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개성-신의주 고속철 추진하다 ‘계약사기’로 中 공안에 체포

한 대북사업가의 추락으로 본 남북관계 현주소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4-09-22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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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中 기업-현대건설 3각 프로젝트
    • 北 보위부, 南 국정원 넘나들며 활동
    • 통일장관 0순위 최대석 낙마에도 연루
    • 남북관계 왜곡하는 브로커의 세계
    개성-신의주 고속철 추진하다 ‘계약사기’로 中 공안에 체포

    개성공단. 남북경협은 1992년 ㈜대우의 남포 경협사업이 효시다. 첫 삽을 뜬 지 22년이 지났는데도 성과물은 개성공단이 유일하다.

    1_ 대북 브로커가 사는 법

    “남북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중간에 통역이 필요해요. 통역해주는 이들이 바로 ‘대북 브로커’입니다.”

    10년 넘게 남측 인사를 북측에 연결해준 대북사업가 A씨는 대북 브로커가 하는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A씨는 “대북 사업가와 대북 브로커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덧붙였다. “남북 경협을 하다보면 북한에 인맥이 생긴다. 이를 이용해 타인의 사업을 알선하면 중개인(브로커)이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북사업가 B씨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북 사업을 하는 기업인이 교도소에 들락거리는 처지가 됐습니다. 북한 비즈니스는 자기 자본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투자자에게 받은 돈을 북한에 건네줬는데 5·24조치 탓에 추진하던 일이 중단됐다고 가정해봅시다. 불가항력이지만 사기가 되는 겁니다. 고소, 고발당하는 거죠.”

    5·24조치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이후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과 대북 지원을 중단한 것을 말한다.



    한 대북사업가는 “노무현 정부 때까지만 해도 ‘나를 통하면 북한 실세와 연결된다’면서 대북 브로커 구실을 한 이가 수십 명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개중엔 사기꾼도 적지 않았으나 실제로 일을 성사시킨 사례도 많다. 한국 기업의 북한 진출을 중개하거나 정치인의 북측 인사 면담을 알선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2006년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와 비밀 접촉을 갖고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을 논의했을 때도 대북사업가 K씨가 중개했다. 2009년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이명박-김정일 정상회담을 논의했을 때는 또 다른 대북사업가 Y씨가 핵심 역할을 했다.

    남과 북의 경계인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실행하면서 남북교류가 활발해지자 대북 브로커가 늘었다. 남북경협을 하던 이들이 중국에 나온 북측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중개인 노릇을 한 것이다. 대북사업가를 접촉하는 북측 인사의 상당수는 대남 공작기관 소속이다. 이들의 공작 활동, 스파이 활동에 대북사업가들이 알면서도, 혹은 부지불식간에 끼어들 소지가 큰 것이다. 한 대북사업가는 “남북의 정보기관에 동시에 얽힐 수밖에 없다. 어제 베이징에서 북측 공작기관 요원을 접촉하고, 오늘 서울에서 국가정보원 요원을 만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대북 브로커들은 언론인, 정치인에게 북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인맥을 넓힌다. 이들이 전한 미확인 정보를 언론이 사실처럼 보도하면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친 일도 많다. 요즘 언론에 등장하는 ‘대북 소식통’의 상당수도 대북사업가이거나 대북 브로커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이라고 보도할 때는 국가정보원이 취재원일 때가 많다.

    이명박 정부 때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대북 브로커들이 설 자리가 좁아졌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현재까지 남북관계의 중개인 노릇을 하는 이들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그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인사가 이 글의 주인공인 남북경협 기업 G한신의 김한신 사장이다.

    2_ ‘통일부 장관 0순위’가 낙마한 까닭

    #장면 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11일로 시곗바늘을 돌려보자.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이 이날 국회에서 북한이 신의주-평양-개성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중국과 협력해 건설하기로 한 내용이 담긴 북-중 합의문을 공개했다. 홍 의원은 “중국이 구성한 컨소시엄이 향후 5년 동안 신의주와 평양, 개성을 잇는 380㎞ 길이의 고속철도와 왕복 8차선 도로를 건설하고 30년 동안 운영권을 갖도록 돼 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장성택 숙청 이후인) 12월 8일 합의가 이뤄졌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직접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장성택의 숙청은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누이인 김설송과 북한 내 직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은 실세로 알려진 김설송의 남편 신봉남이 상황 전체를 진두지휘했다.”

    신문, 방송은 “중국통으로 알려진 장성택이 숙청됐는데도 북중관계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홍 의원의 이날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홍 의원이 공개한 정보의 소스는 남북경협 기업 G한신의 김한신 사장이다. 홍 의원은 중국과 북한이 당국 차원에서 합의한 것처럼 설명했지만, 실상은 김한신 사장이 중국 기업과 북한을 연결한 것이었다.

    개성-신의주 고속철 추진하다 ‘계약사기’로 中 공안에 체포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007년 11월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 서명한 후 건넨 의향서(왼쪽)와 대우건설이 2007년 11월 5일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함께 작성한 의향서. 노무현 정부 때까지 대북 브로커들은 대기업 회장을 중국으로 데리고 가 북한 인사를 만나게 할 만큼 활발하게 활동했다.

    #장면 2 : 통신사 뉴스1은 3월 13일 ‘북한에 한중합작 고속철도 건설…현대건설 등 물밑 작업’ 제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을 비롯해 현대로템, 현대제철 등 고속철도 건설에 필요한 그룹 계열사의 전방위적인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계동 본사에 각 그룹 계열사 관계자들이 참여한 철도사업추진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개성-신의주 고속철도 사업성 검토와 실무지원에 나섰다. 현대건설은 사업이 본격적으로 착수되면 프로젝트를 이끄는 주관사를 맡고 시공과 엔지니어링을 맡을 기업들로 컨소시엄을 꾸릴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을 비롯해 계열사인 고속철 차량 제조사인 현대로템 등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상당수 신문, 방송이 뉴스1 기사를 받아서 보도했다. 한 경제신문은 “한국·중국 합작사가 북한과 대규모 고속철도 건설사업을 계약했다는 소식에 철도 관련주가 상승세다. 현대건설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도 설계와 컨소시엄 구성 등 물밑 작업을 진행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의 소스 역시 G한신 김한신 사장이다.

    김설송이 北 실세?

    #장면 3 :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 외교안보팀에서 좌장 역할을 한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가 ‘통일부 장관 0순위’로 불리면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일하다가 돌연 사퇴한 배경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1월 18일 ‘최대석, 朴도 모르게 北 비밀접촉 주선’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최 위원이 자신의 측근인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중앙일보 기사에서는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의 불법 대북접촉 시도와 관련해 낙마했다는 취지의 보도였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1월 29일 속보(續報)에서 “최대석 전 위원과 교감해온 것으로 전해진 여권 인사 A씨(길정우 의원)가 베이징을 방문한 지난해 12월 25일, 북한 국방위 부부장급인 박인국이 평양에서 나와 현지에 있었다” “양측의 회동은 북측이 박 당선인의 의중을 확인할 신임장 형태의 문건을 요구하면서 불발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등장한 ‘박인국’이라는 사람은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 김한신 사장이 국정원에 보고서를 내면서 만들어낸 가명으로 이 인사의 이름은 ‘이명복’이다. 김 사장은 길정우 의원에게 이명복을 언젠가 소개해주려고 했으나 길 의원이 베이징에 체류 중이던 12월 25일 이명복은 북한에 있었다고 한다.

    최대석 전 인수위원 낙마는 국정원이 잘못된 정보를 박근혜 당선인 측에 보고하면서 발생했을 소지가 큰 셈이다. 어쨌거나 ‘통일부 장관 0순위’가 낙마한 이 사건에도 김한신 사장의 이름이 등장한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이명복은 북한 보위부 소속”이라고 말했다. 이명복은 2012년 대선 때 김한신 사장을 통해 문재인 캠프 쪽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아’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내용은 이러했다.

    “(…) 당선자가 북한을 협력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선소감, 신년사, 취임사에 상기 내용이 적절하게 사전 협의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북 문제 언급 수위를 조절해 잘못된 문구 하나로 파탄 나는 결과를 초래하면 안 된다. 천안함 문제는 인정 못하며, 5·24조치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민주당의 취임식 (북측 인사 초정) 관련 사전 발표는 불쾌하다. 협의도 없이 발표하는 일방적 행태는 인정 못한다. 초청하면 참석하지만 선물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핫라인 구성이 필요하다. 대선 2~3일 전부터 가동해 취임식까지 운영하자. 특사는 당선자의 신임장을 지참해야 한다.”

    김한신 사장은 이렇듯 북한의 메시지를 한국 정치권에 전하는 역할도 해왔다.

    금강산 관광 사업을 하는 현대그룹 관계자는 “김한신 사장은 북한 권력층에서 들은 얘기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전파했다. ‘김설송(김정은 이복누나)이 뒤에서 김정은을 주무른다’ ‘김설송 남편이 군 조직을 꽉 잡았다’ ‘이영호 총참모장 집에서 70만 달러가 나왔다’ 등의 확인 불가능한 얘기들인데, 언론이 대북 소식통발(發)로 김 사장 주장을 단독보도인 양 보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김설송 실세설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대기업, 언론이 북한을 다루는 현주소가 이렇듯 대북사업가 한 명에 의해 휘둘릴 만큼 허술하다.

    3_ 경협 기업 G한신의 추락

    개성-신의주 고속철 추진하다 ‘계약사기’로 中 공안에 체포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문건. 2010년 1월 G한신과 맺은 계약을 해약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한신 사장은 남북관계가 막힌 이명박 정부때도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신동아 취재 결과, 김한신 사장은 지난 5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현재 중국 감옥에 수감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에 따르면 적용된 혐의는 ‘계약사기’다. 김 사장과 대북 사업을 함께 한 K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개성-신의주 고속철도 사업을 함께 진행한 중국 기업 상지관군유한공사를 비롯해 여러 군데에서 고발한 것으로 압니다. 김 사장의 북한 인맥이 장성택 사망 이후 제거된 것 같은데, 중국 쪽 합작회사들이 ‘(계약해놓고) 이게 뭐냐’ 한 거죠. 사업이 현실화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한국 정부가 못하게 해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대북사업가 D씨는 “북한에서 자원을 가져다준다고 돈을 받았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돈을 변제하면 석방될 것 같아 모금 운동을 준비하는데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지인 H씨는 “김한신이 국정원과도 가깝게 지냈는데 국정원 인사가 국가 간 문제가 될 수 있어 못 도와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를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김한신 사장은 김고중 전 현대아산 부사장과 함께 개성-신의주 고속철도 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김 전 부사장은 현대종합상사 베이징지사장으로 일할 때 금강산 관광 사업이 성사되도록 실무 차원에서 처리했고(1998년),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김정일과 개성공단 설립에 합의할 때도 실무를 맡은 남북경협의 산증인이다. 김 전 부사장이 옛 인맥을 통해 현대건설 쪽에 김한신 사장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부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합의한 대로 이행이 안 되면서 김한신 사장이 말려들어갔다고 합니다. 자세히 설명은 못하지만 그간 우리가 한 일이 많아요. 개성-신의주 고속철도는 철도 주권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구한말 프랑스 러시아 일본이 한반도의 철도 이권을 갖고 다투지 않았습니까. 현대건설도 관심이 있었어요. 일본이 북한 철도에 주목합니다. 북한 철도가 향후 남북 경제에 미칠 긍정적 효과가 엄청납니다. 김 사장을 이렇게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민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어요.”

    김한신 사장이 구상한 그림은 상지관군유한공사가 북한 지하자원 개발권을 얻어 자금을 대고 현대건설이 설계와 공사를 맡는 것이었다. 현대건설 측은 “개성-신의주 고속철도 사업을 공식적으로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 대북사업가는 “중국 기업이 앞으로 사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지 그들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고 고발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4_ 남북관계 현주소

    김한신 사장은 남북관계가 경색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북한 사업을 벌인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중국에서 유리공장을 운영하다 김대중 정부 때 북한 유리공장 설립을 추진하면서 대북 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식품 가공, 무산광산 개발 등에 나섰으나 성공한 사업은 없다. 다른 대북사업가들이 정치 상황 탓에 대북 사업을 포기하거나 망한 상황에서도 그는 소신을 갖고 움직였다.

    북한의 대남 공작기구 관료들은 브로커로서의 유용성을 검증하고자 남측 고위 인사나 대기업에 접근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한 후 대북사업가를 상대한다. 김 사장 역시 대북 사업을 위해 대기업 및 정치인들과 접촉했다. 북한 체제 특성상 큰 비즈니스를 성사시킬 경우 사업권의 일부나 지분을 얻을 수 있다.

    김한신 사장의 추락은 남북관계의 비극적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이 온전하게 소통하지 못하다보니 온갖 대북 브로커가 판치고, 때로는 그들로 인해 남북관계가 왜곡됐다.

    그렇다고 해서 대북 브로커를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냉전 시기 소련과 미국, 서독과 동독의 사례를 보더라도 이른바 ‘백(back)채널’이 돌파구 구실을 한 적이 많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은 재일동포 기업인 요시다 다케시 씨의 작품이다.

    김한신 사장은 요시다 씨 같은 역할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은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지난해 6월 “특사든, 메신저든 북한에 보내 대화 창구를 열어야 한다. 김한신 사장 같은 대북사업가라도 북한에 들여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북한 당국의 공식 경제 교류가 활발하면 중개인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 박근혜 정부는 백채널을 통해 남북대화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공식 채널에서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황에서 김한신 사장이 소신에 따라 고군분투하다 추락했다고도 할 수 있다. 김 사장의 추락은 현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와 정치권, 언론이 남북관계와 관련해 얼마나 무지하고 무능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생생한 사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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