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 남북경협은 1992년 ㈜대우의 남포 경협사업이 효시다. 첫 삽을 뜬 지 22년이 지났는데도 성과물은 개성공단이 유일하다.
“남북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중간에 통역이 필요해요. 통역해주는 이들이 바로 ‘대북 브로커’입니다.”
10년 넘게 남측 인사를 북측에 연결해준 대북사업가 A씨는 대북 브로커가 하는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A씨는 “대북 사업가와 대북 브로커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덧붙였다. “남북 경협을 하다보면 북한에 인맥이 생긴다. 이를 이용해 타인의 사업을 알선하면 중개인(브로커)이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북사업가 B씨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북 사업을 하는 기업인이 교도소에 들락거리는 처지가 됐습니다. 북한 비즈니스는 자기 자본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투자자에게 받은 돈을 북한에 건네줬는데 5·24조치 탓에 추진하던 일이 중단됐다고 가정해봅시다. 불가항력이지만 사기가 되는 겁니다. 고소, 고발당하는 거죠.”
5·24조치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이후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과 대북 지원을 중단한 것을 말한다.
한 대북사업가는 “노무현 정부 때까지만 해도 ‘나를 통하면 북한 실세와 연결된다’면서 대북 브로커 구실을 한 이가 수십 명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개중엔 사기꾼도 적지 않았으나 실제로 일을 성사시킨 사례도 많다. 한국 기업의 북한 진출을 중개하거나 정치인의 북측 인사 면담을 알선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2006년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와 비밀 접촉을 갖고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을 논의했을 때도 대북사업가 K씨가 중개했다. 2009년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이명박-김정일 정상회담을 논의했을 때는 또 다른 대북사업가 Y씨가 핵심 역할을 했다.
남과 북의 경계인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실행하면서 남북교류가 활발해지자 대북 브로커가 늘었다. 남북경협을 하던 이들이 중국에 나온 북측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중개인 노릇을 한 것이다. 대북사업가를 접촉하는 북측 인사의 상당수는 대남 공작기관 소속이다. 이들의 공작 활동, 스파이 활동에 대북사업가들이 알면서도, 혹은 부지불식간에 끼어들 소지가 큰 것이다. 한 대북사업가는 “남북의 정보기관에 동시에 얽힐 수밖에 없다. 어제 베이징에서 북측 공작기관 요원을 접촉하고, 오늘 서울에서 국가정보원 요원을 만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대북 브로커들은 언론인, 정치인에게 북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인맥을 넓힌다. 이들이 전한 미확인 정보를 언론이 사실처럼 보도하면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친 일도 많다. 요즘 언론에 등장하는 ‘대북 소식통’의 상당수도 대북사업가이거나 대북 브로커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이라고 보도할 때는 국가정보원이 취재원일 때가 많다.
이명박 정부 때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대북 브로커들이 설 자리가 좁아졌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현재까지 남북관계의 중개인 노릇을 하는 이들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그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인사가 이 글의 주인공인 남북경협 기업 G한신의 김한신 사장이다.
2_ ‘통일부 장관 0순위’가 낙마한 까닭
#장면 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11일로 시곗바늘을 돌려보자.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이 이날 국회에서 북한이 신의주-평양-개성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중국과 협력해 건설하기로 한 내용이 담긴 북-중 합의문을 공개했다. 홍 의원은 “중국이 구성한 컨소시엄이 향후 5년 동안 신의주와 평양, 개성을 잇는 380㎞ 길이의 고속철도와 왕복 8차선 도로를 건설하고 30년 동안 운영권을 갖도록 돼 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장성택 숙청 이후인) 12월 8일 합의가 이뤄졌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직접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장성택의 숙청은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누이인 김설송과 북한 내 직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은 실세로 알려진 김설송의 남편 신봉남이 상황 전체를 진두지휘했다.”
신문, 방송은 “중국통으로 알려진 장성택이 숙청됐는데도 북중관계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홍 의원의 이날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홍 의원이 공개한 정보의 소스는 남북경협 기업 G한신의 김한신 사장이다. 홍 의원은 중국과 북한이 당국 차원에서 합의한 것처럼 설명했지만, 실상은 김한신 사장이 중국 기업과 북한을 연결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