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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 못 믿겠다 해놓고 만나면 설레니 그게 내 운명”

‘운명, 논리로 풀다’ 펴낸 이영돈 채널A PD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점쟁이 못 믿겠다 해놓고 만나면 설레니 그게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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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넘 효과 알면서도 빠져들어

이 PD는 인터뷰가 있기 전에도 역술인을 만났다고 했다.

“제 아내가 고집이 세다고 그러더라고요. 평소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내가 고집을 부렸던 때가 떠오르는 거예요. 10번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도요. 그러더니 ‘큰 아이가 해외를 왔다갔다 하는 군요’ 하더라고요. 제가 호주에 조금 살다가 뉴욕 특파원도 했고, 아들이 지금은 두바이에 있으니까 족집게구나 싶은 생각이 들죠. 그런데 따져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해외 나가는 일이 특별한 게 아니잖아요. 설사 해외에 거의 나갈 일이 없는 사람이라도 역술인이 그런 말을 하면 해외에 다녀온 일이 떠올라요. 그러니 역술인 얘기는 100% 맞는 걸로 생각되죠. 바넘 효과(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특징을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에요.”

▼ 다 알면서도 빠져드나요.

“그럼요. 역술인 만날 때 시간이 가장 잘 가요.”



▼ 그렇게 학습이 됐는데도?

“다 소용 없어요. 내 얘기니까요. 그 앞에 앉으면 뭔가 안 맞다 생각하면서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이렇게 묻고 저렇게 묻게 돼요. 역술인이나 무당이 ‘내년엔 운이 좋지 않으니 주식엔 손대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하면, 주식 할 생각이 전혀 없다가도 ‘왜 하면 안 되죠?’ ‘집사람 명의로는 괜찮을까요?’ 하고 묻는다니까요. 그 얘기를 듣고 나면 주식의 ‘주’자만 들어도 부담이 돼요. 그런데 어디서 좋은 정보를 듣고 1000만 원 투자했다가 돈을 좀 벌었다면 점쟁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1억 원 아니라 1000만 원만 투자했으니까 다행인 거지’라고 생각한다니까요. 주식투자 하지 말라고 했던 이들조차도 ‘1000만 원 갖고 투자라고 할 수 있나요?’ 하면서 얼마든지 빠져나갈 테고요.”

▼ 다 알면서 왜 자꾸 보나요.

“저도 궁금해요.”

▼ 말려드는 걸 알면서도요?

“내 일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앞날을 얘기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궁금하죠.”

▼ 회사 옮길 때도 찾아갔나요.

“갔죠(웃음). SBS에서 다시 KBS로 건너갈 때는 ‘예스’냐 ‘노’냐는 사주팔자로 풀지 않는다면서 주역 점을 치더라고요. 제가 뽑은 걸 갖고 풀이를 하는데, 있어도 괜찮고 옮겨도 괜찮다기에 옮겼죠. 이번에 채널A로 옮길 때도 ‘있어도 괜찮은데 왜 옮기려고 하느냐’고 되묻더라고요. 점쟁이를 찾아갈 때는 이미 옮기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는 얘기거든요. 옮겨도 괜찮다고 하니까 그럼 새로운 걸 해보자 하고 옮긴 거죠.”

역술인이 이직을 반대했으면 어땠을까. 그는 “만약 옮기지 말라고, 큰 일이 생긴다고 했으면, 말려드는 걸 알면서도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책에서도 밝혔듯 “불길한 예언은 그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듣는 순간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생존반응을 하기 때문에, 생존에 위협이 되는 정보는 절대 잊지 않아요. 뇌에 계속 남아서 안 들은 것만 못하죠. 누구에게나 운의 흐름상 좋은 때가 있고 안 좋은 때가 있는 건데, 돈 벌이 수단으로 안 좋은 이야기를 부각시키면 듣는 사람에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와요. ‘당신은 여자의 운을 타고 났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게 실은 굉장히 넓은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듣는 순간부터 여자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밑져야 본전? 무조건 손해!”

흔히 운명을 보러 갈 때, 좋은 얘기를 해주면 좋고 설사 나쁜 얘기를 하더라도 미리 알고 조심할 수 있으니 밑져야 본전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러나 이 PD는 운명을 보러 가서 부정적인 말을 듣는 건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무조건 손해”라며 “많은 역술인이나 무속인이 좋은 얘기보다 나쁜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사람들의 그런 불안한 심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 PD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책을 쓴 목적에는 그런 나쁜 상술을 고발하고 일반인에게 주의를 주려는 의도도 있다.

“예전에 이름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자분을 만났어요. 어디 가서 물었더니 이름 때문에 결혼하면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분 사주를 갖고 몇 군데 더 찾아가서 물어보니까 대체로 전체적인 운이 그리 좋지는 않은 걸로 나왔어요. 그렇다고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을 거라는 얘기를 들은 건 아니에요.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여자분 이름이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을 담고 있다면, 그 남편감 역시 교통사고로 죽을 팔자를 타고 나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결혼할 남자의 사주엔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여러 사람 얘기를 종합해 봤을 때, 이 여자분의 ‘운 그룻’이 그리 크지는 않으나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얘기는 이름을 바꾸게 하려는 수작에 불과한 거죠.”

어디 이름뿐인가. 전생의 업보 때문에 귀신이 붙었다고 하고, 배우자와 자식, 부모의 안위를 들먹이며 굿을 해야 한다고 하면 돈이 얼마가 들어도 외면하기 어렵다.

“얼마 전에 만난 사람 말이 제가 전생에 권세와 부를 누렸는데, 악업도 많이 쌓았대요. 제가 잘 되려고 친구들에게 잘못을 저질러 친구 네 명의 귀신이 제게 씌웠으니 그걸 풀려면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눈을 감고 사과를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저더러 사과를 제대로 안 했다는 거예요. 고개를 들어 보니까 눈을 부릅뜨고 ‘그런 식으로 사과해서 귀신이 떨어지겠어?’ 하며 호통을 치는 거예요. 그게 사람 잡는 거죠.”

이 PD는 그래서 다시 마음 속으로 사과를 했다. 처음 사과할 때보다 더 길게. 그런데 이번엔 “너는 안 된다”는 고함이 들려왔다. 점쟁이는 그가 사과를 제대로 안 해서 귀신들이 안 떨어지고 계속 괴롭히겠다고 한다며 그를 못마땅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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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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