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호

20만관중 마라카낭, 축구메카 웸블리, 관광명소 서귀포

  • 김한석·스포츠서울 축구부 기자 hans@sportsseoul.co.kr

    입력2004-11-12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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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꽉 들어찬 관중과 푸른 잔디, 그리고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구는 함성…. 축구장에서는 축구 말고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역대 월드컵 경기장은 추억의 명승부와 더불어 수많은 축구스타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사상최대 규모인 20개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1998년 제16회 월드컵 때까지 최다 경기장을 기록한 대회는 1982년 스페인대회로 14개 도시에서 총 17개 스타디움을 사용했다. 86멕시코와 90이탈리아대회에서는 각각 12개 경기장으로 줄어든 뒤 1994년 미국대회 때는 9개 경기장으로 더 떨어졌다. 본선티켓이 24장에서 32장으로 늘어난 98프랑스대회에에서도 10개 경기장에 그쳤는데 4년 뒤 무려 100%나 증가한 셈이다.

    경기장을 모두 신축한 한국은 대구 인천 부산 등 3개 경기장을 제외하고 7개 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만든 반면, 일본은 사이타마 고베 이바라키 등 3개만 전용구장일 뿐 나머지는 종합경기장이다. 한·일 양국은 월드컵을 통해 축구환경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무리를 감수하면서 경기장을 10개씩이나 새로 건설한 것이다.

    한·일 양국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경기장은 당연히 개막전과 결승전을 치르는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요코하마국제종합경기장이다.

    2002년 5월31일 오후 8시30분 98월드컵 우승팀 프랑스와 월드컵 본선무대에 처녀 출전하는 아프리카의 다크호스 세네갈의 개막전이 열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6만4677명을 수용하는 아시아 최대의 축구전용구장이다. 한국과 크로아티아의 개장경기(2001년 11월 10일)를 관람한 기자들은 프랑스의 생드니경기장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내렸다. 특히 경기장 안팎을 대낮같이 밝히면서도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268개의 조명장치, 그라운드가 관중석 바로 앞까지 펼쳐져 있어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내부구조 등이 호평을 받았다.

    6월30일 오후 8시 대망의 결승전이 펼쳐지는 일본의 요코하마국제종합경기장은 이번 월드컵 스타디움 중 최대 규모다. 공식 좌석수는 7만564석이지만 대회기간에는 7만2000여 석으로 늘어난다. ‘월드컵 리허설’ 격으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 일본 대 호주전 (2001년 6월) 때는 시간당 5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졌음에도 그라운드에 물이 고이지 않아 FIFA(국제축구연맹)의 극찬을 받았다. 요코하마경기장은 폐기물을 이용해 경기장내 전력을 공급하며 빗물을 이용해 잔디와 화장실을 관리하는 등 에너지절약형 경기장이다. 하지만 2001년 8월 미국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경기장 주변이 다이옥신 납 수은 등 중금속으로 오염돼 있다는 기사가 실려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밖에 빅이벤트가 치러지는 경기장도 관심을 끈다. 6월8일 브라질과 중국이 맞붙는 서귀포월드컵경기장과 ‘죽음의 조’인 F조의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격돌하는 삿포로돔이 대표적이다.

    20개 경기장 중 가장 늦게 문을 연 서귀포월드컵경기장(2001년 12월9일)은 제주도가 세계최고를 목표로 건설했다. 제프 블래터 FIFA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 중의 하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만큼 바다와 섬 그리고 한라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이 돋보인다. 수용규모는 4만2256석. 특히 월드컵 본선에 처음 오른 중국 관광객이 최고로 선호하는 곳이 제주여서 서귀포는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보인다.

    삿포로돔은 실내와 실외에 인조잔디 야구장과 천연잔디 축구장을 갖추고 때에 따라 야구장 모드와 축구장 모드로 전환되는 세계 최초의 ‘공기부상식 축구장(hovering soccer stage)’이다. 8300톤이나 되는 잔디판이 축구경기 때면 32개의 바퀴판을 타고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최첨단 경기장이다.

    한국이 경기하는 장소는 6월4일 부산(폴란드전), 10일 대구(미국전), 14일 인천(포르투갈전) 등이다. 아시안게임을 치른 부산 구장은 종합경기장으로 지었다. 천지의 조화를 이루는 대공간을 구현하기 위하여 원형인 경기장 둘레에 토성의 띠처럼 생긴 덱(경기장내로 진입하는 통로)을 설치한 것이 특징.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주경기장으로도 쓰일 대구월드컵경기장은 국내 최대규모인 6만5857석의 관중석을 확보했다. 자연채광이 가능한 테플론코팅(FTFE) 지붕막이 관중석의 74%를 덮고 있어 쾌적한 환경에서 경기를 볼 수 있다. 인천문학경기장은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는 범선의 모습으로 지어졌다.

    한국이 만일 16강에 올라가면 대전(D조 1위)이나 전주(D조 2위)에서 8강전을 벌인다.

    한국 전통가옥의 안마당과 같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세련된 구조를 갖춘 대전경기장은 지붕이 반개폐로 설계돼 우천시에 70%의 관중이 비를 피할 수 있다. 전주경기장은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 형상으로 지붕을 만들어 멀리서 보면 만선의 꿈을 안고 돌아오는 화포(花布) 돛배처럼 보인다.

    축구장에도 개성이 있다

    일본은 6월4일 벨기에, 9일 러시아, 14일 튀니지를 상대로 각각 사이타마 요코하마 오사카에서 예선을 치르고, 16강에 진출한다면 미야기(H조 1위) 또는 고베(H조 2위)에서 8강진입을 노린다. 사이타마경기장은 관중 6만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본 최대의 축구전용구장으로 태양열 발전설비를 비롯한 첨단 운영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오사카 나가이경기장은 4만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미래를 향해 날아가는 새의 양 날개를 형상화한 지붕이 인상적이다. 한편 고베의 미사키경기장은 1995년 대지진을 겪어 폐허가 된 고베에 지어진 만큼 진도 7.2의 강진에도 이상이 없도록 특수철강으로 만들었다.

    이밖에도 수원월드컵경기장은 프랑스의 생드니경기장을 만들었던 팀이 설계에 참여했는데 새의 날개를 형상화한 지붕과 축구선수가 공중볼을 컨트롤하는 모습이 그려진 관중석이 인상적이다. 경기도와 수원시민들이 자발적으로 ‘1인 1의자 갖기 운동’을 벌여서 의자에 성금자의 명함을 붙이는 등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또한 광주월드컵경기장은 무등산의 완만한 선을 이미지로 표현했는데, 전체적인 외양이 광주 전통민속놀이인 고싸움놀이에 사용되는 고의 머리를 연상케 한다.

    시즈오카경기장은 일본 J1리그 시미즈 S-펄스와 주빌로 이와타의 연고지역. 이곳은 1300여 개에 달하는 각급 클럽과 4만7600여 명의 등록선수를 보유해 축구의 수도로 불리는 ‘축구메카’다. 오이타경기장은 전체를 지구본 모양으로 만들어 ‘지구환경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지붕에 이동식 ‘스카이카메라’를 설치해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장면을 제공할 수 있다.

    흔히 월드컵경기장 앞에는 지명이 붙는데, 지명 대신 애칭이 따라다니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4월 국내 경기장 중 가장 먼저 개장한 울산문수경기장은 공모를 통해 신라 왕관 형태인 문수경기장의 외형을 상징한 ‘빅 크라운(Big Crown)’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또한 일본의 니가타경기장은 백조의 도래지로 유명한 도야노호수 옆에 위치한데다 지붕의 곡선이 백조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빅 스완(Big Swan)’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역대 월드컵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장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을 꼽을 수 있다. 이곳은 1950년 브라질월드컵 우루과이와 브라질의 결승전이 열린 경기장이다. 당시 입장관중 19만9584명은 아직도 월드컵 사상 세계 최고로 남아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자료이며 당시 입석까지 포함하면 20만 명이 훨씬 넘었을 거라는 보고서가 있다. 당시 브라질은 마라카낭에서 우루과이에 뼈아픈 역전패를 당해 준우승에 그친 바 있다.

    하지만 브라질은 이곳에서 수많은 프로축구 빅이벤트를 소화해내며 펠레 자일징요 가친샤 호마리오 등와 같은 월드스타를 배출했다. 마라카낭은 시설이 낙후되면서 보수를 거듭한 끝에 현재는 8만여 명이 입장하는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한때 국제대회를 유치하지 못하자 허물어버리자는 주장도 나왔으나 펠레 를 주축으로 축구팬들이 브라질인의 영원한 쉼터로 남겨야 한다는 ‘마라카낭 지키기운동’을 벌였다. 브라질 정부는 2700만달러를 투자해 마라카낭경기장을 복합문화시설로 개조할 예정이다.

    월드컵 역사의 영원한 명승부를 간직하고 있는 잉글랜드축구의 본산 웸블리스타디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축구종주국 잉글랜드가 서독을 4대2로 물리치고 줄리메컵에 첫 키스한 현장이다. 그러나 2000년 10월8일 월드컵예선 잉글랜드 대 독일전을 마지막으로 축구종주국의 영욕과 전설을 간직한 채 새로 태어나기 위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초 영국황실전시장으로 건립된 웸블리는 1923년 FA(축구협회)컵 결승전을 시작으로 잉글랜드에 최초의 우승컵을 안긴 1966년 월드컵 결승전, 1996년 유럽선수권 결승전 등 빅이벤트가 열려 지구촌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곳에서 잉글랜드는 223회의 A매치를 벌여 72.8%의 경이적인 승률(132승 61무 30패)을 올렸다.

    그러나 ‘굿바이, 웸블리’를 부르며 나선 고별전에서 잉글랜드는 숙적 독일에 패했다. 또한 독일전의 충격으로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을 영입해 본선 진출을 달성하는 전화위복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웸블리는 이제 5억7000만파운드(약 7320억원)를 들여 2003년 가을 축구황제 펠레가 표현한 대로 ‘축구의 교회’로 새롭게 탄생한다. 당초 예산지원을 거부했던 영국정부도 9만명을 수용하는 종합경기장으로 개조해 축구는 물론 2003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을 열기로 결정했다.

    잊을 수 없는 명승부

    멕시코 아즈테카스타디움은 1970년과 1986년 두 번의 월드컵 결승전이 벌어진 유일한 경기장이다. 해발 2230m의 멕시코시티에 위치해 유럽팀들은 이곳에서 산소부족을 느끼면서 악전고투했다. 아즈테카에서 우승한 팀은 역시 고원 국가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다.

    20세기 마지막 월드컵을 장식한 프랑스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도 명물이다. 이곳은 정부와 대회조직위가 27억프랑(약 4000억원)을 들여 건립한 프랑스 축구의 새로운 메카로 프랑스의 기술력과 예술미를 세계에 과시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38년 프랑스월드컵의 메인스타디움이었던 파리 시내의 파크 데 프랑스를 대신하는 이 경기장이 건설된 뒤 프랑스는 98프랑스월드컵, 유로2000, 2001컨페더레이션스컵을 모두 제패하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슬픈 일도 생겼다. 98프랑스월드컵 우승주역인 지네딘 지단이 이곳에서 알제리와 친선경기(2000년 10월)를 하다 눈물을 흘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지단의 모국은 알제리. 1962년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처음 열린 양국간 경기는 종료 15분을 남기고 수천 명의 알제리 청년들이 경기장에 난입하면서 중단됐다. 이민온 아버지가 지단의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했던 곳이 바로 생드니였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를 준 모국 알제리와 화해를 위한 경기를 갖다가 불상사가 일어났으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월드컵경기장 중에는 선수나 공로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곳도 있다. 90이탈리아월드컵 개막전에서 카메룬이 전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1대0으로 격파한 현장은 밀라노의 산시로스타디움. 이곳은 1979년 이탈리아 인터밀란에서 활약했던 톱스타의 이름을 따서 주세페 메아차 스타디움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인터밀란과 AC밀란이 공동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더비 매치(같은 연고지역 라이벌팀간의 대결)’를 이어가고 있다.

    역시 90이탈리아월드컵이 열린 제노아경기장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제노아 축구영웅의 이름을 따서 루이지 페라리스 스타디움으로 바뀌었다. FIFA총회에서 훌륭한 연설로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1962년 월드컵 유치권을 따낸 카를로스 디트본 칠레축구협회장이 개막 한 달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칠레의 모든 경기장에는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월드컵을 개최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는 녹음연설이 울려퍼졌다. 그래서 칠레정부는 그의 축구열정과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아리카에 지은 경기장의 이름을 ‘카를로스 디트본’으로 결정했다.

    월드컵 경기장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우루과이는 1924년과 1928년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하고 독립 100주년을 맞아 1930년 월드컵을 개최했다. 하지만 독립 100주년을 뜻하는 센테나리오 스타디움이 개막 때까지 완공되지 않아 역사적인 월드컵 첫 경기는 포시토경기장에서 고작 10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졌다. 7월18일 독립기념일에 맞춰 7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우루과이는 페루와의 개장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해 간신히 체면을 차렸다.

    역사를 간직한 월드컵경기장

    1934년 이탈리아월드컵부터 지역예선이 처음 도입됐지만 개막을 코앞에 두고도 북중미에서 본선티켓을 누가 가져갈지 가려지지 않았다. 그러자 미국과 멕시코가 배를 타고 월드컵 메인스타디움인 토리노경기장으로 가 일합에 승부를 내 결국 미국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 때문에 멕시코는 예선에 패하고도 본선무대를 밟아본 유일한 팀으로 기록되었다.

    1974년 서독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소련이 9조 1위로 남미 3조 승자인 칠레와 플레이오프를 하게 돼있었다. 소련은 홈에서 0대0으로 비긴 뒤 칠레 산티아고에서 원정경기를 치러야 했지만 이를 거부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유는 1973년 우익쿠데타로 마르크스주의자인 아옌데 칠레대통령이 살해된데다, 소련과의 경기를 치를 경기장은 강제로 연행된 수천 명의 공산주의자를 수용한 곳이며, 이곳에서 많은 좌파주의자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이 치러진 경기장 중에는 디트로이트의 폰티악 실버드롬이 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양생한 잔디를 이식해 만든 구장이다. 이곳은 월드컵이 열린 사상 첫 실내경기장으로 기록됐다. 또한 LA 파사데나 로즈볼 스타디움은 94미국월드컵 결승과 1999년 여자월드컵 결승이 열려 남녀 월드컵의 대미를 장식한 경기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6년 월드컵 개최국인 독일은 개막전이 열릴 뮌헨경기장의 신축 여부를 시민투표로 결정했다. 투표 결과 66%가 1972년 올림픽 때 일어난 ‘검은 9월단’의 끔찍한 테러와 1974년 월드컵 우승이라는 영욕이 교차한 뮌헨올림픽스타디움 대신 새로운 명소를 만들자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 독일이 벌써부터 2006년을 준비하는 것은 그만큼 경기장이 축구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자국의 문화상품을 효과적으로 지구촌에 전파하는 매개체 구실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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