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명부전 앞에 핀 겹벚꽃.
마음을 연다. 개심이라는 말은 변심이라는 부정적인 말과는 달리 특별한 느낌을 준다. 서산 운산면의 용장리, 용현리는 개심사 덕분에 사람들이 뜨문뜨문 찾지만 여전히 깊숙이 숨어 있는 마을이다.
개심사 가는 길목, 차창 밖 운산초등학교 입구에는 동문 운동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그랬다. 어디든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면 학교가 있었다. 첩첩산중이나 외딴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나둘 사람이 떠나면서 작은 학교들은 폐교라는 간단한 말과 함께 사라져간다.
그 많던 사연도 하나둘 빛바래 추억이 되고. 지금의 시골에서는 흑백사진의 기억처럼 폐교가 된 분교들이 유령처럼 남아 마을의 아득한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운 좋게 명맥을 유지해 동문 운동회를 열고 있는 운산초등학교를 보니 ‘살아남아줘서 장하다’라는 생각이 불쑥 든다.
운동회의 추억
동문 운동회는 문득 유년의 운동회를 떠올리게 한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운동회는 연중 최고의 잔칫날이 되곤 했다. 시골 운동회, 김치 국물로 갱지 공책을 얼룩지게 하던 도시락에서 벗어나 모처럼 호사스러운 점심을 먹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살림을 살면서도 어머니는 적어도 삶은 달걀과 사이다 한 병 정도는 기본으로 챙겨주셨다. 푸른 오월의 하늘 아래 만국기는 바람에 펄럭이고 오자미 터뜨리기에, 기마전에, 아 400m 계주는 그 얼마나 손에 땀을 쥐게 했던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오월 하늘 멀리 퍼지고 그날의 봄은 더욱 푸르러갔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열리는 요즘 동문 운동회는 어떤가. 성공한 동문들은 검은색 승용차에 저마다 협찬이란 이름 아래 과자며 선물 보따리를 들고 모교를 찾을 것이다. 고향 사람들에게 이 선물을 한아름 안겨드릴 것이다. 하기야 거친 폭력배도 고향 어른들 앞에서는 옷깃을 여미고 순한 양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듯 고향에는 모든 출향 인사를 무장해제시키는 신비한 힘이 있다.
개심사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인 용장리는 예부터 ‘겹사쿠라꽃’으로 유명하다. 겹벚꽃 또는 왕벚꽃이라는 이름이 표준어이기는 하지만 이때만큼은 겹사쿠라꽃이라고 말해야 어울린다. 한때 이 땅에는 겹사쿠라는 말이 유행했다. 주로 정치권에서 사용된 말이지만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이중적인 사람을 두고 겹사쿠라라고 했다.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이 횡행하던 시절, 겹사쿠라 정치인이란 정가에서 가장 좋지 않은 배신자의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보원사터에 소풍 나온 학생들.
그러나 꽃은 다르다. 진달래, 개나리 그리고 같은 집안 식구 격인 보통의 벚꽃이 완전히 질 때쯤이면 겹사쿠라꽃이 피기 시작한다. 홑벚꽃보다 꽃잎의 숫자가 두세 배 많은 이 꽃은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한다. 꽃잎이 많다보니 마치 카네이션 꽃잎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용장리 일대 겹벚꽃은 이제 피기 시작했다. 서울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은 져버린 지 오래지만 이곳 산기슭 왕벚꽃은 이제사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이다. 인적이 없는 마을은 고요하고 야산에는 붉은 꽃이 가득하다. 내가 살던 꽃피는 산골 고향 모습 그대로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는 물론 산도화, 배꽃, 왕벚꽃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중에서 복숭아꽃은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다. 농염한 붉은 색조는 보는 이에게 상상 이상의 특별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복숭아꽃은 눈앞에 마주하고 그 색감을 스스로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설명하기가 어려울 만큼 관능적이다. 직접 눈앞에 두지 않고 말로 묘한 느낌을 설명하기란 애당초 무리라는 것이다. 아니 불가능할 것 같다. 그만큼 꽃은 야릇한 지분(脂粉) 냄새를 풍기며 넘치는 색기를 주체하지 못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도화살을 경계하면서 동구 밖에다 심었고 남녀 간의 정분을 암시하는 온갖 의미와 얘깃거리를 갖다 붙였던 것 같다.
고추 모종 심기에 나선 태봉리 주민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아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지금의 기성세대들에겐 귀에 익은 노래일 것이다. 국어 선생님에게 손바닥 맞아가며 외우던 바로 그 시조다. 수백 년 뒤 조선에서 부안 기생 매창(李梅窓·1573~1610) 역시 배꽃을 소재로 이별의 정한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비록 왕조는 다르지만 수백 년의 시간을 두고도 느끼는 정한은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보니 배꽃만의 독특한 그 무엇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배꽃은 천년 동안 봄마다 흩날렸고 특히 봄날의 밤마다 달빛을 희디희게 받아내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꽃 하나를 두고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감정을 나눌 수 있다. 이런 엄연한 사실에서 새삼 꽃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용장리, 용현리 구석구석을 걷다보면 노랗게 말라버린 대나무 숲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곳의 대나무는 사군자로 추앙받던 상록수의 대나무가 아니다. 지난겨울, 이상 혹한으로 인해 뿌리만 남고 몽땅 말라죽었다고 최순팔 할아버지(80)가 혀를 찬다. 짙푸른 대숲이 아니라 싯누런 대숲이다.
외지인이 서산 내륙 지방을 지나칠 때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용현리 마애석불이다. 국보 84호인 이 불상의 정확한 이름은 마애여래삼존상이다. 현존하는 마애불 중 최고로 인정받는데 백제인의 미소를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위 위에 자연스럽게 새겨져 있는 것 같아도 향하는 방위는 동동남 30도로 동짓날 해가 뜨는 방향이고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본존불이 향하는 방위와 같은 방향이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혹한으로 인해 뿌리만 남고 몽땅 말라죽은 대숲.
비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 보호각을 철거한 덕에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달라지는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해 뜨는 방향으로 서 있어 볕을 풍부하게 받아들인다. 마애불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는 80도로 기울어져 있다. 비바람을 정면으로 받지 않아 오랜 풍우를 견뎌냈다고 한다. 옛날 백제인의 슬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과 같은 봄 한철, 마애불은 땀을 꽤 흘리실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엄청난 숫자의 학생으로부터 휴대전화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해보라. 답사 여행 중인 대학 사학과 여대생 수십여 명이 몰려와 눈앞에서 조잘거리면 제아무리 부처님이라도 마음이 싱숭생숭하지 않을까?
마애불이 내려다보는 봄 들녘에는 짙은 연두색 색감이 넘실대고 있다. 산기슭, 무리로 선 도화 숲은 멀리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받아 일렁인다. 한때는 설움 많았던 관능의 꽃, 하지만 녹색 들판에 선홍빛이 눈부시다. 올해 봄도 이제 여름에게 자리를 내주고 떠날 채비에 분주하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온갖 꽃의 아우성을 귓전으로 들으며 저만치 유월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