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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침묵하는 다수를 행동가로 바꾼 노예 해방 전쟁의 부싯돌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침묵하는 다수를 행동가로 바꾼 노예 해방 전쟁의 부싯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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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다수를 행동가로 바꾼 노예 해방 전쟁의 부싯돌

‘톰 아저씨의 오두막’<br>해리엇 비처 스토 지음, 이종인 옮김, 문학동네, 387쪽, 1만2000원

인간이 만든 가장 나쁜 제도 가운데 하나가 노예제다. 노예제도는 역사발전 단계에서 원시공동체가 해체되면서부터 나타났다. 성경에서도 노예제를 ‘확립된 제도’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대철학자조차 선천적인 노예제도를 인정했던 사실은 슬픈 역사를 웅변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인구 가운데 5분의 2가 노예였고, 고대 로마 인구 가운데 4분의 1이 노예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 유럽인구 10명 중 1명이 노예로 살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예제도 중에서도 역사상 최악의 오점으로 꼽히는 건 대서양을 넘나들며 이루어지던 아프리카 노예무역이다. 16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무려 1200만 명의 노예가 배에 실려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팔려갔다.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은 대다수 사람이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이 폐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장편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원제 Uncle Tom′s Cabin)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흑인 노예의 잔혹상을 그린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 해방의 전기가 된 미국 남북전쟁에 결정적인 불쏘시개 구실을 했다. 더 크게 보면 흑백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세계 역사를 바꾸는 데 크게 공헌했다. 한 편의 문학작품이 세상을 이처럼 단숨에 바꾼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잔인하고 비정한 노예제의 실상을 폭로해 미국인의 양심을 울린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미국 켄터키 주의 지주 셸비는 노예들에게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한 뒤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충직했던 노예 톰과 혼혈 노예 엘리자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살짜리 아들 해리를 노예상인에게 판다. 이 사실을 안 엘리자는 아들 해리를 데리고 목숨을 건 탈출극을 벌인다. 엘리자는 우여곡절 끝에 한 퀘이커 교도의 도움으로 자유의 땅 캐나다에 안착한다. 반면 톰은 하루아침에 가족과 생이별한 채 팔려가는 도중, 같은 배의 승객인 에바의 생명을 구한다. 이것이 인연이 돼 톰은 에바의 아버지 오거스틴 세인트클레어에게 팔려 한동안 행복하게 지낸다. 하지만 에바와 세인트클레어가 잇달아 죽고 나서 냉혈한인 사이먼 리그리의 손으로 넘어간다. 톰은 리그리의 목화밭에서 혹사당하며 원주인의 아들이 다시 매수하려고 찾아오기 직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소설에서 시종 독자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노예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이다. 노예들은 새벽 3시부터 밤 9시까지 혹사당하는 것은 물론 옥수수 가루로 연명하며 흙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나무에 묶여 매질을 당하기 일쑤인데다 돌멩이나 채찍으로 얻어맞으며 감금된 채 굶어죽기도 한다. 노예 상인에게 자기 아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밤을 틈타 도망치는 엘리자, 노예 사냥꾼과 대치하며 자신이 자유인임을 비장하게 역설하는 조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자식을 빼앗긴 뒤 그런 인생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갓난아기에게 아편을 먹이는 캐시 같은 등장인물은 노예의 운명을 실감나게 증언한다. 혹사당한 노예가 병에 걸리면 죽을 때까지 부려먹고 나서 새 노예를 사는 게 경제적이라고 말하는 리그리는 노예를 물건 취급하는 사악한 노예 주인을 상징한다.



잔인한 노예제의 실상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 설정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현실과 거의 그대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 스토는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사건들은 거의 다 실화이며 노예제도의 실상을 생생하고, 드라마틱하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셸비 부부의 성격은 작가 스토 부부와 비슷한 점이 많다. 흑인 하녀가 구원을 요청한다는 스토 부인의 말을 전해 들은 남편과 스토 부인의 오빠 헨리 워드는 밤중에 이 하녀를 마차에 태워 오하이오 오지의 농장주에게 데려가 감춰줌으로써 추적이 중지될 때까지 실제로 피신시켜주었다.

이 작품을 집필한 직접적인 계기는 1850년 반포된 도망노예법이었다. 이 법은 도망간 흑인 노예를 소유주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1793년과 1850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것으로, 노예의 도망을 도와준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이 법 때문에 노예제를 막연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북부 사람들은 그 잔학상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스토는 1850년부터 워싱턴 DC의 노예제도 폐지 운동 기관지 ‘내셔널 이러’에 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소설의 의미를 명시했다.

“이 소설의 주된 목적은 우리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 종족에 대한 동정심과 이해심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학대와 그들의 슬픔을 묘사함으로써, 현재의 제도가 얼마나 잔인하고 불공정한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이 하느님의 저작이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스토는 메인 주 브런즈윅의 한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예배가 끝나고 성가대의 합창이 시작될 무렵, 예배석에 앉아 있던 스토에게 한 노예가 매질을 당해 죽어가는 환상이 보였다. 포악한 백인 주인은 자신이 직접 매질을 하지 않고 타락한 두 흑인 감독에게 시켰다. 늙은 흑인 성자는 죽어가면서도 두 고문자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 환상 속에서 죽어가는 흑인 성자는 톰 아저씨였고, 고문을 가하는 두 감독은 삼보와 큄보였다. 사악한 노예주 사이먼 리그리의 이름도 이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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