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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개까지 팔아야 하나?

‘경제민주화’ 斷想

  •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 동아닷컴 ‘저널로그’ kangsdogs 운영자

대기업이 개까지 팔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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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개까지 팔아야 하나?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동네 입구에 있던 작은 빵집에서 단팥빵, 크림빵 등을 간혹 사주셨다. 1970년대 초반, 누구나 어렵던 시절이었다. 내가 빵집 테이블에 앉아 흰 우유 한 잔을 곁들이며 빵을 먹고 있으면 길 가던 또래 꼬마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지금은 외식 축에도 못 끼는 자장면 한 그릇 먹으러 중국음식점에 가는 것조차 손꼽아 기다리던 가난한 나날이었다. 동네 빵집은 나 같은 초등학생들이 꿈속에서도 들르는 공간이었다. 빵집에 다녀온 날이면 그걸 자랑하려고 일기장에 과장되게 기쁨을 표현했다. 그런 추억이 생생해 지금도 동네 빵집에 대한 아련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격동의 시기 1980년대에 대학엘 들어가니 교문 앞에 작은 커피숍이 즐비했다. 그 무렵 커피숍은 지금처럼 대기업 계열 전문매장이 아니라 영세 상인이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상점이었다. 인테리어도 주인장이 원하는 방식으로 꾸몄고, 메뉴도 주인장 마음대로 정했다. 최루탄 냄새를 피해 커피숍에 들어가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대학을 다닌 486세대들은 누구나 이런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대학원 강의를 하러 학교에 가보면 그 많던 작은 커피숍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를 대기업 계열사가 운영하는 획일화한 커피숍이 차지했다. 친구들과 민주주의와 통일을 논하고, 복지 정책의 필요성을 외치던 추억 속 공간은 지나간 시간 속 커피 향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향수 가득한 소중한 공간이 우리 사회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대기업 로고가 아닌, 자기 이름과 자존심을 건 커피숍을 찾으려면 어지간히 발품을 팔아야만 한다.



빵집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빵과 커피를 팔면서 자기 개성을 추구하는 아주 작은 호사마저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몰개성, 획일화 현상을 보면 마치 5000만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단체급식을 받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몰개성, 획일화 사회

적어도 빵집과 커피숍을 통해 본 우리 경제는 자연생태계로 따지면 종(種) 다양성이 사라진 위험한 곳이다. 생태계의 기초가 돼야 할 토끼, 노루 같은 작은 동물은 사라지고 사자, 호랑이, 늑대, 표범 같은 맹수들만 우글거리는, 균형이 무너진 생태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간 소형 빵집, 커피숍과 비슷한 전철을 밟아가는 분야가 최근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애견산업이다. 애견산업은 수년째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는 국내외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간 꾸준하면서도 안정된 성장세를 보여왔다.

농촌진흥청의 2011년 자료를 보면 1995년 5000억 원에 불과하던 국내 애견산업 규모는 연평균 11%대의 고성장을 거듭해 2011년 1조8000억 원 규모로 커졌다.

시장이 확대된 것은 개를 키우는 사람이 증가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내에서 키우는 애견 수는 250만 마리로 4인 가족 기준으로 거칠게 환산하면 5가구 중 한 곳이 개를 키우는 셈이다. 시장이 커지면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관심도 커지게 마련이다. 전국적 유통망을 갖추고 국내 유통업계를 주름잡는 대형마트 3사가 최근 잇따라 개를 비롯한 애완동물을 판매하는 전문매장을 열면서 관련 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보면 대형마트의 애완동물 전문매장 진출 현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직영 형태로 애완동물 전문매장을 운영하는 A마트는 지난해 11월 기준 15개의 애완동물 전문매장을 자사 매장에 개설해 운영 중이다. 프랜차이즈 형태로 애완동물 전문매장을 운영하는 B마트는 4개의 애완동물 전문매장을 개설 중이다. 또 다른 대형마트 C업체도 2013년 1월 수도권에 애완동물 전문매장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들어갔다.

대형마트가 개설한 애완동물 전문매장은 깨끗하고 널찍한 공간에 대중적 애완동물인 개와 고양이는 물론 햄스터, 고슴도치, 도마뱀, 거북, 관상어, 관상조 등을 ‘럭셔리’하게 진열해 판매한다. 매장 앞에 서 있으면 마치 작은 동물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대형마트 고객의 발걸음이 애완동물 전문매장 앞에서 자연스럽게 멈추게 된다.

대형마트의 애완동물 전문매장은 동네 애완동물 판매점(펫숍)에서는 볼 수 없던 많은 품종의 개와 고양이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사료와 용품을 가득 구비해놓았다. 그뿐 아니다. 애견미용실, 호텔, 동물병원은 물론이고 개와 주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카페도 운영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애완동물에 관한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대형마트의 애완동물 전문매장은 아직 사업 초창기 단계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본격화하면 전국 1900여 개 소형 펫숍 사업자의 생존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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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 동아닷컴 ‘저널로그’ kangsdogs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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