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이모 씨(48)는 3년 전부터 간헐적인 허리 통증으로 인근 정형외과에서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으며 지내왔는데, 최근 말로 표현 못할 통증이 갑자기 찾아왔다. 이전과는 달리 허리를 조금도 구부릴 수 없고, 허리부터 엉치, 좌측 발바닥까지 전기가 오는 것처럼 저리고 땅기는 통증이 일어났다. 허리를 구부리고 엉덩이를 뒤로 뺀 엉거주춤한 자세로 간신히 병원을 찾은 이 씨의 MRI(자기공명영상) 검사결과는 추간판탈출증이었다. 추간판(디스크)이 퇴행성 변화로 흘러나와 좌측 다리로 가는 신경을 심하게 압박했던 것이다.
통증 유발 신경만 차단
허리에 통증이 오면 흔히 ‘허리디스크’라고 알려진 추간판탈출증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척추는 척추 뼈와 디스크라 불리는 추간판으로 이뤄져 있으며, 추간판 안에는 젤리 형태의 말랑말랑한 수핵이 들어 있다. 양파 껍질처럼 생긴 섬유륜이 그 겉을 둘러싸고 있다. 추간판은 인체의 압력과 하중을 흡수하고 척추 뼈가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스프링 노릇을 하는 곳으로 늘 충격에 노출돼 있다. 오래 앉아서 일하거나 허리를 구부리고 무거운 물건을 자주 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경우 추간판이 손상될 위험이 크다.
추간판 손상으로 인한 질환은 추간판탈출증과 추간판내장증이 대표적이다. 추간판내장증은 엑스레이로도 알기 힘들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허리디스크’라고도 한다. 어떤 이유 때문에 추간판에서 수분이 빠져나가고 섬유 구조가 약해져 손상되면서 척추로 전달되는 충격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발생한다. 20~50대의 비교적 젊은 층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일반적으로 허리, 엉치부, 대퇴부 뒤쪽에 통증이 일어나며 추간판탈출증이나 척추관협착증처럼 하퇴부까지 통증이 내려오는 경우는 드물다. 오래 앉아 있거나 앉아 있다 일어설 때, 세안을 하거나 머리를 감을 때처럼 허리를 구부릴 때 통증이 심해지는 특징이 있다.
이 질환은 만성요통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근력 저하나 감각이상 등의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고 엑스레이 검사에서도 정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아 단순 근육통으로 오인되기 쉽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추간판 조영술이나 MRI 검사를 하는데, 추간판 조영술은 병이 진행된 추간판에 약물을 투여함으로써 평소와 같은 통증을 유발시켜 진단할 수 있다. MRI 검사를 하면 정상 추간판은 백색으로 나타나는 데 반해 내장증이 진행된 추간판은 흑색으로 변색되고 닳은 상태로 나타난다.
조기에 발견하면 통증으로 긴장된 허리를 휴식을 통해 안정시키거나 약물치료와 물리치료 등의 보존적 방법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보존적 치료를 해서 효과가 없을 때는 고장 난 추간판을 제거한 후 유합술을 하거나 인공 추간판으로 대체하는 수술을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수술 후 상당 기간 휴식을 취해야 해서 바쁜 환자에게 적용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최근에는 수술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디스크 내 고주파 열 응고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주삿바늘 모양의 전극을 디스크에 삽입한 후 고주파 열을 가해 망가진 디스크를 수축시키고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만을 선택적으로 골라 차단하는 치료법이다. 국소 마취 후 얇은 열선만을 삽입하므로 주삿바늘 크기의 상처만 남는다. 열선의 온도가 낮아(65~90℃) 주변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고 시술시간이 짧으며 합병증이 거의 없어 안전하다. 시술 후 즉시(당일)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디스크 잡는 신경성형술
신경성형술 시술.
추간판내장증이 추간판 내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질환이라면 추간판탈출증은 추간판이 약해지면서 척추에 가해지는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원래 위치보다 뒤로 밀리거나 섬유륜을 뚫고 수핵이 흘러나오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증상은 추간판의 손상으로 심한 요통을 느낄 뿐만 아니라 밀린 추간판이 뒤쪽의 신경을 자극해 다리가 저리거나 땅기는 하지 방사통이 발생한다. 심한 경우 다리 힘이 약해지고 배뇨 장애 등도 생길 수 있다.
하지 방사통은 어떤 추간판이 탈출했는지에 따라 통증 부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 요추 3~4번 사이 추간판이 탈출했다면 허리, 엉덩이, 허벅지 후·측면과 다리 앞쪽에 증상이 나타나고 요추 4~5번 사이 추간판이 삐져나왔다면 엉치 쪽과 허벅지 후면, 다리의 측부에서, 요추 5번과 꼬리뼈 1번 사이에서 발생했을 때는 발꿈치 뒷면과 새끼발가락 외측에 저림과 땅김 증상, 마비 등이 일어난다.
허리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흔히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는 표현을 쓰다보니 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으면 수술부터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드시 수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신경이 심하게 눌려 마비 증상이 발생한 환자가 아니라면 대부분 비수술적인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
증상 초기에는 우선 휴식을 취하고 약물치료와 물리치료 등의 보존적 방법을 시도해보고, 그래도 통증이 지속되면 디스크 내 고주파 열 응고술, 신경성형술로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추간판의 외측 섬유륜이 완전히 파열돼 수핵이 흘러내렸다면 디스크 내 고주파 열 응고술만으로는 효과가 떨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는 신경성형술로 치료할 수 있다.
고주파 열 응고술을 통해 추간판내장증을 치료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모형.
90%는 수술 않고 치료 가능
모든 질병이 그러하듯 허리 통증도 초기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허리 통증으로 고생한다면 먼저 전문의를 찾아 자신의 증상 정도와 증상에 맞는 적합한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척추질환자 중 90% 정도는 수술 없이도 치료가 가능하고 다양한 비수술적 치료법이 시행되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수술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치료를 받을 병원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은 비수술 치료의 장점을 간과하기 쉽고, 비수술적 치료를 위주로 하는 병원은 수술이 필요한 정도의 증상도 시술의 장점만 생각하다 수술 시기를 놓치거나 적당한 수술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척추질환자 중 시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와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의 비율은 10대 1쯤이라고 한다. 따라서 비수술적 치료나 수술적 치료 경험이 풍부한 전문 의료진을 갖춘 병원을 선택한다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하나의 질환 때문에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