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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②

미래가 아닌 오늘을 위해 ‘일’하라 그래야 즐거운 인생이다

  •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미래가 아닌 오늘을 위해 ‘일’하라 그래야 즐거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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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먹지 마라

서재 창가에 10여 년쯤 전에 보리수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늦봄에는 가지마다 달콤한 빨간 열매가 가득 열린다. 그게 새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보리수가 익을 무렵이면 종일 갖가지 새들이 드나들며 홍보석 같은 열매를 쪼아댄다. 물까마귀, 멧비둘기, 까치,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이 번갈아가며 열매를 따먹는 것이다. 그 새들의 생계현장을 지켜보며, 새나 사람이나 생계를 위해 수족을 부지런히 놀리는 일은 숭고한 도덕적 책무임을 새삼 깨닫는다. 동물도 먹이 활동을 하고, 짝짓기 활동을 통해 제 DNA를 퍼뜨리고, 보금자리를 만드는 따위의 일을 한다. 그러나 동물과 사람이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둘의 생산 사이에는 근본적인 다름이 있다.



“동물은 단지 그 자신에게 혹은 그의 새끼들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을 만들 따름이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생산하나, 인간은 반대로 보편적으로 생산한다. 그것은 단지 직접적인 육체적 필요의 지배 아래서만 생산을 하나, 인간은 육체적 필요로부터 자유로운 때도 생산을 하며, 사실은 이 자유 속에서만 참답게 생산을 한다. 동물은 단지 그것 자체만을 생산하나 인간은 자연의 전체를 재생산한다. 동물의 생산은 직접적으로는 그의 육체에 소속되지만 인간은 자유롭게 그의 생산물과 마주 선다. 동물은 그가 소속한 종(種)의 표준과 필요에 맞추어 사물을 형성하지만 인간은 모든 종의 표준에 맞추어 생산할 줄을 알며 또한 모든 곳에서 어떻게 하면 고유의 표준을 객체에 적용시킬 것인지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미의 법칙에 따라서 사물을 형성할 줄 아는 것이다.”(카를 마르크스, ‘경제·철학 수고(手稿)’, 여기서는 D. 마킨, 앞의 책에서 재인용)





동물은 단지 목전의 생물학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일한다. 반면에 사람은 그것을 넘어서서 자아실현과 공익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아울러 먹고 사는 것과 무관하게 단지 탐미적 사물의 형성을 위해서도 기꺼이 일한다. 동물은 제 몸과 새끼들을 생명과 안전을 구축하는 소아적 기준의 활동에 머문다면, 사람은 노동 행위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진화하는 노동의 윤리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람은 동물보다 조금 더 숭고한 존재다.

몇 해 전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 밥을 끓이시는 팔순 노모를 시골로 모셨다. 그랬더니 노모는 영농인으로 변신하셨다. 노모는 텃밭에 감자를 심고 고구마를 심고, 들깨를 심고, 콩을 심으셨다. 땅의 빈자리마다 호박을 심고 갖가지 채소를 심으셨다. 시골에 내려온 뒤 동무도 없고 소일거리도 없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시더니 텃밭 가꾸기에 재미를 붙이셨다. 노모는 일을 하니 밥맛도 더 좋다고 하신다.

그러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일은 쉽지 않다. 밭에 뿌린 씨앗들은 새들이 날아와 쪼아 먹고, 싹이 나면 고라니들이 내려와 잘라 먹었다. 싹들이 잘 자라도록 가물면 물을 주어야 하고, 수시로 풀들을 뽑아야 한다. 팔순 노모는 그 고단한 일을 잘도 하신다. 지난 가을에도 누런 호박덩이를 거두고, 들깨를 수확해 들기름을 몇 병 짜오셨다. 팔순 노모가 새 일에 재미를 붙이고 그 일 속에서 생산의 기쁨과 경탄을 느끼는 걸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즐겁다. 사람은 대지를 갈고, 땡볕 아래서 잡초를 뽑고, 풀을 베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빵을 굽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동화를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날마다 기상 상태를 관측하고, 접시를 닦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그릇을 만드는 일들을 하며 평생을 보낸다.

일은 그가 속한 현실과 공동체 속에서 그의 자리를 확고하게 만들어준다. 일하는 것의 보람과 효과는 우선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자유의지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일을 통해서 의미의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일하는 사람은 노동의 순수함에 집중함으로써 불필요한 걱정과 근심이 만드는 압박감에서 놓여난다. 일은 그 자체로 삶이 되고, 그것의 심오함을 반복함으로써 인격을 닦는 수행이 되기도 하다.



“일은 사람이 늙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일이 곧 내 삶이다. 나는 일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은 결코 권태롭지 않고 늙지 않는다. 희망과 계획의 자리에 후회가 들어설 때 사람은 늙는다. 일과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늙음을 막는 가장 훌륭한 처방이다.”(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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