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호

‘홀 간 이동거리 1365㎞’ 호주 눌라보 링크스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골프코스 라운드 記

  • 사진·글/조주청 골프 칼럼니스트

    입력2011-01-20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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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 간 이동거리 1365㎞’ 호주 눌라보 링크스

    세두나에 있는 눌라보 링크스 1번 홀. 페어웨이에 엉성하게 풀은 있지만 그린은 검은 화산암 모래다.(왼쪽) 캘굴리의 눌라보 링크스 스타트 홀에서 필자는 장정의 첫발을 뗐다.(오른쪽)

    2009년 말 흥미로운 뉴스 하나가 지구촌 뭇 골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호주에 세계 최장(最長) 골프코스 개장, 서호주와 남호주, 두 개의 주에 걸친 전장 1365㎞, 18홀 코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골프코스가 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온갖 궁금증으로 열병을 앓다가 2010년 12월 초, 그곳 눌라보 링크스(Nullarbor Links) GC에서 직접 라운드할 기회를 잡았다. 아쉽게도 라운드 동반자를 구할 수 없어 ‘나 홀로’ 골프를 즐길 수밖에 없었다.

    18홀을 라운드하는 길은 두 가지다. 남호주(South Australia)에서 1번 홀부터 티오프해 서호주(Western Australia)에서 18번 홀을 마치든가, 아니면 역으로 돌아 남호주 1번 홀에서 마감하는 것이다. 필자는 후자를 택했다.

    티오프를 하러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홍콩발 캐세이 퍼시픽을 타고 서호주 주도 퍼스(Perth)에 내려 렌터카를 빌렸다. 퍼스에서 명소인 웨이브 록(Wave Rock)을 들르느라 살짝 우회했지만, 18번 홀이 자리 잡은 캘굴리(Kalgoorlie)까지 가는 데만 830㎞, 육로만 이틀이 걸렸다.



    서호주는 하나의 주(州)지만 남한의 33배나 되는 땅에 인구는 220만명에 불과하다. 캘굴리는 인구 3만5000명에 불과하지만 150만 인구의 퍼스에 이어 서호주 제2의 ‘큰’ 도시다.

    ‘금보다 물이 더 귀한 곳’

    캘굴리는 부(富)의 원천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도시로 세계 최대의 노천금광, 슈퍼 핏(Super Pit)이 있는 곳이다. 이 도시의 거리를 걷노라니 이 골목에서 게리 쿠퍼가, 저 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쌍권총을 뽑아들고 튀어나올 것만 같다.

    지난해 7월 이곳에 걸출한 골프코스 캘굴리GC가 탄생했다. 선수 시절에도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은퇴 후 코스 설계자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레이엄 마시가 디자인한 이 18홀 챔피언 코스는 곧바로 세계 10대 사막코스에 들었다. 캘굴리는 해발 400m가 넘는 고원 사막지대에 있어 ‘금보다 물이 귀한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 골프코스에 사용되는 물은 퍼스 인근에서 500㎞가 넘는 파이프라인으로 끌어온다. 이 코스의 1번 홀이 눌라보 링크스의 17번 홀이 되고 2번 홀이 18번 홀로 사용된다.

    이곳 프로숍에서 눌라보 링크스 GC 스코어 카드를 50호주달러(6만원 상당)에 사서 두 홀을 치고 나니 17, 18번 홀 빈칸에 작은 스탬프를 찍어줬다. 다음 16번 홀 티잉그라운드에 서기 위해 렌터카를 운전해 남쪽으로 60㎞를 달렸다. 15번 홀은 캄발다 마을에 있는 캄발다 GC 1번 홀이다.

    그런데 실망이 적지 않았다. 나타나는 홀들이 전형적인 중동 스타일의 사막 골프코스였다. 페어웨이는 맨땅이고 그린은 모래에 폐유를 뿌려 잔디 흉내만 낸 것이었다. 중동의 사막코스에서는 페어웨이 샷을 할 때 매트를 깔고 그 위에 공을 얹어놓고 스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눌라보 링크스에선 무조건 있는 그대로 샷을 해야 한다.

    캄발다에서 남쪽으로 130㎞ 내려가니 금광마을, 노스만이 나왔다. 이곳 노스만 GC의 1번 홀이 눌라보 14번 홀이 되고 노스만 GC 2번 홀이 눌라보 13번 홀이 된다. 이 골프코스도 맨땅 페어웨이, 기름 모래 그린.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노스만은 눌라보 평원의 서쪽 끝이자 에어 하이웨이(Eyre Highway)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노스만에서 애들레이드까지 2000㎞에 육박하는 포장도로가 준사막지역을 가로지르고 있으니 대단한 역사(役事)임이 분명하다. 에어 고속도로를 따라 골프코스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눌라보 평원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상권을 활성화하자는 목적으로 에어 고속도로 운영협회가 냈다.

    노스만에서 동쪽으로 100㎞를 달리면 눌라보 평원에서 처음 자리 잡은 목장 프레이저 레인지가 나온다. 단 두 채의 집에 4명이 살고 있는 이곳에 파3, 141m 눌라보 링크스 13번 홀이 앉았다. 18번 홀에서 14번 홀까지는 그 지역에 있던 기존 골프코스에서 한두 홀이 눌라보 링크스 홀로 지정됐지만 이곳은 눌라보 링크스 전용으로 새로 조성된 홀이다. 페어웨이는 맨땅이지만 티잉그라운드와 그린이 인조 잔디로 말끔하게 단장돼 있고, 티잉그라운드 뒤엔 햇살을 가리는 벤치가 있었다.

    90㎞를 더 달려 발라도니아에 갔을 때, 렌터카에 기름을 넣고 주유소 주인에게 타운센터가 어디냐고 물었다.

    “이곳이 타운센터다.”

    의아해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묻자 그가 히죽히죽 웃는다.

    “캥거루가 1752마리, 낙타가 48마리, 사람은 5명.”

    ‘홀 간 이동거리 1365㎞’ 호주 눌라보 링크스

    1. 눈드루의 눌라보 링크스 4번 홀 그린에서 멜버른 인근에서 온 일가족 3대가 퍼팅을 하고 있다. 2. 길가에 차에 치여 죽은 캥거루가 널려 있다. 3. 노스만 금광에 40년 동안 쌓이고 쌓인 선광 찌꺼기가 어느 혹성의 성곽처럼 기묘한 모습이다. 4. 보더빌리지에서 집 한 채 밭뙈기 하나 없는 준사막 182km를 달리면 허허벌판에 그들이 오아시스라 부르는 주유소가 나타난다. 그 뒤에 눌라보 링크스 한 홀이 앉았다.

    주유소에 딸린 매점, 탁자 4개의 간이식당,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 같은 모텔방이 몇 칸 늘어섰다. 이곳에도 주유소 뒤에 새로 만든 한 홀짜리 골프코스가 있었다. 호주인들은 주유소를 ‘오아시스’라 불렀다. 마른 풀이 허리춤까지 닿는 이 골프 홀에서 호주인 한 무리가 맥주를 마시며 떠들썩하게 라운드를 즐기는 것을 보고 줄곧 투덜거리던 내가 생각을 바꿨다. 1년에, 그것도 겨울 한 철 300㎜ 가까운 비가 찔끔 오고나면 세 계절 동안 만물이 바삭바삭 타들어가는 이 준사막 지역에서 번듯한 페어웨이와 그린을 갖춘 골프 홀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서호주와 남호주 경계를 지날 땐 검역이 까다로웠다. 남호주 보더 빌리지에 눌라보 6번 홀이 기다리고 있다. 오아시스 세 곳을 지나자 밀밭이 끝없이 펼쳐졌고 풍차가 있는 페농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이 3번 홀. 다시 75㎞를 더 가자 1, 2번 홀이 있는 종착지 세두나(Ceduna)다. 그림처럼 예쁜 해변 타운이다. 마지막 홀 라운드를 마치고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세두나 관광안내센터에 가자 정장을 한 백발의 안내자가 반긴다. 그는 스코어 카드를 받아들고 매 홀에서 스탬프를 받았는지 확인하고는 번듯한 인증서를 필자에게 건네며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레그 노먼이 라운드해도 100타 넘게 칠 거요.”

    106타! 드라이브 샷 때 로스트 볼이 많았는데, 이때마다 티잉그라운드로 돌아가서 다시 티오프를 했다면 아마 160타쯤 되었을 것이다. 애들레이드까지 가서 렌터카 회사에 차를 돌려줄 때 계기판을 보니 주행거리 3106㎞다. 열흘이 걸렸다.

    눌라보 링크스 GC는 사실 세계 최장 골프코스는 아니다. 골프코스의 길이는 18홀의 각 티잉그라운드에서 그린까지의 거리를 합산해서 따진다. 공식적인 세계 최장코스는 중국 윈난성 위룽설산 아래에 자리 잡은 제이드 드래곤 스노 마운틴 GC로 전장 8548야드다. 눌라보 링크스 GC의 코스 길이는 불과 6747야드이지만 홀 간 이동거리(span)가 가장 긴 골프코스이자 가장 이상한 골프코스다.

    ‘홀 간 이동거리 1365㎞’ 호주 눌라보 링크스

    저유소가 아니라 저수창이다. 지하수를 끌어올려 캠핑카에 물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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