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호

철새는 집이 없기에 더 자유롭다

  • 이원규│ 시인

    입력2011-01-21 0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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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는 집이 없기에 더 자유롭다

    눈 덮인 겨울의 지리산.

    지리산이라는 아주 큰 집에 들어온 뒤 어느새 열네 번째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이 골짜기 저 골짜기의 빈 집들을 떠돌며 일곱 번 이사를 하다 보니 이제야 지리산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을 조금 알 것도 같다. 사람이 살 만한 곳과 죽어서 묻힐 만한 곳, 사내의 기개를 드높이며 고함이라도 지르고픈 기운생동의 봉우리나 능선, 차분하게 지난 생을 반추하며 걸어볼 만한 옛길, 그리고 때로는 슬픔을 억누르다 못해 폭포수처럼 혼자 울기에 좋은 계곡 등이 눈앞에 선하다. 이처럼 지형적인 등고선이나 지명, 역사문화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한 개인의 정서적 개념을 나타내는 새로운 지도를 그려보는 것도 참 의미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사실 누군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 수 있다는 것은 슬픔이나 고통이 아니라 행복에 가깝다. 이처럼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울기 좋은 곳’이나 ‘죽기 좋은 곳’ 하나쯤 남몰래 가슴속에 품고 산다는 것 또한 절망의 구심력이 아니라 희망으로의 원심력에 가깝다. 단지 스쳐 지나가는 배경으로서의 산과 계곡과 강과 들녘이 아니라 자연과 한몸으로 교감하는 삶의 현장, 바로 이곳에서 세상을 둘러보면 날마다 누군가 새롭게 태어나기에도 좋고, 슬프고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누군가 죽기에도 참 좋은 날들의 연속이 아닌가.

    그리하여 나그네나 철새는 따로 집이 없다. 날마다 도착하는 그 모든 곳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을 알아채고 따라 하는 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누구나 그럴듯한 집 한 채 장만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겠지만, 바로 이 어처구니없는 욕망 때문에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고 말 것인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텃새처럼, 아니 이미 새가 아닌 닭처럼 철망 속의 둥지에 깃들여 살 것이냐, 철새처럼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길을 갈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였다. 어차피 집과 집을 이으면 길이 되고 그 길의 마지막 집은 무덤이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 집이라는 해괴한 물건(?)을 포기했다, 버렸다, 패대기쳤다. 이 세상의 모든 집을 안식처가 아니라 과정의 길로 만들고 싶었다.



    분명 14년 전 지리산 입산은 도약이 아니라 한없는 추락을 자처한 내 인생의 마지막 번지점프였다. 서울살이 10년 동안의 환멸과 권태라는 은산철벽을 단숨에 깨뜨리는 ‘자발적 가난’의 외통수였다. 날아오르기보다는 차라리 추락의 자유를 꿈꾸었고, 비굴한 현실 안주보다는 도피·잠적·무책임의 질타를 받더라도 더 늦기 전에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백척간두 진일보의 해방과 자유를 꿈꾸었다.

    텃새에서 철새로의 몸바꿈은 쉽지 않았지만 또 그리 어려운 것만도 아니었다. 한 마음을 내려놓으니 또 그만큼의 빈터가 생기는 것이었다. ‘서울 하야식’ 혹은 ‘지리산 입산’은 단 한 번의 예행연습으로 끝냈다. 사표를 내고 보름간의 서울역 노숙자 생활, 이 극약처방이 주효했다. ‘돌아보지 말자, 더 이상 돌아볼 가치도 없다. 서울이 대변하는 아수라지옥을 빨리 벗어나자’ 되새김질하며 구례행 전라선 밤기차에 올랐던 것이다.

    이미 점찍어놓았던, 아는 스님의 섬진강변 빈 토굴의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 지친 몸을 부려놓고 일단 사흘 내내 잠만 잤다. 사실 눈앞이 캄캄하기도 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그 얼마나 통쾌했던가. 어린 나이에 만덕사에서 행자 아닌 행자로 맛보았던 절대고독의 옆얼굴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집을 소유하지 않는 대신 모터사이클을 집으로 삼았으니, 나는 집을 등에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아니라 집을 타고 다니는 한량처사가 되었다. 되도록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리 잠만 자다가 일어나 주먹밥을 싸들고는 산짐승처럼 지리산 골짜기들을 헤매고 다녔다. 생의 한철 돈도 없이 내리 3년간을 참 잘 놀았다.

    그동안 빈집을 찾아 일곱 번 이사를 했으니 지리산의 예저기를 살아본 셈이다. 전남 구례의 피아골과 문수골과 섬진강변, 전북 남원의 실상사, 경남 함양의 칠선계곡 입구,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 근처 마을 등등. 최소 1년 이상을 살아야 그 마을의 지수화풍을 읽을 수 있고, 뭐라도 조금 쓸 수 있었으니 한 번 이사를 할 때마다 졸작이지만 시집이나 산문집 한 권 정도는 낸 셈이다. 굶어죽지 않고 잠시 머물다 떠나는 집 한 채, 한 번 이사에 책 한 권이면 돈은 안 되지만 밑천도 별로 들지 않는 참으로 멋진 장사가 아닌가.

    이제는 빈집 구하는 데도 거의 달인 수준이 되었으니 우편집배원 아저씨에게 “그 마을 할머니 돌아가시면 알려주세요. 내가 살러 갈 테니” 하고 굳이 부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번에 새로 이사한 집도 멀리 섬진강 건너에서 매화 필 무렵에 ‘필’이 꽂혀 찍어놓은 집이었다. 그것 참, 살다보니 ‘반풍수’의 눈으로도 척 보면 앉을자리가 보이고 빈집인지 아닌지, 빨랫줄에 무언가 나부껴도 산 자의 것인지 죽은 자의 것인지 대충 알게 되더라는 말씀이다. 이 또한 내 소유의 붙박이 집이 없기 때문에 누리는 호사가 아닌가.

    그러는 와중에도 전국의 이곳저곳과 5대강 등 2만 리 이상을 걸어봤고, 모터사이클로 한반도 남쪽의 국도며 지방도며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70만㎞, 지구 열다섯 바퀴 이상의 거리를 달렸으니 여한이 없다. 그렇다고 멈출 것인가. 아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싸돌아다닐 것이다.

    지리산의 큰 골짜기만 해도 30개 정도가 되니 다 살아보려면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더라도 30년은 걸린다. 그러니 끔찍하지만 최소한 일흔 살은 넘게 살아야 할 터이고,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을 타고 야영을 하며 전국의 비포장도로를 다 가보려면 대충 잡아도 몇 년은 걸릴 것이니 이 또한 만만한 일생지대사가 아닌가. 꼭 성취해야만 맛인가. 딱히 생을 걸 정도로 이보다 더 필이 꽂히는 것도 없으니, 그냥 한번 가보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집을 못 가지거나 안 가지거나 버림으로 해서 얻은 집이 훨씬 더 많았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듯 못하는 듯 사실은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았다.

    철새는 집이 없기에 더 자유롭다
    李元圭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계명대 경제학과 중퇴

    지리산학교 교사대표, 순천대 문예창작과 강사

    1984년 ‘월간문학’,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저서 :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옛 애인의 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빨치산 편지’, 산문집 ‘지리산 편지’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등

    신동엽창작상, 평화인권문학상 수상


    그리하여 ‘철새는 따로 집이 없다. 날마다 도착하는 그 모든 곳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는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텃새보다는 철새가 더 우주적이지 않은가. 외로울 땐 외로워할 줄 알고, 슬플 땐 슬퍼할 줄 알고, 기쁠 때는 기뻐할 줄 아는 ‘영혼의 집’ 또한 그러하고 그러하리라 믿어보는 것이다.

    내 인생의 온몸을 던지는 번지점프는 해방이자 자유였다. 삼백 가닥의 고무줄을 단칼에 끊어버리고 방외(方外)의 해방 기류에 몸을 맡긴 채 유유히 헤엄을 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즐거운 추락이자 행복한 자유낙하였다. 철새는 집이 없지만 그래서 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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