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역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인민방송원으로 알려진 리춘희 아나운서. 1974년 데뷔해 정년을 한참 넘긴 현재도 주요 사건이 벌어지면 뉴스를 맡는다. 사진은 2008년 신년공동사설 발표 때의 모습이다(왼쪽). 2006년 10월 핵실험 강행방침을 담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읽고 있는 차수일 방송원. 평양연극영화대학 방송학부를 졸업한 정통파다.
북한에는 조선중앙TV 외에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수대텔레비전과 대남방송인 조선교육문화텔레비전이 있지만, 일반 주민이 시청할 수 있는 전국 규모의 텔레비전 방송은 조선중앙TV뿐이다. 이외에도 조선중앙방송라디오와 지역별 라디오방송, 군 방송에도 아나운서들이 활약하고 있으나 조선중앙TV의 주요 방송을 담당하는 대표 아나운서들은 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 방송의 간판급 아나운서들이 그렇듯 이들 역시 일종의 ‘스타’인 셈. 다만 아나운서의 이름을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는 북한 방송의 특성 때문에,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들에 대한 궁금증은 상당부분 백지로 남아 있다.
조선중앙TV에서 기자와 작가로 17년간 일하다 1996년 서울에 온 장해성(66)씨는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인물이다. 북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천복이와 만길이’를 집필했던 장씨는 귀순 이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소장으로 재직하던 통일정책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새해가 시작된 1월3일, 자택 근처에서 만난 장씨에게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은 바로 북한 아나운서들의 이름과 신상이었다.
▼ 북한의 아나운서들은 가끔 한국 방송을 통해 접하는 남측의 시청자에게도 낯이 익을 만큼 숫자가 제한적인 것 같더군요. 2006년 10월 핵실험 발표 당시에 성명서를 발표했던 후덕한 체구의 중년 여성이 대표적인 듯 합니다만.
“그 아나운서의 이름이 리춘희입니다. 조선중앙TV가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한 1974년에 데뷔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환갑을 한참 넘긴 나이지요. 남편 역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 기관지인 ‘민주조선’에서 기자로 일했고요. 원래는 인민협주단 화술조에 소속된 배우였는데, 이 사람이 다리가 좀 짧고 단신입니다. 얼굴은 워낙 고왔지만 키가 작다 보니 무대에서 빛나는 체질은 아니었으니 일찌감치 조선중앙TV로 넘어와 아나운서가 됐는데, 1980년대 중반에 김정일 당시 당 비서의 눈에 들어 ‘방송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고 이후 승승장구한 거지요. 전형규와 함께 이 시기 북한을 대표하는 아나운서가 된 거지요.
북한에서는 아나운서를 방송원이라고 부르는데, 그중에 인정을 받으면 공훈방송원이 되고 더욱 큰 공을 세우면 인민방송원 칭호를 받습니다. 지금은 아마 리춘희씨가 현역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인민방송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는 남자 60세, 여자 55세로 정년이 있지만 엘리트 방송원들은 체력이 허락하는 한 정년에 구애하지 않고 방송활동을 계속합니다.”

리춘희의 뒤를 잇는 ‘떠오르는 스타’라 할 수 있는 류정옥 방송원.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바 있는 배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5월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발표할 당시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