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수라설희(修羅雪姬)’에서 가지 메이코는 장검을 들고 눈밭에서 마지막 혈투를 벌인다. 40년 후 미국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장면을 ‘킬빌’에 그대로 재현한다. 칼에 베인 남자들이 뿌린 피로 기모노가 물든다. 우리 영화사에도 여성 검객들이 등장한다. 춘향으로 데뷔한 홍세미는 두 자루의 장검을 휘두르는 정통 액션을 선보였다. 한중 합작영화 ‘사학비권’의 액션배우 김정란은 성룡을 구하려다 죽는 비운의 인물을 연기했다.
당시 우리 관객들에게 ‘방랑의 결투’는 그야말로 새로운 체험이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나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판타지, 무협의 세계가 이 영화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중국인이 내세운 의협(義俠)이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했다. 그 후에 나온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장철 감독, 1967), ‘심야의 결투’(장철 감독, 1968), ‘용문의 결투’(호금전 감독, 1966)도 성공을 거뒀다.
당시 쏟아져 나온 홍콩무협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여성 검객의 등장이었다. ‘방랑의 결투’의 주인공은 정패패라는 이름을 가진 똘똘하게 생긴 여검객이었다. 그때까지 나왔던 액션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주먹을 휘두르거나 총질하고 칼질하는 남성이었다.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그저 남자 주인공의 상대역이거나 남자들에게 싸움의 원인을 제공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칼과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정패패는 남자들과 똑같이 싸우는 여성이었다. 게다가 얼굴도 예쁘고 남성 못지않은 의협까지 지닌 협객이었다. 무용을 전공한 정패패는 제비처럼 날렵한 몸짓으로 단검 두 자루를 가지고 악당 남자들을 베고 찔렀다. 그녀는 영화 내내 중심에 서 있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액션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1950년대 말부터 인기를 끌며 제작되던 야쿠자 영화의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여자 도박사가 주인공인 ‘붉은 모란’ 시리즈가 나오면서 죽어가던 야쿠자 영화를 되살렸다. 야비한 도박 중독자들이 돈을 잃은 뒤 시비를 걸자 여자 도박사는 기모노의 옷깃을 잡아 어깨와 가슴 위까지 드러나게 옷을 벗는다. 등과 어깨에 새겨진 붉은 모란. 그녀는 단검을 들어 다다미에 꽉! 꽂고는 남자들을 노려본다.
그녀의 이름은 후지 준코, 중성적인 미모를 지닌 매력적인 여배우였다. 기모노를 입고 짧은 보폭으로 움직이다가 넓은 소매 속에 감춰둔 단도로 남자 야쿠자들의 숨통을 끊어놓는가 하면, 모두가 등을 돌린 몰락한 야쿠자를 지키기 위해 신흥 세력과 대결한다. 1960년대 후반 홍콩의 정패패와 일본의 후지 준코는 미소년 같은 얼굴에 남성들이 보여줄 수 없는 우아하고 날렵한 몸동작으로 남성 관객을 사로잡았다.
후지 준코 이후 일본의 여성 협객은 더욱 진화했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가지 메이코였다. 가지 메이코는 미소년 같은 중성적인 미모로 승부수를 띄운 정패패나 후지 준코와는 외모부터 달랐다. 긴 생머리와 우수에 찬 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가지 메이코와 ‘킬빌’
메이코의 연기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타란티노가 만든 영화 ‘킬빌’의 마지막 대결 장면, 우마 서먼과 일본인 킬러(루시 리우)의 눈 속 대결은 메이코가 연기했던 ‘수라설희’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수라설희’ 시리즈에서 메이코는 단검을 양손에 들고 후지 준코보다 더 잔혹하게 남성들과 싸웠고, ‘긴자 은나비’ 시리즈에서는 단도를 던져버리고 장검을 들었다. 눈처럼 하얀 기모노를 입고 그녀가 적진으로 들어가면 검은 양복을 입은 20~30명의 남성 야쿠자가 장검을 휘두르며 덤벼든다. 그녀의 칼에 베인 남성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하얀 기모노는 금세 새빨간 피로 물든다.
정패패나 후지 준코가 싸울 때만 해도 그녀들의 곁에는 언제나 멋진 검객이나 야쿠자가 있었고, 마지막 순간 이 남자들이 그녀들을 지켜줬다. 그러나 가지 메이코는 달랐다. 그녀의 주변에도 남자들은 많았지만 그들은 모두 메이코를 존경하는 부하일 뿐이었다. 오히려 남자들이 메이코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했다. 마지막 대결도 언제나 메이코의 몫이었다. 이전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진화였다.
홍콩에서는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지닌 남자배우 왕우와 이소룡이 등장하면서 여성을 앞세운 액션 영화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는 ‘예스마담’ 양자경이 등장할 때까지 10년 넘게 긴 휴식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땠을까. 관객을 모으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던 1960년대, 충무로도 무협 영화로 들썩였다. 홍콩 무협 영화가 성공을 거두자 부랴부랴 무협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웨스턴 스타일의 주먹 싸움만 하던 한국 영화계에도 검객이 등장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영화 ‘킬빌’의 한 장면.
게다가 홍콩의 무협 영화와 일본 야쿠자 영화에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신세계인 ‘의협’이 있었다. ‘협(俠)’은 강한 기득권에 대항하는 약자들끼리의 약속이면서 목숨을 담보로 하는 투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협을 지키는 남성들의 세계는 무협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판타지로 작용했다. 그런데 한국의 액션 영화에서 그려지는 ‘의리’는 이에 비하면 너무 약하고 허술했다.
1960년대 말 한국에서 만들어진 검객 영화에는 긴장감을 높이는 장철의 액션 기술도 없었고, ‘대자객’에서 광기로 가득한 왕우가 보여준, 자신의 얼굴을 칼로 도려내고 배를 가르는 지독함도 없었다. 온몸에 쇠말뚝이 박혀 죽었다가 원념 때문에 벌떡 일어나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영화 ‘심야의 결투’에서 왕우가 보여준 짐승 같은 연기를 맛본 관객들에게 당시 우리 검객 영화는 그야말로 하품 나오는 것이었다.
춘향이 홍세미의 대변신
그럼에도 우리 영화계는 검객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냈다. 여검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도 여러 편 나왔다. 상당한 당수 실력을 갖고 있던 영화배우 이대엽과 1960년대 여성 트로이카의 한 축이었던 윤정희가 주연을 맡은 무협 영화 ‘삼인의 여검객’(최인현 감독, 1969)은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홍콩의 정패패보다 미모가 뛰어난 윤정희가 검객으로 나온다니, 그 얼마나 흥미로운 일이었을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제목만 보면 여성 검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윤정희는 검객이라고 하기에는 헛웃음이 날 만큼 동작이 둔하고 카리스마도 없어 관객을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 더욱이 당시 한국 감독들은 일지매나 흑두건 같은 복면 도둑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는지, 아니면 주연배우의 형편없는 무술 실력을 숨기고 대역을 쉽게 쓰려고 그랬는지, 윤정희의 아름다운 얼굴에 복면을 씌우는 우를 범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장면이다.
여검객 윤정희가 사실상 실패한 뒤 나온 여배우는 홍세미였다. 홍세미는 1968년 김수용 감독의 ‘춘향’에 캐스팅되며 데뷔했다. 당시 춘향은 최고의 여배우에게만 주어지는 역이었고, 흥행 보증 수표였다. 더구나 홍세미의 상대역(이 도령)을 맡은 사람은 당대 최고배우 신성일이었다. 이렇게 화려하게 데뷔한 홍세미는 아름다운 미모와 균형 잡힌 몸매로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의 아성에 도전하는 촉망받는 배우로 평가받았다. 그녀는 TBC 연속극 ‘조선총독부’ 촬영 도중 키스신을 거부해 출연정지를 당하기도 했지만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후 홍세미는 권영순 감독의 검객 영화 ‘무정검’(1969)에 여성 검객으로 출연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배우는 액션 영화 출연을 노출 장면 연기만큼이나 꺼린다.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신인 여배우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여배우는 멜로 영화 속 우아한 여주인공을 꿈꾼다. 게다가 액션 영화를 촬영할 때는 부상도 각오해야 한다. ‘무정검’의 감독 권영순은 홍콩과 합작으로 당시 최고의 무협소설 작가였던 김광주의 작품 ‘비호’를 영화화하면서 홍콩 무협 영화의 노하우를 공부하고, 박노식과 홍세미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야심차게 검객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인지 불분명한 장소에서 시작된다. 첫 비무(比武·서로 겨뤄보며 실력을 가늠하는 것) 장면에서 박노식은 탄성이 나올 만큼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홍콩 무협 영화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액션이었다. 물론 저속촬영을 한 티가 좀 나는 게 흠이었지만,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했다.
그다음 장면에 드디어 홍세미가 등장한다. 홍세미는 이미 권영순 감독이 연출하고 박노식이 주연한 검객 영화 ‘백면검귀’에 출연한 바 있었다. 그녀는 남성 검객들 사이에 낀 비운의 여인 역을 맡았고,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암행어사와 흑두건’(김기풍 감독, 1969)에서는 정체불명의 검객 흑두건 장동휘의 애첩으로 나와 가야금을 타는 여인을 연기했다.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곁다리 여주인공에 불과했던 것이다.
여검객의 충격 액션
그러나 ‘무정검’의 홍세미는 달랐다. ‘방랑의 결투’ 정패패가 연상되는 의상에 단검 두 자루를 손에 쥐고 등장한 그녀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액션 장면을 연기했다. 1961년 한형모 감독이 만든 코미디 영화 ‘언니는 말괄량이’에서 문정숙이 선보인 유도, 만주 독립군 항일영화에서 여배우들이 총을 들고 싸우며 선보인 액션과는 차원이 달랐다. 춘향 출신 여배우 홍세미가 선보인 액션은 정패패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한강 모래사장에서 단검 두 자루를 쥐고 검객 박노식과 대결하는 라스트 신도 합격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1970년 권영순 감독은 홍세미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워 또 한 편의 검객 영화를 만든다. 제목은 ‘유정검화’. 영화가 시작되면 똘망똘망한 얼굴의 홍세미가 장검을 메고 등장한다. 마치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요짐보’에서 험상궂은 얼굴로 카리스마를 뿜어낸 미후네 도시로의 등장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이제껏 홍콩과 일본의 무협 영화에 등장한 여주인공들이 단검만을 사용한 것과도 비교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제까지 한국 액션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여배우 중심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홍세미.
산길을 홀로 걸어가는 홍세미 앞에 산적들이 나타나 그녀를 겁탈하려 할 때 멋진 사나이 남궁원이 나타난다. 홍세미는 연약한 척 뒤로 물러나고, 남궁원은 아름다운 홍세미를 구하기 위해 산적들과 20대 1의 싸움을 시작한다. 남궁원의 무술 실력은 뛰어나지만, 승부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심심해하던 홍세미의 얼굴에 장난기가 어리더니 풀잎을 따서 산적들에게 표창처럼 내공의 힘으로 날린다. 산적들의 등에 비수처럼 꽂히는 풀잎. 남궁원은 자신의 칼이 닿지도 않았는데 쓰러지는 적들을 보고 ‘이게 무슨 일이래?’ 하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해하지만 그것이 설마 홍세미의 솜씨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실제 영화를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연출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홍세미가 보여주는 수준급의 연기는 모든 것을 용서하게 만든다. 멋지긴 하지만 어리바리한 남궁원이 홍세미 앞에서 생색을 내자 홍세미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더니 놀라운 경공(輕功·몸을 날리는 무공)을 발휘해 순식간에 산 너머로 사라져버린다. 공교롭게도 남궁원은 그녀가 찾는 원수의 아들이었다.
당돌한 홍세미는 곧장 성으로 달려가 성문 앞에서 성주가 자기 아버지라며 만나게 해달라고 큰소리친다. 흥미가 동한 성주는 그녀를 들이고, 홍세미는 자신을 당돌하고 영리하지만 때때로 멍청한 캐릭터로 설정한 듯 성주가 있는 접견실을 지나쳐 가다가 아차! 하는 깨알 같은 연기도 보여준다.
이어 홍세미의 첫 대결 장면이 나온다. 악당들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등에 멘 장검을 빼어 든다. 양손을 검의 손잡이에 가져가자 검은 마술처럼 두 자루의 장검으로 변한다. 한 자루의 검이 두 자루로 나눠지는 비검이었다. 그녀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장검을, 그것도 양손에 한 자루씩 들고 적들과 싸운다. 그녀의 검술 연기는 이전 출연작과는 차원이 달랐다. 홍콩과 일본 액션 여배우의 연기와 비교해도 꿀릴 게 없는 아름답고 우아한 몸놀림과 검술 솜씨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태권소녀의 등장
홍콩의 무협 영화는 왕우의 ‘용호의 결투’ 이후 권격 영화로 진화해 한국 관객들의 혼을 빼앗고, 그다음엔 이소룡이 등장해 쿵푸 영화로 천하를 통일한다. 홍세미는 이후 어떤 액션 영화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아니 그 후로 여배우가 주인공인 액션 영화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여성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1970년 ‘팔도 사나이’의 인기에 편승해 용팔이 박노식의 애인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팔도 사나이의 여성편 ‘팔도 가시나이’(편거영 감독, 1970) 정도다. 주연 여배우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최지희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는 최지희에게 택시 강도 두 명이 위협을 가한다. 최지희는 순식간에 두 택시강도를 제압하고는 옷을 벗겨 경찰서로 데려간다. 그러면서 “직업전선에 뛰어든 여자가 이 정도 실력도 없을 줄 알았냐?”고 쏘아붙인다. 그러나 최지희의 연기를 본격 액션신이라고는 하긴 힘들다. 게다가 너무나 조잡하다.
영화는 최지희와 팔도 가시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용팔이 박노식이 등장하면서 급하게 마무리된다. 다방 레지, 여자 택시 운전사, 바걸 등 여성 8명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재미있을 법도 했지만 급조된 티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최지희도 몇 장면 출연하지 않아 주연이라 하기도 어렵다. 결국 1960년대에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액션을 제대로 소화해낸 영화는 홍세미가 주연한 ‘무정검’과 ‘유정검화’뿐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태권도 영화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단골 여배우는 여수진이었다.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그녀는 주로 짐승 같은 남성들에게 강간을 당하거나 버림 받는 역을 맡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태권도 유단자 여배우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임은주와 김정란이다. 이두용 감독의 태권도 영화에서 늘 악역으로 등장하던 험상궂은 얼굴의 사나이 권영문이 주연한 ‘흑룡’(김선경 감독, 1975)에서 조연으로 데뷔한 임은주는 이후 태권도 영화에 단골로 출연해 야무진 발차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무술 실력을 더욱 멋지게 드러낼 연출력이 부재한 가운데 그녀는 흐지부지 사라져갔다.
임은주보다 조금 늦게 등장한 태권도 여배우가 김정란이다. 성형수술한 티가 너무 나는 얼굴과 작은 키가 흠이었지만, 홍콩 합작영화 ‘사학비권’(로웨이 감독 1978)에도 출연해 존재감 있는 캐릭터와 발차기를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성룡을 구한 김정란
영화는 의문의 사나이 성룡이 주점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비전의 무술비급인 사학비권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품속에 있는 비급을 훔치기 위해 악당들이 그의 행동을 주시하는 가운데, 작은 키에 귀여운 얼굴을 한 거지 소년이 등장한다. 안하무인의 이 소년은 성룡의 탁자에 뻔뻔하게 동석해 사흘 굶은 거지처럼 온갖 음식을 시켜 볼이 미어져라 먹는다. 성룡 앞에서 어수룩한 척하지만 그는 사실 남장 여자였으며 성룡의 품속에 있는 사학팔보를 노리는 자들 중 하나였다. 김정란은 라스트 신에서 성룡을 구하려다 죽는 비운의 인물로 자신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태권도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 중 그나마 괜찮은 작품에서 인상 깊은 캐릭터를 연기한 예는 김정란이 거의 유일했다.
액션 영화 제작은 험한 일이다. 때리는 연기를 하면 진짜로 때리는 것처럼 몸을 움직여야 하고, 상대방이 다치지 않도록 약속된 동작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하지만 사고는 언제나 일어난다. 사람 목숨까지 걸린 일이 되다보니 촬영 현장은 항상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스태프와 배우들은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거칠어진다. 영화 속에서 매를 맞는 장면이 있으면 배우들은 진짜로 맞는 것과 똑같은 육체적 부담을 갖는다. 이런 험악한 상황에서 남성들과 대등하게 몸을 부딪치며 연기하는 여배우들에게 경배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