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동네 서점에 안 가는 이유

  • 글: 김현미 동아일보 미디어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4-11-25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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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서점에 안 가는 이유

    11월9일 서울역 앞에서 도서정가제 법제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진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도서정가제’로 온-오프라인 서점간 갈등이 재현될 조짐이다. 10월29일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와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출판연구소가 개최한 대토론회에서 도서정가제가 뭇매를 맞은 것이다. 출판인들은 내년 2월로 시행 1주년을 맞는 도서정가제가 애초의 입법 취지와 달리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법의 적용기한을 ‘시행일로부터 5년간’으로 못박는 등의 불합리한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도서정가제는 간행 1년 이내의 신간은 정가로 판매해야 하나 온라인 서점은 신간이라도 10% 범위 내에서 싸게 팔 수 있다는 이중잣대를 적용했다. 여기에 온라인 서점들이 구매액에 비례하여 적립금을 부여하는 마일리지, 각종 경품 제공, 무료 배송 등으로 사실상 무한 할인을 하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창연 회장은 “온라인 서점들이 제살깎기 할인경쟁을 하면서 출판사의 희생을 요구해 출판사는 할인을 전제로 책값을 올릴 수밖에 없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면서 “그 사이 법을 지켜 정가대로 파는 오프라인 서점은 고객이 외면하면서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책 고르기 도와주는 온라인 서점

    다 맞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니 동네 서점에 가본 지가 참 오래다. 급히 필요한 책은 시내 대형서점에 가서 사고, 점심시간에는 온라인 서점을 들락날락하며 사고 싶은 책을 ‘찜’했다 한꺼번에 주문하니 동네 서점에 갈 일이 없다.



    하지만 완전도서정가제가 실현되면 동네 서점이 되살아날까. 소비자들은 단지 한푼 더 싸게 살 욕심에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것일까. 매년 발행되는 책이 3만여종인데 그 다양함을 품기에 동네 서점은 너무 협소하다. 몇 권의 베스트셀러 빼고는 실상 사고 싶은 책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얼마 전 인터파크(www.interpark.com)가 20~35세 회원 4161명을 대상으로 독서행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0%가 가격이 저렴하고 무료배송을 해주는 온라인서점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쇼핑몰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니까 당연한 반응이겠거니 했는데, 마지막에 ‘책 선택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이란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1위가 독자서평(27.6%)이고 베스트셀러(22.4%), 지인의 추천(19.2%) 순이다. 작가가 미치는 영향은 14.7%에 불과했다. 책을 고를 때도 남의 눈치를 본다고 할까, 대세를 따른다고 할까.

    어쨌든 독자서평을 보는 데 온라인 서점만한 곳이 없다. 출판사의 자기 책 자랑뿐 아니라 전문가 서평에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다양한 눈높이까지 두루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책 고르기를 도와주고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을 어찌 포기하랴.

    출판경력 30년의 원로 출판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전통적인 서점이 3분의 1로 줄었다면 출판매출이 급감하고 엄청난 충격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IT산업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없던 온라인 서점들이 생기고 대형 할인매장과 TV홈쇼핑 등 비(非)서점 매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책 구매 접근성이 좋아진 것이다.”

    얼마 전 대형 할인매장에서 아이가 사달라는 학습만화를 한 권 구입했다. 신간이어서 정가대로 지불했다. 할인매장인데 안 깎아주는 게 왠지 억울했지만 아이에게 “할인판매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책값을 안 깎아준다고 사야 할 책을 안 살 사람은 없다. 할인판매가 그토록 시장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예전처럼 완전도서정가제로 돌아가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이미 독자의 구매패턴이 달라졌는데 완전도서정가제를 도입한다고 온전히 옛날로 돌아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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