㎞에 육박하는 포장도로가 준사막지역을 가로지르고 있으니 대단한 역사(役事)임이 분명하다. 에어 고속도로를 따라 골프코스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눌라보 평원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상권을 활성화하자는 목적으로 에어 고속도로 운영협회가 냈다.
노스만에서 동쪽으로 100㎞를 달리면 눌라보 평원에서 처음 자리 잡은 목장 프레이저 레인지가 나온다. 단 두 채의 집에 4명이 살고 있는 이곳에 파3, 141m 눌라보 링크스 13번 홀이 앉았다. 18번 홀에서 14번 홀까지는 그 지역에 있던 기존 골프코스에서 한두 홀이 눌라보 링크스 홀로 지정됐지만 이곳은 눌라보 링크스 전용으로 새로 조성된 홀이다. 페어웨이는 맨땅이지만 티잉그라운드와 그린이 인조 잔디로 말끔하게 단장돼 있고, 티잉그라운드 뒤엔 햇살을 가리는 벤치가 있었다.
90㎞를 더 달려 발라도니아에 갔을 때, 렌터카에 기름을 넣고 주유소 주인에게 타운센터가 어디냐고 물었다.
“이곳이 타운센터다.”
의아해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묻자 그가 히죽히죽 웃는다.
“캥거루가 1752마리, 낙타가 48마리, 사람은 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