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수함은 사방에서 강한 수압을 받기에 함체를 완벽한 원형(眞圓)으로 만든다. 내구성이 강한 특수강으로 거대한 섹션 5개를 만들고 섹션 안에 각종 부품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5개 섹션을 특수 용접하고 내부 부품도 동시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잠수함을 완성한다.
잠수함은 일정 기간 사용한 후엔 설계수명이 다한 부품 등을 교체하는 ‘창 정비’를 해야 한다. 잠수함은 물속에 잠긴 채 다니기에 군함처럼 사람과 장비를 싣는 큰 출입문이 없다. 수밀(水密)이 되는 해치만 있다. 따라서 창 정비를 할 때는 ‘절단’을 해야 한다.
배 안에는 물건을 싣는 넓은 공간이 있지만, 잠수함에는 승조원 공간을 제외하곤 빈 곳이 없다. 잠수함의 절단면을 보면 토막 친 물고기의 단면처럼 내장(부품)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대우가 할 일은 창 정비뿐이었다. 처음 대우가 창 정비를 할 때 해군은 ‘물 새는 잠수함’을 만들어놓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전혀 문제가 없자 마음을 놓았다.
인도네시아는 1985년 우리보다 먼저 209 두 척을 도입했다. 그런데 조선 실력이 달려 창 정비를 HDW에 맡겼다. 창 정비 외에는 할 일이 없던 대우가 접근했다.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뭐니는 머니(money, 돈)’란 점에 착안해 “더 싸게 해주겠다”고 설득한 것.
이것이 성공해 209 한 척을 창 정비해줬는데 인도네시아 해군이 대만족했다. 그리고 또 한 척을 맡기면서 전투 체계를 노르웨이가 개발한 최신형으로 교체해달라고 했다. 창 정비보다 훨씬 어려운 성능 개량을 부탁한 것. 잠수함의 부품 교체는 사람으로 말하면 장기 이식과 같다. 인체는 면역체계의 일종인 ‘자기 인식’ 기능을 갖고 있어, 자기 성질과 다른 장기를 이식하면 강력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잠수함도 비슷하다. 대우는 이를 해결해 완벽한 성능 개량에 성공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대우는 DSME -1400으로 명명한 대우형 209(1400t)를 설계했다. 그때 인도네시아가 잠수함 3척을 도입한다는 공고를 냈다. 대우는 ‘목마른 놈이 샘 파는’ 심정으로 입찰에 도전했다. 경쟁자는 러시아의 킬로급과 HDW의 209였다. 예선에서 킬로가 탈락해 대우와 HDW가 결승을 치렀는데, 엎치락뒤치락하다 대우가 승리했다. ‘머니’가 중요한 구실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대우는 스승을 꺾는 기적을 일군 것이다(1조 2000억 원 규모).
인도네시아는 ‘방산 한류’물꼬를 터줬다. 잠수함에 이어 고등훈련기 도입 사업을 벌여 한국의 T-50을 선택한 것. 이 사업에서도 한국은 러시아와 경쟁했다. 러시아는 낮은 가격의 야크기를 내세웠다. 그런데 야크기가 추락 사고를 내자 인도네시아는 안전성을 이유로 T-50 구입으로 돌아섰다(16대, 4000억 원 규모). 그리고 한국이 싼 가격에 안전한 무기를 만든다고 보고,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도 공동 투자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인도네시아는 한국 배우기에 열중한다. 방위사업청의 공무원과 기술자들을 보내 대우가 잠수함을 제대로 만드는지 감독하며,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그중 한 명이 특수선 공장에서 기자가 본 사람이었다. 20여 년 전 HDW가 대우와 한국 해군을 상대로 했던 일을 지금은 대우가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하는 셈이다.
한국의 길, 일본의 길
그러는 사이 손원일급 3척을 건조한 현대가 더는 저가 입찰을 못하겠다고 물러섰다. 정부는 인도네시아 성공신화를 만든 대우를 불러들여 4번함부터는 대우와 현대가 번갈아 건조하게 했다. 가격도 현실화했다. 이는 정부가 현대를 잠수함 사업에 참여시킬 때 내건 명분을 실천에 옮긴 것이기도 했다.
일본은 한 조선소가 적의 공격으로 파괴돼도 다른 조선소에서 전략무기인 잠수함을 계속 짓겠다는 전략으로, 미쓰비시와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번갈아가며 잠수함을 만들게 했다. 두 조선소를 유지하려면 물량이 많아야 한다. 일본은 30년인 잠수함의 작전수명을 18년으로 한정해 조기 퇴역시키고, 새 잠수함을 짓는 방법을 택했다. 조기 퇴역한 잠수함은 잘 보관했다가 유사시 다시 꺼내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