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밀착탐구

“예전엔 ‘돌직구’였대요 지금은 여우짓도 해요”

쉰둘 최영미의 새로 시작한 사랑, 그리고 詩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예전엔 ‘돌직구’였대요 지금은 여우짓도 해요”

2/6
그는 낭송을 마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최근에 쓴 시인데…, 좀 야하죠?”

그는 “같은 또래 남자와 ‘사귄 지’ 6개월째”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연애시는 뜨겁게 읽힌다.

▼ 야한 시를 골라 낭송한 까닭은요?

“조선일보가 시집이 새로 나왔다는 보도를 기자간담회 하는 날 조간에 보도했어요. 다른 언론사에 미안하더라고요. 그런데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



제목은 이랬다. ‘386 시인, 김일성·정일·정은을 쏘다’

“조선일보 기사를 읽은 이들이 시집에 풍자시만 담긴 것으로 오해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연애시를 낭송했고요.”

풍자시 ‘돼지의 죽음’은 통렬하다.

“김정일이 죽은 날 어머니가 병원에서 뇌수술을 앞두고 있었어요. 이튿날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초조하잖아요. 그런데 TV에 ‘돼지’가 나오는 거예요. 어머니가 ‘어쩜 그렇게 살쪘니? 인민은 굶는데…’라고 말씀했어요. 어머니 기분을 풀어드리려 한 농담이 그대로 시가 됐어요.”

돼지 3대가 지배하는 이상한 외투의 나라/ 꽃속에 파묻힌 아버지를 보며 꼬마 돼지가 눈물을 흘린다/ 돼지가 울자/ 농장의 모든 동물들이 통곡한다/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더 울고 싶지만 배가 고파서/ 혁명사상으로 불룩한 배를 우러러보며/ 뚱뚱한 수령의 말씀을 받드느라 삐적 마른 염소들,/ 영양실조에 걸린 사슴과 강아지들이 격한 울음을 토하고 때마침 눈이 내려/ 영구차가 미끄러질까 봐/ 위대한(그의 胃는 정말 거대했다)/ 장군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외투를 벗어 바친다

-시 ‘돼지의 죽음’에서

돼지짓, 여우짓

“예전엔 ‘돌직구’였대요 지금은 여우짓도 해요”
“최고존엄을 꼬집었다고 테러 당하지는 않겠죠? 시인을 상대로 지령 내리고 그러진 않겠지만, 북한 추종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엉뚱한 짓 할지도 모르잖아요.”

▼ 돼지를 왜 그렇게 싫어해요?

그는 2006년 풍자시집 ‘돼지들에게’를 냈다. 좌우를 막론하고 지식인의 거짓과 위선, 속임수를 꼬집었다. 가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돼지, 여우에 빗댔다.

“돼지고기는 좋아해요, 하하. 성경에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구절이 있어요. 거기서 착안해 시집 ‘돼지들에게’를 냈고요. ‘화장한 얼굴’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체질적으로 싫어요.김정일이 뚱뚱하고 돼지처럼 생겼잖아요. 안 그래요? 그 얘긴 그만 할래요. 무서워요.”

그에게 정치인은 ‘왼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오른손이 알게 하고/ 보도되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여우들’ (시 ‘정치인’에서)일 뿐이다. 또 ‘북조선에서는 잘 우는 사람이 출세하고/ 남한에서는 적당한 웃음이 성공의 비결’(시 ‘닮은꼴’에서)이라고 차갑게 비웃는다. 또한 ‘얼굴에 1억짜리 미소를 바르고/ 장애 아동의 몸을 씻기며/ 향수를 뿌린 목소리로/ 고통을 말하며/ 너는 어쩜 그렇게 편안할 수 있니?’(시 ‘정치인’에서)라고 묻는다.

▼ 여성 정치인 ○○○ 씨가 읽으면 섭섭할 것 같은데요.

“그녀가 모델이 됐지만, 그녀를 공격하려고 쓴 건 아니에요. 내 주변에 그 못지않게 성공한 여성이 있어요. ‘그녀’를 꼬집은 거예요.”

시 ‘성공한 여성’에 ‘자신의 내밀한 상처는 두터운 화장품으로 가리고/ 잡지에 인쇄된 세련된 웃음/ 그 여자의 성공 비결은 얄팍한 거울/ 들여다보되/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것/ 타인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지 않는/ 성공한 ‘그녀’가 또 한 번 등장한다.

▼ ‘나 아닌 다른 사람’은 모두 위선자라는 건가요.

“그런 거는 아니죠. 그런데 그런 맘을 가져야 풍자시를 쓸 수 있어요. 상대의 한 특징을 비꼬는 거잖아요. 풍자시는 작정하고 비꼬는 거예요. 물론 나도 위선자고요.”

▼ 여우짓은 안 하고요?

“여우짓 은근히 해요. 남자는 여우가 좋다면서요? 누가 그러던데 예전엔 제가 ‘돌직구’였대요. 여우짓 못했어요. 늘 정곡을 찔렀고, 정식으로 항의했고요. 그래서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든 뒤 적을 만들지 않으려면 적당하게 돌려 말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고요.”

▼ 돌직구만 던지다 지쳐 체인지업을 배웠다?

“체인지업은 아직 어렵고요. 변화구 정도는 던져보려고요.”

2/6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예전엔 ‘돌직구’였대요 지금은 여우짓도 해요”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